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 대망 -
(57)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역대하 12:1-16
지난 시간 저희는 ‘버림’과 ‘행함’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랑하니까 버리고, 사랑하니까 행동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누구를 무엇을 사랑하느냐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과 율례를 버리고, 하나님 정하신 예배에 관한 모든 것을 바꾸고 변경하고 해임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반면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의 계획을 버립니다. 18만을 준비했던 전쟁을 포기하지요. 그랬더니, 마을들과 산업을 버리고 떠난 레위인들과 마음을 굳게 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자 유다로 예루살렘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들로 말미암아 유다나라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강성해졌던 것이지요. 그렇게 성경은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의 흥망이, 우리의 인생의 흥망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이지요. 특별히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로 말미암아 르호보암의 나라가 강성해졌노라고 말입니다.
지난 시간 살펴보신 구절 중에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었지요? 삼년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솔로몬의 나라를 강성하게 세운 비결,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한 시간이 딱 삼 년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대하12:1)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으면,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여 더욱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하는데, 어떻게 하지요?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데, 복을 받았으니 이제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고발하고 있는 우리네 인생의 악함이고, 미련함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복을 누리고 살면서, 사랑하는 이를 홀대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저와 여러분은 그러하지 않은지, 더욱 돌아보시고, 내가 누구를 내가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지를 늘 확인하시길 축복합니다.
자, 오늘 르호보암은 어찌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게 되었을까요? 왕은 그렇다한들, 어찌하여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자 하였던 이들, 그래 마을과 산업과 기업을 하나님 사랑하여 다 버리고 떠나왔던 저들마저, 온 이스라엘이 다함께 율법을 버리는 르호보암을 본받게 되었을까요? 본문은 이 일의 시작을 한 여인으로부터 찾고 있습니다.
13절, "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여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예루살렘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여 그의 이름을 두신 성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여인이더라"
르호보암에 대한 평가 중, 르호보암의 어머니 나아마는 암몬 사람임을 기록합니다. 어찌하여 그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요? 르호보암이 방자하게 자라나, 노인의 충언을 버리게 된 것, 아버지로부터 여러 가르침과 잠언들을 배웠음에도 경건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했던 이유를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들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의 탓을 어머니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모습, 성경이 종종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이긴 한데, 오늘 본문은 르호보암이 행한 불경건과 우상숭배의 큰 원인이 가증한 밀곰(몰록)을 섬긴 모친 나아마에게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암몬 출신의 우상을 섬기던 나아마는 남편 솔로몬의 경건을 변질시켰고, 아들 르호보암의 영혼까지 망쳐버렸던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솔로몬은 어찌하여 자기 아내들의 신앙을 하나님 신앙으로 돌려놓지 못했을까요? 일전에 저희가 살펴보지 않고 지나간 구절이 있습니다. 역대하 8장 11절입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
첫 번째 부인부터, 철저하게 이들을 하나님의 궤로부터 분리했던 것입니다. 거룩한 곳에 오지 못하게, 그래서 저 별궁 1000세대를 건축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이지요. 여기에서부터입니다. 거룩함을 지켜내기 위해서 였지만, 결국 이 일이 이스라엘 안에 수많은 이방신상이 세워지게 되는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들이 가지고 온 것들, 저들의 신앙이 이스라엘 안에서 폐기되고 변화되어야 했는데, 그것을 처음부터 막은 것이지요. 아닌게 아니라 이스라엘에는 이미 수많은 이방인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짓는데에도 많은 이방인들의 지분이 있었지요?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성전은 물론! 거룩해야 합니다. 세상과 철저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거룩함이 구별됨이 누군가의 구원과 하나님을 향한 열망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끼리만 거룩하게 순결하게 예배드리라고 지으신 곳이 아닙니다. 저는 이래서 안되고, 이는 저래서 안되고 하면서 자꾸 우리의 예배의 거룩함을 이유삼아서 배제하고 제외시키고 따로 떼어놓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참새도 제비도 찾아와 예배드리는 곳, 만민이 나아와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하신 성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특별히 우리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지레 싫어하려니 지레 화만 내려니 하며, 믿지 않는 가족을 신앙생활에서 자꾸 분리시키면 안됩니다.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지 모릅니다. 고집스럽고 완고한 가족들이라도 계속해서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고 이끌어보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시고 역사해주실 것입니다.
자, 그렇게 하나님을,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만 르호보암, 그리고 그를 본받았다고 하는 저 이스라엘은 도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렀길래 하나님께서는 애굽왕 시삭을 보내셨을까요? 2절이 기록하는 것처럼, 도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렀길래, 르호보암은 저 북이스라엘과 그의 남은 통치기간 10년을 전쟁만 하며 보내게 되었을까요?
역대하에는 유다왕들의 악행을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악을 저질렀는지 열왕기상은 다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요? 르호보암이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금 겸비하고 하나님이 노를 거두시고 조금 또 구원해주시는 것으로 기록되지만,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4장 22절입니다.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남유다는 이전에 그 누구보다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합니다. 르호보암의 타락과 변질이 역시나 온 유다 백성을 우상숭배에 빠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3절은 이렇습니다.
23절,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모든 산 위에다 산당을 짓습니다. 산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성전이 있기 전에는 거기서 하나님께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혼합신앙이 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것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면서, 우상들에게도 절을 한 것입니다.
또 24절에 보면 남색 하는 자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 남색 하는 자란 동성애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들이 와서 이 남성들과 음행을 했던 성전 남창들이었다는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성적방종과 타락이 가장 거룩하고 신성해야 할 제단들에까지 만연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음행은 한 사회나 국가가 얼마나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의 우상들을 탐구하지도 말고(신 12:29-31), 모든 산당과 신상들을 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신 12:1-3). 나아가 우상의 올무를 놓을 가나안 족속을 모두 쫓아내고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출 23:31-33). 그러나 이스라엘은 믿음이 없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고(수 11:13; 15:63), 오히려 그들을 본받아서 가증한 일을 행했습니다(24b). 온전치 않은 순종이 완전한 타락을 낳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습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죄의 모습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세상이 달라져도 우리 인간의 죄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이 타락하는 모습, 그 과정은 동일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사랑이 식어집니다. 그러면 각종 우상들을 섬기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성적 타락과 방종으로 치닫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이러한 인간의 죄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요?
첫 번째는 외침입니다. 2절,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4절,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빼앗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9절,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빼앗은지라”
애굽 왕 시삭의 침략을 당하고 맙니다. 솔로몬이 쌓아놓은 모든 보물들과 금방패를 다 빼앗깁니다. 영적부흥으로 주셨던 모든 물질적인 축복을, 영적인 타락이 시작되면 다 거두어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을 때 허락하셨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 모두 다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쌓은 재물이 얼마나 허망합니까? 솔로몬이 얼마나 열심히 재물을 국고에 채웠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부역에 동원되어가며 피땀 흘려 모았는데, 그 재물을 한꺼번에 다 날려버립니다.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말았습니다. 모으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지만, 단숨에 하나님이 그 재물을 다 걷어 남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숭배에 빠져 버리고, 다윗의 길로 행치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은혜와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죠. 그 뿐이 아닙니다. 르호보암은 애굽의 침략으로 다 빼앗겨 버렸을 뿐 아니라, 15절에 보면,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계속 전쟁을 벌입니다.
그렇습니다. 외세의 침공과 더불어 두 번째, 계속해서 내전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고생인 것이지요.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아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정 반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 때에는 형제와 싸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는데, 하나님을 떠나고 사니 형제가 아닌 원수요 적이 되고 말았던 것을 보게 되지요. 오늘 우리 주변에는 형제가 많습니까? 원수가 많습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사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삼년 잘했으니 끝 하시면 안됩니다. 복받는 법을 배웠으니 끝, 운동하는 법을 배워 살빼는 법을 배웠으니 언제라도 다시 맘만 먹으면 뺄 수 있어 하면서 멈추면 안됩니다. 또 삼년, 또 삼년, 또 삼년, 우리는 우리를 강성하게 하시고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만큼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작심삼일의 반복일지언정, 늘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다가 세워놓으시는 마음과 행동이 우리의 것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확인하게 되지요? 한 사람이 멈추면 모두가 멈추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르호보암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지도자 한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 지도자의 영적 타락으로 온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
임금들, 대통령, 지도자들을 위해서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택과 판단으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바르게 행해야 만이 우리가 경건하고 단정하고, 고요하고 평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들을 위해서 늘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자기가 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굳게 하고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하나님 때문에 버리고 행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보내주셔서, 교회가 힘있게 부흥하고 성장할 때, 교만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게, 하나님과 말씀을 더욱 잘 지켜 나갈 수 있게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 주시는 영감과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를 성도를 섬겨나가도록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우리 모두의 생명이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도 영적으로 바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외치고 있습니다. 경제, 국방, 외교 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바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복있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사람을 본받지 말고, 우리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더욱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총칼 앞에 눈물과 기도로 세운 나라, 더욱 하나님께 복을 받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끝까지 걷는 나라, 그래서 끝까지 강성한 나라가 되도록, 이 일에 중보자가 되시고 쓰임받으시는 복된 분들, 우리 하일교회 성도님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