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여러분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책임지는 ‘언소주 사설탐정’입니다.
오늘 함께 들여다볼 사건은 2026년 10월 9일 자 조선일보 사설, <[사설] '無탄소 녹색 대전환' 선언, 필요한 전기는 어디서 나오나>입니다. 정부가 향후 10년간 1,000조 원을 투입해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산업 전반을 무탄소 전기로 바꾸겠다는 ‘한국형 녹색 대전환(K-GX)’ 전략을 발표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글이죠.
얼핏 보면 전력 수급을 걱정하는 아주 우국충정 어린 글 같습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이 사설의 행간에는 아주 익숙하고 낡은 프레임이 숨어 있습니다. 자, 돋보기를 들고 하나씩 파헤쳐 볼까요?
1. 현상과 본질: 껍데기는 ‘전력 수급 우려’, 본질은 ‘기승전-원전’
이 사설이 말하는 현상(Fact)은 단순합니다. "전기차, AI,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기가 엄청나게 필요해질 텐데, 정부 대책만으로는 전기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타당한 걱정입니다.
그런데 이 사설이 진짜 유도하려는 본질(Intent)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러니까 신규 원전을 팍팍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설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국토 한계와 효율 문제로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깎아내리면서, "현실적인 무탄소 전원으로는 원전이 가장 유력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심지어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두고 "공론화를 핑계 삼아 결정을 미루는 거꾸로 행정"이라고 비난합니다. 결국 정부의 녹색 대전환 정책을 때리는 진짜 이유는 '원전 건설을 서두르지 않아서'인 셈이죠. 기승전-원전, 이건 좀 너무 투명하지 않습니까?
2. 논리적 허점 타격: 손님은 '유기농'을 찾는데, 농장주는 '공장식'만 고집합니까?
이 사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논리적 허점은 바로 글로벌 경제의 핵심 키워드인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축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설은 "미국과 EU 등 주요국들이 최근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발 빠르게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은... 자국 일자리와 산업 경쟁력을 지키려는 냉혹한 현실 판단 때문"이라며 우리만 명분에 사로잡혀 질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은 부품을 납품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너희 제품, 재생에너지로 만든 거 아니면 안 사!"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탄소 무역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죠. 원전은 안타깝게도 이 RE100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겁니다. 물건을 사주는 글로벌 큰손 고객들이 "우리는 유기농(재생에너지)으로 키운 사과만 삽니다"라고 선언했는데, 동네 유지라는 사람이 나서서 "유기농은 비싸고 땅도 좁으니, 그냥 농약 치고 비료 팍팍 줘서(원전) 크게 키우는 게 최고야. 남들도 다 규제 푼대!"라고 우기는 격입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서, RE100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원전만능주의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진짜 리스크 아닐까요?
3. 역사/사회적 맥락: 민주적 절차가 '핑계'라는 위험한 시선
우리가 하나 더 맥락을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사설은 원전 건설을 위한 '공론화'를 두고 핑계라며 조롱합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한번 지어지면 수십 년간 가동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는 아직 우리 세대가 완벽히 처리할 기술조차 확보하지 못한 미완의 과제입니다.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죠.
이런 엄청난 국책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묻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공론화' 과정을 거추장스러운 장해물이나 시간 낭비로 치부하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개발 논리입니다. "탈원전 정책의 난맥상을 되풀이하지 말라"며 과거 정부를 소환해 갈라치기를 시도하는 것도 기득권 언론 특유의 '낙인찍기' 수법이죠.
탐정의 결론
조선일보의 이번 사설은 겉으로는 '대한민국의 산업과 미래'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글로벌 스탠다드(RE100)를 무시한 채 원자력 발전 확대라는 특정 산업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고 있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전기는 부족하면 안 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수출 국가인 한국에서 '어떤 전기'를 써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전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를 생략한 채 "무조건 원전부터 짓고 보자"는 주장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언론의 사설이라면, 원전의 경제성 뒤에 숨겨진 폐기물 처리 비용과 재생에너지 전환 지체로 인해 우리 수출 기업들이 입을 타격까지 종합적으로 짚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 기사가 씌워주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그들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늘 맥락을 의심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