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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미국을 제외한 소련,중국,일본,프랑스,영국,서독은 물론
홍,상가포르등 전세계 신문의 일면 톱기사는 하나같이
<한국 정거리미사일 발사 성공-한국에서 핵무기개발은 시간문제>라고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소련의 <적성>지에서는 전면 톱기사로 다루고 사설까지 동원해
염려스런 사태라고 논평하였다
중구,일본,홍콩,프랑스에서도 해설과 우려를 표명하였다
세계가 경악과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인 것이다
다만 미국만이 침묵했다
침묵한 것이 아니다.미국정부의 훈령을 받은 미국대사'스나이더'는
과기처장관을 자주 방문했고,박대통령에게 강력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은 아예 미국대사와의 면담마저 저절했다
분위기는 냉냉함을 넘어 험악해 지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은 집무실에 앉아 몇 번이고 독백을 다짐했다
"이제,이휘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도 중단할 수 없다.
지금 의존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면,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휘소도 남에게 의존만 하면 눈치만 보는 조국을 볼 수 없어 죽을으로써
자립의 기틀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박대통령은 이휘소를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용기와 결의를 다짐했다
박대통령은 이휘소의 영상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카-터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상황에 강렬한 쐐기를 박기 위하여
1970년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있었던 선진7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온 것이다
2박3일의 예정으로 방문한 카-터는 의전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도착성명도 없이
밤8시 56분에 트랙에서 내리자 헬기로 동두천에 있는 주한미군사단병영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다음 날 그는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는 걸맞지 않게 팬티바람으로 미군사병들과
조깅을 했다
이것은 박대통령이나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무시한 행동으로 보였다
6월 30일 청와대를 방문한 카-터는 인권탄압완화,긴급조치해제,
한국의 핵개발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
박대통령은 이러한 카-터의 요구를 즉각 거절,일축해 버리었다
양국관계는 파국에 직면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살벌했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기개발은 세계 핵확산금지법에도 저촉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의 국가,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우리 한국이 핵무기를 만드는데 못 만들게 하는 것은 패권주의 발상이 아닌가?"
박대통령과 회담을 끝내고 미대사관에 도착한 카-터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15분 이상이나 차 속에서 보좌관들과 회담을 했다
극비의 긴박한 지시를 내리는 분위기다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주한미국철수도 일시 중단되었다
표적인 이유는 북한의 전쟁도발억제,소련의 태평양군사력증강 등을 들었으나,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추진을 포기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해,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청와대별실 궁정동
지하에서 죽었다
김재규는 정말 미국 CIA요원이였을까?
한국의 핵무기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김재규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일까?
당시 건설부장관은 ...
"박대통령이 핵개발에 대한 집념은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집념 때문에 불의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휘소의 죽음과 박대통령의 죽음이 다 미궁 속에 빠진 채,
누가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역사의 격류 속에 묻혀져 갔다
1980년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원자력연구소와 핵개발공단은 <에너지 연구소>로
과학원과 과학기술연구소는 <과학기술연구원>으로 통합되었다
새로 부임한 전두환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에 새로 당선된 레이건을 찾아가
한국핵무기개발중단을 약속하고 댓가로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을 약속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핵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준비한 모든 것은 폐기처분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이휘소의 이름도 역사의 무덤 속에 파묻혀 버리었다
글을 마치면서...
제가 이휘소박사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계기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와는 별 관계가 없는 분(전공이 다른 면에서_이라고 생각하였다가
한두 사람에게서 반복하여 듣는 동안 점점 흥미를 느끼었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 미국을 방문하고,이휘소박사의 어머님을 10여차례 방문하고,
국립도서실로,서울대학교도서실로 자료를 찾아 쏘다니며 일년여를 지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는 어떤 책임감을 느끼었습니다
누구라도 이휘소박사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 놓아야 한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것은 최소한의 의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휘소박사에 대하여 쓴다고 생각하니,
우선 물리나 핵,원자력 등에 대하여 완전한 문외한이라는 것에 죄책감을 느꼇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다가 몇 번 중단했었습니다
어떤 월간지에 연재하다가 중단한 이유도 그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전공적인 것은 핵을 전공한 분들이 어느 때인가 정리한다 할지라도
이박사의 생활에 주로 착안한 글은 일단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문필생활을 30여년이나 하면서 이처럼 책임감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비한 능력이나마 정리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휘소박사는 말할 것도 없이 20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요,
누구도 감히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의심스로울 만큼 철저한 애국자요.
그러기 때문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분입니다
지금까지 왜 이휘소박사가 죽었는가?
누가 죽이었는가?
항의 한 마디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휘소박사는 말로 애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묵묵히 실천했습니다
이휘소박사는 이론만 내세우지 않았습니다.그는 실험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그는 실천하지 않는 것도 없었고, 성공하지 않은 실험도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몇 번이나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되새겨 보았는지 모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몇 번이나 흥분도 했었고,
몇 번은 비애도 느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앞으로 좀더 치밀한 조사로 보충할 것을 약속 드리며,
내용이 미비한 것이나 미숙한 점은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덧붙여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이휘소박사추모기념장학재단을 설립하여,
그 기금으로 쓸 것임을 약속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 호응을 부탁합니다
1989년 11월 편저자 공 석 하 드림
박대통령의 일화 한가지...
때는 한국군 육군 맹호부대의 파병으로
월남전의 열기가 한참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 때 였다.
월남전 참전 당시에 전세계가 한국을 비난한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였지만
그들은 그런 한국을 보고 비난만 해대었을 뿐이었지,
누구도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쌀한톨, 기름 한방울 원조해주지 않았었다.
그런 우리에게 그나마 조금의 원조라도 해준 국가가 있었으니
그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다.
박정희대통령의 과거 남로당의 행적이 미국수뇌부의 의심을 받아,
미정부에서는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보복조치로 당시 대한민국 1년 예산의 80%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던 우리는,
당장 미국이 제공해주는 원조를 중단당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전 국민이 그야말로 아사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음을 느껴야만 했었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서 한국과 미국이 다시 우호적인 관계로
돌아서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박정희대통령의 월남전 참전결의였다.
당시 우리에게는 주어진 선택의 길이라는 것이 없었다.
월남전에 참전해서 미국이 원조를 재개해준다면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입장임을 옳게 알아야만 할 것이다.
반드시 생각해두자.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가난한 대한민국,
굶어죽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쌀한톨, 기름 한방울 제공해주지 않았음을..
그러면서 그들은 대한민국이 하는 일에 대하여 내정간섭을 시도할려고 했다는 것을.
나라가 가난하면 전세계가 그 국가를
자신의 노예로 인식하려 한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야기는 그 당시의 미국의 유명한 군사무기제조업체인
맥도널드 더글라스사(한국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의 발사때
많은 기술자문과 발사를 도와주었음-돈주고 샀다고 표현하는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됨.)의
중역인사가 한국을 방문해서 박정희대통령과 나누었던 실화를 공개하는 것이다.
한국의 월남전 참전으로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우호적이었고,
한국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버리는 대가로 많은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이전을 받게 된다.
그 지원중의 하나가 M-16자동소총이었다.
이전의 한국에서 사용하던 무기는 단발식 카빈 소총으로서
M-16과는 비교할 바가 못되는 그야말로 장난감과 같은 수준의 무기였었고
우리는 그런 무기를 들고 남북대치상황을 견디어 내어야만 했었다.
한국이 월남전에 군사를 파병하는 조건으로 얻을 수 있었던
M-16의 제조.수출업체는 맥도날드 더글라스사였다.
미 행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으로의 수출건을 따내게 된 뒤,
한국을 방문한 맥도날드 더글라스 사의 한 중역은 자신들의 무기를
수입해주는 국가를 찾아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하게 된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것도 너무도 더웠던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나(맥도날드 더글라스사의 중역)는 대통령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박정희대통령의 집무실로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그리고 비서관이 열어주는 문안의 집무실의 광경은 나의 두 눈을 의심케 만들었었다.
커다란 책상위에 어지러이 놓여진 서류더미속에
자신의 몸보다 몇배는 더 커보이는 책상위에 앉아
한손으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남은 한손으로는 부채질을 하면서
날씨를 이겨내고 있었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한나라의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었다.
아무리 가난한 국가라지만 그의 先痔?
도저히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기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의 모순이 내 안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손님이 온 것을 알고 예의를 차리기 위해 옷걸리에 걸린 양복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가 런닝차림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미국 맥도널드사에서 오신 데이빗 심프슨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함과 동시에 나는 일어나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많으셨소. 앉으시오."
한여름의 더위 때문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긴장 탓인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굳게 매어진 넥타이로 손이 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 내가 결례를 한 것 같소이다.
나 혼자 있는 이 넓은 방에서 그것도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튼다는게 큰 낭비인 것 같아서요.
나는 이 부채바람 하나면 바랄 게 없지만 말이오.
이 뜨거운 볕 아래서 살태우며 일하는 국민들에 비하면 나야 신선놀음이 아니겠소.
이보게. 비서관! 손님이 오셨는데 잠깐동안 에어컨을 트는게 어떻겠나?"
나는 그제서야 소위 한나라의 대통령의 집무실에
그 흔한 에어컨 바람 하나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나봤던 여러 후진국의대통령과는
무언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의 말에 제대로 대꾸할 수 없을만큼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네. 각하." 비서관이 에어컨을 작동하고
비로소 나는 대통령과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예정대로 나는 내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을
그에게 이야기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희 M-16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한국의 국가방위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들이 보이는 작은 성의..."
나는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오?"
그(박정희대통령)는 봉투를 들어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 100만 달러라...내 봉급으로는
3대를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큰 돈이구려.."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머물렀다.
나는 그 역시 내가 만나본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임을 알고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실망이 처음 그에 대해 느꼈던
왠지 모를 느낌이 많이 동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이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
"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하나만 물읍시다."
"예. 각하." "이 돈 정말 날 주는 것이오?"
"네. 물론입니다. 각하."
"대신 조건이 있소. 들어주겠소?"
"네. 말씀하십시오. 각하." 그는 수표가 든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 봉투를 보며 의아해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자, 이돈 100만 달러는 이제 내돈이오.
내 돈이니까 내 돈을 가지고 당신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지금 당장 이 돈의 가치만큼 총을 가져오시오.
난 돈 보다는 총으로 받았으면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해주리라 믿소"
나는 왠지모를 의아함에 눈이 크게 떠졌다.
"당신이 나에게 준 이 100만 달러는 내 돈도,
그렇다고 당신돈도 아니오.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타향에서 그리고 저 멀리 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내 아들들의 땀과 피와 바꾼 것이오.
그런 돈을 어찌 한나라의 아버지로서
내 배를 채우는데 사용할 수 있겠소.
이 돈은 다시 가져가시오.
대신 이 돈만큼의 총을 우리에게 주시오."
나는 낯선 나라의 대통령에게 왠지 모를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각하.
반드시 100만달러의 소총을 더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방금전과는 사뭇다른 그의 웃음을 보았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한 아버지의 웃음을.............
그렇게 그에게는 한국의 국민들이
자신의 형제들이요, 자식들임을 느꼈다.
배웅하는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을 다시 한번 둘러본
나의 눈에는 다시 양복저고리를 벗으며,
조용히 손수 에어컨을 끄는 작지만 너무나 크게 보이는
참다운 한나라의 대통령으로 보였다.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