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花鳥 壽福
ㄹ ㅇ
어디로 갔을까
뻑국~ 뻑국~ 뻑,뻑국~
아련한 뻐꾸기 울음 소리가 불러오는
그 봄날,
감나무 그늘 무성한
뒤란에 수틀을 걸고
한땀 한땀 자수를 놓던 손길
누이의 수틀 위에 내려앉던
부리가 고운 새 울음과
아리땁던 매화 꽃가지는,
부끄럼 타는 볼우물이
동심을 향해
나직나직 내려놓던 어진 말씨의
울렁거리는 가슴
실팍한 엉덩판으로 떠오르는
누이라는 그리운 이름
어디로 갔을까
무명 바탕에
한땀 한땀 정성으로 수놓은
멧새 한 마리
조요로이 내려앉은
아리따운 매화 꽃가지의
베겟잇에 수놓인
화조花鳥와
壽福이라는 두 글자의 염원
세워놓은 면경 앞에서
머리칼 한올 흐ㅍ트러짐없이
곱게 빗질을 하여
동백기름을 바르고는
은비녀을 꽂던 어머니의 순서
화로에 묻어둔 인두를 달구어
두루마기 동정을 빳빳이 다려내던
맵찬 손끝
중절모를 눌러쓰며
?지팡이를 집어 들고는
내 다녀오리다, 던 아버지의 출타와
가벼운 입성 속 으로
소소리 바람 오소소 파고드는 허기로
밤톨같은 머리통이 익어
짜리몽땅 중학 교복을 입고
가방을 둘러멘 하학길
걸핏하면 놀려대
꿈에라도 만날까 질색하는,
팽팽한 흰 브라우스에
검정 비로드 주름 통치마 차림의
一陣의 여고생들과
골목에서 딱 마주치는 날이면
재수 옴 붙은 날,
볼이 뿔퉁해져 집으로 돌아와
에먼 돼지들한테 분풀이
닥치는대로 몽둥이 찜질을 해대면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던
돼지 멱따는 소리
후끈한 그 여름밤
대가족이 마당귀에 솥단지를 걸고
흐뭇한 칼국수 한솥 끓여내면
저마다 한 양푼씩 끼고 앉아
후루룩 별까지 건져먹고
후렴으로
강냉이 하모니카를 불고는
넉넉한 배꼽 쓰다듬으며
별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
‘저 은하수가 중천에 오면
쌀밥을 먹는단다‘
아직도 천상에서 공명해오는
다정한 그 목소리
동지 섣달 긴긴 겨울 밤
뉘 집 다듬이 소리의 고른 음계와
뒷 봉창에 눈보라 들이치는 밤이면
잠 못이루는 청춘들이
호롱불 아래 이마를 맞대고
이슥토록 놀다가 출출해지면
무너미 무너미 달빛 내리는
낮은 담장 아래
볏짚으로 칼바람 둘러 친
김장독이 묻힌 움집으로 가
서걱 거리는 얼음 동동 뜨던 동치미 국물과
반달같은 사발에 담긴 서늘한 찰밥의
기 막힌 궁합
연지곤지찍고 초례청에 서서
전통 혼례를 치르고
휑하니 시집을 가버린 말만한 누이의 빈자리
노느라 밥때를 넘겨 돌아와
뒤란에서 주먹으로
왕방울같은 눈물이라도 훔치는 날이면
속 모르고 좋아라 뛰던
검둥개의 혓바닥 감촉과
幻으로나 남은
장독대 주인의 부재
그 봄날은 녹색 치마자락 벗어두고
어디로 갓을까..
카페 게시글
┌………┃류윤모詩人┃
화조花鳥 壽福
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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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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