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롱이의 꿈/ 이옥근
산골 폐교 미술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던 다람쥐를 보고 온 날, 한 달 동안 가둬 기른 우리 집 다롱이를 베란다에 풀어주었습니다. 베란다는 금세 다롱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침 햇살 한 움큼씩 쥐어 주던 해님도 거실을 기웃거리며 웃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오신 어느 날 산짐승은 산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다롱이를 뒷산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저 들꽃처럼 바람처럼 너울너울 살라며 기도하고 풀어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람쥐꼬리 닮은 억새들이 손짓하며 달려들었지만 단숨에 뿌리치고 뛰었습니다. 다롱이가 떠난 며칠 후 베란다 화분마다 해바라기 씨앗이 소복하게 싹을 틔웠습니다. 먹이를 줄 때마다 조금씩 묻어 둔 다롱이의 겨우살이 식량이었나 봅니다. 다롱이가 떠난 그 자리에 다롱이의 꿈들이 고물고물 흙을 뚫고 나와 하나씩 음표를 세우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life/200312/h2003123117442723340.htm 동시 심사평 바로가기
============================================================= [신춘문예] 동시/심사평 순수한 동심 깨끗하게 녹아있었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크게 늘었다. 좋은 현상이다. 다양한 전자 매체에 눌려 위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동시가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듯해서 반가웠다. 응모된 작품의 수준도 어느 정도 평준화가 된 듯 일정 단계에는 올라 있었다. 전체 작품의 경향을 보면 구어체적인 것과 산문 형태의 동시가 많이 응모됐다. 그러나 아직도 동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곱게만 여겨서, 그저 아름답게만 나타내려는 작품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런가 하면 소재가 새롭지 못하거나 상투적인 말과 생각을 늘어놓아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작품도 있었다. 예선을 거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시골버스’(정은정), ‘땡감나무 일기’(유지송), ‘첫눈 오는 날 쓴 편지’(이해완), ‘된장 담그기’(이현주), ‘새벽’(윤영선), ‘눈 내린 거리’(고은산), ‘다롱이의 꿈’(이옥근) 등 7편이었다. 이들 작품들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정은정씨의 작품은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 놓았으나 주제가 선명하지 못했다. 유지송씨의 작품은 시적 감성을 잘 녹여 놓아서 매우 서정적이었다. 그러면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영호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이 참 좋았으나, 생각을 응축시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해완씨의 작품은 이미지도 선명하고 상황 전개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점이 좋았다. 그러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구절이 있었다.
이현주씨와 윤영선씨의 작품은 시적 바탕은 가장 튼튼했으나 동심 쪽에 무게를 두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고, 고은산씨의 작품은 시적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가장 높았지만 내용이 신선하지 못해 밀리게 되었다.
결국 이옥근씨의 ‘다롱이의 꿈’을 당선작으로 올리는 데 이견이 없었다. 표현이 조금 산문적이어서 시적 긴장감은 덜 하지만,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따뜻한 마음이 잘 녹아있었다. 다람쥐를 떠나보낸 과정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것도 좋았지만, 다롱이의 꿈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솜씨가 높이 인정되었다. 함께 보내온 다른 다섯 편의 작품도 일정한 수준을 지니고 있어서 당선작으로 올리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심사위원=노원호 이상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