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의 자식, 아들들, 자녀들
디모데명 ・ 2022. 1. 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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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자식, 아들들, 자녀들
△ 태조의 가계도
고려 시대에는 원래 일부일처제였지만 고려 후기에는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그 영향으로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성계도 두 분의 부인이 있었고, 당시 거주지에 따라 경처와 향처로 구분하였습니다. 부인이 개경에 있으면 '경처', 지방에 있으면 '향처'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은 '향처', 두 번째 부인은 '경처'가 되었습니다.
△ 조선 태조 어진(국보, 이성계 초상화, 출처 - 전주 어진박물관)
○ 태조가 되기 전에 고려 때 이성계는 8남 3녀의 자녀를 두다.
신의 왕후 한 씨는 고려 시대(공민왕 즉위년, 1351)에 이성계와 혼인하여 6남 2녀의 자녀를 출산하였습니다.
이방우(진안대군)
이방과(영안대군, 제 2대 정종)
이방의(익안대군)
이방간(회안대군)
이방원(정안대군, 제 3대 태종)
이방연(덕안대군)
경신공주
경선공주
-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6남 2녀)
신덕 왕후 한 씨의 소생 2남 1녀
이방번(무안대군)
이방석(의안대군)
경순공주
○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리고 이성계가 새 왕조의 왕이 되다.
이방원의 주도로 정몽주가 살해된 후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고려의 공양왕이 폐위되면서 고려 왕조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어서 태조 이성계가 새 왕조(조선)의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는 두 왕후의 소생 형제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우애가 깊었습니다.
맏아들 이방우(진안대군)는 예외로 새 왕조를 세우려는 아버지 뜻에 반대하여 은거하면서 술을 마시는 일상으로 살다가 병으로 1393년(태조 2)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이방원과 정도전과의 갈등이 시작되다.
조선 건국 후 신하들이 주도하여 정치를 하고 왕은 올바른 신하를 등용하는 것(재상정치)을 주장하는 정도전과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방원과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 막내 이방석 세자 책봉
태조는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의견에 따라 막내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됩니다. 이는 개국 과정에서 공이 많은 방원 등 신의 왕후 한씨의 장성한 왕자들이 아닌 가장 어린 계비 강씨의 아들을 책봉한 것으로 정도전도 이를 지원하였습니다. 이후 왕자들과 종친들의 등용이 계속 배제되었고, 1396년 8월(태조 5) 계비 강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 1차 왕자의 난, 이방번, 이방석 사망
1398년(태조 7)에는 정도전의 주도로 사병을 철폐하여 왕자들과 종친들의 사병을 국가로 흡수하려 하자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개국공신들과 신의왕후 소생 왕자들 사이에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특히 이방원의 불만이 깊어가면서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습니다.
1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의 주도로 이숙번 등의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을 비롯 그를 따르는 남은, 심효생, 박위 등을 습격하여 베어버리고 세자 이방석을 폐위하여 귀양 보내는 중에 살해하고, 방번도 함께 죽인 사건입니다. 1차 왕자의 난은 정도전 세력과 이방원 세력의 권력 다툼이기도 하며 '정도전의 난', '방원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 셋째 딸 경순공주, 여승이 되다.
경순공주는 친동생 이방번, 이방석이 1차 왕자의 난 때 죽게되자 이성계는 여승이 되게 하였습니다. 머리를 깎을 때 이성계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조준 등 일부 개국공신과 이방원의 심복인 하륜, 이무 등이 실권을 잡았습니다. 이들은 이방원을 세자로 내세우려 하였으나 이방원이 이를 사양해 둘째 이방과가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 둘째 이방과(영안대군), 태조에 이어 제2대 왕(정종)이 되다.
이방과은 태조의 둘째 아들로 타고난 자질이 인자하고, 공손하며 용맹과 지략이 뛰어났습니다.
왕세자가 된 방과는 이후 태조가 양위하는 교서를 내려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이 되었습니다. 이방과는 즉위한 뒤에 이름을 경으로 고쳤으며,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이후 동생 정안군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한 후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습니다. 정종이 왕위에 오른지 3년 만이었습니다. 이후 1421년(세종 1)까지 20년간 두루 봉양을 받으면서 한가하게 지내다가 6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종은 숙종 때 내려진 묘호입니다.
○ 동복 형제들인 넷째 방간과 다섯째 방원의 대결, 제2차 왕자의 난
넷째 방간(회안대군)은 조선개국 1등공신이며,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왔습니다.
이후 1400년(정종 2)에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방간과 방원 사이의 대결인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납니다. 정종에게 적장자가 없어 동복 아우인 회안공 방간이 차례로서 마땅히 왕위를 계승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라 사람들은 정안공 방원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당시 대군들 중 이들은 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박포(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웠으나 공신의 지위가 낮음에 불만을 품었음) 라는 사람이 방간에게 찾아와 "방원이 대군(방간)을 죽이려 합니다."라고 거짓으로 말하였습니다. 결국 박포의 이간질로 제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이방원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박포는 처형되었고, 방간은 멀리 떨어진 황해도 토산으로 유배를 보냈고, 방원이 왕위(태종)에 오른 후에도 신하들은 방간을 죽이라고 하였으나 태종은 듣지 않았습니다. 회안대군 방간은 세종 때인 1421년까지 살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다섯 째 이방원(정안군) 조선의 제3대 왕(태종)이 되다.
1400년(정종 2) 2차의 난 이후 정종의 왕세자가 되어 그해 11월에 정종의 왕위를 물려받아 조선의 제 3대 왕(태종)이 되었습니다.
○ 셋째 아들, 이방의(익안대군)
태조의 셋째 아들, 조선 개국 1등 공신이며, 1차 왕자의 난 때는 동생 이방원에 협력하였고, 방간과 방원의 왕위계승 2차 왕자의 난 때는 방원에게 간접적으로 협력하였습니다. 성질이 온후하고 만년에는 병으로 두문불출하였는데, 동생인 태종 이방원은 자주 방문하여 쾌유를 빌었습니다.
태종 4년(1404)에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3일 동안 조회를 폐하고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 여섯째 아들, 이방연(덕안대군)
고려 우왕 때 관직에 나갔고 일찍 사망하였습니다.
○ 경신공주와 경선공주
● 경신공주
경신공주는 타고난 성격이 유순하며 겸손하였습니다. 세종 때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흰옷을 입고 경신공주 빈소에 방문하여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 경선공주
개국공신 이애와 혼인하였고 1426년(세종 8)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처] 태조 이성계의 자식, 아들들, 자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