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아 마땅한 선교회가 되자! 느 11: 1-2
느헤미야 11장과 12장은 계속해서 성벽재건을 완성하고 성 안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의 헌신된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된 사람들의 이름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 어려운 이름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 이름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헌신이라 함은 나의 삶을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결단하며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가장 귀한 것들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이 헌신짝처럼 되지 않도록 정말 뜻을 다하여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기본적 헌신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헌신의 출발점은 히브리서 11장에서 시작하는데 히브리서 기자가 이들에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8절에서 40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믿음의 출발점이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3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고 한 말씀에서입니다.
위대한 선진들, 믿음의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았는가 하면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모욕과 치욕을 참으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의 진정한 헌신이 출발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1장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성안에 자원하여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마땅히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 1절과 2절에 나옵니다.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 예루살렘에 들어가 산 다는 것은 큰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디서 살기 원하는가 물어보면 서울, 그것도 살기 좋고 집값도 비싸고 강남에서 살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당시는 예루살렘이 수도이지만
정황이 좋지 못했습니다. 항상 전쟁의 위험부담이 있었기에 공격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해서 십분의 일 가량이 그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인생을 기꺼이 헌신하고 충성하므로 아름답게 인생을 드리겠다고 서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 역시 남은 생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 간절히 바라며
이 사람들이 어떤 헌신을 했기에 하나님 축복의 대상자가 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역에 헌신하였다는 것입니다.
11장 11절에서 12절에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손이며 또 전에서 일하는 그 형제니 도합이 팔백 이십 이명이요 또 아다야니 저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손이요 말기야의 육대손이며” 라고 한 말씀처럼 스라야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전을 맡은 사람이 그 안에서 예배사역에 헌신했던 것입니다.
22절에 “노래하는 자 아삽 자손 곧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라는 말씀에 아삽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시편이 대개 다윗의 시인데 열 두개정도가 아삽의 시입니다. 성가대 찬양대로 봉사하는 것이 큰 축복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기뻐하시고 찬양을 기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12장에 27절에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곽 낙성식에 참석해서 하나님을 노래했다는 것입니다.
12장 42절에서 43절에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어린이부터 찬양하는 것을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원래 예배는 영어 ‘worship’으로 ‘가치를 하나님께 드린다 ’는 뜻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드린다는 데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가치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의 또 다른 하나는 ‘service’ 섬김으로 예배 끝나고 나가서 삶속에서 몸으로 생활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몸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주일날 예배는 잘 드려놓고 생활은 엉망으로 하는 것은 참된 예배가 되지 못합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예배입니다.
교회에서 이 두 가지가 잘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가 많은데 한 예배를 잘 드리고 나머지는 섬김에 임해야 합니다.
이웃을 섬기고 태신자를 섬기고 참된 예배자가 되셔서 축복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2. 기도사역에 헌신하는 자들을 복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11장 17절에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니 저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 .
여기서 어른은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사역 하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중보기도는 예수님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이지만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한 사람에게 그 기도가 합당치 않으면 나에게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중보기도는 거저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고 믿음의 후손들 축복의 세대로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1절에서 46절에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능력을 낳습니다. 기적을 만듭니다 힘의 원동력입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기도가 기적을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3. 봉사의 사역에 헌신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11장 16절에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저희는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 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맡아 합니다.
19절에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니 도합이 일백 칠십 이명이며 ” . 성문지기로서 성 밖에서 잘 안내하고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는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기 바랍니다.
교회의 부흥되는 요소가 많지만, 예배를 위해 섬기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섬기는 사람이 많은 교회는 부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신 은사도 하나님이 거둬 가십니다.
이렇게 봉사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수고를 기억하십니다. 사람이 알지 못해도 하나님이 다 기억하십니다.
히브리서 6 장 10절에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남선교회 여러분! 그리고 모든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어하시고 예배 사역에 헌신하시고, 기도사역에 헌신하고, 봉사 사역에 더욱 헌신하여서 축복받아 마땅한 하나님 나라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