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재산을 장남이 혼자 꿀꺽했거나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서 생전에 자기 이름으로 다 빼돌린 경우도 상속재산 분할심판 청구 소송을 통해서 자신의 몫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후손 간에 법정 다툼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이삭의 아들들 곧 야곱과 에서 사이에는 이런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지만, 어디에도 에서가 야곱을 섬겼다는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야곱은 그 형에게 많은 예물을 주고 “내 주여!”라고 호칭하며 그를 존대하지 않았는가?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로 두 부족 간에 충돌이나 다툼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여기 36장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창 36: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창 36: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야곱은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그의 형, 에서에게 아버지의 유산이나 그 일부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부분 재산은 에서의 몫으로 떨어졌고 야곱에게는 오직 약속의 땅만 주어졌다. 유목민들에게 굳이 자신의 부동산이라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기거하며 살아왔던 그 약속의 땅을 야곱이 차지하고 에서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세일로 거처를 옮겼다.
에서는 재산을 택했고 야곱은 약속을 택했다. 에서는 현실을 선택했고 야곱은 미래를 선택했다. 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야곱은 보이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오래전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 장자권을 야곱에게 양보하고 한 그릇 팥죽을 택했던 것처럼 에서는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차지하는 대신 약속의 땅을 내어 주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 사람들인가?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무엇을 더 원할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영적 유산을 소중하게 여기고 약속을 선택할까 아니면 부모님이 남긴 재산싸움으로 이전 투구할까?
영적 유산과 현실적인 유산을 저울에 올려놓고 어디에 가치를 더 먹이겠는가? 에서는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그리고 수많은 족장의 조상이 되었다. 그는 한 번도 예언처럼 그의 동생을 섬기거나 야곱이 형, 에서보다 더 부강했다고 성경은 적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야곱이 그 조상들의 신앙과 영적인 유산을 차지했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가나안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조상으로 남았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얻은 최대의 유산이었고 허락된 축복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않게 하소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보는 눈과 영적 사물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게 하소서. 오늘도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소망이 더 깊어지는 하루를 살게 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