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감기 기운이 조금 올라오는가 싶더니, 결국 감기가 제대로 와버렸습니다.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이동장터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싶다가, 큰 텀블러 2개를 챙겨 가봅니다.
9시 20분,
"지난번에 육개장 하나 사갔더니 이 써글것이 또 사오라네"
손주를 챙기시는 어르신,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손주가 좋아라하니 좋아하는거 사다주십니다.
항상 본인것보다는 손주것을 먼저 고민하시는 어르신.
9시 40분,
"공병 좀 갖고 가지?" 라는 어르신. 지난주에 한 번 마을을 다 훑었지만 공병을 보진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어르신 댁이 아니라, 어르신 아랫집이었습니다. 어르신은 미안하시다며, 토요일날 아들보고 갖다놓으라고 하신다고 합니다.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아 몸이 으슬으슬하니, 어르신께서 커피 한 잔 뜨겁게 내려주십니다.
열 좀 올리고 다시 출발해봅니다.
10시,
"두부 두모 주세요~"
점빵 가던 차를 붙잡고 두부 달라고 하시는 아짐. 다음주에 떡국떡 갖고 오는지 여쭤보십니다. 명절 맞이 음식 준비하시려나 봅니다. 떡국떡, 두부, 전감 등 모두 갖고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이 마당에서 뛰노는 강아지는 사람이 왔다고 좋다며 마구 뛰댕깁니다. 아짐과 헤어질려던 찰나, 아짐 발을 감싸고 있던 강아지 목줄이 아짐을 넘어뜨립니다. 손등이 까졌지만, 젊어서 괜찮다는 아짐. 큰일 날뻔했습니다.
10시 30분,
"보리쌀 20키로 있소? 그냥 한 번에 확~! 사서 먹을려고~"
매장에 포대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일단 확인해보고 드리기로 했습니다. 어르신은 명절 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어르신 남편분께서 당뇨가 있어 식사 조절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르신꼐서 드시기 편하시게 소포장 된 것 갖다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이 사시는 물건은 생활이 반영이 되어있습니다.
10시 40분
떠나려던 찰나, 저 멀리서 어르신이 손짓하십니다.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얼마전 남편을 사별하시고 나서 혼자 사시고 계십니다.
"막걸리 4병하고, 댓병 3개 내려줘"
어르신께서 지폐를 뭉치로 주셨는데, 딱 만원이 맞았습니다. 어찌하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지갑앞에 만원씩 접어놓으셨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천원짜리는 버스를 탈 때 필요한 돈으로 천원짜리 지폐 활용이 매우 높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해서 넣은 어르신의 지갑. 꼼꼼하십니다.
자식들이 온다고 합니다. 술좋아하는 자식들을 위해 술을 사다놓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명절엔 많이들 내려오겠지요. 그 헛헛한 마음 이번 명절에 조금이나마 채워지길 바래봅니다.
11시
"추우니깐 안에서 하시게요~"
어제 비가 살짝 오고나서 기운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회관에 앉아 어르신들이 사고자 하는 것들 하나 둘씩 받습니다. 회관에서도 남은 운영비를 모두 쓰자는 의견과 하나씩 계산해서 알뜰하게 써야한다는 어르신있었습니다. 결국 총무 어르신의 말씀에 따라갑니다. 하지만, 하나 두개 사다보니 결국 돈을 모두 다 쓰게 된 상황. 어르신들도 웃으시고 총무님도 웃으시네요
그러던 차, 사이다를 사신다는 어르신. 본인 혼자 캔 10개 사시는게 미안하신지 큰 통 하나 사서 회관에 하나둡니다.
13시 20분,
전화가 한통 옵니다.
"오늘 점빵 오는가?" 두시 반쯤 가는 마을인데, 어르신이 물건 살게 있다며 전화를 대신해달라고 하셨나봅니다.
이따갑니다~ 라고 말씀드리며 부랴부랴 움직입니다.
13시 40분,
열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회관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머리가 핑핑 돌았네요.
어르신들도 담주 대목에 사자고 하십니다.
한 어르신은 "두부 두모 주지?" 하시길래 하나만 사시라고 했더니,
"어허, 이제는 아끼면서 파네~" 하시며 허허 하십니다.
두부가 더 남지 않아, 뒤에서 예약하신분에게 드릴 두부가 부족했었습니다.
약기운이 돌아 어르신들께 양해를 구하고 5분만 누웠습니다.
"어허~ 동락점빵에 전화해야겠다. 동광이 점빵 보내지 말라고~"
잠깐 누워있던 덕분에 다시 출발합니다.
13시 50분,
어르신 댁은 오늘도 잠겨있었습니다. 우유를 놓으려고 넘어가려고 하니 옆집 어르신이 이상하게 쳐다보십니다. 혹시나 오해하실까 싶어 설명드리며 들어갔는데, 냉장고 안에 우유는 어찌된 일인지 많이 있었습니다. 석전에 가서 어르신께 여쭤보니 못마셨다고 하시며, 명절때 안오니 그냥 두라고 하시는데, 담주 목요일날 올테니 그 때 사시라 말씀드리며 우유를 다시 갖고 나왔습니다.
14시 15분,
오랜만에 만난 동네 어르신. 보시자마자 애기 잘크지? 하십니다.
이곳에서는 어르신들의 구매가 매우 적은 곳이기에 늘 지나가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어르신이 나오셨습니다 .필요하신 것 드리고 안부 여쭙고 출발합니다.
14시 40분,
조용한 동네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그러다 옆 창문으로 두들기는 어르신. 깜짝 놀라 내렸습니다.
"그 뭐시기더냐, 떠먹는거 있지?" 여쭤보십니다.
무슨일인지 보니 요즘 통 대변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추천 받은것이 요플레를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십니다.
그러곤 숟가락 안주냐 하시길래 밥 숟가락으로 드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간혹 극단적인 분들은 날짜 지난것을 일부러 드신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쾌변을 기원합니다.
그러곤 전화 드리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시는 어르신들. 이것저것 부랴부랴 사십니다.
"두부 세모~"
다 떨어졌다는 말씀에, 두부 사려고 자전거타고 엄청 빨리 왔는데, 아쉽다며 다음번을 기약합니다.
예약하셨던 분은 두부말고 호빵을 챙기려고 하시길래, 삼촌꺼 일부러 남겨뒀다고 하니 두부로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곤 콩나물 하나는 옆에 있던 아짐에게 드리며 일터로 곧장 가십니다.
늘 오시던 어르신이 또 안보이셔서 집으로 향해봅니다. 밖에는 밖 어르신이 작업하고 계셔서 안에 어르신 계시는지 여쭤보니 들어가보라고하십니다. 안에 들어가보니 침대에 누워계시는 어르신.
"내가 요즘 통 잠이 안와서 잠이오는 약을 먹었더니 머리가 핑핑 도네 돌아, 뇌가 뒤집혔어" 하십니다.
어디가 그렇게 많이 아프셨던 것인지, 영 상태가 안좋아보이십니다. 다음주 일정 말씀드리고 다시 편히 쉬시라고 하며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다음 마을로 출발하던 찰나, 또 다른 어르신 한 번 더 붙잡습니다.
안나오시나 싶었는데, 기다리셨나봅니다. 계란과 두부 등을 사시곤, 다음주 대목때 더 사시겠다며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십니다.
어르신 덕에 추운 몸 한 번 더 데피고 출발합니다.
15시 10분,
어르신들이 화투가 끝나셨나봅니다. 한 어르신은
"내가 이거 외상 때문에 정말 한숨도 못잤어~" 하시며 지난 외상값을 주십니다. 큰 돈 아니지만, 외상이 주는 심리가 큰가봅니다.
한 어르신은 콩나물 2개 외상하시며 담에 받아가라하십니다. 그 건너편에 있는 어르신은 화투치는 시늉을 하시며
"콩나물을 이렇게 줘버려!" 하십니다. 많이 떼이셨나봅니다.
서로 기지배하시며 동네 자매처럼 지내시는 어르신들. 건강하게 지내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어디선가 튀어난 닭 한마리.
누구네 닭인지 모르겠지만, 양쪽에서 오던 차들을 당혹시킨 녀석이었습니다.
도로위에 뛰쳐나오는 닭, 시골의 일상이겠지요.
감기 몸살이 어서나아서, 다음주 대목장엔 건강한 모습으로 장터를 다닐 수 있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