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8일
제목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본문 요한복음1:35-42
여러분은 베드로를 얼마만큼 하십니까? 그는 요한의 아들, 어부, 배움도 없고 성격이 급하여 실수가 많고 기복이 극심한 사람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만남의 과정과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미래 가치를 말씀해 주신 내용을 배우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과정을 이해하려면 세례요한으로 시작을 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고, 메시아의 오심의 길을 준비하는 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고 예수님 보다 먼저 활동했습니다. 그는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백성들을 향해 회개를 외치고 예수님께 나올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 하기에 전심을 다했습니다. 본문 36절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뭇사람들의 관심이 세례요한에게 쏠려 있었지만 예수님께 시선을 돌립니다. 요1:29에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려 있을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세례요한은 기회 있는 대로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말해주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으로부터 듣고 배웠던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제자가 따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들은 자는 많았지만 감동 받고 나아간 자는 요한복음 저자인 요한과 안드레 둘 뿐입니다.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순종하여 나아가는 자는 소수입니다. 세례요한의 가르침에 대하여 깨닫는 시간은 다르지만, 더 많은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며 어떤 분으로 소개하실 것입니까? 오늘 우리를 통해서 주께로 올 자를 부르십니다.
자기에게 나오는 자들을 환영하셨다
38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두 제자들이 자기에게 나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십니다. 우리의 이름도 아시고, 우리의 아픔도 아시고 어려운 형편도 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예배당에 나올 때 영적 목마름을 가지고 오셨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는지도 아십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내게 나온 이유가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목적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오셨습니까?
두 사람은 대답했습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동문서답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을 길에서 가볍게 만나기보다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찾아가서 많은 시간을 갖고 싶고, 깊이 있는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는 갈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39절 “와서 보라.” 예수님을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환영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6:37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그에게 나오는 자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풍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따라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은 만남의 시간을 열 시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이 소중한 순간으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예수님을 만남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처음 만나서 긴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정해두고 일주일에 한 시간만 만난다는 규칙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랑은 의심해야 합니다.
두 제자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많은 시간을 갖고 가르침을 받으면 그분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전이가 됩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가르침을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안드레는 즉시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데리고 예수께로 왔습니다. 안드레는 초보신자나 다름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 번 받은 자인데, 그의 형제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전도란 모든 것을 다 안 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 믿는 분들이 전도를 더 잘 합니다. 안드레는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오는 일만 했습니다.
안드레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입니다. 그의 행적이 드러남이 거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큰일을 하지 않았어도 장차 큰일을 해낼 베드로를 전도했습니다. 내가 큰일을 하지 않아도 큰일을 할 사람을 인도하면 큰일이 됩니다. 100만 명을 전도한 무디를 전도한 사람은 캠벨이라는 주일학교 선생님입니다. 캠벨 선생님은 구두수선공 무디의 미래 가치를 미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가 장차 주님을 위하여 얼마나 크게 쓰임 받게 될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미래가치를 보았습니다. 42절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의 현재의 모습만 아니라, 미래에 저지를 실수도 아셨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칠 일도 아셨습니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장차 게바라 하리라.” 마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미래가치를 보았습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허약함과 실수를 떠올리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장차 게바라고 할 것입니다. 게바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반석은 하나님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하던 놀라운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주 무너지는 허약한 자임을 잘 아셨지만, 그가 언젠가 반석이 될 것을 믿었습니다. 베드로의 미래의 가치를 알아주었습니다. 물론 이름을 바꾼다고 금방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반석이 되는 것은 베드로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합니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소개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줄 때 자신감이 생기고 인생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예수님은 과거를 묻지 않고 나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니 꽃보다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는다고 금방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늘 실수해도 그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나의 미래의 가치를 내다보셨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장차 게바로 만드시겠다고 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충만한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그건 여러분 스스로도 안 되고, 제가 해줄 수도 없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게바로 만드실 것을 기대하며 물러갈 생각입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기어이 세우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줄 것을 믿습니다. 배도의 길만 가지 마시고 부족한 채로 내 모습 그대로 예수님을 묵묵히 따르십시오. 그러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고 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그분이 우리를 최고의 선민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