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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6장
집사의 선출로 사도들은 말씀전파와 기도에 집중,
스데반의 기적 행함, 말씀 전파, 공회에서 고소당함
(찬송 4장)
2024-7-6, 토
맥락과 의미
1-5장에서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순절에 성령님을 교회에 보내 주십니다. 사도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힘껏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는 점점 성장했습니다. 6-7장은 구제하는 문제로 불평이 생겼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교회에 집사를 세웠습니다. 사도들과 집사들의 섬김을 통해 교회는 점점 더 성장합니다.
성경은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님이 지금도 교회와 성도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목사와 집사, 그리고 장로와 성도들이 어떻게 교회를 섬기며 살아갈지를 가르쳐 줍니다.
1. 구제하는 일에서의 문제를 구제할 직분자를 세워서 해결 (1-6절)
2. 구제하는 7명을 세운 결과 (7절)
3.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집사 스데반 (8-15절)
1. 구제하는 일에서의 문제를 구제할 직분자를 세워서 해결(1-6절)
구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제자들의 수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1절). 보통 12사도를 제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를 제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입니다.
교회가 어떤 죄 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지혜로운 직분자를 세워 교회를 더 든든히 세워 가십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불평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을 말합니다. 헬라어가 모국어로 된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히브리파 유대인 중심이었습니다. 헬라파 과부들의 구제가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불평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교회 안에 교회를 허물 수 있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사도들은 신속하게 조치했습니다. 2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사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복음전파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와 기도가 흔들리면 교회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사도들은 이 일에 전념하기 원했습니다(4절). 구제를 담당할 집사를 세우도록 전체 교회에 요청합니다. 교회가 7 집사를 “선택”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안수하여 직분을 주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3절). 이것이 집사의 자격입니다. 사람의 주관적인 인정이 아니라 성령의 객관적인 증거를 말합니다.
객관적인 증거가 여러 사람에게 드러납니다. 성령과 지혜(3절), 믿음과 성령(5절), 지혜와 성령 (10절), 즉 성령님이 그에게 충만하게 일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이 지혜와 믿음을 풍성하게 주신 사람들이 집사직으로 선택됩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통해 그 분이 선택하신 성도들 안에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굳은 신뢰를 일으키십니다. 또 성령님은 교회를 위해 지혜롭게 일할 수 있는 직분자를 일으키십니다. 집사는 가난한 성도들에게 물질과 먹을 것을 공급하여 교회를 세웁니다. 그래서 그 자신이 먼저 성령님으로 충만하고 지혜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성도는 교회를 대표하여 나눔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나눔의 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가난한 성도, 나아가 가난한 불신자들과 음식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것으로 도와줍니다.
우리 각자도 이런 집사적 성품(성령충만)에서 성장하도록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합시다. 집사적 섬김을 하도록 말씀에 순종합시다.
“사도와 성도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기뻐하여”(2,5절) 직분자를 세웠습니다. 7명은 헬라식 이름입니다. 일곱 집사는 헬라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바깥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후손들입니다. 이방인 중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음식과 재정을 통해 성도들을 섬기는 교회의 사명을 대표해서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구제를 담당한 7명을 지금의 “집사”라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7장에 보면 스데반은 복음 말씀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일곱 명 중 한 사람인 빌립도 전도하는 일(8:5, 21:8)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도와서 구제하는 일도 맡고 복음 전하는 일도 맡았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는 구제하는 일을 맡은 좋은 집사들을 주셨습니다. 집사들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님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합시다.
2. 구제하는 7명을 세운 결과(7절)
성령이 충만해서 복음의 원리대로 바르게 구제하고 복음을 드러내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었습니다. 복음적 지혜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6:8-8:13에서 스데반과 빌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7명을 세운 결과에 대해 7절이 말합니다. “말씀이 점점 왕성하고 제자의 수가 많아졌다.” 제들 담당할 직분자를 세움으로써 사도들은 말씀을 더 잘 전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성도들은 교회가 주는 음식을 먹고 말씀을 더 잘 배웠습니다. 교회에 불평이 없어지니까 모든 성도가 평화롭게 말씀을 더 잘 배우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교회 안에 풍성할 때, 교회 바깥으로부터 불신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제사장들도 “이 도에 복종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믿음에/으로 복종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바로 말씀이 생육하고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1:28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 사도행전 6:7에 쓰고 있습니다. “말씀이 왕성하고 (생육하고, 자라고)제자의 수가 많아졌다(번성).” 5절, 온 무리는 ‘많이 번성한 자들’ 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아담의 배반 때문에 인류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을 하지만 사실상 지옥을 향한 번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원래 계획하신 복된 생육과 번성을 새 사람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새사람이 된 제자들(경건한 사람)의 수를 많아지게 하십니다.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위대한 일입니다. 언약의 가정에 자녀가 출생하는 것은 그냥 인구 성장과는 다릅니다. 제자의 수가 번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도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이 계속됩니다.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고 그 말씀대로 성도들을 돌보는 교회는 하나님이 수적으로 성장시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성도의 수가 성장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말씀이 더 풍성하게 자라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목사가 말씀을 바르게 부지런히 풍성하게 전하고 있는가? 성도들이 말씀을 달게 받고 가정에서도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있는가?
이렇게 말씀이 자라지만 성도의 수가 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내로서 기다려야 합니다. 겨울의 추위 가운데서도 보리는 푸르게 서있습니다. 추위 때문에 많이 자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며 추위를 참고 견딥니다. 봄이 오면 쑥쑥 자랍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으로 복음을 전합시다. 먼저 가정에서 가족들과 자녀들과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을 전합시다. 예배에서, 가정 경건회에서 말씀을 달게 받고 순종합시다.
교회의 문제는 오히려 복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풍랑같은 문제를 보기보다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직분자를 준비하시고 교회를 계속 성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합시다. 문제가 많이 보일수록 더 기대합시다. 더 말씀에 순종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읍시다.
3.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집사 스데반(8-15절)
9절, 리버디노 회당 사람들과 스데반이 복음에 대해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리버디노는 노예였던 사람이 자유인으로 해방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 회당은 노예였던 사람이나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회당입니다.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회당입니다.
리버디노 회당의 사람들이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당하지 못합니다(10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세상에 계실 때 약속하신 것을 몸은 하늘에 있지만 성령을 통해서 그 약속을 이루시고 있습니다(눅 12:12, 21:15).
그들은 스데반을 대항할 수 없으니까 거짓 증인을 세웠습니다. 거룩한 곳(성전)과 율법을 거스려 말했다고 고소합니다.
전에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거짓 증인을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거스려 말했다는 죄목으로 죽였습니다(마 26:60-61).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율법을 폐한다고 계속 비난했었습니다(안식일 어김: 눅 6:1-4, 13:10-17, 14:1-6).
스데반과 교회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서 갑니다. 동시에 부활 길을 따라 능력을 행사합니다.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습니다(15절).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으로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변화산상에서 영광스럽게 변하신 그리스도 사건이 스데반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7명의 사람들은 집사직 그 자체만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복음을 확장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그들도 복음전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힘껏 전했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집사와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집사직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에 가까운 권위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복음을 전파하는 직분자인 사도가, 지금의 말씀 사역자인 목사와 다른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진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 각자도, 또 우리 교회에서 세운 집사도, 교회에서 배운 말씀으로 복음을 힘껏 전합시다.
믿고 복종할 일
인류를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점점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 가운데, 성도들 가운데 풍성하게 전해져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말씀을 잘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성도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구제하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자 그 일이 너무 커졌습니다. 또 헬라파 그리스도인에게는 공평하게 공급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집사로 선출했습니다. 구제에 관한 교회의 일을 전담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구제도 효과적으로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집사들도 복음 전도에 열심이었습니다. 교회가 더 왕성하게 성장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집사를 주셔서 목사의 말씀 전파 사역이 효과적으로 되고, 있습니다. 말씀이 교회 안에 더 풍성하게 되고 있습니다. 이 일이 더욱 잘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되고, 다른 경제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합시다.
스데반은 교회를 구제하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도 입을 열어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과 가정에, 직장 생활에서 일하시고 있는 일을 간증합시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세상과는 다르게 선하게 사는 그 삶도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선행과 사랑은 우리 시대에 사람들을 깜작 놀라게 하는 “기적과 표적”입니다. 우리의 입을 열어, 손발을 움직여 주님의 복음을 사람들과 나눕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보편교회 교인들의 속성; 불평(1절)
헬라파 유대인들이 불평했습니다(공기조: 공기가 많은 데도 공기 조 하고 불평하는 것 같아요!).
구약교회도 많이 불평했습니다. 출애굽 한 다음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광야 생활할 때도 구약교회는 불평했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없으면 계속 불평했습니다(공기조: 출 16:7, 8,8,9,12.민 14:27,27,29, 디아-공기조: 출 15:24, 16:2,7).
우리 주님이 몸으로 세상에 계실 때 성경을 잘 하는 유대인, 바리새인들도 계속 주님께 불평했습니다(공기조: 눅 5:30, 디아-공기조: 눅 15:2, 19:7). 그들이 불평할 때마다 하나님 먹고 마실 것을 주셨습니다. 계속 은혜 베푸셨습니다.
구약 교회와 신약교회가 동질적인 교회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동일합니다. 동시에 교인들이 불평하는 죄인이라는 점에서도 계속 같습니다.
<참고>마땅하다=기쁘게 한다 (2절)
“사도들이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2절) “마땅하다”(아레스토스)는 “기뻐할 일이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기쁘시게 한다는 단어는 신약에 4번 나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야고보 사도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야고보 사도를 죽인 일이 백성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보고(행 12:3). 베드로까지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요 8:29)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들을 것을 말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을 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항상 함께 하십니다(요 8:26-29).
사도 요한은 교회에 말합니다(요한 일서 3:21-24)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아레스토스) 것을 행함이니라.
23그의 계명은…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말씀에 전무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기뻐했습니다(5절). 7집사를 교회가 “선택”했지만 하나님이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을 “사도들 앞에” 세운 것도 “하나님 앞에 기쁘게 하는 일” (요일 3:22)을 행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가능했습니까?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받았기 때문입니다(요일 3:24). 사도들 안에, 교회 안에, 7집사 안에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를 하나님은 결코 그냥 버려 두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참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교회는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 사람의 주장을 이긴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하지(안티-히스테이) 못하니” (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세상에 계실 때 약속하신 것을 성령을 통해서 이루시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끌려 갈 때, “성령이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리라.”(눅 12:12)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안티-히스테미, 안티-레고 눅 21:15).) 없는 구재(말솜씨)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참고>7절,말씀이 왕성하고(아욱사노) 제자들의 수가 많아 짐(플렌티노)
= 생육하고(아욱사노) 번성하라(플렌티노, 창 1:28)
6:7은 창세기 1:28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프루) 번성하라(르부).”생육과 번성의 헬라어 번역은 “아욱사노” 와 “플렌티노”입니다.
두 단어를 사도행전 6:7에 쓰고 있습니다. 말씀이 왕성하고(아욱사노, 생육하고, 자라고) 제자의 수가 많아지는(플랜티노, 번성)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계획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참고> 역사적 비유
성경은 역사적 비유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역사가 우리를 위한 비유처럼 사용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이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님이 지금도 교회와 성도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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