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는 서로 언제나 충돌한다. 사람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화목할 수 없다. 성경적인 상담과 인본주의적인
심리학은 이해와 인간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하여 동일한 원리들과 진리들의 나누는 정도로 결합될 수 있다. 그럴지라도, 사람의 문제는 그의 역기능적인 행동보다 더 큰 것이다. 사람은 그가
행하는 것만이 아닌 그의 누구인지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성경적 상담과 심리학의 근본적인 전제는 서로
완전히 대립한다.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체제의 결론과 목표가 대립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사람은 그의 죄와 결과적인 그가 직면하는 사형 형벌에 대해 아무 해답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역과 우리 안의 그리스도의 생명인 유일한 해답을 제공하셨다. 인간의 지혜는
사람은 행동의 변화, 자신에 대해 더 낳게 생각하거나 또는 그의 환경을 바꿈으로 그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더 노력하고 자신을 믿으라고 한다.
성경적인 상담은 은혜의 메시지와 그리스도 안의 우리의 무한한 자원에 반드시
중심을 두어야만 한다. 인본주의적 상담은 사람이 그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에 중심을
둔다.
상담에
대한 성경적이며 영적인 접근법을 가르치거나 쓰는 어떤 사람도 그 접근법에 대해 도전과 질문들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레이스 펠로우쉽 인터내셔날 (GFI)은 25년
간 항의의 폭풍을 견디어 왔다. 그 동안, 많은 질문들과
도전들이 제기되어 왔었다. 질문에 답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며 그리고 그것의 비평가를 직접 대답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 상담에 대한 어느 개념도 확신의 가치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가장 많은 질문들과 우리의 대답이 이 본문을 당신이 공부하기 시작하기 전에 즉각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한다고 결정하였다. 당신은 우리의 대답들이 성경적이고, 논리적이며 효력이 있는가를 직접
결정해 볼 수 있다.
이 해답은 너무 단순하다!
우리는 이 바뀌어진
삶(또는 교환된 삶)의 개념이 단순함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을 시인한다. 동일한 논쟁을 구원에 대해 하게 될 수 있다. 각각의
경우, 하나님께서 깊고 복잡한 것들의 이해의 필요 없이 영적 진리를 고안하셨다. 사람은 그의 죄의 유죄를 자신이 제거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사람을 위하여 이루어 놓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우리의 죄된 삶을 그의 순수한 생명으로,
우리의 죄성을 위하여 그분의 무죄함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칭의를 주시는
우리를 대신한 구세주에 의한 이 대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화, 우리의 행동이나 삶의 방식은 그 자신이 달성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삶을 생산해내심으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행하셔야만 한다. 오직 그리스도 만이 의로우시며 우리는 그분 없이 의롭게 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단지 포기하고
우리 안의 그분의 생명과 능력에 의존하여야만 한다.
이 해답은 너무 복잡하다.
다시,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지성인들도 성경에 계시된 진리들을 절대 다 고갈 시킨 적이 없으며 사람이 자연에서
하나님의 일반적인 계시에 드러난 진리들을 다 고갈시킬 수 없어왔다. 더한 이해와 통합으로 그리스도인
삶에 조력할 수 있도록 성취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많다. 오늘날 가르쳐지고 불행히도 다수를 혼동시키는
오류와 진리를 분리하는 것이 치명적으로 큰 필요이다. 그럴지라도, 복잡한
세부 묘사를 제시하는데 기본적인 진리들이 절대 잃어지지 않도록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거부가 성경적인 개념인가?
거부는 성경 전반에서
우리가 거부를 보고 그것의 결과가 얽혀있을지라도, 성경적 개념은 아니다. 사람의 문제는 죄이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기초적인 수준에서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함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것이다. 죄의 한 결과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된 사람과 상종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에 의하여 거부당한
것이다. 한번 죄로 흠 있게 된 후 사람은 사람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가인은 그를 죽이므로 아벨을 궁극적으로 거부 했다. 거부에 대한 가르침은 사람의 문제가 죄라는 것을 부인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죄의 한 고통스러운 결과로 취급하며
피상담자로 그들이 그것에 인한 정서적 손상을 어떻게 그들이 경험하였는지를 이해하는데 돕는다. 불순종을
또한 사용해 왔으나,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한 것보다 그들이 더 많은 것을 받아왔다(거부)고 종종 말한다.
이 접근법이 위기
지향적인 듯하다.
사람이 그의 죄의
죄책에 대한 성령의 찌르심에 의해 구세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준비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들이 생성해낸 비참과 실패로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 그들의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를 중단하도록 성령에
의해 준비된다. 그들은 그들이 자기 중심적인 방식이 형통치 않는 것을 인식할 때,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시작하시길 원하는 경향이 많다. 그들에게
구원시 즉각적으로 이것이 기대되고 희망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줄 때, 그들 안에서 의로움을 생산하시도록
생명으로서 그리스도를 전유하고 그 분을 의지할 수 있고 할 자들이 많다.
모든 심리학을 반대하는가?_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은혜의 시대에 율법이 “합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의 진술에서 상기한다. 심리학이 인간 행동의 연구이며 정신병학이 질병들에 대한 이행 우리를 보조하는
정도로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그것의 보조에 자신들을 유용하게 하여야만 한다. 성령의 사역을 약하게 하거나, 대체하거나 충돌함 없이 사람의 혜택을 위하여 일반적인 계시의 형태로 심리학을 사용하는 것이다. 심리학은 선함, 감소된 긴장, 더
낳은 자부심과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행동을 생산해 낼 수 있으나, 그것은 의로움, 성경적인 평강, 성령의 열매와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이나 영원한
생명을 생산해 낼 수 없다. 우리의 관심사는 심리학의 업무가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존하라고 그를 가르침
없이 사람의 육신적인 행동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갈증 보다는 자기 만족으로
인도할 것이다.
당신의 접근법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돌보는 데에 관한 한 미흡한 점이 있지 않는가?심리학에
의하여 가르쳐지는 많은 개념들과 유기적인 문제를 고치기 위한 약들의 어떤 사용을 유능한 정신병의사에 의해 적용되어야만 하나 그러나 영적인 도움의
곳에서는 아니다. 실로, 증상에 대한 상담과 의학의 적용은
구세주, 주님과 생명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순복하고 믿는데 실패인 대다수의 증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피상담자에게
알려 줄 기회를 놓치는 정도로 고통을 완화시키기만 할 것이다.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와/또는 피상담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관심을
나누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해 놓으신 일과 하실 일이 무엇인지, 치료를 나누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특정한 성경적인 용어의
의미에 너무 많은 강조를 둔다.
우리는 성경의 무오함과 성령께서 그 낱말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에 위탁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우리의 선택으로 대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사적인 해석과 우리 자신의 편견을 혼합하여 그럼에 따라 완전한 가르침과 잠재적인 혜택을 놓칠
수 있는 큰 위험에 봉착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해의 가정된 편안함이 아닌 원어에서 그리고 성경의 광범위한 가르침에 의하여 이들 용어들의 의미에 따라 육신과 옛 사람과 같은 용어들을 명확히
가르치려고 시도한다. 베드로 조차 바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썼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성령께서 바울로 그들을 쓰기를 원하지 않았다거나 성령께서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적인 상담은 시장에서 매매하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제시된 해답들을 찾고 그들의 역기능으로 그들을 종종 인도한 혼란을 제거하는데 돕는 것이다.
왜 혼과 영 사이를 구별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하나이시나 독특한 세 분으로
존재하신다고 믿는다. 우리는 또한 사람도 본질적으로 하나이나, 그도
또한 생명의 세 수준: 영,혼과 몸을 소유한다고 믿는다. 목표는 사람으로 자신을 나뉜 것으로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그 자신 안의 분할을 이해 하게 그를 보조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 그는 혼-영이 몸으로부터 명백히 분리된다. 거듭난 사람이 그가 성령의 바로 그 거하시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신자로서 때때로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 때, 그가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그리스도가
죄와 연합하실 수 있는가? 우리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그
날에” 죽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900 년을 넘어 살았고 몸과 혼 안에서 기능하였던 것을 읽을 때, 논리는
그의 영이 그 날에 죽었다는 것을 지시한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 태어났다고 에베소서에서 읽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몸과 혼 안에서 분명하게도 살아있다. 우리의 어느 부분이 죽은 것인가? 우리의 가르침은 불화(불통일)를 일으키지 않는다. 죄가
불화(불통일)를 일으킨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불통일과 우리를 위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해 어떻게 참으로 하나가 되거나 다시 완전해질 수있는가를 설명하는데 성경적 원리를 사용한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로
그 분의 생명을 사시는데 전적인 의존이 우리로 수동적으로 되게 하지 않는가?
만일 육신의 과다한 활동에 대조해 보면 그런 듯 보인다. 질문은 신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실 것인가 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적이지 않으실까? 어떤 의미로, 우리는 계속해서 일하나 그러나 다른 의미로는 그것은“내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이 이것을 고린도전서 15:10에서
또한 가르쳤다.
무죄 완벽을 가르치는
것인가?
우리는 신자의
완벽함은 그의 부활이나 휴거를 기다린다고 믿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구속이 완성될 그 지점에서
오직 우리는 죄의 현존으로부터 건짐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신자가 죄의 형벌에서 건짐 받았다는 것은
가르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 죄는 우리의 혼과 몸 안에 여전히 거하고 있다. 이것의 증거로서
재생시 우리는 영화로운 몸을 받지 못했으며 우리는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는 “죽을 몸” 안에 살고 있다. 우리의 생각, 의지와 감정은 아직 완전히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영적으로 완벽(완전)하다고
믿는다. 우리의 영과 연합하여 성령이 거하시는 곳에 온전함이 있다 (고전
6:17). 새 사람은 범죄할 수 없다. 영인 사람도 범죄하지
않는다. 요한일서3:9은 그 분의 씨(영역, seed) 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곳에서 우리는 범죄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은혜의
제 2의 사역”이나 “성령의
세례”를 가르치는 다른 방법에 불과 한 것이 아닌가?
아마 그들의 체험을
은혜의 제 2의 사역 이나 성령 세례로 상표(label)를
붙였을 어떤 이들이 실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참된 정체로 체험적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교환된 삶(the exchanged life), 그리스도의 생명-그리스도와의 죽음, 장사, 부활과
승천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이 은혜의 제 2의 사역이나 성령의 세례라고 말할 때 대다수의 선생들이 의미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은혜의 제 2의 사역이
한 사람을 무죄 완벽의 생활로 건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유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참된 정체에 대한 체험은 한 사람으로 죄를 덜 짖게 하지 죄를 짖게 않게(죄 없다, 무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개인적인 체험이 방언 같은 은사의 표출로 반드시 또는 인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불행히도, 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몸과 생활에서 그리스도께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체험을 구한다. 우리의 동기에 대한 참됨 시험은 누가 영광을 얻을 것인가? 이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그 신자가 자신의 죄를 위하여 대가를 치루었다고 가르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우리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우리 죄를 위하여 죽었다면, 우리는
죽어 있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사람은 그 자신의 죄를 위하여 속량할 수 없고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절대 바르게 만들 수 없다. 그 분 만이 유일하게 거룩하시며 의로우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어야만 했다. 우리를 위한 그 분의
죽음이 우리 죄를 위한 완전한 희생이었다. 그분의 피가 우리 죄를 위한 대가로서 그 분의 피가 아버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함께한 죽음이 필요했었는가? 속죄가 아니고 대속 사역의 대가도 아니다; 우리의 함께 한 죽음과
함께 한 부활(co-death and co-resurrection)은 우리로 옛 사람을 제거하고 우리에게
새것을 부여하시기에 필요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생명을 제거하시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신 방법이다. 이것은 옛 창조인 옛 사람이 새 창조인 새 사람에 의하여 대체 하신 방법이다.
이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제거되고 은혜의 영역의 안전에 놓이게 하신 방법이다. 이것은 우리를
어둠의 왕국에서 데려 나와 빛의 왕국에 두신 방법이며 그리고 훨씬 더 많다.
“자기에 대한 죽음”을 가르칠 때, 우리의
개성이 근절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신자 안의 인간의 개성 그 안과 그 자체가 죄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인간의 몸이 죄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둘 다 죄로 물들긴 했으나, 어느 한 편도
우리 안에 내주하는 죄의 능력이나 성령의 능력으로 힘입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자기의 죽음이나 종말을
가르칠 때, 우리는 자기를 개성으로 정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이 신자가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고 할 때, 자동(AUTO) 이란
헬라어는 자기가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자는 반드시 통제하면 안 되며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사시는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반드시 통제하셔야만 한다. 자신에 대한 죽음은 자기 중심, 자기가 통제, 자기의 삶을 통치함에 대한 죽음이 더 낳은 진술이
된다. 어느 개성이나 내주하는 죄(육신적인 행동)에 의하여 능력을 부여 받을 때 죄될 것이며, 우리 안의 성령에 의하여
능력을 부여 받을 때 의롭게 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옛 사람이 죽었다는
로마서 6:6절의 본문이 왜 반드시 문자적으로 취해져야 하며 비유적으로 취해지면안 되는가?
비유나 설명적인
예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어떤 것을 이해하는데 우리를 도와준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생명의 교체로 양이
주어졌을 때 비유적으로 이삭을 죽음에서 다시 받은 것이나 그러나 그 시점에서 이삭은 죽음에서 실제로 부활 하지 않았었다. 로마서 6:6을 비유적으로 가르치는 자들은 이것이 미래의 부활 때까지
실현되지 않을 어떤 것을 상징하는, 사람이 죄의 능력으로부터 아직 건짐 받지 못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한 십자가에 못박힐 사람의 부분(part of man)이 없음으로 그렇게 가르친다. 이 지위/좌소가 수용될 때, 우리는
죄의 능력으로부터의 비유적이며 설명적으로 건짐 받음이지 죄로부터 실제적인 건짐을 받지 못 한데에 남게 된다. 바울과
성령은 로마서 6장을 기록하는데 우리로 죄에 거하지 않고 은혜로 넘치도록 믿기만 하라는 한 목적이 있었다. 25 년 간의 경험이 우리에게 통상적으로 이것이 다만 설명이 되게 한 것이라고 믿는 자들은 죄의 능력으로부터
다만 잠재적인 건짐만 갖게 되며, 그리고 이것이 신자의 영에 대한 실제적인 죽음과 부활로 믿는 자들은
죄로부터 실제적인 체험과 건짐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자 안에서 실제적인 죽음을 가르침이 한 사람으로
로마서 6:7과 6:14을 사실로 수용한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제 우리가 진정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죄의 능력에서 진정 자유롭게 되지
못한 것이다.
새 사람은 중생 시에 신자 안에 두어진 새로운
본체인가 아니면 영적인 요소인가?
그것은 단지 생각하는데
새로운 방법이나 행동의 새 형식이지 않은가? 이들 질문들은 사람의 전적 부패에 두드러진 무지를 보여준다. 만일 생각하는 새로운 방법이나 더 낳은 방법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 페라기우스의 그늘이다! (이단이라는 뜻, Shades of Pelagius) 만일 한 사람이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믿고, 더 낳게 생각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면, 그러면
율법이 구세주가 될 수 있었으며,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
율법 아래서 율법과 사람의 전적 실패는 정죄만 가져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그가 행함에
따라 자신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사람이 바꾸어야 하는 것은 죄인이 성자가 되어야만 하며, 옛 사람이 새 사람으로, 옛 피조물이 새 피조물로, 아담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로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베드로 후서
1:4이 말하는 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의 가르침과 흡사한 사람이 신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이 구절의 언어는 우리가 신성 안에서 합작하였음을 말한다. 우리는 절대 신이 아니며 그리스도께서는 신이시며 그리고 그 분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수단에 의하여 우리와 연합하셨다.이 원천에 따라,우리는 신의 새 성품을 소유한다고 말해지거나 또는
다른 곳에서 가르치는 대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5:17). 뉴-에이지 운동과 동양의 종교들은 만일 그가 자신이 신이라고 믿는다면 그 사람이 신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을 믿는 것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신이며(Man is a god) 이 땅에서 잃고 혼동되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 만으로 우리가 신성에 참예한다고 가르친다.우리는 모든 혜택을 받지만 신용은 하나도 받지
않는다(주님께로 돌린다는 뜻).
그리스도와의 우리의
동일시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의 주권에 전적으로 달렸는가 아니면 그의 선택에 따라 개인이 이것에 영향을 주는가?
대답은 예와 예이다. 이
둘은 상호 배제하지 않는다. 사람의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의 밖이 절대 아닌 곳에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사람은 응답한다. 성경은 누구든지 오는 자는
이라고 말하나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아버지에게 올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다.
오는 것과 이끄심이 중생 시에 동반하였으며 동일시에도 마찬가지다. 성령치유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나
그 분은 인간의 도구와 성경을 통하여 이것을 하신다는 전제에 기초를 둔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는
아무 것에도 효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므로 피상담자로 믿음의 기도로 그들 자신의 선택을 표현하기를 고무한다. 성령께서
약 2000 년 전에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수 된 사역을 반드시 실제로 만드셔야만 하신다.
십자가나 교환된 삶을
통한 승리를 발견하는데 이 모형들과 방법들 없이 한 사람이 승리를 발견하는 다른 방법들은 없는가?
물론 있다. 다른 저자들과 목회자들의 다수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믿음으로 이르게 하는데 하나님에 의하여 쓰여져 왔다. 그레이스 펠로우쉽 인터내셔날의 가르침의 독특함은 우리의 모든 가르침과 상담의 중심으로서 효과적인 상담 모델과
십자가에 대한 강조에 대한 그것의 통합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은혜에 대한 메시지로 이들 진리들을
가르친다. 다른 이들은 동일 한 메시지에 중심을 둔 성경 공부로 신자들을 훈련시킨다.우리는 많은 기관과 저자들의 자료를 사용하는 것을 고무한다.
내주하는 죄나 죄의
원리에 대한 가르침이 우리가 범죄할 때 신자로 우리의 책임을 부인하는데 이르게 하지 않는가?“
마귀가 하게 했다” 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이 성경적 진리는 신중하게 제시되어야만
하며 그것이 우리의 가르침이 아니다.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7:17 과
7:20 에서 명백하게 가르친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새로운 바울, 신령한
바울, 로마서 7장의 “나
자신”은 죄를 짓거나 죄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우리는 이 가장 중요한 바울(the most significant Paul, 새로운 바울을
뜻함)은 죄를 짖지 않으나 바울은 그가 여전히 죄를 지으며 그 쓸데 없는 육신이 여전히 바울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한다. 바울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라고 말한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죄로 오염된 몸과 혼인 육신이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여전히 우리의 일부임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내 안에 거하는 그 죄가 나라고 절대 불리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이 죄가 힘 또는 능력이나 우리가 아니라고 믿는다. 신자의
영은 더 이상 이 내주하는 죄를 담고 있지 않다. 신자의 목적은 죽을 몸에 죄로 주관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과의 연합으로 우리의 영 안에서 이제 주관하는 의로움에 혼과 몸을 순복 시키므로
성취된다.
체험적이 동일시와
결과적인 삶의 변화에 대한 강조가 기적적인 병고침과 어떻게 다른가?
만일 어떤 개인 신자들이 그러한 위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좌절로
이르게 할 즉시 성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하나님은 주권적이심으로, 체험적인 동일시의 결과들이 다를 것이다. 육체적 병고침의 주제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치유도 피상담자의 믿음이나 상담자의 믿음의 문제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뜻하신 것을 믿음으로 단지 전유할 뿐이다. 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이것을 예증한다. 아마, 약속한 것을 받지
못한 채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과 이 생애에서 건짐받은 자들을 대비한 것과 평행하는 히브리서 11:33-38의
공부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기적적인 병 고침은 우리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을 보여주나 우리는 다만 다음 세상을 위하여 보류된 것을 이 세상 안에서 완벽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관 안에서 은혜적으로(인자하시게) 치유하시지만 그 분은 여전히 모든 신자로 고난 받고 죽게 허락하신다. 이
생애에서 동반하는 죄의 현존과 노화와 죽음으로부터 건져 주심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는 완전하나 우리가 하늘나라에 이를 때까지 완전하게 체험되지 않을 것이다. 죄에 대한 형벌과 죄의
능력에 대한 승리는 여기에서 그리고 지금 약속되었다!
죄책으로부터
우리의자유와 죄의 능력으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즐기며 죄의 현존, 고난과 죽음에서 최후의 건짐 받음을
바라보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쎄란메써(Theron Messer), 행정 지도자
그레이스펠로우쉽인터내셔날
덴버,콜로라도
부록 C
추가로 공부할 추천작
다음의 책들의 얼마는 품절되어서 성경학교에서나 신학교 도서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잃은것에 대한 책들은 서점의 선반을 가득 채우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 돕는
책들만큼 거의 인기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의 저서들을 통하여 과거의 성자들과 교제하기 위하여 도서관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유익할 것이다.
헌신
Drawing
Near
Boa,
Ken/Anders, Max
My Utmost
for His Highest
Chambers, Oswald
Practicing
the Presence of God
Lawrence, Brother
God's Best
Secrets
Murray, Andrew
Close to His
Majesty
기도
Needham, David
Power
Through Prayer
Bounds, E. M.
Quiet
Talks on Prayer
Gordon, S.D.
Experiencing
the Depths of Jesus Christ
Guyon, Madame
The Prayer
Life
Murray, Andrew
Prayer,
Life's Limitless Reach
Taylor, Jack
Kneeling Christian
승리적 삶(생명)/ 그리스도 연합
An Unknown Christian
Victory
Over the Darkness
Anderson, Neil
How to
Live the Victorious Life
An Unknown Christian
Healing
for the Church
Burchett, Harold
People Helping People(Available
through GFI)
영적인 생활
Free for the Taking - The LifeCooke, Joseph R.
Changing Power of Grace
Classic ChristianityGeorge,
Bob
Lifetime GuaranteeGillham,
Bill
Quiet Talks on PowerGordon,
S.D.
New Testament LivingHarrison,
Norman B.
Calvary RoadHession, Roy
Bone of His BoneHuegel,
F.J.
The Subtle Power of Spiritual abuseJohnson, David (Van Vonderen, Jeff)
Faith is the VictoryKazee,
Buell H.
Our Oneness with ChristKuykendall,
David Here's Life
The Filling of the SpiritLegters,
L.I.
The CrossLioyd-Jones,
Martyn
Failure, Back Door to SuccessLutzer, Erwin
How in this World can I be Holy?
The Sufficiency of Chris t MacArthur,
John
Growth in GraceMatthews,
Victor
Crowded the ChristMaxwell,
L.E.
Born Crucified
Three-Fold Secret of the Holy SpiritMcConkey,
James
The Mystery of the CrossMcGrath,
Allister E.
The Christ Life for your LifeMeyer F.B.
The 5 "Musts"of the
Christian Life
Abide in ChristMurray,
Andrew
The Two Covenants
Absolute surrender
Normal Christian LifeNee,
Watchman
Release of the Sprit
Changed into His Likeness
BirthrightNeedham,
David
Say Yes! How to Renew Your
Spiritual PassionPalau, Luis
Life on the Highest PlanePaxson,
Ruth
The Centrality of the CrossPenn-Lewis,
Jesse
In Christ JesusPierson,
A.T.
Victorious Christian LivingRedpath,
Alan
The Christ LifeSimpson,
A.B.
Handbook to Happiness and youSolomon, Charles
R.
Handbook to Happiness in verse
Gems and Jargon
The Ins and Out of Rejection
The Rejection Syndrome
Green LettersStanford,
Miles
AdversityStanley,
Charles
Authentic ChristianityStedman,
Ray
The Cross of JesusStott,
John
The Grace AwakeningSwindoll,
Charles
Key to Triumphant LivingTaylor,
Jack
The Saving Life of Christ Thomas, Ian
The Mystery of Godliness
That Incredible ChristianTozer,
A.W.
Victory In ChristTrumbull,
Charles
Tired of trying to Measure UpVan Vonderen,
Jeff
The New LifeWallis,
Reginald
Sidetracked in the WildernessWells, Michael
부흥
Evangelism in the Early ChurchGreen, Michael
Dynmaics of Spiritual Life:Lovelace, Richard F.Lovelace, Richard F.
An Evangelical survey of Renewal
Renewal as a way of Life
Renewal
The
Eager Feet: Evangelical awakenings;Orr.
J. Edwin
1790-1830
Why
Revival TarriesRavenhill,
Leonard
Spiritual Warfare(영적 전쟁)
The Bondage BreakerAnderson,
Neil
The AdversaryBubeck,
Mark
The Mystery of IniquityHuegel,
F. J.
Demons in the World TodayUnger,
Merrill
전기
Beyond the RangersFraser,
J. O.
My Calvary RoadHession,
Roy
Hudson Taylor's spiritual SecretTaylor, Dr./Mrs.
Howard
The Life of MadameGuyonUpham, Thomas C.
주석
An Expostion of RomansHaldane,
Robert
His Salvation(Romans)Harrison,
Norman B.
From Shadow to Substance (Hebrews)Hession, Roy
RomansLloyd-Jones,
D. Martyn
Christ is All(Rom., Eph., Col.)Moule, Charles,
F.D.
RomansMurray,
John
Romans Verse by VerseNewell,
William R.
The Walk, Wealth, and Warfare of
the BeliverPaxson, R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