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문화유산 울림 제30차 대전문화유산답사
미24사단의 대전전투 현장을 찾아서
일시 : 2020년 6월 6일 (토) 09:00~15:00
코스 : 시청(09:00) - 보라매공원(9:30) – 가수원교(10:00) - 삼익아파트(10:50) - 서대전네거리(경유) - 점심(11:40) - 판암배수지(13:00) - 판암선로육교(14:00) - 시청(15:00)
강사 : 안여종 - (사)대전문화유산울림 대표
2020년 6월 6일 오전 9시 대전시청에서 문화유산울림의 2020년 두번째 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답사는 한국전쟁 70년을 기념하여 미24사단의 전투현장을 찾아가보았습니다. 70년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들에서 예전 사진과 자료들로 그 때를 상상해보는 새로운 경험의 답사였습니다. 어디서도 시도하지 않은 대전문화유산울림만의 특별한 답사 현장을 후기로 남겨봅니다.
먼저 시청에서 만난 15명의 답사자들은 대전전투 지도를 보며 간략한 이해부터 시작했습니다. 빨강선은 북한군, 파란점선은 미군입니다. 지금의 갑천대교와 가수원교 쪽으로 서쪽에서 북한군이 대전시가지로 들어옵니다. 그에 맞서 미군은 갑천 우안 산쪽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했지만 역부족이라 보문산 뒤쪽을 돌아 대전역 앞쪽에서 동쪽으로 후퇴합니다. 대전역 근처에서 세가지로 뻗은 점선이 후퇴로인데요 가운데 점선, 옥천으로 가는 길이 계획된 길이고 나머지는 대전지리를 잘 몰랐던 미군이 잘못 든 길입니다. 가장 아래 금산방향은 행방불명되었던 딘 소장이 향했던 길이라고 합니다.
처음 만나 인사나누는 모습입니다.
금세 학구적으로 변해 안대표님의 이야기들 들으며 지도와 핸드폰으로 공부하고 계십니다. 오늘 답사에 참여하신 분들은 대전의 여러모습에 관심이 많은 열성파들이셨습니다.
대전전투의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출발하기전, 이왕 시청에 왔으니 이것만은 보고가자 첫번째!
장암 지헌영 선생님의 '아 대전아' 시비입니다. 원래는 장편서사시인데 일부만 새겨져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대전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봅니다.
그리고 시청에 왔으니 이것만은 보고가자 두번째!
도로원표 표지석입니다. 도로원표는 각 도시간 도시거리의 기준이 되는 지점을 말합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가 몇 km다 할 때 이 도로원표가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대전의 진짜 도로원표는 여기가 아닙니다. 시청의 도로원표 표지석은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상징적으로 만들어놓은 것이고 진짜 도로원표는 여기서 3.2km떨어진 서대전 네거리입니다. 차들이 교차하는 네거리 바닥에 도로원표 표시가 있습니다.
이렇게 대전시청에서 알차게 공부한 뒤에 근처에 있는 보라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동은 안여종 대표님의 차 한 대로 부족하여 김연실 이사님이 또 한 대의 차량으로 이동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보라매공원 대전지구전투 호국영웅비입니다. 대전전투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군참전용사 818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16년 건립하였습니다. 보라매 공원을 선택한 것은 이 장소의 역사성 때문일 것입니다.
아래는 현재 보라매공원과 그 일대에 있었던 대전비행장의 한국전쟁 당시의 사진입니다. 화면 위쪽 좌우로 흐르는 강이 유등천이고 거기를 건너는 길이 서대전 사거리쪽으로 가는 계룡로입니다. 다리는 현재의 수침교이구요. 하얗게 보이는 활주로의 위쪽 끝에 보이는 언덕이 지금의 남선공원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예전 항공사진입니다.
보라매공원을 떠나 다음으로 간 곳은 가수원교입니다. 갑천대교와 함께 미군과 북한군이 격전을 벌였던 장소입니다.
지금의 정림동 모양은 과거와 많이 다릅니다. 왼쪽 사진의 초록색 동그라미쪽을 보면 지금보다 강이 많이 휘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휘어진 강을 직선화하고 모래사장을 메워 지금의 정림동이 생긴 것이 참 신기합니다.
수없이 많이 지나다녔지만 가수원교 다리 아래는 처음 와 봅니다. 여름의 강가는 생명력 가득한 들풀로 가득합니다.
덜컹덜컹 소리내며 요란하게 지나가는 차들 아래를 걸으면 옛 가수원다리가 나옵니다. 이름은 오작교라고도 하고 장터다리라고도 합니다. 1934년 만들어졌고 1992년 현재의 가수원교가 신설되면서 보행통로로만 이용되고 있습니다.
구 가수원교을 건너가봅니다. 새다리를 만들고나서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철거요구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2013년 깨끗하게리모델링을 하여 여전히 가수원동과 정림동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옆으로는 호남선 철교가 있어 기차도 지나다닙니다. 이 기차다리는 1914년 호남선 전면개통에 2년 앞서 1912년 만들어진 다리입니다. 무려108년 된 다리네요.
왼쪽이 현재의 가수원교, 가운데가 옛 가수원교, 오른쪽은 호남선 철교입니다. 6.25전쟁 당시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 그리고 건너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북한군과 미군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쪽에 미군들이, 강건너 가수원동 쪽에 북한군이 서로 포와 총을 쏘면서 격전을 벌였을 것을 상상해봅니다.
아래 사진은 그 상상의 증거로, 안여종 대표님이 도솔산에서 직접 발굴한 탄두입니다.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군대주둔지였던 문화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중 삼익아파트에 가보았는데 이곳은 아래 신문기사를 읽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 대전의 보병 80연대 제3대대 병영이 있었던 자리는 지금의 서대전 사거리 삼익아파트 부지 일대이다. 1915년 일본 제국의회에서 조선에 주둔시킬 2개 사단의 병력 증설안이 통과되자, 조선각지에서는 치열한 유치전이 벌어졌다. 대전의 일본인들도 곧바로 보병 80연대를 유치하기 위한 연대설치위원회를 결성하고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대전의 유치위원회는 바로 거금 6천원을 모금하였으며, 그해 8월 위원 2명을 동경에 체류시켜 참모본부와 육군성에 로비를 벌이게 할 만큼 대전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대전이 아닌 대구에 보병 80연대가 들어오고, 대전에는 무마차원에서 1916년 4월 1개 대대, 즉 3대대만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사실이 발표되자 유치위원들은 선정결과를 뒤집기위해 대전좌에서 시민궐기대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모인 청중의 수는 약 9백여명에 달했다.
- 2012년 6월 23일 충청투데이 기사"
보병 80연대 3대대 정문
보문산 쪽에서 바라본 병영의 모습
아래 사진 부터는 안여종 대표님이 참가자들과 공유했던 6.25전쟁 당시의 대전시가지 사진들입니다.
이런 과거 사진들을 어디서 찍었는지는 주변에 배경으로 찍힌 산들을 보고 위치를 추측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불타고 있는 시가지 사진은 어디서 찍은 사진일까. 그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바로 판암배수지로 올라가는 언덕입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산 아래로 철길이 돌아가며 놓여 있고 저멀리 아파트 때문에 시야가 막혔지만 우산봉과 흔적골산이 있어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니 참 대단합니다.
사진의 위치를 찾기위해 왔지만 판암배수지에 온 김에 보고 가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판암배수지가 대전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 유래비를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유래비 뒤쪽으로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벚나무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같은 장소의 4월초 풍경입니다. 내년봄에 벚꽃 필 때 가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코스는 원래 세천터널이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진 관계로 판암선로육교로 목적지를 변경했습니다. 대전도시철도공사 판암기지를 조금 지난 지점에 철로 위를 지나는 육교가 있습니다. 여기서 볼 것은 김재현기관사 순직비입니다. 철도상행선과 하행선 사이에 세워진 관계로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직접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는 안타까운 비석인데 판암선로육교 위에서 멀리서나마 사진이 아닌 실제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사진에 보이는 산부터 세천터널부근의 산속에 북한군이 매복하고 대전을 빠져나가는 미군들을 기다렸다가 공격해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대전을 지키지못하고 후퇴하였지만 후방의 부대들이 전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3일의 시간을 벌어준 대전전투는 완전히 패배한 전투는 아니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비석이 김재현기관사 순직비입니다.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카메라 성능이 이 정도가 한계였습니다.ㅜㅜ
직접 가서 보면 아래와 같이 생겼다고 합니다. 김재현 기관사와 현재영, 황남호 두명의 부기관사는 한국전쟁 당시 군수물자 수송과 실종된 딘 소장을 찾기위해 대전역으로 갔다가 순직하여 미군 국방장관으로부터 특별민간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대전역 동광장에는 이 세분의 철도인의 동상이 있어서 철도인들의 활약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철도인들의 활약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의 사망일이 1950년 7월 19일로 되어있는데 딘 소장이 실종된 날은 7월 20일이라는 점에서 과연 딘 소장 구출작전이 실제 존재했느냐라는 의문을 갖게됩니다. 딘 소장의 회고록에도 등장하지 않는데다 한국전쟁 당시 조금이라도 자신을 도와줬던 이들에게 보답을 했는데 거기에도 기관사들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의문을 깊어지게 합니다. 세 철도인들이 전시상황에 목숨을 걸고 대전역으로 가서 군수물자들을 옮겨온 것만으로도 영웅적인 업적이지만 딘 소장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갔느냐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반대쪽 세천터널로 가는 길은 다음을 기약하며 답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대전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바쳤던 미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번 답사는 대전에 사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새겨볼 만한 주제라 생각합니다. 6월 현충일을 맞아 뜻깊은 답사를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6월 초임에도 후끈 더워진 날씨에 고생하신 참가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첫댓글 자료의 상당부분은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임재근 교육팀장님이 공유해주신 자료입니다. 특히 감사드립니다.
대전, 평화로 걷다 - 가이드맵
https://blog.naver.com/seocheon/221773789808
답사후기를 읽으니
답사일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군요~
대전전투가 갖는 역사적의의는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다는거지요?
임지선간사님,
답사후기 멋져요!!
감사합니다.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 봅니다.
임간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간략히 잘 정리해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