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人天)의 안목, 보현보살이신 큰스님
보현 이종린(普賢 李鐘麟) |홍익소아과의원 원장
그리운 큰스님(4)-깨달음을 중생 속으로
큰스님의 불광 운동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포교당이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큰스님들께서 시중에 거주하시며 포교 활동을 펴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실 외에도 큰스님께서는 불광 운동을 통해 현대 불교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셨는데,
첫째는 재가(在家)불교를 '수행하는 불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마는 우리 불자들은 수행을 참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지식적인 접근 아니면 기복적인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스님은 그런 불교, 그런 저희들을 '수행하는 불교, 수행하는 불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목탁 치는 법을 가르치시고 기도하는 법을 일러 주시며 직접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큰스님을 직접 모시기 못했던 불행한 불자 중의 한 사람이지만, '반야바라밀 염송'이라든가 '전법오서' 등을 보면 어떡하든 어린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을 통해 하나라도 더 전해 주시려 하셨던 큰스님의 따뜻하고 애틋한 마음이 가슴 아리도록 느껴집니다. 큰스님은 어린 저희들을 일깨우기 위해 참으로 부단한 노력을 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회향(廻向)과 자비행을 통해 '깨달음을 중생 속으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개인적으로 보면 수행도 열심히 하시고 도(道)는 참으로 높은데 중생의 일에 무심한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중생이 무슨 일을 하든, 중생의 마음 상태가 어떻든 그 분들은 알 수 없는 옛 선사들의 게송을 읊으시고 자신의 깨달음만 추구하며 열반을 노래하시는데, 저는 나날이 불교 신도 수가 줄어드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법은 선택 받은 자, 근기가 출중한 몇몇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부처님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은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평범한 중생들입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개인적으로 아무리 높은 도를 이룬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혜안(慧眼)으로 꿰뚫어 보시고 깨달음을 중생 곁으로 가져 오신 분이 바로 큰스님이십니다.
불광 운동을 통해 깨달음은 먼 삼천 년 전의 일이 아니요 중생 속에서 생생히 현실로 살아 숨쉬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큰스님의 삶 자체가 반야행(般若行)입니다. 제법이 공한 것을 보신 분, 일체가 환(幻)이요 꿈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을 온 몸으로 똑똑히 보신 분만이 할 수 있는 지극한 반야행을 스님은 우리에게 그렇듯 밝게 보여 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직접 나눠 주시고 가신 것입니다.
광덕큰스님은 선사의 자리를 버리시고 중생곁으로 오신 분이죠. 40년전에 전법의 중요성을 간파하셨으니, 그리고 40년 전이면 서울에 전차가 다니고 아직도 한강에서 수영할 수 있을텐데, 그 시절에 저런 놀라운 말씀을 하셨으니 얼마나 왕따(?)당하셨을까요? 지금도 승가에선, 간화선 안하면 중 취급도 안하는데 그땐 오죽 했겠어요
그리운 큰스님(5)-큰스님은 왜 우리 곁에 머무르셨는가?
큰스님은 범어사 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생애를 저희들 곁에 머무르셨습니다. 스님 정도의 법랍(法臘, 승려가 된 햇수)과 법력이라면 유명 사찰에서 어른 스님으로 대접 받으며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번뇌 중생을 만날 일도 별로 없으며 따라서 어리석은 중생으로 인하여 같이 가슴 아플 일도 없고, 그저 열심히 공부하시다가 오가는 납자(衲子, 수행하는 승려)들을 가르치시고 때때로 법회 날 대중을 상대로 꿈같은 법문을 설하시면, 스님의 수행은 깊어만 가고 명성은 온 세상을 뒤덮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셨더라도 하등의 허물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풀 냄새 가득한 깊은 산사를 등지고, 스님은 저잣거리로 내려 오셔서 저희들과 똑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시멘트 가득한 거리에서 그저 법주실(法主室)이라는 작은 공간에 의지하신 채, 저희들과 똑같이 아파하며 그렇게 지내시다 가셨습니다. 혹자는 스님이 산보다는 저잣거리를 더 좋아하셨기 때문에, 또는 포교 활동을 하시려면 어쩔 수 없어서 그러했던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기 쉬우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큰스님의 원력(願力)이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무시게 하셨을 것입니다.
불교 수행을 하는 분들은,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릴 것 없이 산을 그리워합니다. 일반적인 스님들 모습도 사실 깊은 산사에서 뵈올 때 그럴 듯하지, 도시에서는 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두고 보더라도, 한시 바삐 이 속세를 떠나 깊은 산에서 공부를 실컷 하고 싶지 매일 이렇게 중생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큰스님이야 오죽 하셨겠습니까. 저는 큰스님께서 불편하신 몸에도 자주 불광사 주위의 석촌 호수를 거니셨다는 말씀이 참 아프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스님인들 어찌 삭막한 시멘트 거리가 좋았겠습니까? 스님인들 어찌 물소리 바람소리가 그립지 않으셨겠습니까? 스님인들 어찌 모든 것 버리고 깊은 산사에서 다른 큰스님들처럼 그렇게 공부하며 살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하지만 스님은 저희 곁을 떠나실 수가 없었습니다. 어리고 어린 저희들을 두고,
우리 스님같이 자비로우신 분이 어찌 산으로 가실 수 있었겠습니까!
스님은 그래서 산으로 갈래야 가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않은 이가 있고
고통 속에 가슴 아파하는 중생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스님은 오직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나 몰라라, 하고
산으로 가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비원(悲願)이 아마 스님으로 하여금
석촌 호숫가를 그렇게 거닐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한번도 친견하지 못했던 스님이지만 글을 보니 절로 마음안에 그려지네요.._()_()_()_
그렇죠 제비꽃님? 저도 큰스님 친견한 것은 불과 3-4번밖에 안 된답니다. 1975 년 늦봄-초여름 사이에 대각사에서 뵈온 게 끝이지요. 그 후로는 영영 큰스님 뵙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도 큰스님은 저에게 영원한 님으로 남아 계시지요...*^*^*_()_
저는 보현행원 공부를 하며 큰스님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날이 갈수록 실감합니다. 큰스님 일화가 궁금하면 도피안사에서 나온 큰스님 제자 송암스님의 [공덕스님 시봉일기 시리즈]가 있어요. 6 권 정도 나왔는데, 첫번째 1 권이 제일 일화가 많아요. 한번 읽어보시기 권합니다.普賢合掌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만난 횟수가 중요하다거나 옆에 있는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만나거나 만나지 않거나, 님의 사랑은 점점 깊어만 간답니다. 이것도 병인지 모르나, 우리 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병이라면, 세세영영 앓아도 괜찮겠지요...*^*^*_(
우리도 큰스님을 사랑하지만, 큰스님은 저희들을 더없이 사랑하시니깐, 우리가 손해 보는 일은 절.대.없을거에욧!!!*^*^*_()_
그리운 큰스님(6)-금강경과 보현행원
큰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이후 큰스님을 찬탄하는 글을 많이 봅니다.
큰스님을 뵈온 분들의 느낌은 아마 한결같을 것입니다.
어찌 저리도 밝고 자비로우실까? 하는 것이 모든 분들의 공통된 느낌일 것입니다.
수행을 많이 하신 선지식이라 하더라도 출세간 일에는 밝으시지만
세간 일에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은 출세간뿐 아니라 세간 일에도 밝고 막힘이 없으셔서 하나를 맡기면 열을 해결하고, 리더쉽도 있으셔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스님 가신 지 2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일방적인 찬탄보다는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스님을 기려야 할 것 같습니다. 즉, 무엇이 스님을 저리도 밝고 자비롭게 만들었으며 우리 또한 스님처럼 되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리라 봅니다.
스님의 사상은 한 마디로 반야바라밀과 보현행원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보현행원은 스님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으며,
행원이야말로 스님을 저리도 밝고 자비롭게 만든 가장 근본적인 스님만의 독특한 수행이라 생각합니다.
보현행원은 본디 그렇게 밝은 법문입니다. 부처님 위신력이 곳곳에 넘칩니다. 부처님이 그대로 나에게 오시게 하는 수행이 바로 행원이요, 부처님에 대한 믿음,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이 곳곳에 묻어나는 것이 행원의 소식입니다. 행원은 나에게 어둠을 사라지게 하며 절망을 벗어나게 하며 한없는 부처님의 밝은 기운이 온 누리 곳곳에 퍼져가게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생명이 부처님 생명이요, 내 생명이 부처님 생명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무량 공덕으로 예나 지금이나 넘치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내가 미혹할 때나 미혹을 벗어난 지금이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그 어느 때든 내 생명의 무량 공덕은 조금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그렇게 내 마음의 밤하늘을 비추고 있습니다. 스님이 늘 말씀하시던 '내 생명 부처님 무량 공덕 생명'도 아마 이런 행원의 소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행원을 함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그것은 행원에 금강경의 밝은 지혜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 광명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 드리면 혹시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행원은 어디까지나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므로 지혜의 완성에는 금강경이 필요한 것이구나, 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제가 보기에는 바른 견처(正見)는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 자체가 광명이라, 부처님을 닮고자 하는 그 어떤 수행도 광명 아님이 없습니다.
행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원은 본래로 밝은 가르침입니다. 행원 그 자체가 태양처럼 아니 비치는 곳 없는 지극히 밝은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에 금강경의 밝은 가르침이 더해지는 것은 부족한 무엇을 보충하는 차원이 아니라, 밝은 가르침에 환한 기운을 더해 주는 것입니다. 밝은 기운이 더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금강경은 행원을 한층 더 밝혀 주는 것입니다. 금강경의 밝은 빛이 온 누리에 가득할 때, 행원은 그 밝음과 함께 더욱더 눈부시게 부처님 법계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세간, 출세간을 막론하고 그리도 밝으셨던 것도 이에 기인합니다.
금강경의 밝은 지혜 위에 행원의 눈부신 가르침이 현실에서 살아 숨쉬기 때문에
출세간뿐 아니라 세간 살림도 어두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큰스님을 뵈려는 이는 반드시 금강경과 행원을 공부하여야 합니다. 큰스님께서 젊은 날 금강경을 만나고, 다시 행원으로 지혜를 밝히신 것은 바로 이런 오묘한 인연의 결과라 할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큰스님께서는 평생을 반야바라밀 염송과 행원을 저희들에게 설하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글을 맺을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스님을 생각할 때마다 스님께서 남기신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란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룬다는 말은 앞서도 말씀 드렸듯 제가 행원 수행에 깊은 회의가 일었을 때 큰 가르침을 주었던 게송입니다. 이 게송은 스님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이렇게 간결하고 감동적인 말로 번역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가고 없으신 지금,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우리도 큰스님처럼, 내 생명이 부처님과 똑같은 생명임을 믿으며 끝없는 정진으로 기어코 보리를 이루는 일입니다. 스님이 그토록 좋아하시고 온 생명을 다 바쳐 이룩하시려고 했던 행원의 노래가 이 땅에 울려 퍼지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다함없는 행원의 노래가 온 사바 세계에 울려퍼지는 날,
우렁찬 금정산의 그 소리와 함께 큰스님께서도
환한 미소와 끝없는 자비로 다시 우리 앞에 현현하실 것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보현보살마하살
광덕스님 시봉일기 8권-인천(人天)의 안목, 글-송암지원
첫댓글 지난 주에 이어 두번째 보현선생님의 글입니다.
다른 분들이 광덕 큰스님을 보시는 것과 보현선생님께서 보시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금강경을 공부하고 보현행원을 공부하라는 말씀 새깁니다.
꼭 꼭 여러번 읽고 공부하시기를 간청하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금강경과 보현행원을 공부하라는 말씀 저도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나비님!
반갑습니다.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봉일기를 읽을 때마다 광덕큰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솟더니 오늘은 감사함으로 가슴이 저밉니다. 저에게 어떻게 이런 인연이~.. 공부는 걱정마라시던 꿈속의 할머니가 지어주신 인연일까.. 조는 저를 법당으로 데리고 다니신 시어머니의 원력일까.. 이생에서 아니 몇번의 생이 거듭되는 동안 만나고 얽힌 모든 인연들에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인연~_()_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보문님 말씀처럼 큰스님에 대해 보현선생님의 시각을 가만히 보면 시봉일기에 글을 주신 어느 분도 이렇게 뚜렷하고 정밀한 분석을 내어놓지 못함을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보현보살의 화현이시다, 자비롭다, 전법과 포교에 대단한 서원을 가지셨다 정도이고 김재영 법사님쯤 되면 어느정도의 견처를 보이시는 것 같지요.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큰스님의 경계에 관하여 아무도 보현 거사님만큼의 견해를 보여주시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거꾸로 보현거사님의 견처를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이 공부 인연에 참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보현행원이 아직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서운하기도 한 것이겠지요.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금강경과보현행원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