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전설 - 동·서해 그리고 제주섬을 지키는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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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13. 18:21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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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전설
동·서해 그리고 제주섬을 지키는 여신
변산반도에서 서해로 툭 불거져 나온 바위 벼랑 위에 서해바다의 여신 개양할미를 모시는 수성당이 있다. 서해의 수호신 개양할미도 제주의 설문대할망처럼 깊은 바다가 무릎 밑에 찰 만큼 대단한 거인이었다. 항상 굽 달린 나막신을 신고 바닷속을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때로 수심을 재기도 하고, 때로 풍랑을 막아 어선을 보호해 주는 일을 해오고 있다. 할미는 슬하에 딸 아홉을 두었는데 여덟 딸은 전국 팔도에 나누어 시집보내고 자신은 막내딸과 함께 이곳 수성당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 우리 일행이 이곳에 들렀을 때는 할미와 막내딸이 출타 중인 듯했다.
개양할미 개양할미는 서해바다의 수호신으로 바다가 무릎에 찰 만큼 큰 거인이었다. 항상 굽 달린 나막신을 신고 바닷속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수심을 재기도 하고 때론 풍랑을 막아 어선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또 슬하에 딸 아홉을 두었는데, 여덟 명의 딸은 전국 팔도에 나누어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자신을 모시는 수성당에서 살고 있다. |
할미와 딸이 집을 비운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예전에 있던 사당을 허물고 새로 콘크리트 집을 지었는데 그 시멘트 독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아니면 바로 곁에 웅크리고 있는 해안 벙커가 신경에 거슬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할미의 고유 권한, 즉 서해를 지키는 일을 군사용 벙커에 빼앗겼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십 수년 전 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침몰이라는 대형 참사가 있었던 것은 이 수호신의 부재에서 일어난 재앙이 아니었을까 싶다.
변산반도 채석강 옆에 있는 수성당
서해의 여신 개양할미가 딸과 함께 거처하는 곳이다. 수년 전 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하는 대형 참사가 있었는데, 이 사고는 개양할미가 부재중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한다.
성산 일출봉에서 본 우도
제주섬을 지키는 설문대할망의 오줌발에 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형성되었다는 섬이다. 설문대할망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소백에서 분기한 노령산맥이 서해에 이르러 그 흐름을 멈춘 변산반도는 바다와 산, 거기다 ‘징게맹게 외배미들’이라 일컫는, 김제·만경의 넓은 벌판이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룬다. 긴 해안선이 그대로 바닷길로 이어지는, 이 지역 탐사는 매우 다양하면서도 운치 있는 여정이다. 특히 모항에서 줄포에 이르기까지 곰소만의 염전지대와 아늑한 어촌 풍경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곰소〔熊淵〕란 이름 그대로 곰처럼 생긴 두 개의 섬, 또는 그 섬에 깊은 소(沼)가 있어 이런 지명을 얻었다고 한다. 이곳이 염전지대란 점을 고려하면 ‘곰소’라 하면 ‘소금’이란 말을 뒤집어 놓은 듯하여 재미있다. 화가들의 스케치 여행지가 될 만큼 이색 풍경을 가진 염전지대, 지금도 수차(水車)를 돌린다는 이 지역도 얼마 안 있어 큰 변화를 겪을 것만 같다. 서해 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이 지역에 불어닥칠 개발의 바람이 결코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개양할미가 서해의 해신이라면 설문대할망은 남해, 특히 제주도를 지키는 해신의 이름이다. 설문대할망 역시 매우 거대한 여신으로 한때는 제주도를 육지에 닿게 다리를 놓으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가 이 힘든 작업 중에 할망이 먹고 입을 만한 자원이 부족해서라던가. 키가 한라산 높이와 맞먹는다는 할망의 위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한 번은 할망이 장난삼아 섬에다 대고 방뇨한 것이 제주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고 한다. 무슨 얘긴고 하니 한 발은 성산 일출봉을 디디고 다른 한 발로 식산봉을 디딘 채 좀 힘을 주어 소변을 보았더란다. 이때 할망의 오줌발이 얼마나 세었던지 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성산포에서 1백 여 리나 떨어진 우도(牛島)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산포 부근의 조류가 유독 급한 것은 그때의 오줌발 탓이라는 소문도 있다.
설문대할망 설문대할망은 남해, 특히 제주도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키가 한라산 높이와 맞먹는다고 한다. 할망이 한 발은 성산봉을 디디고 다른 한 발로 식산봉을 디딘 채 오줌을 누었는데 할망의 오줌발이 어찌나 세었던지 그때 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성산포에서 1백여 리나 떨어진 우도가 생겨났고, 그때의 오줌발 때문에 성산포 부근의 조류가 급한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
서해와 남해의 해신이 이처럼 거대한 할머니상인 데 반해, 동해의 해신은 좀 더 젊고 인간적이어서 호감을 준다. 서울에서 동해로 가는 마지막 고비인 대관령을 넘으면 이내 산신의 지배영역에서 해신의 지배영역으로 바뀐다.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동해의 긴 해안이 더 이상 산신의 땅이 아님은 일렁거리는 파도와 함께 바다신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해의 해신은 서해나 남해처럼 단일하지도 않다.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산재한 해신당(海神堂)이 있어 이들 해신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삼척에 있는 동해의 해신당
바다에 빠져 죽은 이 마을 처녀의 혼령을 위로하는 사당이다. 죽은 처녀가 요구한 것은 제삿밥이 아니라 남성의 양기였다. 이 신당 앞에 남근목이 감춰져 있다.
해신당 향나무에 걸린 남근목
도난사고가 잦아 당집 깊숙이 감춰 놓은 것을 특별히 꺼내어 촬영하였다. 노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아직도 남근목의 효험이 있음을 증명하는게 아닐까?
궁촌·용화·장호 등과 함께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수욕장을 거느리고 있는 삼척의 한 조용한 갯마을을 찾는다. 원덕읍 섶너울〔薪南里〕, 동해의 파도가 치올라 오는 마을 북쪽 벼랑 끝에 이 마을 처녀의 초상을 모신 해신당이 향나무 숲에 싸여 바다를 향하고 있다. 외양상으로는 다른 신당과 다를 바 없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신당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향나무 가지에 그 향나무로 깎아 만든 남근(男根)들이 보기에도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결혼을 약속한 이 마을의 총각 처녀가 함께 돌김을 뜯으러 바위섬까지 나갔다가 처녀만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는 사고가 있었다. 총각이 점심밥을 가지러 잠시 뭍으로 간 사이에 돌풍을 맞아 벌어진 일인데 총각도 이 광경을 빤히 보면서 어떻게 손 쓸 새가 없었다.
처녀가 실종된 후 이 마을에는 재앙이 끊이질 않았다. 뱃일 나간 젊은이들이 죽어 돌아오기 일쑤였고, 물고기는 씨가 마른 듯 전혀 잡히지 않았다. 연인을 잃은 총각의 고통은 더욱 심했다. 매일 밤 꿈에 처녀가 나타나 총각을 괴롭히고, 어떤 때는 향나무 가지를 들고 나타나 자신을 위로해 달라면서 떼를 쓰기도 한다. 총각은 어쩔 수 없이 마을 사람들과 의논한 끝에 벼랑 위에 있는 향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삼고 그 끝에 당집을 지어 제사를 모시기로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다한 제사에도 재앙은 그치지 않았다. 이런 정성도 소용없다면 죽은 처녀가 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마을 사람들은 짜증이 났고 누군가 화가 치민 나머지 향나무에 대고 오줌을 갈겨 버렸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인가, 신목에 방뇨한 행위가 뜻밖에 효험을 가져올 줄이야. 금기를 깬 무뢰한이 화를 입기는커녕 오히려 횡재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가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면 그물코마다 고기가 줄줄이 걸려 나오고, 평소 좋지 않던 건강도 일시에 회복하게 되었다. 이런 괴변을 겪은 연후에야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죽은 처녀가 원하는 바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처녀의 혼이 원하는 것은 제사 음식이 아니라 바로 남성의 입김, 곧 양기라는 사실을. 앞서 서해나 남해의 해신에 비해 동해의 해신이 더 인간적이라 규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원덕읍 섶너울의 해신당 결혼을 약속한 총각 처녀가 돌김을 뜯으러 나갔다가 처녀만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고 만다. 이후 마을에는 재앙이 끊이질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아무리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도 별 효험을 보지 못하다가 마을 사람 가운데 하나가 신목(神木)에 오줌을 갈겨 버리고 나서야 재앙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제사를 올릴 때 향나무로 깎아 만든 남근을 바친다고 한다. |
지금도 섶너울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과 시월에 해신당에 제사를 올리고 향나무로 깎아 만든 남근을 바친다고 한다. 특히 시월에는 오일 오시(午日午時)에 제를 지내면서 가장 큰 남근을 바친다. 이는 12간지(干支) 중에 오일이 성기가 가장 큰 짐승, 곧 말〔馬〕의 날이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신남리 해신당을 찾았을 때는 향나무 가지에 걸려 있어야 할 남근목(男根木)이 당집 깊숙이 감추어져 있었다. 이 마을 이장에 의하면 남근목이 자주 도난을 당하기에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처라고 한다. 큰 자물쇠에 채워 당집 깊숙이 숨어 있는 남근목, 이처럼 훔쳐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직도 남근목의 효험이 있음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산신이든 해신이든 신도 인간적일 때 우리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이런 인간적인 신을 찾아 다음 호에는 산으로 오르고자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서해 그리고 제주섬을 지키는 여신 (물의 전설, 2000. 10. 30., 천소영,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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