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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삶을 가꾸는 작고 아름다운 교육을 위하여
- 경기 광주 남한산초등학교 이야기 -
경기 광주 남한산초등학교 교사 안 순 억
Ⅰ. 새 학교 꿈꾸기
이 학교에서 살아온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저런 자리에서 우리 학교 이야기할 때 마다 나는 더욱 조심스러운 느낌이다. 그 때마다 꿈꾸듯 살아 온 돌아보지 못한 시절의 삽화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며 감정선을 건드리는 것도 감당하기 힘들지만, 무엇보다 우리 학교 이야기가 어떤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자체의 진실과 사회적 효용성을 지닌 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의 선생님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를 깊게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모두가 뜨거운 진실로 일궈 온 세월이며 결과였다 할지라도 그 것이 우리 교육현실의 희망을 만드는 건강한 메시지인가에 대한 판단은 우리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수 많은 교육담론과 실천의 사례들이 봇물처럼 터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발드로프, 레지오에밀리아 등 외국 대안학교의 이름과 그 사례들도 더 이상 낯설지 않으며, 공교육의 획일화된 틀을 거부하는 대안학교들이 국내에도 하루가 다르게 세워지면서 이제 보통의 사람들까지 학교 선택문제를 고민하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다. 미국의 챠터스쿨 등과 같은 공교육 내의 새로운 학교틀에 대한 기웃거림, 아예 학교 자체를 거부하는 홈스쿨도 그러하고, 법규위반과 재정의 문제 등 가혹한 어려움 속에서도 대안초등학교가 전국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것 또한 그러하다. 대안학교가 아닌 우리 학교에도 전입학 상담이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다. 세 살배기, 네 살배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입학을 보장받는 문제를 의논하는 모습은 우리를 거의 씁쓸하게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간단하게는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절망의 반증일 수 있으나 그 것만으로 전체를 설명해내기에는 힘에 부친다.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동력으로 삼은 새로운 시대와 사회의 도도한 요구인 것이다. 세상의 가치가 변하고 나도 변했는데 악착같이 변하지 않는 학교 속에서 살아가기가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를, 근대적 가치와 틀을 벗어나 새로운 가치에 부합하는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라고 하면 지나칠 것인가?
탈근대적 사회로의 진입은 근대적 가치에 기초한 제도와 상식을 당연히 뒤엎고자 한다. 이는 관념이 아니라 개개인의 구체적 사고와 삶까지 변화시킨다. 학교나 교육에 대한 시각이나 기대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기존의 가치와 제도의 근간을 그대로 두고 부분적인 개선만으로는 이 흐름을 감당할 수 없음을 우리는 거의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학교와 교사가 오로지 기존의 ‘교육통념’에 기대어 그 것의 정당성 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많이 ‘섣부르게 보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시대는 혼돈의 시대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아니 그 변화를 정당한 것으로 꿈꾸는 자 조차도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가치의 이중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구체적인 실천의 장면에서는 더욱 치열한 갈등과 고통을 만드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며칠 전 늦은 밤, 동료 선생님이 토론을 청한다. 교사 주례회의를 끝마친 늦은 저녁, 지친 토론을 끝내고 아이들이 모두 떠난 도서관에서 길게 뻗어 있던 때였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작은 온돌방이다) 여러 이야기 중에, 우리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노력 없이 새로운 교육과 학교에 대한 꿈도 없다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새로운 교육을 꿈꾸며 실천하고 있다는 사람조차 결국 일을 풀어내는 방식은 근대적 상상력과 근대적 관성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반성하자는 제안이다.
퍼뜩 정신에 날이 섰다. 맞다.
건강하고 신나는 주례회의를 꿈꾸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논의구조와 방식을 반성해 왔음에도 우리는 구체적 장면에서는 그러한 통찰력을 적용시키지 못한 것이다. 민주적인 방식이 철저하게 존중된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한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이렇듯 우리 삶의 내부에 분열적인 모습으로 깊숙하게 들어와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개인의 내부에서 이러할 진데, 수 많은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고자 하는 가치와 제도와 방식이 어찌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 학교 이야기는 이 혼란스런 과정 속에서 행복한 학교의 꿈을 놓치 않는 학교공동체의 절망과 희망을 담은 과정이야기이다. 깔끔한 결론을 내 놓고 ‘일반화’의 명목으로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는 완성된 아름다운 학교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것의 낡음은 알지만, 새로운 것은 익숙치 않아 알맞게 두려우나 그래도 스스로의 진실에 기대어 주눅들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나선 우리 시대 학교교육 단면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제할 것은 우리 학교는 대안학교가 아니다. 심지어 그 흔한 연구학교나 시범학교도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형식의 다름도 없는 그냥 일반적인 ‘공교육’내의 제도권 학교에 불과하다. 우리가 다른 것은 다만 ‘공교육’의 틀 안에서 공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면서 그 실천 사례를 일궈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학교라는 점 뿐이다. 따라서 우리 학교 2년의 실천과정을 통해 얻어낸 성과, 혹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이 연재를 통하여 정직하게 써 나갈 것이며 이 소박한 기록이 공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꿈꾸는 사람들의 작은 디딤돌이 되어 우리 시대 학교와 교육의 꿈을 풍성하게 하는데 이바지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Ⅱ 폐교 위기 속에서 새롭게 시작하기
우리 학교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 안에 자리잡은 작은 학교이다. 성남이나 광주에서 꼬불꼬불한 산길 공원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10 여분을 달려 해발 400m 정도에 이르면 몇 채의 음식점이 나타나고, 그 뒤 소나무 숲 우거진 산 아래아담한 단층 한옥 건물이 우리 학교이다. 올해 92회 졸업식을 마쳤으니 역사가 매우 오래된 학교임에는 틀림이 없고, 공원구역 안에 있는 학교인 만큼 수려한 주변 자연환경이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며, 복원된 남한행궁을 비롯한 병자호란 전후의 수 많은 유물 유적이 아이들 발길 닿은 곳마다 흩어져 있는 천혜의 교육환경을 지닌 곳이다. 학교 후문에는 400살이나 먹은 느티나무 할아버지 두 분이 아이들을 품어주고 있으며 뒷마당은 그대로 소나무 숲과 이어져 학교 식구들의 산책길과 놀이터가 된다.
이 학교가 지난 2000년에 최종적인 폐교 위기를 맞았다. 공원정비계획과 맞물려 더 이상 인구유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전교생 26명의 복식 3학급 학교는 학교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폐교위기의 학교가 극적으로 살아나게 된 계기는 성남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학부모들의 학교살리기 운동이었다. 대도시의 학교환경 뿐 아니라 학교교육 전반에 문제의식이 강렬했던 이들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주축이 된 학부모들은 우리 학교가 지닌 교육환경에 주목하면서 단순히 작은 학교를 살리는 차원이 아닌 기존 학교와 차별화된 새로운 학교를 꿈꾸게 된다. 뜻이 모아지자 곧바로 정채진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전입학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며 함께 할 사람들을 규합하게 된다.
그들은 곧 산성내 지역주민을 비롯한 각계의 인사를 접촉하면서 꿈을 현실로 바꿔나가기 시작했고, 20회에 이르는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자체 세미나와 교육을 통해 학교 교육의 꿈을 열정적이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여기에 지금 교장선생님인 정연탁 교장선생님의 헌신적인 협력이 함께 하면서 진행과정은 급물살을 탄다. 정교장 선생님은 지금의 시각으로도 파격적인 행보를 펼친다. 대도시 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의 전입을 위한 학부모 홍보에 직접 나서는가 하면 어린이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과 함께 학교장의 권위에 연연하지 않는 공동체 학교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이들에게 제공하였다.
나에게 이 학교에 대한 합류제안이 온 것은 2000년 10월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나는 그 무렵 학교교육에 대한 절망과 교사라는 존재 자체의 무력감이 극에 달해 있었던 시기였었다. 긴 세월 교육운동에 몸 담아 왔지만 학교와 교육에 비젼은 자꾸 무력해지고 있었고, 그 돌파구로 ‘머루빛 눈망울’의 아이들과의 벅찬 삶을 꿈꾸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골학교로 전근을 왔지만 이 곳은 더욱 더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교육모순이 첩첩산중 에워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유난했던 학교장의 관료적 통제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으며 ‘농어촌 점수’를 비롯한 승진에 발목잡힌 교사집단은 서로간의 은밀한 소통조차 불안해하는 문화의 사각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전교조 경기지부의 참교육실천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관계로 이들과 접촉이 이루어지면서 제안을 받게 된다. 학부모들의 뜻과 열정에 공감하고 교장선생님과 첫 만남에서 믿음을 굳힌 나는 서둘러 모든 것을 접고 부족한 안목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 학교의 그림을 떨리는 가슴으로 그려나갔다.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11월 19일 스산한 늦가을의 일요일, 그 날은 입학예정 학부모 전원에게 우리 학교의 향후 교육방향에 대한 나의 발제가 있었던 날이다. 학습관을 꽉 메운 학부모들은 숨죽이며 내 어설픈 그림을 경청하여 주었고, 이어진 토론에서는 학교교육 전반에 대한 그들의 현실인식과 새 학교의 기대가 거침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그 날 막연히 머리 속에만 있던 교육주체들의 새로운 교육에 대한 갈망이 어떤 것인가를 몸으로 느껴버렸다. 서둘러 함께 할 선생님들을 찾아 나섰다. 마음속에 새겨진 좋은 선생님들을 찾아 ‘우리들의 드림스쿨’을 이야기 했을 때 그 분들 모두 흔쾌히 합류해주셨다. 교사들의 팀이 꾸려지고, 어린이들의 전입이 1차, 2차, 3차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교사 학부모 공동연수가 이어졌고, 창고 같던 교실을 교사 학부모가 먼지구덩이 속에서 며칠 동안 청소하였다. 마침내 2001년 3월 2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을 교문에서 나누어주며 전교생 103명의 6학급 학교가 완성되었다.
교육을 구호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속에서도 학교의 지향점에 대한 합의의 언어로 우리는 ‘참 삶을 가꾸는 작고 아름다운 남한산초등학교’라고 부르기로 하였으며, 1학년에서부터 꽃마을, 나무마을, 산마을, 들마을, 강마을, 하늘마을이라고 차례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
Ⅲ 학교의 꿈을 현실의 희망으로
우리 학교가 거듭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폐교의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일 학생 수를 늘려 폐교의 위기로부터 탈출하고 도시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학급당 학생 수와 교육환경에 만족하고 일반학교의 운영체계를 답습했다면 그것은 폐교를 한번 미룬 것에 불과 했을 것이다.
우리 학교의 의미는 특별한 학교가 하나 만들어졌다기보다. 우리가 처한 조건속에서 우리가 지닌 한계를 희망으로 만드는 좋은 계기로 활용한 점이 될 것으로 본다.
먼저 폐교 위기의 학교가 지닌 낙후한 시설 환경을 오히려 처음부터 교육환경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며 생태적이고 학습친화적인 아름다운 학교로 만들어가고자 했다.
둘째로 전교생 120명인 6학급 소규모 학교 교수 인력의 한계를 외부 인력 풀을 활용하는 계기로 삼았으며, 계절학교, 다모임, 숲속학교 등 작은 학교만이 누릴 수 있는 독특한 학교 교육과정으로 계발하려 하였다.
셋째로 시골학교라는 지역적 한계를 자연, 문화, 역사 등 삶과 함께 하는 체험 활동 중심의 교육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넷째는 익명성이 보장될 수 없는 작은 학교에서 교육공동체간에 건강한 결합과 소통의 방식을 새롭게 선보이면서 학교의 꿈을 함께 그리고 점 등이 그것이다.
1) 어린이를 중심에 둔 학교 만들기
현재 우리 학교에 재학하는 어린이 중 일부는 이전의 학교에서 부적응을 경험하였다. 몇 달씩 학교가지 않은 아이, 아예 한 학년를 뛰어 넘은 아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아이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은 아이들이 전학하였다. 지금은 이 아이들이 방학과 휴일을 원망할 정도로 학교 생활을 즐거워한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생활 리듬에 맞춘 시스템 만들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학교에는 애국조회, 반성조회 등의 전체 운동장 조회도 없고 교사주번도 아이들 주번도 없다. 경쟁 중심, 선발 중심이라고 판단되는 각종 대회와 시상제도도 과감히 버렸다. 교사들 또한 형식적, 과시적 실적생산 중심의 잡무를 과감하게 축소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새로운 학교는 새로운 학교문화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며 이는 다르게 말하면 기존의 관행과의 거침 맞섬을 의미하기도 한다. 학사일정도 실정에 맞게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어린이 리듬과 학습효율성을 고려하여 과감하게 조정하였다.
아이들의 하루 학교생활 일정도 새롭게 바꾸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통학용버스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등교하며 아침시간은 학급별로 자유롭게 운용된다. 나는 3년 째 6학년 하늘마을 아이들과 살았고, 지금은 1학년 꽃마을 아이들과 살아가는데 우리의 아침시간은 뒷산 솔숲길로 아침산책을 가며 시작된다. 산책 중에 매일 매일 하나씩의 자연과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모두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하루 살아 갈 이야기를 연다.
어린이의 신체와 학습리듬, 놀이욕구와 프로젝트수행 학습의 원활함을 고려하여 모든 학년이 80분 단위의 블록 수업을 실시하고 오전 1블럭과 2블럭 사이에 쉬는 시간은 30분 단위로 운영한다. 오전에는 주로 지적인 학습이 이루어지고 오후 3블럭은 예능교과와 특기적성을 실시한다.
2) 어린이 눈높이로 즐거운 학교환경 만들기
오늘 우리 어린이가 살고 있는 우리 나라 학교 모델 대부분은 1920대에 일제 때 만들어진 표준모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의 정서나, 생활공간, 동선, 자연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관리자 위주, 행정편의, 경제성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다. 학교환경, 교육환경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공간에 대한 매우 넓은 안목과 교육적 철학을 필요로 한다. 필요에 따라 즉흥적으로 벌이는 공사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학교환경의 큰 그림을 그리고, 학교 리모델링에 대한 경비와 필요의 우선 순위등을 결정하여 어린이의 배움과 생활에 가장 적합한 학교환경을 고민해 나간다.
아이들의 행복한 놀이 공간이 있는 학교 만들기를 위해 학교 뒷 마당 바로 뒤 만평의 울창한 산 속에 숲 속 놀이터를 만들었다. 경사진 곳에는 굄돌을 놓아 계단을 만들고, 풀이 울창한 숲을 전지하여 작은 오솔길을 만들어 산책로 만들었다. 이 작은 오솔길로 아침마다 아이들의 꿈이 걸어간다. 운동장 동편 밤나무 숲에는 차가운 시멘트 의자를 모두 치우고 나무벤치와 정자, 원두막과 움집, 목재 미끄럼틀과 같은 온갖 놀이시설, 작은 연못과 돌길 등이 자리잡았다. 시멘트 스탠드를 걷어내고 잔디언덕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곳을 숲속햇빛 마을이라 부른다.
모든 아이들은 등하교 때 책가방과 신발주머니에서 자유롭다. 개인 사물함과 책꽂이를 교사들이 직접 설계하여 주문 생산하였다.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모두 학교에 놓고 가볍게 다닌다.
또한 학습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은 6년간 쓸 수 있는 좋은 제품을 골라서 학교가 일괄 제공한다. 학교예산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준비물 챙기느라 벌이는 바쁜 아침의 실갱이가 모두 사라졌다.
폐교 직전의 학교여서 교실은 물론 특별실의 모습은 거의 사용할 수 없는 창고와 다름없었다. 부족한 교실이 지어지면서 원래 건물의 교실, 과학실. 컴퓨터실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다른 학교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모든 설계가 교사들의 손으로 이루어졌고, 모든 집기가 우리의 필요에 의하여 주문제작 되었다.
3) 다양한 교육과정
우리 학교는 국가에서 정한 교과목을 국정교과서를 이용하여 가르침으로써 정규교육과정을 일반 학교와 별 다름없이 운영한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학교나 학급 단위로 실정을 고려하여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작동하는 것과 달리 우리 학교는 종일제 체험학습, 주기 집중형 계절학교, 숲속학교, 학교교육과정화한 특기적성교육 등 우리 학교만의 독특한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기회로 으로 삼고 있다.
우리 학교는 매주 토요일마다 교사도 아이들도 자원활동에 참여하는 학부모까지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연중 전일제 체험학습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각 학년에 적합한 체험학습 요소를 추출하고, 그 것을 크게 자아,생활, 역사, 예술, 환경체험으로 영역으로 크게 나누어 체험학습을 운영한다. 학습방법에 따라, 담임형, 전체형, 순환형, 초빙형 등으로 나누어지며 교과와의 연계, 통합적인 연계방안을 통해 남한산학교의 독창적인 교육과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계절학교가 열린다. 다양한 체험과 소질계발을 위한 테마별 주기집중형 체험학습으로 여름방학 직전의 여름계절학교와 가을에 학교축제를 겸한 가을계절학교가 각각 7일 정도씩 개설된다. 여름계절학교는 생활문화체험학교로써 목공, 자연생태, 도예, 요리 등의 프로그램이 아이들 선택에 따라 진행된다. 문화와 예술체험을 근간으로 하는 가을 계절학교는 악기연주, 합창, 연극, 춤 등 다양한 예술장르를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기간으로 이를 바탕으로 남한산 지역축제와 함께 결합한 학교예술제가 열린다.
우리 학교의 특기적성의 접근은 단순하지 않다. 특기적성활동은 우리 학교의 지향과 철학을 충족하는 학교교육과정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또한 준비되며 따라서 전교생 전원이 참여한다. 물론 비용은 자부담이지만 지도인력이 봉사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국악은 저학년의 사물과 소리, 고학년의 국악관현악, 그리고 전통무예인 선관무(禪關武) , 생활 영어 과목이 운영된다. 어린이들의 학습시간과 부담이 는 것은 사실이나 결과적으로 사교육적 요소를 학교가 양질의 교육으로 끌어 안는 형태가 되므로 불만은 없다.
4) 생활하는 학교
노동은 신성하며, 이 것은 학교에서 학습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직접 야채나 곡식, 화초를 가꾸고 땅을 일구어야 하며 수확의 기쁨도 맛보아야 한다. 우리 학교에서 아래쪽으로 약 500m쯤 거리에 오랫동안 버려져서 관광객들의 주차장으로 방치된 학교 땅을 되찾아 학교 농장으로 일구었다. 이 땅을 학년별로 배분하고, 남은 땅은 우리 학부모들에게 가족 주말 농장으로 분양하였다. 모두들 틈만 나면 이 곳에 와서 일을 한다 . 그 곳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학습의 장에서 아이들은 노동과 땀을 배운다. 때로는 보기 흉한 시멘트 스탠드가 전교생이 함께 참여한 거대한 벽화로 바뀌기도 한다.
5) 민주적인 학교
매주 월요일 오후에 교사회의가 열린다. 교장, 교감, 전체교사가 참여하는 이 주례회의에서 학교교육의 중요한 방침과 업무가 논의되고 결정된다. 때로는 서로가 상처를 입는 격론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구성원간의 민주적 합의를 존중하려는 노력은 놓지 않는다. 교장 교감 선생님은 결코 직함의 권위를 나타내지 않으며 교사들보다 더욱 진지하고 겸손하다. 이 것이 자율의 힘이 있는 새로운 교사문화 만들기의 바탕이 되고 있다.
금요일 둘째 블럭시간에는 전교생과 선생님 모두가 모이는 다모임학습 시간이 운영된다. 특별활동의 자치활동과 계발활동의 영역을 통합하여 설계된 이 시간은 남한산 어린이 공동체를 일구는 매우 귀한 시간이다.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제안, 토론, 건의 등이 이루어지고, 때로는 이야기마당, 발표마당, 훈화마당이 순서에 의하여 진행된다. 작은 학교만이 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민주적 정신과 세계가 학습된다. 강제와 타율이 아닌 자율을 경험한 아이들은 간혹 스스로 못 마땅한 학교 규칙이 정해져도 지키려 노력한다. 다모임 학습은 같은 학교 식구들의 얼굴을 보며 살아갈 규칙을 정하는 귀한 시간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말 그대로 학교운영을 책임지는 기구이다. 운영위원회 안건은 미리 수렴되고, 공개되며, 운영위원회 회의에는 마을 학부모 대표들이 직접 참관한다. 이는 우리 학교 운영위원회가 실질적인 학교대표기구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각 마을별로는 학부모 전원이 참여하는 마을학부모회가 운영되고 있다. 학급 일이나 전체 일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 돕고, 학교에 일어나는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며 그 대표는 학교의 임원이 된다. 때로는 마을 신문 발행, 자체 세미나나 교육동아리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6) 함께하는 학교
우리 학교 홈페이지는 조금 특별하다. 홈페이지가 주체들간의 커뮤니티를 생성하는 매우 활성화된 사이버 공간이 된다. 개통한지 3년여만에 접속자수가 120만명을 넘어섰다. 끊임없이 새로운 글들이 올라오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새로운 교육정보, 학교정보가 나누어진다. 사이버 세계에서 튼튼한 네크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방학 때 마다 학부모와 교사들의 워크샵이 열린다. 우리는 교사나 학부모 모두 교직의 능력, 부모의 능력에서는 발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새 학교의 꿈도 모두 함께 성숙해지는 과정을 중시한다. 방학중에는 지난 학기 평가와 새학기 교육계획을 마련하는 교사연수가 며칠 동안 지속되고, 그 즈음 마을별(학년별) 학부모총회에서 의견이 수렴되어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교사 학부모 공동연수가 열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교육계획이 확정된다.
6월에는 어린이 전원, 선생님, 학부모 전원 등 남한산 가족이 한데 학교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대동놀이와 불꽃놀이로 한여름 밤을 지새는 숲속학교가 열리고, 12월이 되면 남한산 가족이 모두 모여 한 해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마무리 송년잔치가 열린다. 아버지 모임 주최로 놀이마당과 바다기행이 열리기도 하고, 학부모 동화 동아리 모임에서 준비한 인형극이 공연되기도 한다.
7) 다양한 학교 인력 풀
이 학교는 참 운이 좋은 학교이다. 정치가, 웹전문가, 교육관청의 교육행정가, 예술가, 건축설계전문가, 영상전문가, 학자 분들이 우리 학교 어린이 배움과 교사 연수의 인력풀을 구성하면서 수시로 우리 학교에 드나들며 후원자가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내 일처럼 우리 학교를 도와준다.
‘커뮤니티 참여 설계를 통한 좋은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도 그 한 모습이다. 실제 수요자인 어린이, 교사, 학부모의 학교공간과 환경에 대한 꿈을 조직하고, 그 것을 구체화해나간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워크샵이 건축과 교수, 현직 설계사 등의 도움을 받아 6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학부모 자원활동은 매우 조직적으로 체계적이면 양적으로 비할 데 없이 활발하다. 운동회, 계절학교, 학예발표 등의 행사나 체험학습 등에 부모들끼리 역할을 분담하여 자원활동에 나선다. 방학중에는 마을별로 부모들이 돌아가며 공연장을 찾는 등 품앗이 학습을 한다.
1Ⅳ. 그러나 어디 희망이 그리 쉽게 다가오던가?
우리 학교가 출발한 토대는 특정한 철학이나 이념이 아닌, 대부분의 학교가 처한 학교교육 현실의 다종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였다. 보통의 상식과 일반의 교육적 상상력에 기초하여 무엇이 교육본질에 가까운 것인가를 되물으며 우리 힘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고쳐나가려 애쓴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학교교육 전반을 다 손 대면서 매일 매일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우리 학교가 갖는 성과의 의미보다 그 과정 자체가 더 귀한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 때무에 어떻게 변해 가는지, 그리고 왜 학교를 좋아하는지, 뒷마당에 선을 하나 긋는 것으로 아이들의 놀이공간과 놀이 문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왜 모두가 극구 칭찬하는 홈페이지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 할 수 밖에 없는지, 계절학교를 기획하는 과정은 어떠한지, 교사들은 어떻게 협력하고 갈등하며 교장선생님이 왜 수업에 들어가는지, 우리의 꿈은 결국 어떻게 모아지는지 등 겉에 드러난 모습보다는 그 것이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가 우리 시대 학교개혁 접근을 위한 미로 찾기의 작은 안내서가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모습이 정답이라고 보지 않는다. 아무리 정당하다 여겼던 것이라도 적용의 장면에서 오류가 나타나면 우리는 과감하게 버리며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본래의 어감을 잃은 채 그냥 일상성에 묻혀서 강제적․타율적 장치로 압박해오는 어떤 그 무엇인 ‘개혁’이 아니라, 학교공동체의 자율적 의지와 동력에 기대어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어 가는 성공하는 개혁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꿈을 풀어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 모두 생각으로는 만리장성을 쌓았던 사람들이지만, 현실 장면에서는 어느 작은 것 하나조차 만만하게 성취되는 것은 없었다. 교육은 이미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거대한 풍토, 문화와 함께 톱니로 얽혀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학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화된 공교육의 학교 제도적 틀 속에서 우리 학교가 과연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의 소망을 지속적으로 담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안으로는 학교교육을 둘러 싼 공동체의 소통방식에 있어 그 기대만큼 갈등의 폭과 깊이가 가볍지 않음에 안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급하고 깊이 있게 다루어져야 할 학교교육과정의 체계성을 보면 아직도 곳곳에서 그 철학의 부재와 프로그램의 산만함이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학교 공동체의 건강한 진실을 믿으면서 갈 것이다. 새로운 걸음으로 헤쳐나가는 길에 어찌 좌절과 번민과 고통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느긋하게 말하려 한다. 좋은 것은 힘들게 얻어지고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며,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것이 보편이라면 결국 어떤 문제와 어떻게 씨름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