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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와 불과 다림줄의 환상
아모스 7:1~9
아모스서의 후반부에서는 환상이 종종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은 바로 그러한 환상들 중의 일부입니다. 이 환상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위협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메뚜기 재앙의 환상이 아모스 선지자에게 보입니다.
1절로부터 3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에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왕이 풀을 벤 후에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이 자기 소유의 우양들을 먹이기 위하여 풀을 먼저 베어 그의 창고에 들인 후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의 소유에 대한 일정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8장 말씀에 보면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도 주변 이방 나라들처럼 왕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였을 때에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왕을 세웠을 때에 백성들이 져야 할 무거운 의무를 나열해줍니다. 그 중에 사무엘상 8장 14절 이하의 구절들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사무엘상 8:14~17)
여기에 양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간다고 했으니,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뿐 아니라 왕에게도 세금으로 십분의 일을 바쳐야 하는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그 양떼와 소떼를 위하여 목초지에서 그 해 처음 자란 풀들을 맨 먼저 왕의 징수관들이 와서 베어 가져가 버리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왕이 풀을 벤 후에 풀이 다시 움 돋기 시작할 그 때란 바로 왕에게 바칠 목초들이 다 거둬들인 후에 백성들이 목초지에 나가 풀을 거두려고 할 그 때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갑자기 주께서 메뚜기 떼를 불러들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메뚜기 떼가 땅의 풀을 다 먹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왕의 가축들이야 먹을 것이 몇 개월 보낼 여분이 있지만 백성들의 소와 양과 염소 떼들은 당장 먹을 풀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모스 선지자가 본 환상대로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축들은 이제 먹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 비쩍 말라서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메뚜기 재앙의 환상을 보고 있던 아모스는 환상 중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아모스 선지자는 메뚜기 재앙을 불러들이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백성을 위하여 그 중보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진노를 풀어주시고 재앙을 그쳐달라고 매달립니다. 메뚜기 재앙이 닥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죄악들이 중대하기 때문인 것임을 알기에 선지자는 그들의 죄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해주시기를 중간에서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의 이름 야곱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긍휼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고자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서 긍휼을 입었던 그들의 조상이요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 후손들에게 창대하게 하겠고 그 후손들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겠다고 친히 약속해주신 언약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아모스는 여기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자극하여 메뚜기 재앙을 면해주기를 청한 것입니다.
이러한 중보 기도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3절에 보면, 아모스 선지자의 간절한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뚜기를 보내어 백성들의 들판과 포도원과 목초지에 모든 푸른 풀들을 다 없애서 그들로 기근의 고통을 겪게 하려던 생각을 내려놓으시고 진노를 그치신 것입니다.
이처럼 아모스 선지자처럼 하나님이 불같은 진노로 재앙을 내리고자 하실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그 진노를 풀도록 요청하며 죄를 사해주기를 요청하는 중보자가 있을진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푸시고 용서를 베푸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러한 위대한 중보자들이 종종 나옵니다.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언약을 맺고도 금새 변심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하며 춤추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보고 극심히 진노하여 다 멸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서서 자기 생명을 걸고서 용서를 청한 바 있습니다. 출애굽기 32:30 이하의 말씀에 보면 이르기를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자기의 생명을 내걸고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날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자의 존재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에스겔서 22:30 이하의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9:15 하반절 이하의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기 전에, 죄 값을 찾으시고 진노를 악행을 저지른 자, 나라 위에 쏟으시기 전에 먼저 두리번거리시면서 자기의 진노를 풀어주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 진노를 거둬들일 수 있도록 간절히 은혜를 간구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두 명의 천사와 더불어 아브라함의 장막을 방문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이 정성껏 식사를 대접한 후에 길을 가실 때에 여호와께서 그 날 소돔과 고모라 성에 가서 그들의 죄악을 살펴보고자 한다는 말을 듣자 아브라함은 그 성 사람들이 쌓은 죄악 때문에 다 멸망될 것이 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성안에 자기 조카 롯의 가정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 날 여호와와 헤어지기 전에 6번에 걸쳐서 간절히 중보 기도하면서 그 성안에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아니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물론 의인 열 명조차 없어서 결국 멸망하게 될 수밖에 없었지만,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뒤엎으시는 중에 조카 롯의 가족을 건져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도 큰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위기를 맞이한 이들을 위하여, 극심한 재난 중에 처한 이들을 위하여, 선지자 아모스처럼,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간절히 중보 기도하며 용서와 긍휼을 청하는 중보 기도자가 됩시다. 그리할진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기꺼이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주시고 진노를 거둬들이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환상은 기근의 환상입니다.
4절로부터 6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불은 무엇일까요? 온 세상을 불덩이처럼 달구어 땅의 초목들이 다 시들어버리게 되는 기근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지구의 남반구인 호주에는 기온이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고온 건조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불이 도처에 일어나서 수많은 나무와 동물들이 다 불에 타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재난이 더 자주 빈발할 것입니다. 계시록에 일곱 대접 심판 내용 중에 천사가 대접을 태양에 쏟았더니 태양에서 불이 나와 사람들을 태울 것이라는 예고가 있는데, 그러한 일들이 지금 현실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지구에 수많은 불탄 지역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을 보내어 기근을 일으키고 바다가 마르고 육지가 다 삼켜질 것 같은 재난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환상은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은 이 불을 전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황폐화를 상징적으로 말씀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성읍들이 불타기 때문에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불로 말미암아 대 기근이 임하고 전쟁으로 말미암은 성읍이 다 불태워지는 황폐화가 일어나려고 할 때에 선지자는 다시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야곱이 미약하니 어찌 설 수 있겠느냐고 긍휼을 구합니다. 이 기도에 다시금 뜻을 돌이키시고 불을 보내지 아니하십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죄악이 점점 쌓여질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하시고자 불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무서운 기근이 교회들을 뒤덮고 전쟁의 화마를 겪도록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지극히 미약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조짐이 없지 않은 위험이 서구 교회와 한국 교회 등에 여전히 없지 않습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온갖 혼합 종교적인 범죄들, 세속화의 죄악들, 압제와 방탕, 사치, 부익부 빈익빈, 거짓과 영적 무관심, 불결함 등이 한국 교회와 성도들 안에서 극심해질진대,하나님께서 어찌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불의 징벌이 임하지 아니하도록 회개하며 중보 기도하기를 힘씁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고 불쌍히 여겨주심을 구하는 중보자로 살아갈진대 한국 교회는 새로워질 것이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화를 면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다림줄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7절로부터 9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다림줄이란 줄에다가 납과 주석 같은 것을 달아서 집을 지을 때에 수직이 제대로 맞는지 기준을 달아보는 것입니다. 건물이 기울어졌는지, 담벼락이 똑바르게 세워졌는지를 다림줄로 달아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상 중에 아모스 선지자가 주님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서 서서 쌓은 담을 달아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마리아 성벽이 제대로 세워졌는지, 사마리아 여로보암 이세의 왕궁이 반듯하게 세워졌는지, 벧엘의 성전 담이 똑바로 세워졌는지 그 다림줄을 가지고 측량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다림줄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28:17 말씀에 보면 다림줄의 의미를 알려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고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그렇습니다. 정의와 공의, ‘미슈파트’와 ‘쯔다카’라는 이 반복되어 언급된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바로 다림줄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기준에 맞지 아니하는 거짓과 불의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다 소탕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 시대에 하나님이 드리우신 다림줄에 합당한 것들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삭의 산당도, 이스라엘의 성소도, 여로보암 2세의 왕궁도 다 이 다림줄에 달아보니 다들 삐뚤빼뚤합니다. 휘어져있고 들어가 있고 기울어져 있습니다. 결국은 다들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건물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냥 놔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제 그 다림줄을 그 백성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용서하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바르’로서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냥 지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그냥 뛰어넘어가셨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서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준에 모자라는 것들은 다 무너뜨립니다. 다 심판하십니다. 산당들은 종교적 다신교의 중심지요, 성소는 벧엘의 금송아지 숭배 중심지요 여로보암 2세의 집인 왕궁은 포악과 불의한 폭정의 중심지를 상징합시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다림줄에 달아보니 다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다 무너뜨려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여로보암 2세의 집, 그의 왕조는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 때에 즉시 시행됩니다. 스가랴는 살룸이라는 장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렇게 든든한 것 같았던 그의 왕조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손으로 잡고 평형추를 들고 달아보신 까닭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의 다림줄을 들고 서서 이 나라를 달아보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달아보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달아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의 공의와 공법의 기준에 맞는가, 그의 의와 진실과 선함과 성결의 기준에 맞는가 달아보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믿는 확고한 신앙으로 살아가는가 여부를 달아보시고 계실 것입니다. 헛된 세상의 욕심과 야망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달아보고 계실 것입니다. 아무리 지극히 복된 중보 기도자가 있더라도 그 악이 다 차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 나라와 한국 교회를 위하여 늘 기도 많이 합시다. 그리고 사회 도처에 있는 각색 영적 불순물이 넘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많이 합시다. 또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부정과 부패와 음란과 영적 무감각함에 물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우리 자신이 더욱 각성합시다.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진노의 물결이 다가오는 것들을 막아내며 다림줄에 합당한 교회와 성도가 되어 든든히 서게 되고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와 우리 교회와 가정과 이 민족 가운데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