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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27. 설 이야기
내일이 설이네요. 손님들과 ‘설은 서러워서 설이라고 한다’고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만, 모처럼 가족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명절인 만큼 반가움 속의 서러움을 말하는 것이겠다 싶어 그렇게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하기는 17세기 문헌에 ‘설’을 ‘나이·해’를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경우가 있다하니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로 보아 ‘서운하다’ 정도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습니다.
손님들과 헤어지는 인사말로 덕담을 주고받은 후, 갖고 있는 책에서 설에 관해 찾아보았습니다. 설마 정말로 ‘서러워서 설’은 아니겠지 싶어서였는데, 재미있는 말들이 많더군요. 아래 책에서 찾은 ‘설’의 어원을 옮겨 봅니다.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첫째는 설날을 '낯설다', 혹은 ‘설익다’ 등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 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선날’ 즉 ‘시작한다(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의 해석이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 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새해 새날’의 한자어들이니 기억해 두기로 하자.
설날에 행하는 모든 일들에는 ‘세(歲)’자가 붙는다고 하네요. 어른을 찾아뵙고 드리는 인사는 세배(歲拜), 대접하는 음식은 세찬(歲饌), 차려내는 술은 세주(歲酒), 아이들이 입는 때때옷 설빔은 세장(歲粧)이라고 하는 식이지요.
위의 몇 가지 용어는 모두 새해의 행사를 말함인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어른들께 드리는 세배일 것입니다. ‘소자(小者)와 유자(幼者)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존자(尊者)와 장자(壯者)를 알현(謁見)하는 예(禮)는 신정(新正)의 세배 외에 동지(冬至)와 사맹삭(四孟朔), 즉 4월초와 7월초, 10월초에도 행해졌다’라는 기록을 본 일이 있습니다만, 암튼 우리 조상들의 어른 모시는 예절은 본받을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본래 우리의 명절은 세시(歲時)를 기억하는 의미 외에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합니다. 특히 새해 첫날을 이르는 설날은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였습니다. 설날에 관한 기록은 3세기 魏志東荑傳(위지동이전) 부여전에 이미 나타난다고 하는데, 아래에 국립민속박물관 발행 ‘열두 달 세시풍속’에서 찾은 설날의 유래를 옮겨 봅니다.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큰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으려면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우리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 ‘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히 중국 역법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 기록에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할 수 있다. ‘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재위 765∼780) 때에 오묘(五廟: 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여섯 번씩 성대하고도 정갈하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정초에 새해를 자축하고 조상님들을 기리는 풍습에서 비롯된 날이 설날이라니 차례상 올리는 예절은 빠질 수 없겠습니다. 아래는 역시 ‘열두 달 세시풍속’에서 찾은 ‘차례상 차리기’ 항목의 옮김입니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사상에는 설음식[歲饌]을 갖추어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사상 위에 세워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차례상 앞 첫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다. 이때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둘째 줄에는 채(菜)나 나물류를 놓는데, 포(脯)는 왼쪽에 식혜는 오른쪽에 놓고, 셋째 줄에는 탕(湯)을 놓는데, 다섯 가지 맛을 갖춘 탕으로 단탕(單湯)·삼탕(三湯)·오탕(五湯)· 칠탕(七湯) 등이라 하여 어탕(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에 소탕(蔬湯)은 가운데에 놓는다. 넷째 줄에는 적(炙: 불에 굽 거나 찐 것)과 전(煎: 기름에 튀긴 것)을 벌여놓는데, 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이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섯째 줄에는 밥과 국을 놓는데, 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놓고 떡은 오른쪽에 면(麵)은 왼쪽에 놓는다.
모처럼 맞은 정초의 3일 연휴, 바쁜 일상에 쫓겨 허겁지겁 살아온 직장인들에게는 황금과 같은 시간이 되겠지요. 하기는 먼 시골의 고향을 찾아 몇 시간씩 차에서 시달려야 하는 분들에게는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겠지만요. 물론 명절음식 준비로 여념이 없을 주부님들에게도 쉬운 시간은 아닐 줄로 짐작됩니다마는.
조선조 때에도 남정네들의 고달픈 일상은 설날이라고 별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정월 초하룻날 해야 하는 일로 ‘과수나무 시집보내기, 뽕나무와 과일나무에 불을 쬐어 병균 죽이기’가 있더군요. 반드시 명절 날 하지 않아도 괜찮을 일을 구태여 기록한 점은 ‘농사꾼은 언제나 들에 나갈 준비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의 교훈인 걸로 짐작됩니다만, 가벼운 일과를 마치고 차례 상에 남은 음식과 더불어 한잔 술로 음복을 하는 것으로 정초 행사를 더욱 뜻 깊게 할 수 있는 지혜로도 보여 새삼 조상님들에게 감탄을 하였습니다.
아래는 설날이 3일 연후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다사다난했던 우리 근대사의 변덕에 곁들여 설날도 어지간히 고달픔을 겪었더군요.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부터 공식적인 새해 첫날의 기능은 양력설에 내주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조선문화 말살 정책을 편 일제(日帝)는 조선의 음력설을 없애기 위해 조선인들이 음력설에 세배를 다니거나 설빔을 차려입은 경우에는 먹물을 뿌려 옷을 얼룩지게 하고 떡 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경찰을 동원해 감시하는 등 온갖 탄압과 박해를 가하였으나, 음력설을 쇠는 풍습을 없애지는 못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40여년간 음력설은 명절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특히,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이유로 사기업체의 휴무에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음력설을 없애려 하였고, 양력설에 차례를 지낼 것을 권장하여 서울 등 대도시의 일부 가정에서는 양력설을 쇠는 풍토가 생겨났다.
그러나 대부분 가정에서는 여전히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음력설도 공휴일로 지정하여 이러한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1989년에 음력설을 '설날'로 하고,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한편 북한에서는 1967년부터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였고, 2003년부터 설날을 3일 연휴(음력 1월 1일부터 음력 1월 3일까지)로 하고 있다.
오늘은 까치설날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즐거운 시간, 새 옷과 새 신을 사서 벽장 속에 넣어놓고 어서 하루가 가기만을 기다렸던 어렸을 적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설날의 놀이로는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이 있는데 저는 주로 ‘자치기’를 즐겼습니다. 아주 고수였거든요.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옛날에 작은설을 가리켜 '아치설', '아찬설'이라고 부른데 유래한다고 합니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치설이 '아치'의 뜻을 상실하면서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뀌었다고 하는군요.
까치설날에 하는 일로 복조리팔기가 있습니다. 저도 청소년기에는 복조리장수를 따라다닌 경험이 있습니다만, 섣달그믐 며칠 전부터 대나무로 만든 조리를 쌍으로 묶어 집집마다 담장 너머로 던져두고 정초에 시세보다 비싼 값을 부르며 수금을 다니는데 원한 적 없는 강제 구매인데도 부르는 대로의 값을 주지 않은 집은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초에 집안에 들어온 ‘복(福)조리’이니 조금 무리한 값이라도 치르고 받아들인 호의에 힙 입은 상술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젊은 한때의 치기가 빚은 소악당적인 못된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 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고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성은 장수를 맡은 노인성(老人星)이고, 직일신장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모두 도교의 신이다.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畵像)을 한 자 남짓 되게 그려서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 또는 설그림이라고 한다. 또한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대궐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하며, 종규(鐘馗)가 귀신 잡는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니, 이것들은 다 사기(邪氣)와 역신을 물리치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궁가(宮家)와 척리(戚里: 임금의 내척(內戚)·외척(外戚)) 집 문짝에도 붙이니,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받아 그림을 문에 붙였던 것이다.
위는 역시 국립민속박물관 발행 ‘열두 달 세시풍속’에서 옮긴 조상님들의 정월 초하룻날 풍습입니다. 제가 했던 ‘복조리값 바가지 씌우기’와 비교되어 엄청 부끄러웠습니다만, 이제는 기록으로밖에 남지 않은 사라진 풍경들이라서 옮겨 보았습니다.
책에는 이상의 기록 외에도 정초에 먹는 음식에 관한 궁중과 민간 풍습 등 여러 가지 자료가 있었습니다만, 이만 그치고 정초에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덕담 몇 가지를 옮겨 설 이야기의 말미로 하겠습니다. 과세 편안히 보내시고 아이들에게 세배돈 넉넉히 주시는 것 잊지 마세요.
남의 속임수를 알지라도 말로써 나타내지 않으며 남에게 모욕을 받더라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으면 이 속에 무궁한 뜻이 있으며 무궁한 덕이 있다.
覺人之詐 不形於言 受人之侮 不動於色 此中 有無窮意味 亦有無窮受用 (菜根譚)
덕(德)은 근본이요, 재(財)는 끝이다.
德者本也 財者末也 (大學)
알지 못하여 능히 신령스럽고, 다투지 않아서 능히 굳세며, 욕심 내지 않아서 능히 부하고, 벼슬하지 않아서 능히 귀하기는 오직 대인(大人)이라야 될 수 있다. (土亭集)
잠깐, 어른들에게 올리는 덕담은 원래 “~세요.”하지 않고 “~하였다지요.”하고 단정적 종지형으로 하는 거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손자를 보셨다지요.”하는 걸로 사실화된 기원을 말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신(神)도 ‘미안해서’ 주원(呪願)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라네요. 혹여 실수를 하면 “배운바 없는 놈” 소리를 들어야 했다니, 조상님들, 어지간히 어려운 정초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우리야 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해왔으니, 범사에 조심하고 조심해서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을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
첫댓글 감사...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설 명절 즐겁게 보내셨다지요.
일제시대와 또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동안 음력을 안 지내고 양력을 쇠었던 적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다시 음력설로 환원된걸 보니, 과연 우리나라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가 깊은가 봅니다. 설의 어원과 전통! 잘 읽고나니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역사의 수난사와 궤를 같이 하여 설날도 어려움을 겪었다더군요. 저도 글을 옮기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을미년 설날, 레드 님의 댁에 행운이 함께 하셨다지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날으는 마녀 님이 방문해 주셨군요. 명절 연휴인데 즐겁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복 많이 받으세요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복많이 받으세여~~
고맙습니다. 을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또 하나 배웁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오랜만에 좋은글읽고갑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러고 보니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은 양력과 음력 사이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음력의 진정한 설날의 이름을 되찾은 듯 합니다. 과일과 곡식이 풍부한 추석의 젯상차림과는리 설날은 기름지고 맛있는 소고기가 들어간 떡국을 먹으며 한 살이 추가되는 절기로서 어른들로 부터 적지않은 세뱃돈이 기대되기에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에겐 매우 거운 명절임에 틀림 없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어른들로 부터 세뱃돈으로 빳빳한 10 원 짜리 여러 장을 받아 쇠로 만든 빨간색 우체통 모양의 저금통에 꼬깃 꼬깃 돈을 접어 집어넣은 후 그 날 저녁 쇠로 만든 작은 열쇠로 저금통을 개방하여 막대한 돈을 보고 좋아하던 오래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조카들에게 준 세뱃돈의 단위는 물경 5 만 원, 2 만 원 이었기에 그 동안 엄청난 물가 상승률을 실감해야 했지요. 아마 퇴직 후엔 이러한 적지 않은 금액의 세뱃돈은 과거의 일로 기억되겠고...
읽을 수록 세련되고 유익한 형님의 좋은 글 감사히 보고 갑니다. 설 연휴 잘 보내시고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어제 늦게까지 식구들과 술 한잔 하며 잡담을 해댔더니 아직 비몽사몽입니다. 모처럼 만나니 할 말이 어찌 많던지.... 아무래도 잔소리쟁이 늙은이가 다 된것 같습니다.
세배돈은 주머니가 빈 핑계로 입을 싹 씻고 로또 복권 2000원어치씩 빨간 봉투에 넣어 한장씩 주었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봉투를 열어본 조카가 "로또네...!"하고 실망하 반 감탄 반 하는 게 재미있어서 웃음바다였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 앞으로는 이렇게 단정적 종지형으로 인사를 할 생각인데 어색하드래도 이해해 주세요.
잘보고갑니다 새해복마니받으세요 ㅎㅎㅎㅎ
덕담 감사합니다. 장씨아저씨께서도 을미년 새해를 맞아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
오늘도 과하객님의 좋은 글 보고갑니다.
그리고 과하객님 명절은 잘보냈습니까?
대머리총각님이 방문해 주셨네요. 날씨가 괜찮았는데 고향은 다녀오셨는지요. 저희는 제가 맏이라서 동생들이 조카들을 데리고 와준 덕택에 시끌벅적 요란하게 보냈습니다. 덕담 주신 것 감사드리고, 을미년 한해 대머리총각 님의 댁에도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감사합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청양의 해라 하더군요..
올해에도 건승 하시기 바랍니다
덕담 감사드립니다. 심우님께서도 청양의 해를 맞아 좋은 일만 많으시기를 축원하겠습니다.
좋은글 보고갑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들이 많네요
명절
가족의 웃음소리가 그립습니다.
옳습니다. 가족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 중의 으뜸이지요. 일깨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는 어려워서 힘들게 지냈어요
그러셨군요. 힘 내십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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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재밌네~~~ ㅋㅋㅋ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보고갑니다
잘 봤습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좋은글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한번더 읽고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굿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