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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반딧불이 보존 동아리
 
 
 
카페 게시글
장산이야기 이산표석의 문화재 가치
kuarong 추천 0 조회 90 20.09.17 04:31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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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0.11.16 18:28

    첫댓글 표석 설치년도 황장산 봉산표석 - 1680(숙종6년), 보은 속리산의 금표는(1788? 정조12년), 건지산 창덕궁금표 - 1899전후로 추정(전주문화원), 가야산 이산표석 - 1865~1918으로 추정, 미륵산 산계표석 - 미확인(저 생각으로는 1967년경으로 보여 짐) 우리지역 장산은 병선 재목조달의 봉산이였고, 장산의 이산 설치시기를 1904~1913으로 추정하겠습니다. 이유는 경상좌수영 간비오산의 봉꾼이 마지막까지 임무수행한 시기가 1907년으로 기록되어있고, 송정지역에 이산표석이 없는 것으로 보아 1914년 이전 설치했다..

  • 20.09.27 10:29

    좋은 의견이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문화재 보전을 주장하면서도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할애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그 가치를 알고 앞장서서 실천을 하시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우리의 문화나 전통에 대해 소홀한 측면이 있었지요. 선조들이 살다간 삶의 흔적은 잘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늘 애쓰시는 옥선생님, 응원합니다 ^^

  • 작성자 20.10.05 20:28

    봉산(封山)이란, 수군절도사영의 관리 아래 전선(戰船)의 재료와 나라에서 필요로 할 경우 목재를 조달하고 일반인의 이용을 금지하기 위해 설정한 산림이다. 봉산의 기본법인 송헌(松憲)이 제정되어 몰래 나무를 벤 자는 그루 수에 따라 엄한 벌에 처했다. 소나무 한 그루를 벨 때마다 가시나무로 만든 회초리 장(杖)60대를 맞았고, 소나무 10그루 이상을 베었을 때와 솔밭에 불을 지른 방화범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사형으로 다스렸다. <출처: 울산제일일보>

  • 작성자 20.11.16 18:31

    이산표석은 경계의 표시이기는 하지만 이정표나 거리표석의 역할도 하였으며 경고의 표시로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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