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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의 ‘거품 타파’ 파스타 입력 : 2018.02.02 08:00 | 문서원문 [맛난 집 맛난 얘기] 파스타 프레스카이탈리아 요리 셰프 네 명의 ‘이태원 결의’ 조선시대 역(驛)이나 원(院)은 여행자들이 오가거나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늘 소비 수요가 있으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상업 취락이 형성됐다. 현대에도 역세권은 상권 중 으뜸이다. 서울 이태원은 장호원, 조치원, 사리원과 함께 아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세권일 것이다. 높은 자릿값 탓에 물건 값이 비싼데다 이른바 핫한 점포들이 즐비하다. 식당도 예외가 아니다. <파스타 프레스카>는 이태원에서 드물게 실속파 단골손님들이 드나드는 파스타 전문점이다. 이 집은 이탈리아 음식을 조리하는 젊은 셰프 네 명이 서로 의기투합해 작년 봄에 차렸다. 네 사람이 음식도 조리하고 손님도 받는다. 별도로 직원을 두지 않고 다 같이 사장 겸 직원 역할을 해낸다. 절감한 인건비를 손님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을 개점 이래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가격 합리화뿐 아니라 양질의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과 담백한 맛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주방과 널찍한 좌석 배치가 눈에 들어온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맘껏 요리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들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레스토랑으로 가꿔보자고 네 사람은 뜻을 모았다. 이들의 뜻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다 귀국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단골고객층이 형성됐다. 외국에 살 때 드나들었던 동네 레스토랑처럼 이 집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감자와 치즈의 깊은 풍미가 스민 뇨끼 단골손님들이 이 집을 찾는 이유는 가격 외에도 파스타의 질이다. 옥호로 내건 파스타 프레스카(Pasta Fresca)는 이탈리아어로 생면 파스타를 뜻 한다. 합리적 가격에 생면으로 조리한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것. 그렇다고 모든 파스타를 생면으로 조리하는 건 아니다. 건면이 더 어울리는 파스타는 당연히 건면을 쓴다. 뇨끼도 일종의 생면 파스타다. 수분이 적은 품종의 감자만 엄선해 삶아 으깨서 치즈, 밀가루와 함께 반죽한다. 제 맛을 내기 위해 밀가루는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것을 사용한다. 정성껏 반죽해 인절미처럼 육면체로 성형하고 버터를 두른 팬에 구워낸다. 노릇노릇 맛있게 익으면 미리 만들어놓은 버섯크림소스에 올리고 고형 치즈를 슬라이스 해서 완성한다. ‘버섯크림소스를 곁들인 구운 뇨끼’(1만8000원)를 주문해, 음식을 내가면 가끔 당황해 하는 손님들이 있다고 한다. 뇨끼를 스파게티 같은 국숫발 형태로 생각하고 주문한 손님들이다. 그러나 뇨끼도 분명 파스타의 하나다. 처음 입 안에 들어가면 뇨끼의 강한 점성이 저항한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내 봄눈 녹듯 부서진다. 씹을수록 감자 맛과 치즈 향이 어우러진다. 여기에 접시의 버섯크림소스를 떠 넣으면 각종 버섯의 감칠맛과 크림소스의 풍미가 완벽한 파스타 맛을 낸다. 점심시간(11:30~15:00)에는 1만5000원이다. ‘최고의 식재료’ 트러플 향미 곁들인 생면 파스타 이 집 파스타 가격은 대부분 1만 원대다. 그런데 유일하게 3만5000원짜리 고가(?) 파스타가 있다. 타야린 따르투포(Tajarin Tartufo)다. 이탈리아어 ‘Tartufo’는 영어 트러플(truffle)에 해당한다. 즉 송로버섯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방 파스타인 타야린에 그 귀하고 비싸다는 식재료인 송로버섯이 들어감으로써 고가 메뉴가 됐다. 이 메뉴 출시를 놓고 네 명의 주인도 처음엔 고심했다고 한다. 외국에서 맛을 보고 온 손님들이 찾는 경우가 자꾸 생기자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자 메뉴로 올렸다. 다만 가격은 최대한 낮췄다. 다른 파스타 전문점에 비하면 그나마 저렴한 편이다.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 먹기 좋은 메뉴다. 타야린 생면과 트러플 버터소스에 생 블랙 트러플을 슬라이스 해서 올렸다. 트러플 산지로 유명한 이탈리아 중부 옴브리아산이다. 트러플은 요즘 같은 겨울철에 맛과 향이 최고조에 이른다. 접시가 식탁에 놓이자 강력한 트러플 향이 사정없이 콧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순간, 이탈리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떠올랐다. 시커멓고 퉁퉁한 얼굴에서 그토록 애간장 녹이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게 늘 신기했다. 블랙 트러플 역시 그러했다. 울퉁불퉁 못생긴 시커먼 버섯 속에 저토록 매력적인 향미가 숨어있었다니! <파스타 프레스카>는 파스타 전문점이다. 그렇다고 파스타만 있는 건 아니다. 에피타이저와 디저트 피자 등 다양한 이탈리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규모가 크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실내는 편안하고 음식은 디테일이 살아있다. 2018년 블루리본 식당에 선정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글 사진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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