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추회잡시(秋懷雜詩)」 가을의 소회를 노래한 연작 10수(首)>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거제도 유배지에서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 「추회잡시(秋懷雜詩)」 10수(首)는 유배지에서의 고독, 충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선후기 유배 문학의 수작이다. 김진규는 숙종 시기 인현왕후의 복위와 관련하여 격렬한 당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로, 1689년(기사년) 기사환국으로 인해 천 리 먼 거제도 변방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이 시는 가을날 유배지에서 느끼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임금과 고향을 향한 충정, 그리고 유배객의 쓸쓸한 처지를 절절하게 담고 있다.
이 유배 문학은 당대 최고의 명문가 출신이었던 지식인이 겪은 삶의 추락과,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유교적 충효 사상, 그리고 인간적인 외로움이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서리, 낙엽, 찬바람, 서산의 해)과 맞물려 고도의 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이 시는 전반적으로 쓸쓸한 가을의 풍경과 유배객의 절망적인 심경을 강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 시대 대문장가의 유배 시 중에서도 가문·형제·부부·군신의 정이 가장 입체적으로 녹아 있는 대표작이다.
덧붙여 이 글은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 시(詩)편에 실려있으며, 그의 약력(프로필)은 앞서 소개한 바가 있어 생략한다.
○ 「추회잡시(秋懷雜詩)」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순서대로 기술하겠다.
*제1수 : 유배지의 쓸쓸한 가을 풍경을 묘사했다. 가을 단풍이 들고 서리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유배객의 외로움과 나그네의 처지를 노래한다.
*제2수 : 멀고 먼 변방의 황량한 유배지에서도 오직 임금과 부모를 향한 일념뿐이며, 밤이 깊어도 북극성(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는 변치 않는 충절을 담았다.
*제3수 : 가장 애절한 수 중 하나로, 동생(김진규)은 가라(거제도)에 있고 형(김진구)은 한라산(제주도)에 있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형제간의 비극과 슬픔을 표현했다.
*제4수 : 과거의 영화와 현재의 비극을 그렸다. 과거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이 모여 화목하고 가문이 번성했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은 가을바람 속에 눈물만 흘리는 처지를 대비시켰다.
*제5수 : 꿈속에서 집에 갔다가 깨어난 후의 허탈함, 글을 배워 편지를 보낼 줄 알게 된 자식과 멀리서 옷을 지어 보낸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그렸다.
*제6수 : 예전에 조정에서 벼슬을 하며 아버지와 함께 대궐을 출입하고 친우들을 만나던 화려했던 과거와, 외딴섬에 낙엽처럼 떨어진 현재의 비참한 신세를 대조했다.
*제7수 : 귀거래의 꿈과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묘사했다.
*제8수 : 유배지의 가을 추수 풍경과 풍년이 들어 즐거워하는 농민들을 보며, 정작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늙어가는 유배객의 처지를 탄식했다.
*제9수 : 임금이 계신 곳 아래에 살던 사람이 바다 밖 섬의 죄수가 된 신세를 한탄하며, 정위(精衛)라는 새가 바다를 메우려 했듯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바다에 투사했다.
*제10수 : 한 해가 저무는 타향에서 나라를 향한 붉은 마음(丹心)은 여전하지만 귀거래의 꿈은 좌절된 채, 이웃이 주는 술 몇 잔에 의지해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를 달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다음 「추회잡시(秋懷雜詩)」는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거제도 유배지에서 지은 ‘陽’, ‘魚’, ‘麻’, ‘眞’, ‘微’, ‘刪’, ‘東’, ’東’, ‘尤’, ‘歌’ 운목(韻目)의 칠언율시(七言律詩) 10수(首)다. 저자 김진규는 송시열의 제자이자, 대제학을 지낸 김만기의 아들이며,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의 오빠로, 당대 최고 권력 가문인 서인(노론)의 핵심 인물이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김만기가 유배당하고 가문이 몰락했다. 이후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며 김진규도 사헌부 집의, 대사헌 등 높은 관직에 올랐던 인물이다. 숙부 김만중은 남해도로, 형 김진구는 제주도로, 본인(김진규)은 거제도로 각각 유배되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형제의 비극이 제3수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저자 김진규(金鎭圭)는 「추회잡시(秋懷雜詩)」 즉, 가을날의 소회(감회)를 노래한 칠언율시 연작 10수(首)에서 시각적·자연적 대비를 통해 가을의 서리(霜), 낙엽(落葉), 서산의 해(落暉) 등 '하강과 소멸'의 이미지를 배치하여 자신의 꺾인 정치적 처지와 유배객의 쓸쓸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또한 공간의 단절과 확장을 이어갔다. 대궐(구중궁궐) -> 외딴섬 -> 거대한 바다로 이어지는 공간의 단절감을 '정위새'나 '흘러가는 구름' 같은 매개체를 통해 극복하려는 심리적 확장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감정의 절제와 분출로 끝맺었다. 1수부터 9수까지는 그리움과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아 고사를 통해 정제하여 표현하다가, 마지막 10수에서 이웃이 준 술을 마시고 장단을 치며 길게 노래(擊節一長歌)하는 모습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며 마무리하였다.
**「추회잡시(秋懷雜詩)」 가을날의 소회(감회)를 노래한 연작시 10수**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제1수 ‘陽’ 운목(韻目)
楓葉深紅槲葉黃 단풍잎은 짙게 붉고 떡갈나무 잎은 누런데
滿林秋色盡迎霜 숲에 가득한 가을 빛은 모두 서리를 맞이하네.
孤懷感物增蕭瑟 외로운 마음은 사물을 대하니 더욱 쓸쓸해지고
愁眼登高轉渺茫 시름겨운 눈으로 높은 곳에 오르니 갈 길은 더욱 아득하네.
短景徘徊悲返照 짧은 해는 머뭇거리며 지는 햇빛(석양)을 슬퍼하고
寒花悵望吊餘香 차가운 꽃을 창연히 바라보며 남은 향기를 애도하네.
昬鴉暮雀皆歸去 저문 날 까마귀와 참새도 모두 둥지로 돌아가는데
唯有羇人滯異鄕 오직 나그네 신세인 나만 타향에 머물러 있구나.
又 제2수 ‘魚’ 운목(韻目)
萬死窮荒一念餘 만 번 죽을 것 같은 거친 변방에서도 오직 한 생각뿐이니
君親耿結淚盈裾 임금과 부모님이 마음에 걸려 눈물이 옷자락에 가득하네.
涓涓斷港歸滄海 졸졸 흐르는 끊어진 물줄기도 결국 푸른 바다로 흘러가고
渺渺浮雲接暮閭 아득히 떠도는 저 구름은 고향 마을 문에 닿아 있겠지.
歲晩偏憐西日促 한 해가 저무니 서산으로 지는 해가 재촉하는 듯해 가련하고
夜深猶望北辰居 밤이 깊어도 여전히 임금 계신 북극성 쪽을 바라보네.
枯葵衰草霜風裏 마른 해바라기와 시든 풀이 서리바람 속에 서 있으니
長憶三春暖景舒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펼쳐지던 시절을 길이 그리워하네.
又 제3수 ‘麻’ 운목(韻目)
弟在加羅兄漢挐 나는 거제도(가라)에 있고 형은 한라산(제주)에 있으니
同胞落落異方賖 한핏줄 형제가 이리저리 흩어져 먼 타향에 떨어졌구나.
鴈行隔海難成陣 기러기 행렬(형제)은 바다를 사이에 두어 줄을 짓기 어렵고
荊樹逢秋不復花 자형나무(형제 우애)는 가을을 만나 다시는 꽃을 피우지 못하네.
蘆谷對床猶夢裏 노곡(옛 고향집)에서 상을 마주 대하던 일은 꿈속의 일 같고
駒城分路卽天涯 구성(갈림길)에서 길을 나눈 뒤로는 곧 하늘 끝이 되었구나.
來生未了因雖結 다음 생에 다하지 못한 인연을 비록 맺는다 한들
此別何能慰恨嗟 이승에서의 이 이별을 어찌 슬픈 탄식으로 위로하랴.
又 제4수 ‘眞’ 운목(韻目)
憶曾兄弟奉先人 기억하건대 옛날에는 형제들이 부모님을 모시어
日日門闌喜氣新 날마다 집안 문턱에 기쁜 기운이 새로웠지.
萊子庭闈趍綵服 노래자처럼 부모님 마당에서 색동옷 입고 재롱을 떨었고
楊家里巷擁朱輪 양씨 가문처럼 마을 골목에 붉은 수레바퀴가 가득했었네.
年移事往空餘感 세월이 흐르고 일은 지나가 버려 부질없는 감회만 남았으니
昔羨今憐可重陳 예전에는 부러워했으나 지금은 가련해진 신세를 어찌 다시 말하랴.
回首悲歡三歲變 고개를 돌려보니 슬픔과 기쁨이 3년 만에 변해버려
西風霜露只沾巾 하늬바람 속 서리와 이슬에 눈물로 수건만 적시네.
又 제5수 ‘微’ 운목(韻目)
夢裏還家覺却非 꿈속에서 집에 돌아갔다가 깨어보니 사실이 아니라서
眼中親愛轉依依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랑하는 이들이 더욱 그리워지네.
兒知文字能通信 아이는 글자를 배워 편지를 보낼 줄 알게 되었고
妻自裁縫遠寄衣 아내는 손수 옷을 지어 멀리 유배지까지 보내왔구나.
擧案何時甘共隱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던(擧案齊眉) 그 시절처럼 언제나 함께 은거할까,
候門終日苦思歸 문 앞을 바라보며 종일토록 돌아가기만을 괴롭게 생각하네.
人生緣障嗟難解 인생의 업장과 인연의 방해는 탄식해도 풀기 어려우니
爲爾含情對落暉 너희들을 위해 정을 머금은 채 지는 햇살을 마주하노라.
어떤 책(판본)에는 '解(풀 해)' 자가 '斷(끊을 단)' 자로도 적혀 있다(解一作斷)
又 제6수 ‘刪’ 운목(韻目)
昔歲曾參元會班 지난날에는 새해 아침 조정의 하례 행렬에 참석하여
豸冠高岌繡衣斑 해태 관(관모)을 높이 쓰고 수놓은 관복을 아롱지게 입었었지.
風來閶闔爐烟起 대궐 문에 바람이 불어오면 향로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日上罘罳殿影還 해가 대궐 담장에 떠오르면 궁전 그림자가 돌아들었네.
父子同趍文陛下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임금의 섬돌 아래로 걸어나아갔고
親朋相遇瑣闈間 친구와 친척들을 대궐 안(문간)에서 서로 만났었지.
傷心落葉飄孤嶼 이제는 마음 아프게도 낙엽처럼 외딴섬으로 떠밀려와
矯首祥雲隔九關 머리를 들어 상서로운 구름을 바라보나 구중궁궐과는 가로막혔네.
又 제7수 ‘東‘ 운목(韻目)
蘆谷之西芝浦東 노곡(蘆谷)의 서쪽이자 지포(芝浦)의 동쪽에서
當時幽興未渠窮 그 당시 그윽한 흥취는 참으로 다함이 없었지.
携筇望海隨漁子 지팡이를 짚고 바다를 바라보며 어부를 따라다니고
藉草談農對野翁 풀밭에 깔고 앉아 시골 노인과 농사일을 이야기하곤 했었네.
陽羨田良買何日 양선(陽羨)의 좋은 밭(고향 땅)에서 어느 날에나 살 수 있을까,
松江魚美憶秋風 가을바람이 부니 송강의 맛 좋은 물고기(귀향의 맛)가 그리워라.
炎荒迢遰歸心絶 덥고 황량한 유배지가 너무 멀어 돌아갈 마음마저 끊어지려 하니
釣艇耕犂入夢中 낚싯배와 밭 갈던 쟁기만이 꿈속으로 들어오는구나.
又 제8수 ’東’ 운목(韻目)
秋盡南鄕穡事終 남쪽 고을에 가을이 다 가고 농사일이 끝나니
田家相慶樂年豊 농가에서는 서로 축하하며 풍년을 즐거워하네.
賽神笳鼓朝朝響 신에게 감사제를 지내는 피리와 북소리가 아침마다 울려 퍼지고
滌圃壺觴處處同 타작마당을 청소하며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곳곳마다 똑같구나.
堪羨農人生理足 농부들은 살아갈 방도가 족하니 참으로 부럽지만
獨悲孤客暮途窮 외론 나그네는 인생의 저문 길에서 갈 곳이 없어 홀로 슬퍼하네.
翻思去歲蘆山墅 도리어 지난 가을 노산(蘆山, 노곡의 산)의 별장에서
門外閑看穫稻功 문밖에서 한가로이 벼 베는 풍경을 바라보던 일이 생각나는구나.
又 제9수 ‘尤’ 운목(韻目)
日下人爲海外囚 대궐 아래 살던 사람이 바다 밖 섬의 죄수가 되었으니
天敎吾道付滄洲 하늘이 나의 도를 은거하는 바다 섬에 부치게 하셨는가.
島前島後波相接 섬 앞과 섬 뒤에는 파도가 서로 맞닿아 있고
潮去潮來地欲浮 조수가 밀려왔다 밀려가니 땅이 마치 물에 떠 있는 듯하네.
徂歲如隨東逝水 흘러가는 세월은 동쪽으로 흘러가는 저 물줄기 같고
夢魂猶阻北歸舟 꿈속의 혼조차 북쪽으로 돌아갈 배에 가로막혀 있구나.
可憐此意同精衛 가련하게도 나의 이 마음은 정위새와도 같으니
願塞層溟作細流 저 겹겹의 거대한 바다를 메워 좁은 시내로 만들고 싶어라.
又 제10수 ‘歌’ 운목(韻目)
殊方歲暮客愁多 타향에서 한 해가 저무니 나그네의 시름이 깊어만 가고
別淚空添漲海波 이별의 눈물은 부질없이 넘실거리는 바다 파도에 더해지네.
許國丹心空皎㓗 나라에 몸을 바치려던 붉은 마음(丹心)은 부질없이 깨끗하기만 한데
歸田素計竟蹉跎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평소의 계획은 끝내 어그러졌구나.
羈踪積水憐萍梗 고인 물에 갇힌 나그네의 자취는 부평초와 마른 나뭇가지 같아 가련하고
旅服寒風感芰荷 차가운 바람 속에 나그네 옷을 입고 마름과 연잎을 생각하네.
賴得鄰人數杯酒 다행히 이웃 사람이 주는 몇 잔의 술을 얻어 마시고
酣來擊節一長歌 취기가 오르자 장단을 맞추며 길게 한 곡조 노래를 불러보노라.
[주1] 북진(北辰, 제2수) : 북극성을 의미하며, 유교 시학에서 언제나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임금(숙종)을 상징한다. 몸은 변방에 있어도 마음은 조정을 향해 있음을 뜻한다.
[주2] 자형나무(荊樹, 제3수) : 중국 한나라 때 전진, 전청, 전안 세 형제가 재산을 나누다 마당의 자형나무까지 세 조각으로 나누려 하자, 나무가 밤새 시들어버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형제들이 이를 반성하고 화합하자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여, 한시에서 형제의 우애와 이별을 뜻하는 대표적인 시어가 되었다.
[주3] 노래자(萊子)와 양씨 가문(楊家) : 초나라의 노래자가 70세의 나이에 부모를 기쁘게 하려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는 고사(반포지효)와, 한나라의 명문가였던 양씨 가문의 번성함을 뜻한다. 과거 가문의 영광스러웠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치다.
[주4] 거안(擧案, 제5수) : 후한의 후근과 맹광 부부의 고사인 거안제미(擧案齊眉)에서 나온 말로, 아내가 남편 앞에서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공경했다는 뜻. 부부간의 깊은 사랑과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주5] 정위(精衛, 제9수) : 중국 신화에 나오는 새로, 염제의 딸이 동해바다에 빠져 죽은 후 새가 되어 바다를 메우려고 매일 나뭇가지와 돌을 떨어뜨렸다는 고사다. 유배객이 바다를 메워서라도 육지(고향)로 걸어가고 싶은 불가능한 염원을 극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