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지식의 원전 9. 붉은생쥐와 들귀뚜라미 길버트 화이트
(참고 사항) 파란 글씨는 편저자가 쓴 글이고, 아래 검정 글씨는 원저자의 글이다.
길버트 화이트(1720~1793)는 최초의 영국인 자연사학자였다. 시골 교구의 목사였던 그는 사실상 그의 전 생애를 셀본의 햄프셔 마을에서 지냈는데, 그 지역의 동물과 식물에 관해 두 명의 동료 자연사학자에게 보낸 그의 편지들이 1788년 『셀본의 자연사The Natural History of Selborne』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발견한 영국의 고유 종자 중에는 붉은생쥐(혹은 추수쥐)가 있다.
1767년 11월 4일
제가 지난번 편지에서 얘기했던 어린 생쥐 한 마리와 새끼를 밴 암놈을 잡아 브렌디에 저장했습니다. 색깔이나 모양, 크기 그리고 집 짓는 양태를 보건대, 이 생쥐들은 아직까지 보고된 적이 없는 종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생쥐는 레이Ray가 발견한 무스 도메스티쿠스 메디우스mus domesticus medius보다 훨씬 작고 날씬하며 다람쥐나 산 쥐의 색깔을 하고 있습니다. 배는 흰색이고 측면에 등과 배를 구분하는 선이 있습니다. 이놈들은 사람이 사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며, 건초더미나 헛간에 들어가 살다가 추수철에는 옥수수 줄기나 엉겅퀴의 높은 곳에 둥지를 짓습니다. 이놈들은 짚으로 만든 조그맣고 동그란 둥지에 한 번에 여덟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습니다.
이번 가을에 잡은 쥐의 둥지는 짚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크리켓 볼 크기의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입구가 교묘하게 막혀져 있어서 어디가 입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둥지는 아주 단단하고 치밀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탁자에서 굴려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털도 없고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여덟 마리의 쥐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둥지가 이렇게 꼭 차 있는데도 어떻게 어미가 들어가서 새끼를 낳고 모두에게 젖을 물렸을까요? 아마도 어미는 다른 곳을 열고 새끼를 낳거나 젖을 먹인 뒤 다시 그 입구를 닫아놓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미가 새끼를 배서 매일 커지는 배를 가지고는 둥지에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겁니다. 들판의 엉겅퀴 꼭대기에서 발견된 이 둥지는 번식을 위한 동물적 본능의 멋진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략)
1768년 1월 22일
붉은 생쥐에 관해 추가로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그놈들은 번식을 위해서 옥수수 줄기 위에 둥지를 만들지만, 겨울철에는 땅속 깊이 굴을 파서 풀을 깔고 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추수철에는 다시 옥수수 줄기더미에 모여 사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저의 이웃이 귀리 짚더미를 수거하다가 그 밑에 모여 있던 100마리의 생쥐를 잡았다고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생쥐들은 코끝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2와 1/4인치(1인치는 약 2.5센티미터-역자 주). 그리고 꼬리길이가 겨우 2인치밖에 안 됩니다. 그중 두 놈은 반 페니짜리 동전무게로 약 1/3온스 정도입니다. 저는 이놈들이 영국의 네발 달린 동물 중에서 가장 작은 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 자란 무스메디우스 도메스키쿠스의 무게는 1온스 정도이고, 코끝에서 몸통까지의 길이는 4와 1/4인치로 여기서 말하는 생쥐들보다 대체로 6배 정도 큽니다.
셀본, 1774년 9월 2일
(전략) 제 이웃이 짚더미를 수거하다가 보았다는데, 그 집 개가 보통의 쥐를 잡으면 먹지 않지만, 붉은생쥐를 잡으면 잘 먹는다고 합니다. 그집 고양이는 반대로 붉은 생쥐는 먹지 않고 보통의 쥐만 먹는답니다. (중략)
이 마을의 뒤편에는 숏 리스라고 불리는 유명한 목초지가 있습니다. 암석이 많은 토양으로 되어 있는 이 목초지는 금작화(金雀花)가 곳곳에 흩어져 피어 있고, 오후의 햇살이 잘 드는 곳입니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들귀뜨라미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한여름의 경괘한 들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매료된 저는 그 생태를 관찰하기 위해 자주 이 목초지에 가곤 합니다. 들귀뚜라미들은 수줍고 겁이 많아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놈들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느껴지면, 울던 것을 즉시 멈추고 구멍 속으로 몸을 숨긴 채 위험한 징후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오질 않습니다.
들귀뚜라미를 잡기 위해 처음에는 삽으로 그 구멍을 파보기도 하였지만 구멍이 큰 바위의 뒤까지 뻗어 있어서 끝까지 팔 수가 없거나 땅을 파다가 잘못해서 불쌍한 귀뚜라미를 죽이는 일이 많아 대부분의 경우 성공하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죽은 귀뚜라미 한 놈에게서 많은 양의 알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 그 알은 가늘고 길며 노란색을 띤 단단한 껍질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 일로 우리는 들귀뚜라미 암놈과 수놈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놈은 반짝이는 검은색을 띠고 어깨 주위에 금색 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암놈은 더 거무스름한 색깔을 하고 있고, 배가 널찍하며 칼처럼 생긴 긴꼬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건 아마도 틈새나 안전한 곳에 알을 낳기 위한 것 같습니다.
삽으로 구멍을 파는 것처럼 거칠고 난폭한 방법은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좀더 온건한 방법으로 귀뚜라미를 상처 내지 않고 잡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휘기 쉬운 풀줄기를 구멍 속으로 살살 밀어 넣으면 바닥까지 휘어져 들어가 그 속에 숨어 있는 들귀뚜라미를 끄집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 곤충들은 긴 뒷다리와 메뚜기처럼 뛸 수 있는 강인한 넓적다리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은신처에서 나올 때 거의 움직임이 없이 느릿느릿 기어 나오기 때문에 잡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또 멋진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도 웬만한 경우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수놈들은 라이벌을 물리치기 위해서만 날개와 날개를 심하게 비벼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데, 이는 많은 동물들이 새끼를 낳을 때 힘찬 소리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들귀뚜라미들은 수놈이나 암놈 모두 혼자서 사는 외로운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교미를 할 때는 암수가 만나게 될 텐데, 이때는 날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수놈 두 마리를 같이 살게 하기 위해 돌벽 사이의 틈에 넣으니까, 그 두 놈은 매우 심하게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놈들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게 되어 매우 고민스러워 보였는데, 결국 그 틈새를 먼저 차지하고 있던 놈이 침입해 들어오는 놈을 날카로운 어금니로 공격했습니다. 땅강아지처럼 땅을 팔 수 있는 앞발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들귀뚜라미는 바닷가재의 집게발처럼 이빨이 나있는 강한 턱으로 은신처를 만듭니다.
들귀뚜라미가 이런 공격무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손으로 잡았을 때 전혀 반항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들귀뚜라미들은 그들의 은신처(구멍) 앞에서 자라는 풀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는 평평해진 그 자리에 똥을 눕니다. 그들은 낮 시간에는 결코 집에서 2~3인치 이상 멀리 이동하지 않습니다.
5월 중순에서 7월 중순까지는 집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울어대며 한참 더운 계절에는 메아리를 만들 정도로 크게 울어대는데, 조용한 밤에는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초여름에는 그들의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지만, 한여름이 되면서 매우 커졌다가 점차로 그 소리가 작아서 마침내는 사라집니다.
달콤하고 운율이 있는 소리가 항상 듣기 좋은 것만은 아니며, 거친 소리라고 항상 듣기 싫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소리의 음색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어떤 이미지에 의해서 그 소리에 매료되거나 혹은 그 소리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들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비록 날카로운 고음이긴 하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여름철 신록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득 심어주는 훌륭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3월 10일 경, 들귀뚜라미는 알을 깨고 나와 번데기 상태로 봄을 지냅니다. 날개의 흔적만이 허물 아래에 보이는데, 귀뚜라미는 이 허물을 벗고 성체가 됩니다(우리는 4월에 허물 벗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허물은 그들의 은신처 입구에 놓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난해의 들귀뚜라미 성체 모두가 겨울을 넘겨 살아남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8월에는 귀뚜라미가 살던 구멍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하여, 다음 해 봄이 될 때까지 들귀뚜라미를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몇 해 전 여름, 나는 우리 마당의 테라스 잔디에 구멍을 뚫어서 들귀뚜라미의 은신처를 옮겨놓으려고 하였습니다. 얼마간은 들귀뚜라미들이 여기에 머물면서 지냈지만 곧 멀리로 흩어져버려서 나는 매일 아침 먼 거리에서 우는 들귀뚜라미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들뒤뚜라미들이 날개를 이용하여 원래 살던 곳으로 날아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들귀뚜라미 중 한 마리를 종이로 만든 우리 속에 가두어 태양 빛 아래 놓아두었습니다. 그 귀뚜라미에게 물 적신 풀을 주었더니 이를 잘 먹고 자라서 같은 방에 있는 내가 진력이 날 정도로 큰 소리로 울어댔습니다. 만약 마른 풀을 주었다면 그 들귀뚜라미는 죽었을 것입니다.
화이트는 20세기 곤충학분야에서도 여전히 들귀뚜라미의 권위자로 불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바바리아의 전쟁포로였던 퍼천R. D. Purchon은 들귀뚜라미의 생태에 관한 화이트의 관찰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를 하였다. 퍼천은 들귀뚜라미의 성체는 8월에 죽지만, 어린 들귀뚜라미는 늦가을까지 활동하고,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나는 것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