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2번째 시간으로서 “기다림의 믿음” 待つという信仰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도 앞과 뒤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로마서 2장 1절~3절까지를 먼저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2장 1절~3절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1.ですから、すべて他人をさばく者よ、あなたに弁解の余地はありません。あなたは他人をさばくことで、自分自身
にさばきを下しています。さばくあなたが同じことを行っているからです。
2.そのようなことを行う者たちの上に、真理に基づいて神のさばきが下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3.そのようなことを行う者たちをさばきながら、同じことを行っている者よ、あなたは神のさばきを免れるとでも思っているのですか。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줄 우리가 아노라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여기서 1절에 보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도 네가 같은 일을 행한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한다면, 우리 주변에 어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보고, 아니, 이런 나쁜 사람이
다 있나! 하고 혼을 냈습니다.
이것만 본다면 전혀 이상한 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씀하고 계신 것은 그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 앞서 살펴보았던 로마서 1장
28절~32절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만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과 심판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떤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잘못과 주관적인
잘못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에 있어서도 합법적인 심판과 불법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먼저 잘못에 대해서만 본다면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때렸어요. 아니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어요. 이것은
객관적인 잘못이지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실만 본다면 이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법을 어긴 범죄입니다. 명백한
잘못이지요.
그러나 잘못에는 객관적인 잘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관적인 잘못도 있어요. 이는 쉽게 말해서, 무슨 법을 어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상당히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뭐냐
하면 상대방은 잘못이 없는데 내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잘못이 없는 사람을 내 생각대로 미워하거나 비판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무엇입니까. 상대방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데, 괜히 나를 무시했다는 거예요. 이런 경우가 드문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뉴스를 조금 살펴보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다툼이 일어나게 되기도 하고, 나중에는 끔찍한 사건까지도
발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에 대해서도 합법적인 심판과 불법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주민이 경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 흥미를 가졌어요.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고는 마침내 범인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그 범인이 집에 있을 때를 노려서 쳐들어가고는 수갑을 채워서 경찰서에 데려갔습니다. 아니면 더 나아가서, 이
사람은 자기가 생각했을 때 징역 5년은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범인을 잡고 난 다음에는 자기 집에 감옥을 만들어서 5년
동안 거기 가둬놓았어요.
여러분, 이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그 범인이 진짜 범인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사람의 죄가 징역 5년에
해당하는 범죄라 하더라도, 아무나 그렇게 붙잡아서 가둬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는 불법적인 심판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더 큰 범죄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수사나 체포라고 하는 과정은 경찰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 사람에 대한 판결도 합법적인 재판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이는 많이 배운 사람이건 아니건, 구분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얼마나 상대방을 잘 비판하고 비난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정말로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아니에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한 사람을 우리가 평소에 잘 아는 우리 이웃을 한 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아, 그렇다고 여기 있는 분들 중에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안 계신 분들 중에서 한 분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종이에
적어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느 쪽이 많겠습니까.
물론 여러분처럼 믿음이 좋으신 분들께서는 당연히 좋은 점을 많이 적어나가시겠지만, 일반 사람들 같은 경우를 보면 상대방에 대한 나쁜
점이 더 많이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예전에 어느 텔레비전을 보니까 초등학교에 가서 저학년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저 친구에 대해서 안 좋은 점을 한 번 말해보세요……이렇게 질문을 하니까 아주 와글와글 쏟아져 나옵니다. 쟤는
이래서 안 좋고요. 저래서 저런 게 안 좋고요……그래서 그럼 좋은 점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만 어땠겠습니까. 억지로 한 가지
두 가지만 나오고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애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뉴스나 페이스북 같은 데에 보더러도 누구를 헐뜯고 누구를 비난하는
말들이나 글들이 얼마나 넘쳐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요? 로마서 2장 1절 후반부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あなたは他人をさばくことで、自分自身にさばきを下しています。さばくあなたが同じことを行っているからです。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네가 남을 비판하고도 네가 똑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그것은 잘못이라고 지적을 했다면 그 지적을 한 사람은 그런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3절~5절
“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あなたは、兄弟の目にあるちりは見えるのに、自分の目にある梁には、なぜ気がつかないのですか。
兄弟に向かって、『あなたの目からちりを取り除かせてください』と、どうして言うのですか。見なさい。自分の目には梁があるではありませんか。
偽善者よ、まず自分の目から梁を取り除きなさい。そうすれば、はっきり見えるようになって、兄弟の目からちりを取り除くことができます。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여기서 들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큰 기둥입니다. 그리고 티는 작은 먼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이게 잘못이다 저게 잘못이다 하고 지적을 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네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에 비하면 아주 작은
먼지 정도밖에 되지 않아. 네 잘못은 거기에 비하면 티끌이 아니라 훨씬 큰 기둥과도 같은 거야.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말하자면 착한 척 하는 사람, 믿음이 좋은 척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는 먼저 너에게 있는 큰 기둥만한 잘못을 제거한 다음에 네 형제들의 잘못을 지적하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 이웃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 먼저 제게 있는 큰 잘못들을 빼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 이웃들의
잘못을 지적하면 되겠지요?
여러분 이런 생각 한 번 해보셨습니까.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언제 해보느냐 하면 바로 기도할 때 해보는 것이지요. 기도를 드릴
때 이것을 주시옵소서, 저것을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한 번 이렇게 기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제 이웃들의 잘못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우선 제 눈에 있는 들보를 좀 빼보려고 합니다. 제게 무슨 들보가 있는지 한 번
알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드렸는데도 여전히 내 잘못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이웃들에 대한 잘못만이 보이나요? 그것은 응답을 제대로 받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응답을 받으면 어떻게 될 것 같으십니까. 예, 조금 있으면 얼굴이 화끈화끈 거립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서요, 너무나도 미안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잘했다고 이웃을 비판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어디가 잘났다고 무슨 자격으로 이웃을 지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진정으로 우리 눈에서 들보가 빠지는 순간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에서 나오는 선악과 이야기를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게 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어기게 하기 위해서 뱀이라고도 하는 이 마귀 사탄은 하와를 어떻게 유혹했습니까.
창세기 3장 5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それを食べるそのとき、目が開かれて、あなたがたが神のようになって善悪を知る者となることを、神は知っているのです。」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진실과 거짓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신앙적으로 보았을 때 진실과
거짓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으면 진실이고 하나님 뜻에 맞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하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마귀 사탄이 하는 말은 몇 프로가 진실이고 몇 프로가 거짓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마귀 사탄이 하는 말은 백 프로가 거짓입니다. 아무리 그 중에서 1프로나 2프로가 진실처럼
들린다 하더라도, 그 중의 일부가 하나님 뜻에 맞는 것처럼 들린다 하더라도, 아니, 하물며 100프로가 하나님 뜻에 맞는 것처럼
들린다 하더라도 마귀 사탄이 하는 말은 100프로 거짓입니다. 100프로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 창세기 3장 5절에 보면 마귀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기 위해 말한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눈이 밝아진다는 것, 둘째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 셋째는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중에서 하나라도 맞은 것이 있었나요? 아니요. 없었습니다. 첫째로 눈이 밝아졌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의 눈은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정도로 어두워졌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같이 되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고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모두 빼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셋째로 선악을 알게 되었나요?
아니요. 선악을 알기는커녕 사람의 눈은 온통 들보로 가득 차게 되어, 아무런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좋고 나쁨을 엉터리로 판단하게
되어서 결국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요즘도 가끔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가 위험운전이 있습니다.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내 차 앞에 끼어들어와서 급정거를 하거나 하는 대단히
위험한 운전이지요.
이런 운전을 저지르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그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방 차가 먼저 끼어들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화가
나서, 그렇게 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말하자면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고 자기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그런 짓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들은 범죄자들을 심판한 정의의 화신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전문가는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정의의 화신도 아니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는 이미 정의가 아니라
범죄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을 우리는 저지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충고>라는 이름으로 이웃을 비판하고 이웃을 비난하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 스스로도 똑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에게 이웃의 티가 보입니까. 그것은 우리 눈에 들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웃의 그 잘못이 우리에게 보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도 똑 같은 잘못을 저질러 왔기 때문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처럼 안경 끼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세상이 좀 지저분하게 보이십니까. 세상 탓을 하기 자신의 안경을 좀 닦아보십시오. 운전을
하시는데 바깥이 지저분해 보이십니까. 세상 탓을 하기 전에 차 유리를 좀 닦아보십시오.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2장 3절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3.そのようなことを行う者たちをさばきながら、同じことを行っている者よ、あなたは神のさばきを免れるとでも思っているのですか。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성경에 의하면 우리의 비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이웃을 탓하기 전에 세상 탓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 마음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이웃의 눈에 티가 보이는 이유,
작은 잘못이 보이는 이유는, 바로 내 눈 안에 큰 들보가 들어있기 때문이요, 내 마음 안에 더 큰 잘못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로마서 2장 4절~5절까지를 보시겠습니다.
2장 4절~5절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4.それとも、神のいつくしみ深さがあなたを悔い改めに導くことも知らないで、その豊かないつくしみと忍耐と寛容を軽んじているのですか。
5.あなたは、頑なで悔い改める心がないために、神の正しいさばきが現れる御怒りの日の怒りを、自分のために蓄えています。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5.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자, 우리 한 번 쉽게 생각해봅시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사람을 미워하신 적이 있습니까. 정말로 정말로 어떤 미워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사람이에요.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저주가 내려서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그런 사람이 없는 게 가장 좋겠지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세상에 나쁜 사람들은 많고, 천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내버려둬요. 좀 나쁜 짓을 저지르면 빨리빨리 벌을 받고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죄도 짓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 같은데도, 하나님은 가끔 좀 일을 게을리하시는 것처럼 보여요.
어디 그것 뿐이에요? 내가 좀 돈이 필요하다고 기도를 드리면 그때그때 입금시켜주면 얼마나 좋아요? 내가 무슨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 지금 내가 이게 필요한데, 내가 이렇게 평소에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기도 응답을 빨리빨리
들어주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아, 정말 하나님 요즘 좀 저한테 무관심한 것 같아요……이렇게 생각되는 일도 솔직히 있을 것입니다.
잠시 사무엘상 13장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로 공격을 해왔습니다. 이제 여기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도 출격하려고 합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싸우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더니 전쟁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무엘상 13장 8절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サウルは、サムエルがいることになっている例祭まで、七日間待ったが、サムエルはギルガルに来
なかった。それで、兵たちはサウルから離れて散って行こうとした。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이 문맥상으로 보면, 이번에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기로 하고, 그리고 사무엘이 언제까지 올 테니까 기다리십시오.
하고 사울 왕에게 말을 한 것으로 짐작됩니다만,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무엘이 안 나타납니다.
사무엘이 와서 빨리 제사를 드려야 전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안 오니까 전쟁을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지금 저기 보면 수많은 적군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전쟁을 시작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자, 그러면 이 사울 왕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는 간단합니다.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어떻습니까. 지금 빨리 제사를 시작하고 전쟁을
시작해도 부족한데,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되도록 사무엘은 안 나타나고, 기다리던 병사들은 사기가 점점 떨어져가고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사무엘이 도착하기 전에 대충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고 전쟁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이고 그런데 웬일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딱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두고 사무엘이 약속을 여기고
지각을 한 것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오겠다고 사무엘은 말하고 그리고 그 기한이 차기 전에 사무엘이 도착했는데, 사울은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무엘은 말합니다.
사무엘상 13장 13절~14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サムエルはサウルに言った。「愚かなことをしたものだ。あなたは、あなたの神、主が命じた命令を守らなかった。主は今、イスラエルにあなたの王国を永遠に確立されたであろうに。
しかし、今や、あなたの王国は立
たない。主はご自分の心にかなう人を求め、主はその人をご自分の民の君主に任命しておられる。主があなたに命じられたことを、あなたが守らなかったからだ。」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왕이여,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렸더라면 왕위가 굳건해졌을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주셨다. 이렇게 무서운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고
맙니까.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사울은 나중에 전쟁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왕위는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느려 보입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神の愚かさは人よりも賢く、神の弱さは人よりも強いからです。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아무리 잘난 척 해 봤자, 아무리 똑똑한 척 해 봤자, 우리는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강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主を恐れることは知恵の初め、聖なる方を知ることは悟ることである。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명철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쁜 사람에게 대한 심판이 늦는다고 한탄하시겠습니까. 나쁜 사람에 대한 심판이,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심판이 그때그때 순식간에 내려졌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제가 한 가지 장담을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 세상에
살아남아있을 사람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지옥 불에 떨어져서 지금 이 순간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시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 로마서 2장 4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려주셨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순간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에 비하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려서 뭘 해? 차라리 내가 내 힘으로 하고 말지……이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내 판단이 훨씬 더 옳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이웃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에 급급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기다림으로 인해서 내가 구원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감사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요, 이 기다림으로 인해서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닌, 이 판단에 대한 모든 권한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우리 믿음의 고백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판단을 서두르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판단하면 더 큰 죄를 범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는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내가 하겠다는 교만이 될 수가 있습니다.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부끄럽고 죄가 많은 나를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고,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주님 앞에서 낮아져서 진정으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믿음을
가짐으로 인해서 주님께 끝까지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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