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4일에서 26일까지 파주출판단지에서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한 <2023년 평화문학축전>(조직위원장 정도상)이 열렸다. 우리의 정전 70주년을 환기하면서 ‘위기의 시대, 문학의 길’이란 주제로 이 세계의 전쟁에 대해 숙고하고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포함한 외국 작가 12명과 국내 작가 40여 명이 네 개의 문학포럼과 DMZ 투어 등에 참여하였다. 다음은 『2023년 평화문학축전 Directory Book』에서 발췌해 만든 문장 퍼즐. 일부 ‘하다’체를 ‘합니다’체로 바꾼 것 외에 원문 변형 없음.
--------------------
평화를 위한 퍼즐
이영숙
2022년 2월 24일 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적인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수백 대의 러시아 탱크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고, 수십 대의 비행기가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폭격했습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벨라루스). | 우리는 정복자처럼 굴었습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집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갔습니다. 냉장고, 세탁기, 전기, 주전자. 한 번은 제 아내가 전화를 했습니다. “우리 딸은 내년에 학교를 가야해요.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와요.” 그래서 저는 노트북을 가져왔습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벨라루스). | 불과 2주 전에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2023 파주 선언문」). | “당신은 충분히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방위군.” 이것은 이스라엘 군대가 주거 건물을 폭격하려고 할 때 하는 일종의 전화입니다. 누군가가 그 전화를 받는 순간, 그들은 “충분히 경고받았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를 전쟁범죄나 인류에 대한 범죄로 고발하는 능력을 포기하게 됩니다. 공격은 반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아다니아 쉬블리, 팔레스타인). | 플폿 군대가 서남부 국경을 공격할 때, 동굴로 기어들어가 도망을 쳐야 했던 마을들이 있었습니다. 캄캄하고, 굶주리고 그리고 두려웠고, 아이들은 울었습니다. 플폿 군대가 은신처를 발견할까 두려워 사람들은 마을사람들이 발각되지 않게 아이들을 목졸라 살해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은 수백 명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즉사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레인 퀘, 베트남). | 제주 4ㆍ3은 ‘제주’라는 공간에서 3만여 명의 섬사람들이 한라산에서 중산간 마을에서 학교운동장에서 바다에서 죽어간 제노사이드의 전형입니다. 일제강점에서 벗어나 분단을 반대하며 통일된 세상을 꿈꾸었다는 이유로 죽어간 것입니다(김수열, 한국). | 타이완의 원주민 사회는 여전히 백색테러의 침묵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아미족 출신인 황신둥(黃勳東) 선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20세 때 외지에서 일하다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고발돼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왜 체포되었던 것일까요? “누군가 내가 마오쩌둥(毛澤東) 만세라고 했다며 고발했지.” 그의 죄명은 ‘반역자에게 유리한 연설을 반복적으로 선전한 죄’였습니다(이그라브 이우, 대만). | 소위 고무 붐 시절 값나가는 라텍스를 얻기 위해 밀림을 피로 물들인 사업가들, 아일랜드인 영사의 계산에 따르면 약 3만 명을 살해한 그들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로 치부되었습니다. 통치권, 자유, 진보, 문명이라는 공허한 용어들을 내세워 결코 단죄하지 않았습니다(마누엘 코르네호 차파로, 페루). | 전쟁은 단순히 영토 소유와 경제적 지배를 위한 싸움일 뿐만 아니라 문명, 진보 또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즉 인류 역사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문화에 자신을 강요하려는 단일 문화의 수단이기도 합니다(르 클레지오, 프랑스). | 나치 전범 헤르만 괴링은 뉴른베르크 재판의 피고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물론 국민은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정책을 결정하는 건 그 나라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국민을 끌고 가는 일은 쉽습니다. 국민들에게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평화주의자는 애국심이 없고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 라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현기영, 한국) | 이토록 급박한 위기의 시대에 문학은 대체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신냉전의 유령이 지배하고 자본의 전횡이 압도적인 세상에 어떤 개혁 어떤 혁명이 필요할까요. 난민과 이주민의 신음으로 가득한 우리 시대에 대체 어떤 공존 어떤 공생의 정신이 필요할까요(「2023 파주 선언문」). | 우리가 평화를 갈구하는 것은 세계가 지극히 평화롭지 않기 때문입니다(정도상, 한국). | 평화를 낳는 것은 평화이지, 전쟁이 평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죠. 평화를 만드는 것은 이성, 인내, 관용을 통한 화해이지 독단, 편견, 증오, 분노가 아닙니다(현기영, 한국). | 평화는 단순한 전쟁 반대 담론을 넘어서는, 타자를 우리 안으로 복귀시키려는 강렬한 소명입니다. 약한 것들, 소외된 것들, 다친 것들을 내버려 두고선 평화를 운운할 수 없습니다(「2023 파주 선언문」). | 이러한 때에 문학은 성찰하고, 비판하며,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의 성찰의 공간, 심지어 위안을 제공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로 떠오릅니다. 강인한 상상력, 독특한 언어 사용, 그리고 강력한 아이디어를 가진 위대한 작가들은 인류의 양심을 지키게 됩니다. 그들은 국가적, 언어적,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여 우리 세계의 복잡성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는 통찰과 관점을 제공합니다(마카란드 파란자페, 인도). | 작가들은 필요한 성찰과 예상에 대한 통찰력과 말을 정책으로, 그 정책을 실행으로 옮기는데 필요한 표현에 대한 목소리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입니다(나이 오순다레, 나이지리아). | 정치, 경제, 또는 군사력과 달리 문학과 예술은 개인에게 생산되고 집중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들은, 분명 사소하거나 사적인 자신의 개인적 변화, 깨달음, 행동을 통해, 인류 전체의 집단적 의식과 양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마카란드 파란자페, 인도). | 아마도 이 21세기에는 19세기에 시작된 문명의 혼란과 자본주의의 팽창 속에서 야만인으로 낙인찍힌 부족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주변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소위 참살이(buen vivir), 즉 존재에 기초하고, 타인 및 자연의 제 존재와 윤리적ㆍ유대적 관계에 기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전 지구적 사회라는 가장 잔인한 실패로 우리를 몰아가는 몇몇 패러다임과 단절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누엘 코르네호 차파로, 페루). | 최첨단 IT시대에도 문학은 대지의 생생한 날 것의 야생성을 획득할 수 있는 원주민적인 이야기성을 내부에 담고 있습니다. 대지의 이야기성으로 평화와 노동의 가치를 지켜내고, 지구의 상태와 환경을 위해 발언을 지속하며 마침내 개개인의 내면까지도 평화로워지는 문학의 길이야말로 새로운 구원이며 치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정도상, 한국). | 문학은 이러한 공존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떠맡아야 합니다(「2023 파주 선언문」에 대해). | 대항하는 언어를 찾는 문학의 영위는 계속됩니다(오시로 사타토시, 일본). | 고장난 이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무엇에 앞서 우리 안에 아직 남아있는 평화의 지층(地層)을 기억하는 일이 절실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학과 문학인이 떠맡아야 할 가장 큰 책무입니다(「2023 파주 선언문」). | 그 길을 가지 않는다면 지상의 어디에서 인간은 존엄성을 지킬 수가 있단 말입니까?(정도상, 한국)
‘2023년 평화문학축전’이 열리고 있는 공간은 우아하고 쾌적했지만, 물론 세계의 폭력과 불행이 더 많이 참석한 자리였다. 전쟁이 작가를 경유하여 어떻게 평화로 가는가 하는 추상적인 질문들이 작가와 시인에게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스며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인이라면
끈적이는 진흙을
건드리지 말라고
누가 말했던가?
죽을듯한 진흙의 땅에서
시인은 어떻게
깨끗한
깃털 샌들을 신고
그가 냄새를 맡지 않은 척
할 수 있는가?
―나이 오순다레, 태양의 책 발췌, 230쪽
계속해서 나이지리아의 시인은 말한다. “냉정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의 세계에서는 너무 많은 ‘죽을듯한 진흙’이 있어서 작가가 ‘역할’을 회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작가회의 회보》 2023년 겨울호(통권 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