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사용한 문자 중, 훈민정음처럼 창제원리가 잘 기록으로 남은 문자도 사실상 없다. 수메르의 쐐기문자나 이집트의 상형문자, 중국의 한자, 산스크리트문자, 페니키아 문자, 알파벳, 히브리 문자 등 인류역사상 수많은 문자가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해가며 지금에 도달했지만, 한글처럼 창제 당시에 제자원리와 용법, 용례 등을 자세히 적어 기록으로 남긴 문자가 역사상 또 있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그 기원에 대해 다양한 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도문자 기원설, 티벳문자 기원설, 발음기관 상형설 등이 이미 조선시대 유학자들로부터 나왔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파스파 문자 기원설 역시, 서양 학자들이 들고 나오기도 까마득히 전에 벌써 이익의 성호사설, 유희의 언문지 등에 이미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명백한 근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1940년대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이후에도 한글의 기원을 밝힌다느니 하는 설들이 잠깐씩 나왔다가 잊혀지고는 했다. 논문이든 수필이든, 이런 주장들은 예외 없이 다수 학자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유럽 학계에 한글이 처음 알려진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는데, 당시는 문자의 기원과 문자 상호간의 역사적 연구가 한창이던 시기다. 자연스레 한글 역시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한글에 대한 연구결과가 꽤나 많이 등장했다. 그리고 여러 학자들이 한글의 기원이 되는 문자를 각자 추정했는데, 여진 문자, 산스크리트 문자, 팔리 문자, 티벳 문자,
파스파 문자(사실 원 발음은 팍바에 가까우며, 파스파 란 단어는, 팍바의 한자 표기를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다. 따라서 팍바 문자라고 해야 옳으나, 여기서는 일단 파스파로 지칭한다.) 등이었다.
이들은 어떤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였고, 주로 일부 자모의 유사성, 역사적 배경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19세기 서양인들의 한글에 대한 견해는 오구라 신페이에 의해 거의 완벽한 저술 목록과 함께 각각 간략히 소개되었고, 그 일부가 Ledyard에 의해 비판적 관점에서 언급되었다. 그리고 이기문의 논문(2000)에서 한글의 기원, 한글의 문자체계 등에 대한 19세기 서양인들의 견해를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19세기에 발표된 논문들은 주로 산스크리트 기원설, 티벳 문자 기원설 등 인도 계열 문자 기원설이 주종을 이루었는데(제임스 스코트, 호머 허버트 등), 이에 정면으로 대치하여 발음기관 상형설을 주장하던 학자들도 있었다.(이익습 등)
이런 주장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기형성문도, 가림토문자 같은 것들도 종종 등장했다.(물론 이런 가림토문자, 신대문자 등의 기원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특히 1966년에 Gari Ledyard 교수가 쓴 논문에 한글과 파스파문자의 자형 비교와 역사적 관계를 정리해놓았는데, 파스파문자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개 이 논문을 인용하는 일이 잦다.
동북아시아에서 생겨난 문자들은 주로, 한글처럼 군주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거란 문자, 탕구트 문자, 여진 문자, 파스파 문자, 만주 문자, 티베트 문자, 위구르 문자 등도 왕의 명령에 따라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이다. 이는 주로 자의적으로 갖다 쓰는 식으로 발전한 서양의 문자와 비교되는 일이다. 여기서 언급할 파스파문자 역시, 쿠빌라이 칸의 명령을 받아, 파스파 라마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제국 내의 여러 민족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내라는 명을 받아 만든 것이다. 이 문자는 원나라가 망할 때까지 사용되다가, 더이상 쓰이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에서 이렇게 전통적으로 군왕에 의해 문자가 만들어졌다면, 당시의 학자들은 분명 다른 나라 글자를 참고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새 문자의 모델이 된 다른 문자가 있으리라는 추정은 어렵지 않다. 사실 훈민정음 서문에도 "옛 것을 모방"했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글 역시 다른 문자를 모방해서 만들어낸 것일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학자들 중 훈민정음 해례본의 설명을 의심하고, 다른 문자에서 한글의 기원을 찾으려 하는 학자가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자형의 유사성에만 집중할 뿐, 문자체계와 발음구조 등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던 듯 하다.
아래는 파스파 문자와 발음을 적은 표이다. 직접 비교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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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파 문자는 원나라의 盛熙明이 편찬한 <法書考>(1334)와 陶宗儀의 <書史會要>(1376)에 수록된 자모표에 의하여 파악할 수 있다. 특히 法書考에는 자모 목록과, 한자표기로 된 발음표 등이 들어있다. 또, 파스파 문자에 대해 중요한 것들을 밝혀놓았는데, 모두 a 모음을 가진 개음절로 발음한다는 것과, 절운법은 주로 인도의 것을 따른다는 것 등이 특기할 만하다.
파스파 문자는 한 글자가 한 음절을 이루기도 하고, 두세글자가 한 음절을 이루기도 한다. 이는 영어와 비슷한 점이라 할 수 있는데, str이 하나의 음절을 나타내는 것과 유사하다.
파스파 문자의 자모 순서를 보면, 파스파 문자의 자모 표기음들은 티베트 문자와 순서가 상당히 유사하다. 일단 아래의 표를 보자. 단 여기 제외된 글자들이 몇개 있는데, 그것들은 중국어 표기용이거나 산스크리트, 혹은 티베트어 표기용으로 만들어놓은 글자로, 자형이 같거나 아니면 실 용례가 발견되지 않은 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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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티베트 문자 자모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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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행 까지는 티베트 문자의 후두음, 구개음, 치음, 순음, 치찰음으로 분류된 자음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6, 7, 8행의 자음은 티벳 문자의 반모음들과 대체로 일치한다. 또, 파스파문자의 수평분류는 티벳 문자의 무기무성음, 유기음, 유성음, 비음 등으로 분류된 것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스파 문자와는 달리 티베트 문자에는 모음이 없다. 티베트 문자에서 모음표기는 부가기호로 표기할 뿐이었다. 그러나 파스파 문자에는 모음이 등장하는데, 단 a에 해당하는 모음은 없다. 이는 자음자의 표기음이 a여서, 기본 모음을 표기하는 별도의 글자를 만들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이제 훈민정음과의 차이점을 적어보겠다.
일단, 파스파 문자는 훈민정음처럼 자음과 모음이 비독립적이지 않다. 즉, 알파벳처럼 그냥 이어쓰는 형태이다. 동북아의 여러 문자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알 수 있는데, 훈민정음처럼 개별 자모가 하나의 음소를 표현하는 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모음이 없이 자음 단독음만을 표시하는 자모를 음소 당 1개씩 만든 글자는 한글이 처음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런 것이다. 파스파 문자의 경우 기본 모음이 a라고 했었다. 근데 파스파 문자는 후행, 혹은 선행하는 모음과 더불어 단독 자음만을 표기한다. 이렇다보니, [ma]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자 하나로 가능하지만, [mam]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앞에 썼던 글자를 붙여 쓴다. (폰트 문제로 파스파 문자를 찍을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양해바란다.;)
문제는 [mama]라는 발음을 표현할 때다. [mam]과 [mama]는 분명 다른 음인데, 어떻게 구분할까? 파스파 문자 체계에서는 이를 띄어쓰기로 구분한다. 글자 두 개를 붙여 쓰면 [mam]이며, 띄어 쓰면 [mama]이다. 또 [mum]같은 발음을 표현하려면 MA U MA 같이 세 글자로 표기하여야 한다.
위구르-몽고 문자 같은 경우 개별 자모가 음소를 표현하기는 하나, 복수의 음소를 표기하는 자모가 여럿 존재한다. 초성, 중성, 종성이 구분되어있지 않고, 자모와 음소가 1:1로 대칭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o와 u의 표기가 같고, k와 g, a와 e 같은 것은 위치에 따라 같은 글자일 수도 있고, 다른 글자일 수도 있다.
훈민정음의 성모체계는 해례본에서 "정음의 초성은 운서의 자모이다"라고 밝혔듯이, 중국의 성모를 기본으로 하여 조선에 맞게 변형시켰다. 중국의 칠음을 기반으로 하지만, 조선에는 없는 발음은 제외하였다. 티베트 문자나 파스파 문자에는 구개파찰음과 치찰음에 대한 문자가 존재하나, 당시 한국어에는 이런 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훈민정음 창제자들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구개파찰음과 치조파찰이 없는 국어의 마찰음(ㅅ, ㅆ)과 초성 파찰음(ㅈ, ㅊ, ㅉ) 들을 순음 뒤에 치음 계열을 두어서 붙여놓았는데, 이는 훈민정음의 성모체계가 중국의 성모체계를 따랐음을 입증하는 근거이다. 중국의 36성모 체계와 같이, 치음에서 파찰음을 마찰음보다 앞에 둔 것이다.
단, 치음의 대표음을 ㅅ으로 삼은 것이 중국의 것과 다르다. 이에 대해 해례본에는 “ㅅ ㅈ 雖皆爲全淸 而ㅅ比ㅈ 聲不厲 故亦爲制字之始”(비록 ㅅ과 ㅈ이 둘 다 전청이지만, ㅅ이 ㅈ에 비하여 소리가 거세지 않은 까닭에 제자의 첫 자로 삼았다)고 설명하였다. 즉, 국어의 보통소리-된소리-거센소리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게 배열하였다는 것이다.
고대인들도 자음과 모음의 순서를 정할 때에 조음 위치에 따라 정하였다. 본래의 음가를 잃은 것을 제외하면 파스파 문자는 a i u e o의 데비나가리 모음표 순서를 따른다. 물론 앞서 설명한 대로 파스파 문자에는 a 모음을 위한 글자가 없다. 이 순서는 현대 음성학에서 사용하는 분류 방식과도 비슷한데, 후두에서 만들어지는 a, 구개에 혀를 닿게 하는 i, 입술소리인 u의 순서이다.
훈민정음 창제 시에 중성의 기본음을 . ㅡ ㅣ 로 취한 것도, 결국 이 조음 위치에 따른 분류법을 따른 것이다. 단, 국어에서는 다른 언어에서 존재하지 않는 ㅡ 가 존재하며, 이 모음은 위아래 이가 근접해서, 원순성이 첨가되지 않는 모음이다. 즉, "조음 위치에 따른 순서"라는 점에는 공통이나, 각 언어의 발음구조가 다르다보니 순서도 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짚고넘어가야 하는데, 훈민정음의 특징 중 하나가 어말자음과 어두자음을 표기자와 같은 자모로 규정하였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사실 20세기 서양 언어학의 산물인 음소 개념인데, 영어처럼 어말자음이 파열되는 언어에서는 어두자음과 어말자음간의 동질성을 이해하기가 쉬운 편이다. 그러나, 국어처럼 어말자음이 파열되지 않고 폐쇄되는 언어에서는 이것을 발견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다보니 위구르-몽고 문자 같은 것에서도 어말자음과 어두자음이 다른 표기를 쓴다. 인도 계열 문자들은 어말자음과 어두자음을 같은 표기로 쓴다. 즉, 파스파문자 역시 티베트 문자처럼 어말자음과 어두자음이 같은 표기를 쓰며, 이는 훈민정음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잠시 설명했듯이 파스파 문자는 훈민정음과 같은 완벽한 단음문자가 아니다. 훈민정음은 한 자모가 하나의 음을 표현하는 완벽한 단음문자이며,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하나의 테두리 안에 넣어 음절 문자로 만들었다. 이 테두리에 넣는 방식은 한자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표음-조합 문자에서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훈민정음은 동아시아의 문자 변천사를 봤을 때, 일부 자모의 생성단계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 자모는 일부 몇 개에서만 나타나며, 그 몇 개의 유사한 글자들에서조차 서로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부족하다. 게다가, 해례본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듯이, 그 창제원리와 구조는 중세국어의 현실에 맞추어져 있으며, 따라서 고유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껏 제기된 그 어떤 한글 기원론도 훈민정음 해례본의 명확한 설명을 능가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훈민정음 해례본 만큼 훈민정음의 구성과 원리를 잘 설명하는 논문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참고문헌 :
訓民正音의 中國音韻學的 背景, 신상순ㆍ이돈주ㆍ이환묵 편, ≪훈민정음의 이해≫ 전남대어연총서 1.
팍바문자와 훈민정음. 송기중. 2008
훈민정음과 음운체계. 강길운. 19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