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은사 가장 좋은 길
고린도전서 12장 31절~13장 1~5절
설교 : 2020. 3. 7 주일
찬송 : 304장(그 크신 하나님 사랑), 310(아 하나님의 은혜로),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은사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고 구변과 지식에도 풍족한 교회라고 말하고 있으나(1:7), 신령한 교회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3:1).
고린도전서는 육신적인 문제와 인간관계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서신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주님께서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영적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말하면서 혼돈하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더욱 좋은 은사와 가장 좋은 길인 사랑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주제는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 참된 사랑이 표현된 십자가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셨을 때 그 사랑은 우리 속에 있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십자가의 사랑과 같은 사랑이 나타날 때 그것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개인의 영적 생활의 열쇠입니다. 사랑은 성령에 지배받고있는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사랑은 가정 생활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부부간의 관계도 이 사랑이 이루어질 때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생활의 열쇠도 사랑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가장 큰 길을 소개할 때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영적 은사가 있다고 해도 사랑을 대신 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 큰 은사와 가장 좋은 길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의 삶을 살펴봄으로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사랑의 정의
첫째는 에로스(eros)입니다. 이것은 향락에 대한 사랑으로 나를 기쁘게 해 주는 것으로서의 사랑입니다. 아리스토틀은 "사랑은 눈으로부터 시작된다. 정욕과 관계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이 육적인 정욕을 기초로 한 사랑이라면 그것은 에로스적 사랑입니다.
둘째는 스톨게(storge)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헬라어에서 가족간에서 이루어지는 형연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즉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형제간에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세째는 필리아(philia)입니다. 이것은 매력에 이끌려서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애정과 우정의 따듯한 사랑입니다. 마력이 있고 나를 이끄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큰 은사와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했을 때 그 사랑은 위의 세가지 사랑이 아닙니다.
넷째는 아가페(agape)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신 것처럼 그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며 그 사랑의 표현은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아가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이란?
(1) 아가페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은 우리의 인격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 때문입니다.
(2) 아가페는 무조건적입니다. 상대방이 사랑 받은 만한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3) 아가페의 목표는 사랑하는 사람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구원 얻을 수 있도록 그의 아들을 희생하시고 주셨습니다.
(4) 아가페의 증거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 (요 3:16)고 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느낌보다 의지로서 사랑의 행동이 나타납니다.
(5) 아가페의 성격은 희생입니다. 십자가에서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2. 사랑의 우월성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1) 1~3절에서 사랑의 우월성(필연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4~7절에서 사랑의 행동t성(결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8~13절에서 사랑의 영원성(사랑은 영원하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표적, 은사보다 뛰어납니다(1절).
고린도교인들은 방언 은사의 경험이 없으면 그리스도인 생활의 최고의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 없이 하는 모든 아름다운 말도 구리와 꽹과리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구리와 꽹과리 소리는 음악이 아닙니다.
사랑은 터가 되는 은사보다 뛰어납니다(2절).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없이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사역(서로 섬기는)의 은사보다 뛰어납니다(3절).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산다하며 소유 뿐 아니라 자신까지 준다해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함을 말합니다. 모든 희생이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의 동기로 되어지지 않은 모든 것은 유익이 없으며 가치가 없습니다.
3. 사랑의 기본 자세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4절).
"오래 참는다"라는 말은 고난을 오래 참는다는 의미입니다. 7절에 "견딘다"는 말과 유사하지만 여기서의 견딘다는 말은 "환경을 견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는 "오래 참는다"를 사용합니다.
오래 참는다는 말 속에는 두 가지의 사상이 있는데,
첫째는 보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때문에 누가 나에게 어떤 잘못을 행했을 때라도 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 오래 참는 사랑은 그들이 나를 실망케 하고, 상처를 준다해도 오래 참고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포기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는 일관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랑은 온유합니다(4절).
예수님은 온유하셨지만 연약한 분은 아니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힘은 다른 사람을 세우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온유"라는 어원에는 "유용한"(useful)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조절된 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온유하게 행하는 것은 사나운 것이나 거친 것이 없이 표현되는 행동입니다. "온유하라" 라고 말할 때 내가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유용하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4절).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라고 할 때 시기란 다른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그것이 소유물이든, 친구이든, 재능이든)을 욕심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그의 필요를 도와주는 대신에 경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가 많으면 쓴뿌리가 자라나게 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4절).
사랑은 내가 가진 것을 선전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자랑 뒤에는 자신의 중요성을 선전하려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사랑은 칭찬이나 찬사를 듣기 위해 애타게 주위를 환기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사업가 한 사람이 어떤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목사님은 예의를 갖추기 위해 성도들 앞에 인사를 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사업체, 훌륭한 집, 가정, 그의 명성 들에 대해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한 짖궂은 성도가 뒤에서 손을 들더니, "선생님, 겸손은 어떠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자랑하는 것이 성공의 표현보다 불안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4절).
사도 바울은 교만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풍선"이란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교만은 자신을 과장해서 표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을 물리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것을 내 편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견지에서 보는 것입니다. 게이스엘 부록스는 "겸손이란 단순히 자신을 낮추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자유하여 그리스도만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5절).
사랑은 사람에 대해 민감합니다. 즉 부끄럽게 행동하지도 않으며 예의없게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으려고 매사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중심이 되어 있으므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다는 말은 탐심이나 이기심이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여 그의 지배를 받을 때만이 다른 사람에게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