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기우가 되지 않고, 위안이 되게 하소서
솔향 남상선 / 수필가
옛 말에 사택망처(徙宅忘妻)란 말이 있다. 집을 옮기면서(이사하면서) 아내를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건망증에 정신 나간 사람이 이삿짐 싸는 데에만 골똘하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그 지경이 됐으니 안타까운 나이라 하겠다.
나도 젊었을 때는 기억력이 괜찮다는 얘기도 들었고, 많은 걸 암기하는 기억력으로 남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한데, 지금은 기억되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90년 대에 대전동부터미널에서 그 당시 10년 전에 가르쳤던 대전여고 제자를 만났다.
담임을 했던 졸업생이었다. 제자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 오래되어서 저를 알아보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 57번 심◯자 대전여고 졸업생 아닌가요? > 했다.
내가 지명(知命)의 나이 전후까지는 담임했던 학생들이 졸업 후 10년 이상이 됐어도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도 번호 성명까지 일치시켜 기억했으니 주변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한데, 지금은 건망증에 기억하던 것까지 거의 잊어버리고 실수투성이로 세월만 낚고 있다.
자연의 섭리로 생각하는 게 속 편할 것 같아 요즈음은 무신경으로 살고 있다.
기억력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건망증을 두고, 그냥 웃어버려서도 안 되겠지만 기우(杞憂) 같은 걱정을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언젠가 10월 첫 주 수요일에 할머니들 문해교육을 하러 시간을 맞춰나가기가 바빴다.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서둘렀다. 버스를 타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승강장에 도착해서 조금 있으니 버스가 왔다. 승차 하려고 교통 카드를 꺼내려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니,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옷을 갈아입고 카드를 챙기지 않고 나온 거였다.
초고속 발걸음으로 집에 가서 카드를 챙겨가지고 나왔다. 버스승강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좀 늦을 것 같아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찾았다. 아, 그런데 이런 정신 좀 봤나!
핸드폰을 또 집에 두고 온 것이었다. 시간은 늦은데 핸드폰을 가지러 또 집으로 뛰는 거였다.
집에서 냉장고에 보관한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열고 보니 무엇을 꺼내려 왔는지 생각이 안 나는 거였다.
어느 날은 저녁 모임에서 식사를 마치고 밤 9시쯤 돌아와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찾는다는 게 엉뚱한 다른 집 초인종을 누른 거였다.. 정신을 차리고 확인해보니 다른 집에 가서 소동을 떨고 있었던 거였다.
산에 사는 다람쥐도 월동을 하기 위해 상수리나 도토리를 열심히 물어다가 모아놓는다.
우리 인간이 겨울을 나려면 김장하고, 쌀을 사고, 연탄과 기름을 갖춰 놓듯이, 다람쥐도 그리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에 상수리, 도토리를 저장할 굴을 파놓고 거기에 묻어 놓는다.
한데, 다람쥐는 생각보다 기억력이 나쁘고 건망증이 심해서 자신이 상수리, 도토리를 어디에 묻어 뒀는지 잊어버린다. 다람쥐의 나쁜 기억력이나 건망증으로 찾아내지 못한 상수리, 도토리는 봄에 싹이 터서 새로운 나무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람쥐의 건망증이나 생각나지 않는 기억력 덕분에 싹이 터서 성장한 상수리, 도토리나무에 열린 열매들이 다람쥐 후손을 굶어죽지 않고 살게 만드는 것이다.
상수리·도토리나무는 다람쥐의 망각의 위력 덕분에 종족을 번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람쥐 후손들은 그로 인해 몇 년이 지난 후엔 더 많은 열매를 얻어 잘 살게 되는 것이다.
이로 볼 때 건망증이나 망각은 단점도 있지만 순기능의 좋은 점도 많은 것이다.
많이 기억하고 망각하지 않는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다람쥐의 망각이 상수리·도토리나무의 번식을 돕는 위력이 된 것처럼 인간의 건망증도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건망증이나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큰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인생사 슬픔이나 미움, 원망, 분노의 생각을 망각이나 건망증으로 잊게 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다면 인간은 하루도 온전하게 살 수 없는 불행일 것이다. 한데, 망각이나 건망증으로 원망, 미움, 분노 같은 감정은 잊어버리고 살 수 있어서 그래도 다행인 것이다.
인간의 건망증이나 망각이
다람쥐의 또 다른 희망이 되고
인간성 부활을 위한 온혈 가슴이 되게 하소서
건망증이 기우가 되지 않고 위안이 되게 하소서
첫댓글 어쩌면 그렇게도 공감가는 글을 잘 쓰시나요.
나도 605번 버스를 타고 엉뚱한 곳에 내려 경찰차 도움으로 집에 온 사실이 있어요.
우리 우한 코로나를 코로나 19로 명칭을 바꿔 법석을 떨고 있는 혼란스러운 사회에 살아남읍시다.
문재인의 무능도 잊고 삽시다.
김용복 선생님의 말씀에 십분 공간하며...
끝에 다람쥐의 귀여운 건망증에 이르러서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배어 나오네요.
저도 작년에 정말 말도 안되는 건망증으로 두번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또 어느새 희미하게 잊어져 평정심을 갖고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건망증도 확실히 유익을 주기도 하는가 봅니다.
목요일마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