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양희용
모두 나에게만 오면 끝장이다. 비싼 소고기도 좋고 맛있는 삼겹살도 좋다. 하늘만 바라보며 이슬을 마신 채소든 땅속으로만 달려가는 풀뿌리든 상관없다. 멀리 태평양 심해에 살던 생선이건 가가운 연해에서 자란 해조류건 개의치 않는다. 나에겐 대장간에서 몸을 단련시킨 다양한 종류의 칼과 전라도 장흥 출신의 편백나무 도마가 있다. 싱크대라 불리는 나의 심장에는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스위치만 누르면 활활 타오르는 불이 있다. 두려울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다.
나를 마술사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리 더러운 그릇도 나에게만 dhas 빤짝빤짝 빛나게 된다. 주인이 원하는 요리를 뚝딱뚝딱,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해 본 요리는 국 찌개 볶음 찜 전골 조림 생채 전 구이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술사가 가끔 허점을 보여 주듯이 나도 실수를 한다. 국을 찌개로 만들거나 찌개를 찜처럼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 실수는 주인이 음식을 만들면서 TV를 보거나 친구와 정신없이 통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주인님, 요리할 때는 재발 나에게만 신경을 써 주세요.
나에게 딸린 식구도 많다. 좌 가스레인지, 우 냉장고. 사신도에 나오는 청룡백호를 누가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두 놈도 그렇다. 하나는 성질이 불같이 뜨겁고, 다른 놈은 얼음처럼 차갑다. 같이 붙여 놓을 수가 없다. 중간에 자리 잡은 싱크대가 그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머리와 다리에는 각종 양념이나 그릇, 프라이팬 등이 보관되어 있는 수납장과 선반이 있다. 그들 덕분에 나의 외모는 더욱 깔끔해졌고 여유 있는 공간도 확보할 수 있다. 난방과 온수를 책임지는 가스 배관은 내 몸속에 혈관처럼 뻗어 있다.
쌀통이나 냉장고에 들어간 물건은 선입선출법先入先出法이 적용된다. 수납장에 얌전히 앉아 있는 그릇이나 커피 잔에는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새로 산 그릇만 사용하고 그것이 싫증나거나 깨지면 다시 구입한다. 12년 전, 수납장에 들어간 꽃이 그려진 접시는 아직 한 번도 세상 구경을 못하고 있다. 아마 숨이 막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은 그게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세상사 다 그렇다고 이해를 하려고 해도 다른 가족들도 언젠가 외면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두 발짝만 걸어가면 나의 사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 있다. 쌀통, 전기밥솥, 커피포트 같은 터줏대감과 순차적으로 입주한 전자레인지, 김치 냉장고, 토스트기가 잘 어울려 살고 있다. 그중 전기밥솥은 두 번이나 바뀌었다. 혼자 열을 많이 받고 풀지 못해서 스스로 수명을 단축시켰다. 전자레인지와 토스트기는 거의 매일 공휴일이다. 반면에 김치냉장고와 커피포트는 1년 내내 쉬는 날이 없다. 매일 바쁘게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도 주인은 그들에게 칭찬 한마디 없다. 같은 동료라도 열심히 하는 놈과 그렇지 못한 놈을 구별해야 하는데···.
그 옆으로 식탁이 있다. 전에는 4명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지금은 2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혼부부는 아닌 것 같다. 조용히 밥만 먹고 후다닥 일어선다. 부부가 맞는지 모르겠다. 가끔 식탁 위에 꽃병이 올라오면 텃밭을 화단으로 가꾸어 놓은 기분이다.
나의 원래 이름은 ‘부엌’이었다. 옛날에는 ‘부뚜막’이나 ‘정지’라고도 불렀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나는 빠른 속도로 진화해 왔다. 부엌이라는 단어에서 불편하고 촌스러운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현대적인 이미지를 가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이제는 단순하게 음식을 조리하고 식기를 세척하는 공간이 아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TV, 컴퓨터, 스마트가전들이 우리 가족으로 입양되어 오고 있다고 한다. 첨단 시설과 기술력이 집약된 하나의 문화공간, 소통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나의 공간에 앉아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는다. 젊은이들은 나를 ‘아트키친’이나 ‘시스템키친’ 이라 부른다. 그렇게 어색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주인이 바뀌었다. 전에는 안주인이었는데, 지금은 바깥양반이다. 며칠 하다가 그만두겠지 생각했는데 3년 넘게 나를 통제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으면 좀 쉬지. ‘삼식이’ 소리 좀 들으면 어때. 남자가 쪼잔하게 요리를 한다고. 그래도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든다고 바쁘다. 땀까지 뻘뻘 흘리면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도 생긴다. 안주인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중년의 마지막 발악인지 모르겠지만 그 의지는 칭찬할 만하다.
자연스럽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나로서는 아쉬운 점도 있다. 남자의 투박한 손길과 여자의 부드러운 그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술을 좋아하는 바깥양반은 새벽 시간에 가끔 술 냄새를 풍기며 요리를 한다. 안주인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몸에서 풍겨 나오는 향수가 나를 기분 좋고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밉고 싫어도 그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그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의 바람은 하나다. 주인과 가족들이 나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맛있는 요리를 즐겁게 먹는 것이다. 아무리 바쁜 아침 시간이라도 시래깃국 한 숟가락 떠먹고 가는 모습이 나를 흐뭇하게 만든다. 봄에는 상큼한 야채를, 여름에는 시원한 냉국을, 가을에는 향긋한 송이버섯전골을, 겨울에는 칼칼한 동탯국을 제공할 수 있어 나는 행복하다. 주인과 가족들의 건강은 내가 책임진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