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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개인 안에만 머물지 않고,
관계를 통해 확산되며,
가장 가까운 존재끼리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
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구속 이후의 신앙 공동체에서는:
서로를 죄로 끌어내리는 관계가 아니라,
의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관계
가 되어야 한다는 적용도 가능합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말씀하신 대로:
남편만 사회 활동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부부 모두가 직장·경제·사회 구조 속에서
불의와 타협 압력을 받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돈과 성공 때문에 양심을 잃지 않도록 아내가 붙들어 주고,
아내 역시 경쟁과 현실 압박 속에서 신앙을 잃지 않도록 남편이 붙들어 주는
상호적 의의 동역 개념은 충분히 성경적 적용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에베소서 의:
“피차 복종하라”
서로 거룩하게 세워간다는 부부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또 중요한 통찰은:
결혼의 목적을 단순히:
생육,
경제 공동체,
정서 안정
에만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함께 지켜가는 공동체”
로 보는 점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 전통 안에는:
순교를 함께 준비한 부부,
신앙 때문에 가난과 손해를 감수한 가정,
양심 때문에 권력과 타협하지 않은 가족
의 이야기들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부부는 서로의 의를 지켜주는 응원자”
라는 표현은 현대 교회 결혼관에 중요한 보완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결혼 문화는:
성공,
소비,
안정,
사회적 체면
중심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교회 주례와 결혼 교육에서:
“당신은 배우자의 신앙과 양심을 지켜주는 사람인가?”
를 더 강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결국 에덴동산의 실패를 단순 과거 사건으로 끝내지 않고,
오늘의 부부 관계 속에서:
서로를 하나님보다 세상으로 끌어가는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의로 서로를 붙들어 주는가
라는 질문으로 연결하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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