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신뢰의 옷' 입기 위한 부단한 노력 이어온 Pi Coin
화폐는 물물교환 과정에서 거래의 수단으로 생겨났다는 게 정설이다. 화폐가 거래의 수단이 되려면, 거래 상대방에게 ‘화폐의 가치에 대한 공동의 믿음(신뢰)’이 있어야 한다. 인류문명의 결과물들이 다 그렇듯, 화폐 역시 원래 없던 가치를 어떤 특정 대상에 가치가 들어있는 것처럼 ‘공동의 믿음’을 꾸며내야 했다.
화폐는 인간의 ‘조작(造作)질’로 문명의 발달에 기여한 대표적 결과물이다. 화폐를 ‘인류문명의 꽃’으로도 비유하는데, 이는 인류가 조작질 한 다른 유무형의 모든 결과물에 대해서도 가치를 매기고 거래할 수 있게 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뭔가를 조작질 한 것에 대해 그 가치를 화폐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너도나도 인류문명의 조작질(창작활동)에 뛰어들 수 있었다. 확실히 인류문명은 화폐와 함께 고도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조작질에 의해 화폐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마오쩌민(毛澤民)은 마오쩌둥의 친동생이다. 1931년 11월 그는 중화소비에트공화국 국가은행 총재로 임명되었다.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당시 소비에트 국가은행은 운전자금 마련이 최대 난제였다. 재원을 주로 전쟁에서 노획한 물자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국가은행은 소비에트 화폐를 발행했다. 은화를 본위화폐로 삼아 은화와 1:1 교환비율의 은화권 지폐를 발행했다.
그러나 국민당이 경제봉쇄를 강화한 탓에 소비에트공화국은 물자부족과 가격폭등 및 화폐가치의 폭락을 가져왔다. 이에 상인들이 소비에트 화폐에 대한 불안을 느껴 지폐를 은화로 바꾸려 은행에 몰려들었다. 1933년 국가은행은 뱅크런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지폐를 바꿔줄 은화가 바닥났기 때문이다. 이때 마오쩌민은 소비에트 공화국 인민들의 ‘공동의 믿음’을 꾸미기 위한 역사적인 조작을 벌였다.
어느 날 국가은행 영업소에 금괴와 은화 및 귀금속을 가득 실은 운수대가 홍군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면서 나타났다. 시내 번화가를 뚫고 은행까지 수레에 실고 온 긴 행렬의 운수대를 본 인민들은 지폐를 은화로 바꾸려는 마음을 되돌렸다. 국가은행이 보유한 엄청난 자산을 직접 목도하고는 소비에트 화폐에 대한 ‘공동의 믿음’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수대가 실고 온 금괴와 은화는 모두 모조품이었다.
조작이든, 사기든 화폐가치 안정에는 신뢰(믿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폐에서 ‘신뢰’란 화폐가 지닌 가치만큼 자유로운 거래가 보장될 때 만들어지는 ‘무형의 자산’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문명의 발달과 함께 화폐의 개념도 변해왔다. 상품화폐에서 금속화폐로, 다시 또 명목화폐로 발달해 왔지만 화폐에 부여된 ‘가상의 가치’는 ‘공동의 믿음’ 즉 신뢰가 기반이 되어왔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문명시대에 새로운 개념의 가상화폐 탄생은 당연할 수 있다. 화폐 그 자체는 ‘가상의 가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단 이 가치에 ‘공동의 믿음’이라는 ‘신뢰의 옷’을 입혀야만 현실화폐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폭락을 반복하는 이유는 이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한 까닭이다.
벌써 4년째다. 공식적으로 아직 단 1코인도 시장에 거래된 적은 없지만 ‘공동의 믿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실물경제에서 화폐가 지닌 가치만큼의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도록 글로벌 플랫폼도 구축했다. 파이코인(Pi coin) 이야기다. 주목해 볼 가상화폐다.
<희망경제- 정신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