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일주일 남았다.
설을 맞이하러 가는 귀성객들의 분주한 모습을 TV를 통해 연일 보게 된다.
버스로 열차로 자가용이나 비행기로 교통수단이야 어떻든 명절에 부모형제를
그리는 마음은 모두가 한결 같으리라.
내게도 어렵게 열차표를 구해 귀성대열에 합류했던 시절이 있었다. 열한 시간,
심지어는 열여섯 시간이 걸려 고향에 도착하기도 전에 몸은 지치고 힘들지만
명절날 돌아 갈 고향이 있고 기다리는 부모형제가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고향 가는 길이 즐거웠던 것은 나를 기다려 주신 어머니가
계신 까닭이었다. 그것은 가슴 뿌듯한 행복이었던 것이다.
초가지붕아래 처마에는 고드름이 쑥쑥 키를 키워가고 있는 설을 며칠
앞둔 날, 어머니는 시렁에 얹어 둔 마른 쑥을 내려 소다를 넣고 삶은 후 물에
담가 놓으신다. 검은 쑥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매일 물을 갈아 주며 우려낸다.
쑥과 쌀가루를 섞어 시루에 찌기 위해 어머니는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쓰고 앉아
청솔가지로 불을 때셨다.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머니 곁에 있고
싶어 아궁이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고향에서는 가난한 가정도 설날에 쑥떡은
꼭 해먹는다. 절구에 찧어 크고 작게 만들어 광주리에 담아 광에 두고 보름이
넘도록 맛있게 먹던 어머니의 손맛을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으랴.
내 어머니 노래는
초가집 저녁연기
가난한 청춘을 청솔 태워 삭히던
매캐한 송진 내음 애절하던 굴뚝봉하며……
유안진님의 <달빛에 젖은 가락>은 내 어머님의 삶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
같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논, 밭의 험한 일을 도맡아 하시다
결국은 병을 얻어 돌아가시게 된 어머니의 고귀한 희생을 어이 잊을까.
우리 집 마당을 가로 지르면 고종 사촌 오빠네 방앗간이 있다. 설 삼사일전
부터 손수레나 머리에 이고 온 시루에 담긴 찐 밥이 길게 줄을 선다.
대여섯의 동리에서 유일하게 하나 뿐인 고종사촌 오빠네 방앗간의 떡을 뽑아
내는 기계는 종일 바쁘게 돌아간다. 기계 속에 들어 간 찐 밥은 쫀득쫀득한
가래떡이 되어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오면 절로 군침이 돈다. 친구나 친척의
떡이면 혹, 한 가락 쯤 먹을 수 있을까 해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기도 한다.
막상 우리 집 떡을 하면 별로 먹히지 않던 것이 조금 얻어먹는 것은 어찌나
맛있던지 꿀맛보다 더했다.
가래떡을 해 둔지 하루 반 정도 지나면 썰어야 된다. 어머니를 거들어 떡을
썰다 보면 어머닌 석봉이 엄마, 난 석봉이가 되고 만다. 불은 켜져 있지만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를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아니 따라 간다는
것은 무리한 나의 욕심일 뿐이다. 일찍 포기 했더라면 손에 물집은 생기지
않을 텐데 어머닌 한 광주리를 다 썰 때 까지도 손이 부르트지 않으셨다.
모든 일에 오랜 경험과 숙련된 솜씨와 요령이 있어야 됨을 결혼하고 십여
년이 흘러서야 알게 됐으니 철없던 욕심장이인 나를 보고 소리없이 웃기만
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 조금은 헤아리게 될 것 같다.
아랫집 귀남이 언니가 설을 쇠러 서울에서 내려 왔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부쩍 동구 밖으로 눈길을 자주 돌리신다. 산밭 가에 생명의 촉수를 키워가며
서 있는 미루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울기라도 하면 어서 동구 밖에 나가
보라 하신다. 한 번도 타지에 있는 언니 걱정을 남은 자식들 앞에서 한적 없지
만 혼자서 애 많이 태우시다가 오지 못하던 언니를 설 전야 저물녘까지 그리도
오래오래 기다리시곤 하셨다.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부엌일을 익히고 있을 무렵, 오빠는 연과 팽이를 만들기에
분주하다. 뒤꼍 대밭에서 맘에 든 대나무를 베어 오고 뒷산에선 나무를 잘라 와
마루에서 손이 시린지도 모르고 종일 연과 팽이를 만든다. 대나무를 깎아
창호지를 바르고 색종이를 여러 모양으로 오려 여기저기 붙이는 사각연과 긴
꼬리를 붙여 만드는 가오리연을 만들어 실험을 해보고 연줄을 이리저리 당겨
보아 중심을 잡아 광에 걸어두고 팽이는 깎아 동그란 부분에 오색의 크레파스로
예쁘게 색칠을 해둔다. 지금은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 시절에는
누구나 손수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읍네 오일장에서 사 오신 설빔은 곱게 접어
반닫이에 넣어 두시고 까치고무신은 골방 다듬잇돌 위에 얹어 두셨다. 오며가며
들춰보며 설날아침이 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하루가 왜 그리 더디 가던지,
설레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젠 불혹을 넘어서니 세월이 너무
빠름을 느낀다. 하루, 한 주일, 한 달, 일 년이 얼마나 빠른지 되돌아 올 줄
모르는 시간은 돌아 볼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음질한다.
존경함에 아버지보다 더 함이 없고
의지함에 어머님보다 더 함이 없다
때문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일생을 두고 외롭고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일생을 두고 슬프다
는 <시경>의 글처럼 돌아가신 지 오래지만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코끝이 싸해
지며 금방 눈물이 맺힌다. 그 사랑 깊이 새기지 못하고 어머니 데려 간 무심한
세월만 탓하며 살았던 날들, 제 자식 두고 부모가 돼서야 깨달으니 효도하고자
하나 생존해 계시지 않는 어머니를 어찌 뵈올 수 있으리오. 설이 가까워지니
한 분 뿐인 내 어머니 몹시도 그립습니다.
첫댓글 유년의 설날 풍경, 푸근하면서도 싸아 합니다. 그곳엔 늘 어머니가 있지요. 엄마 보구시퍼라.
가슴이 싸해지는구요. 잘 읽고 갑니다. ^^
하이디님 다우신 아름다운 글입니다. 착하고 사려깊은 맘씨가 글속에 녹아있군요. 다시는 되돌릴수없는 아득한 저쪽이 서러움처럼 코끝을 간질입니다.
참으로 옛생각 나게 만드네요.. 어릴적엔 명절이면 꼭 새옷하나 얻어 입는 기쁨에 들뜨고 갖가지 음식으로 잔치날 준비하는 북적대는 음식냄새에 들뜨고, 지금 생각하니 안봤으면 상상도 못할 그 많은 명절음식 어떻게 다 혼자서 준비하셨는지....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열두 굽이 애간장이 메아리를 안고 전율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치 않는... 칠부능선님, 야생초님, 미소님, 안개꽃님, 소빈님, 함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개꽃님의 품은 봄햇살처럼 따뜻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