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당구와 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종사촌 관계다. 시쳇말로 이런 말까지 있다. '당구 1시간씩만 보고 있어도 수학과 물리 50점 이상은 받는다'는 것.
당구도 원리를 알고 치면 재미가 두 배다. '천변만화'하는 당구 매력을 과학으로 풀어보자.
◆ 쿠션 그리고 당구대
= 우선 구장부터 살펴보자. 국제규격 당구대는 통상 가로 142.2㎝, 세로 284.4㎝다. 여기에 당구대 벽을 형성하는 쿠션 높이는 37㎜다.
규격 볼 지름은 61.5㎜. 이 공이 무한대 각도를 만들어내며 짜릿한 승부를 연출하는 것이 당구 게임이다.
당구대 각 모서리 쿠션은 고무 재질이다. 이 쿠션은 그 자체로 과학이다.
당구대 파손을 방지하는 기능은 기본. 여기에 당구공의 운동에너지를 담았다 방향을 바꾼 후 그대로 되돌려주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물리학적 양념을 가미해 말한다면 운동에너지가 잠시 위치에너지로 변환됐다가 다시 운동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이다. 쿠션에 충돌한 당구공은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다.
흥미로운 것은 쿠션과 당구대를 덮고 있는 질긴 천이다. 이 천은 당구공과 마찰을 일으켜 운동량에 변화를 준다. 회전을 가하면 그 변화는 확실히 드러난다.
당구공은 경도가 높은 압축 플라스틱 재질이다. 따라서 당구공끼리 충돌하는 것은 '완전 탄성충돌'에 가깝다. 완전 탄성충돌이란 두 물체가 부딛친 후에도 운동에너지 합이 변하지 않는 충돌을 말한다. 반발계수가 1에 가까운 당구공과 같은 물체는 완전 탄성체라고 한다.
예컨대 골프에서 드라이버는 헤드 재질 반발계수를 0.83으로 제한하고 있다. 완전 탄성체가 되면 변별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충돌 후 서로 달라붙는 물체는 반발계수가 0이라고 보면 된다.
당구에는 '큐'로 불리는 긴 막대가 도구로 활용된다. 큐 끝에는 '탭'이라는 소가죽을 덧댄다. 기능은 간단하다. 큐와 당구공 사이에 완충작용을 하고 미끄러짐을 방지해 준다.
이 효과를 높여주기 위해 가미되는 것이 초크다. 분가루인 이 초크는 탭과 당구공의 마찰을 키워 당구공 회전과 이동 방향을 조절하기 쉽게 해 준다.
◆ 수구와 적구 분리각은 항상 90도
= 당구가 이뤄지는 공간은 이차원 평면이다. 당구공이 완전 탄성체라고 가정한다면 수구와 적구가 분리되는 각도는 항상 90도를 이루게 된다.
예컨대 수구 운동방향과 30도 각도로 수구와 적구가 충돌했다고 치자.
이때 수구의 운동량 중 30도 방향의 성분을 적구에 준 셈이 되므로 수구는 처음 운동량 중 나머지 60도 방향의 운동량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적구는 운동방향과 30도 각도로 수구에서 전달받은 운동량을 갖고 움직인다.
물론 이 가정은 당구공이 완전 탄성체라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구는 완전 탄성 충돌에 '가까울' 뿐이다. 이 원칙이 성립하려면 당구공에 왁스를 듬뿍 발라 바닥천과 마찰력을 없애면 된다.
◆ 끌어치기와 밀어치기는
= 당구의 꽃으로 불리는 끌어치기 원리도 간단하다. 큐로 수구 중심 아래쪽을 가격하면 된다. 이때 공은 앞으로 전진하지만 회전방향은 역회전이다.
이 상태로 수구가 적구와 정면 충돌하게 되면 수구는 정지하고 적구는 앞으로 일단 이동해 간다. 그 정지 상태에서도 당구공은 계속 뒤로 돌고 있다.
운동이 멈춘 상태에서 공이 계속 뒤로 회전하게 되면 당구공과 바닥 사이의 미끄럼 마찰력 때문에 볼이 뒤로 끌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샷이 끌어치기다.
그 반대도 있다. 중심 윗부분을 가격하면 정면 충돌 후 수구는 적구가 나아간
방향을 쫓아 함께 전진이동하게 된다.
흔히 '오시'라고 하는 밀어치기 원리다.
지넷 리의 비기인 '찍어치기'에도 과학 원리가 숨어 있다.
찍어치기는 공의 초기 진행 방향을 큐 기울기와 '당점(당구공과 큐가 접촉하는 부분)'으로 가늠하게 되며 회전 방향은 당점으로 조절하게 된다.
당구공과 바닥 접점에 작용하는 힘은 미끄럼 마찰력이다. 이를 잘만 조절하면 쿠션에 맞지 않고도 장애물을 피해가는 예술 샷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