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누란(樓蘭)의 미녀
선선(鄯善)은 기원전 19세기경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옛 선선국(鄯善國 혹은 樓蘭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인근에서 ‘누란의 미녀’로 불리는 미라(Mummy)가 출토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누란의 미녀(美女) 미라는 현재 우루무치(烏魯木齊)의 위구르 박물관으로 옮겨져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우루무치 위구르 박물관은 그 규모는 물론, 전시품의 질과 양에서 국내외의 이목을 끄는데, 그중 가장 세인(世人)들의 관심과 눈길을 끄는 것이 3,800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누란(樓蘭)의 미녀’로, 40대 초반 여성의 완벽하게 보존된 미라(Mummy)이다.
누란의 미녀 / 소하묘(小河墓) / 스벤 헤딘
중국의 옛 문헌(文獻) 속에는 기원전 1,900년 무렵 중앙아시아의 사막 가운데 로프노르(Lop Nor) 호수를 끼고 누란(樓蘭)이라는 아름다운 왕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호수로 흘러들던 강물이 흐름을 바꿔 호수가 말라버리면서 도시는 사막화되어 모래 속에 묻혀 왕국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수많은 고고학자와 역사 학자들 초미(焦眉)의 관심을 끌었던 누란왕국의 위치와 유적은 20세기 초반까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927년,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Sven Hedin/1863~1952)이 문헌 속에 나오는 신비의 고대국가 누란왕국을 찾으러 이곳으로 오는데 기막힌 행운으로 1,500년을 주기로 흐름이 바뀌어 제자리로 돌아오는 하천(河川)이 최근 그 흐름이 제자리로 바뀐 것을 발견하고 모래 속에서 고대유적을 찾아낸다.
사막 가운데 작은 하천 옆에서 도시와 묘지(墓地) 유적을 찾아내는데 이 묘지가 작은 하천 옆에 있다 하여 ‘소하묘(小河墓)’라고 명명했고, 이 유적이 문헌 속의 바로 그 누란왕국(樓蘭王國)이었다.
전설처럼 문헌상에서 존재하여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4,000년 전 화려한 문화와 번영을 누린 누란(樓蘭) 왕국이 베일을 벗고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냈는데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완벽한 형태로 발굴된 한 여인의 미라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자그마한 키(155cm), 작은 머리에 오똑한 콧날, 치렁치렁 땋아 내린 검은 머리칼, 화려한 옷과 장식물로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의 미라는 건조한 사막의 모래 속에서 3,800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되어 오늘 우리에게 옛 누란왕국의 영화와 번영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미라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일명 ‘죽은 모나리자’, 또는 ‘누란의 미녀(美女)’라 불리게 되었다. 이 미라의 주인공은 누란왕국의 왕비거나 고위직 부인으로 보이는 45세 정도의 여인으로 골격과 체형이 백인으로 보이며 그것도 서유럽 인종의 백인에 가까워 보인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중앙아시아의 동쪽 끝인 이곳까지 서(西)유럽인들이 진출하였다는 사실의 증명으로 놀라운 증거라고 한다.
전시된 유물들은 촬영이 금지되어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이 위구르 박물관에는 중앙아시아에서 발굴된 엄청난 양의 미라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나는 다른 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이 ‘누란의 미녀’를 본 순간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근처를 수차례 배회하며 설레는 가슴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1960년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 靖)가, 2019년에는 우리나라의 작가 백시종(白始宗)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픽션(Fiction)으로 엮어 ‘누란의 미녀’라는 제목으로 책을 집필하여 크게 히트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특히 위구르족 여인들은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단다.
이렇게 위구르 박물관 관람을 끝으로 실크로드 7박 8일의 패키지여행을 끝내고 일행은 서울로 돌아간 후 나는 홀로 곧바로 사천성(四川省) 청두(成都)로 날아가 한 달간의 중국 배낭여행을 다시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