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내농장의 일지
지리산 산내농장의 농사일지를 카페에서 수시로 전해주시는 운영지기로부터 들어보자!
"추분(秋分)- 가을을 나눈다.
추분은 그냥 "가을秋"을 두 글자로 나타내려고 "분分"을 붙인 것이다.
황도가 천구의 적도를 지나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더 짧아지는 날입니다.
새벽 하늘에는 겨울별자리인 오리온이 천정가까이에 떠 있고 아랫쪽으로 하늘에 태양과 달 다음으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인 시리우스가 보입니다.
아, 밝은 별로 행성 다섯 개가 더 있네요. 기온이 10도 가까이 떨어지기도 하니 새벽 달리기 옷차림을 바꿀 때이기도 해요.
산 속 어느 곳에 피어 있는 며느리밥풀꽃. 꽃 속에 밥풀 두 개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세상이 평등을 향해 가니 앞에 붙은 며느리라는 말을 쓰기가 조금은 거북한 느낌이랄까요?
배추의 크기가 혼란스럽습니다. 대부분은 몇 년의 추분이 쌓여 이즈음이면 얼마나 커야하는지 기준이 있는데 배추는 최근 몇 해 동안 좁은가슴잎 벌레때문에 제대로 큰 적이 없어서 기준치가 없어요. 이웃농가와 비교할 수가 없으니 이럴 때 대체로 난감합니다. 제가 보기엔 잘 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웃 어르신들은 비료를 더 주라고 조언을 하시니.
가을 재배의 문제는 때를 놓치면 두 번째 기회가 없다는 것. 갈등하다가 엔비올을 추비로 줍니다. 한 줄은 시험삼아 빼고 주었어요. 수확할 때 비교해봐야겠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둘러보니 역시나 색이 다릅니다. 짙다 못해 검어 보이는 배추. 크기도 벌써 속이 다 차가는 것 같네요. 하지만 제 눈엔 산내농장 배추의 이 색이 적당해 보입니다.
땅콩은 색이 바래지고 있습니다. 생육일수로는 수확기가 되지 않았는데, 연작 때문인지 날씨 탓인지 땅콩 줄기의 모습으로는 벌써 수확할 때가 되었습니다. 줄기가 일찍 시들면 땅콩 알이 차지를 않아서 수확량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손도 훨씬 많이 갑니다.
양배추가 제일 예뻐요. 잎색도 잎의 크기도 좋을 뿐 아니라 작물이 잘 크면 농민의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덩달아 치유가 된다고나 할까요. 속으로 잎들이 꽉꽉 차올라오는 결구. 양배추가 결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생강의 작황이 지난해보다 못하네요. 올해는 날씨가 너무 심하게 오락가락 하는 것 같습니다.
봄에는 지독한 가뭄이더니, 여름부터는 해 뜨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했어요. 작물들이 웃자라거나 병해를 입는 일이 많았던 여름입니다. 가을날씨는 평년처럼 흘러가고 있는 듯합니다. 보름남짓이면 생강 수확철입니다.
양파모종. 언젠가는 "노지 파종법을 배우고 말거야."라고 말합니다. 포트에 파종하면 발아율이 좋고 간격도 적당해서 초기에 키우기는 좋은데 날마다 물을 줘야 합니다.
10월 농번기에 물을 주기도 힘들 뿐더러, 충분히 키우기가 힘든 것도 단점입니다. 시간을 내서 함양 양파농가에 가서 배워야할까봅니다. 아무튼 포트에서 키우는 일이라도 꽤 안정이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두 가지 도라지가 전혀 달라보입니다. 1년차 도라지는 아직도 꽃을 피우는 중이고, 2-3년차 도라지는 씨앗이 완전히 익어가고 있습니다. 추분 지나 2-3일 후 새벽시간에 씨앗을 채종합니다.
도라지 씨앗은 판매용이 아니고 모자랄 일도 없기 때문에 부담없이 베고 싶은 만큼 베어서 천막위에 널면 됩니다. 햇빛이 반짝 나면 바로 설렁설렁 떨어서 선풍기로 부치면 되니, 비교적 채종이 쉬운 작물입니다. 씨앗을 나눔해달라는 분들이 많네요.
콩이 꼬투리 속을 채워갑니다.
팥은 노랗게 낙엽이 물들어갑니다. 재래종 팥은 10월 중하순쯤에 수확을 했는데, 작년부터 재배한 신품종 아라리 팥은 그보다 수확이 빨라요. 일찍 거두어 들이면 바쁜 철이 분산이 되어 좋습니다.
딱 먹을만큼만 심은 고구마. 그런데 먹을만큼 나올지 모르겠어요. 잎만 보면 풍작인데, 이웃들 고구마 수확하는 것을 들어보니 올해는 고구마가 많이 달리지를 않았답니다. 고구마 달릴 때 날씨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산내농장 고구마는 어떨지. 농사는 하늘이 짓는게 반입니다.
추분무렵부터 녹비작물로 헤어리베치를 파종해요. 산내농장 달력 기준으로 헤어리베치는 한로 전에 파종을 마쳐야합니다.
한로가 지나면 그 해 겨울의 기상조건에 따라 헤어리베치가 살아남기도 하고 전멸하기도 하거든요. 파종 시기를 놓지면 차라리 내년 봄에 파종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농사와 상관없이 사시는 도시인에게 조금이라도 農에 도움이 되셨나요?
호정골이나 곳곳에 피어있는 가을 코스모스와 들국화의 청초함이 아침 산책길에 유심히 쳐다보게 했습니다
호정골에서
정종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