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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과 승가사 마애불
1995년 6월 29일이었습니다. 그날 간호사로 일하는 큰 딸의 혼수품을 함께 구하러 가기고 약속했던 어머니에게서 병원으로 난데없이 전화가 왔습니다.
<얘야, 아무래도 내가 오늘은 백화점을 못가겠다.>
밑도 끝도 없이 어머니는 아주 힘없는 목소리로 약속을 취소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캐물어 보아도 '글쎄, 어쨌든 오늘은 못가겠다'는 한 마디 말뿐이었습니다.
평소에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사정이 아닌 다음엔, 한 번 약속한 것은 찰떡같이 신의를 잘 지키시는 어머니였기에 더욱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가 평소보다 힘없게 들렸는데, 아마도 어디가 매우 아프신 것은 아닐까?>
큰 딸은 걱정이 되어서 혼수품은 고사하고, 갑자기 먹은 것이 체하셨는가? 아니면 신경을 많이 쓰셔서 또 쓰러지셨는가? 등등의 이런 저런 망상을 하며 급하게 조퇴서를 제출했습니다.
부랴부랴 집으로 향해 가보니, 아파서 쓰러진 줄 알았던 어머니는 멀쩡한 채로 거실 청소를 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큰 병이 난 줄 알았다가 아프지 않은 것만은 다행이지만, 돌연 사람을 놀라게 해 바쁜데 조퇴까지 하고 온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멀쩡하면서 왜 어머니께서 오후에 백화점 가기로 한 약속을 깨뜨려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채근하여 물어보았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 질문에 어울리는 합당한 대답을 이렇다 하게 내놓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큰딸은 잘 알아보지 않고 행동한 자신만을 책망하면서, 별 생각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TV를 켰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 일입니까?
TV 뉴스에서는 삼풍백화점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며, 다급한 속보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연실색한 큰딸은 어머니가 계신 거실로 뛰쳐나가서, 차마 입도 떨어지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만 TV를 가르쳤습니다.
딸이 가르키는 대로 안방에 들어와 TV를 보게 된 어머니도 놀라서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곳은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두 모녀가 함께 혼수품을 사러 가기로 꿈에 부풀어 약속했던 바로 그 장소였던 것입니다.
이윽고 놀란 가슴을 진정한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이럴수가..세상에나....??
사실은 오늘 내가 아침녁에 밥먹고 설겆이를 마치고 나자, 잠시 피곤해서 소파에 누웠었단다. 그랬는데 그 짧은 새에 꿈을 꾸지 않았겠니?
아, 글쎄 승가사 마애석불님이 꿈속에 나타나셔서는 자꾸만 손을 흔들며 뭔가를 말리시는 게야. 무어라 말씀은 들리지 않았지만, '하지 말라'는 듯이 자꾸 말리는 손짓을 하셨지.
토막잠을 깨고 일어나서도 꿈속에 말리시던 부처님의 모습이 하도 선명해서, 아무래도 오늘 계획한 일을 미루고 포기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지.
그래 바로 너에게 약속했던 백화점 쇼핑을 못가겠다고 전화를 했지 뭐냐. 그런데 그땐 나도 까닭을 잘 몰랐었는데, 왜 마애석불님이 꿈에서 한사코 말리셨는가를 이제서야 확실히 알겠구나! >
그 어머니는 평소 승가사 마애석불님께 10년이 넘도록 매월 초하루 법회와 기도를 빠지지 않고 다니며 불공을 정성껏 올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즐겁게 쇼핑하다가 붕괴된 삼풍백화점 속에 갇혀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은 흡사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방불케 했습니다.
처참한 사건 현장을 뉴스를 통해 보면서 두 모녀는 소름이 오싹 끼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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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승가사 마애부처님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언제 어느 글에서 봤습니다만 잊을만 할때 또 이렇게 올려주셨습니다.
영천충효사 주위에 분들이 많이 가시던데요. 가까운곳에 있어도 부처님 참배하지
못했는데 감사합니다. _()_
이 이야기는 햇님이 올려주신 글에서 옮겨 왔습니다 특히나 여여월님도 유사한 경험이 있었던 내용이라서 확실히 가피라는것이 있음을 누구나 알수있게 해주는 글이라서 올렸습니다
@용천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요.
우린 자꾸 잊어버리고 그은혜도 잊어버려요.
@월광화 인과를 부정하면 불자가 아닙니다. _()_
@용천 우리는 얼마전 우리가 한 행동과 말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게 참 어리석음을 짓고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제 먹은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어제 약속을 지키지 못하니
업이 되겠네요.
말한번 할때도 생각을 한번 일으킬때도 이 뭐꼬 라는 ??를 가져본다면
내일은 좀 더 밝음을 볼 수 있겠다는 맘이 불현듯 드는 오늘입니다.
@월광화 잊어버림은 어리석은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이치 입니다
그러나 좋으면 다시 되새겨보고
또 참 좋으면 기억하게 하면 됩니다
좋은것만 가득 담으세요 _()_
@용천 그런가요 좋은것만 기억하라꼬요. 싸 그래야 될것 같습니다.
저도 다시 보니 기억이 생생해집니다....고맙습니다~~
영천의 도반스님 절에만 가보고 충효사는 몰랐는데요....
덕분에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참배하고 갑니다~~ 나무아미타불...()...
햇님 도반스님 계신곳에 댕겨 오고 싶습니다
오딘지 가르키 주세요 하면 실어 하시겟찌요
영천도 넓어서 갈곳도 많습니다
사잇글은 간단하면 좋지만 이야기글은
더 좋습니다
@용천 몇년전 우리부부랑 같이 가본곳으로 영천 고경에있는 관음사인데요.
여형제가 같이 출가하시어 몸이 아프신 어머니를 모시고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시면서 계시는 아주 조그만한 암자였습니다.
그때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린 계절이라 실컷먹고 얻어서
온 기억이 납니다.
@월광화 예~
언젠가 꽃바람 불면
슬슬 댕겨 오고 싶은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