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헉슬리가 그려낸 당황스러운 세계는
행복과 쾌감이 동일하다는 생물학적 가정을 기초로 하고 있다.
행복하다는 것은 쾌락적인 신체적 감각을 느낀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은 이 감각의 크기와 지속기간을 제한한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행복을 일정 기간 이상 느끼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의 생화학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행복에 대한 이런 정의에 이의를 제기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에게 하루의 일상적인 활동을 재평가하라고 요구해보았다.
상황을 하나하나 떠올려 가며,, 그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혹은 싫었는지를 평가하게 했다.
카너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갖는 시각에서 역설처럼 보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일을 예로 들면,
즐거운 순간과 지겨운 순간을 평가하게 한 결과,
양육은 상대적으로 불쾌한 일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저귀를 갈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의 짜증을 달래는 일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행복의 주된 원천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무엇이 정말 자신에게 좋은지를 모른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기 독재자의 비참한 노예'로 볼 수도 있고,
'사랑을 다해 해 행명으 키우고 잇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 큰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쳬계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삶을 분 단위로 평가할 때, 중세 사람들의 삶은 고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이 죽음 뒤에 영원한 행복이 온다는 약속을 신봉했다면,
자신의 삶을 현대의 세속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현대의 불신자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완전하고도 가치 없는 망각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세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 전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라고 물었다면,
이들은 주관적 행복의 수준이 매우 높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중세 조상들이 행복했던 것은 사후의 삶에 대한 집단적 환상 속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환상에 구멍을 뚫어 파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행복하지 않을 리가 없다.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인간의 주관성을 그리워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중세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발견한 내세의 의미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인본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의미보다 더 심한 망상이 아이었다.
어떤 과학자가 자신은 인간의 지식을 증가시키므로 자신의 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어떤 병사는 자신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우므로 삶에 의미가 있다고 하고,
어떤 기업가는 새로 회사를 세우는 데서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다고 하자,
이들이 찾는 의미가 중세 사람들이 경전을 읽거나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고
새로운 성당을 짓는데서 찾았던 의미보다 더 환상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의 관건은 의미에 대한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 내러티브가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꽤 우울한 결론이다.
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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