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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0일 성령강림절 후 열한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33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1:1-8절(신399)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 이란?
요한계시록의 이름은 원문에 나오는 첫 번째 단어인 ‘계시(아포갈립시스)’에서 왔습니다. ‘계시’는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이 요한계시록을 소수의 전문가에게가 아니라 ‘그의 종들(백성)에게 보이시려고’(1)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오히려 어린이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만화와 같은 그림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마치 수수께끼(비밀)의 책으로 생각합니다. 소수의 전문가나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자기만 풀었다고 주장하는 많은 이단이 우리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종들(1)인 우리’는 지금까지 가졌던 선입관을 버리고 단순하게 요한계시록을 계속 읽어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의 서문(1:1-8), 그리고 다음 주일에 서문과 거의 같은 내용인 종결문(22:6-22)을 살펴보면서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며,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알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표제(1-3), 인사말(4-5a), 찬양(5b-8)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요한계시록의 표제입니다(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왜냐하면)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서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여러 표현으로 요약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요한에게 ... 알게 하신 것’,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자기가 본 것’, ‘이 예언의 말씀’, ‘(요한이) 기록한 것’입니다.
‘이 계시’의 주체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려준 계시’입니다. ‘계시’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므로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입니다(1). 즉 ‘하나님의 말씀’(2)입니다. 그 기원은 하나님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2)입니다. 그는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알게 하셨습니다(1). 여기서 ‘알게 하셨다(에세이넨)’는 단순히 알게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상징화(세메이온)하여 알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의 눈에는 그것이 상징화(그림 언어)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다(신실하게) 증언하였고(2), 책으로 ‘기록한 것’(3)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에 속합니다. 묵시는 장래에 일어날 일을 초자연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묵시문학의 큰 특성은 공간적 초월(하늘)과 시간적 초월(종말)을 상징과 비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묵시적인 상징과 비유들로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특히 숫자와 색깔도 상징적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상징과 비유들을 해석할 때 이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2)이라는 것을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징과 비유로 계시 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은 단순히 묵시만이 아니라 구약의 선지서와 맥을 같이 하는 ‘예언의 말씀들’입니다(3).
묵시와 선지서 예언은 거의 같은 종말의 구조입니다. 그러나 묵시는 심판을 받을 자와 구원을 받을 자가 이미 결정적이어서 오직 묵시적인 종말의 심판과 구원만을 예언하는 데 반해, 선지서 예언은 하나님 언약들에 근거하여 과거 구속 역사와 종말의 심판과 구원을 예언하여 현재 언약 백성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현재 회개를 촉구하는 증언의 목적에 부차적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합니다(계2-3장).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동일한 주제를 반복)
이런 예언적 묵시인 요한계시록은 구약을 암시적(배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구약에 근거하여 그것을 해석하여야 합니다.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1)도 단2:28절에서 온 것입니다.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상징으로)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릿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여기서 ‘후일에’는 ‘마지막 때(종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후일에 될 일’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단2:44)에 관하여 느브갓네살 왕이 꿈의 환상으로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요한은 ‘후일에’(단2:28)을 ‘속히’(1)로 바꾸어 ‘후일에 될 일’(단2:28)을 ‘속히 일어날 일들’로 기록한 것입니다. 다니엘 관점에서는 ‘후일에 될 일’(단2:28)이지만, 요한 관점에서는 ‘후일에 될 일(하나님 나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성취되었고, 현재 그를 통하여 완전한 성취를 향하여 성취되고 있기 때입니다.
이 사실은 ‘때(카이로스)가 가까움이라’(3)에도 적용됩니다. 여기서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그를 통하여 이미 성취되었고, 성취되고 있는 ‘때(종말)’를 의미합니다. ‘때가 가까움이라‘는 현재를 포함하는 종말의 임박함에 대한 과장된 표현입니다(막1:15).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시기만이 아니라 ‘그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기간(종말)에 될 일’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4-8절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됨).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반드시 속히 될 일‘(1)을 그의 종들인 우리에게 보여주신 목적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공적인 예배에서 한 사람이 그것을 낭독하고, 그 예배의 참석자들이 듣고, 그것을 지킴을 목적하는 책입니다.
누가 복이 있는 자일까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입니다. 그것을 듣는 자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자입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그것을 끝까지 붙는 것, 즉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 예언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복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림책(상징과 비유)으로 우리에게 선포되는 복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이런 복음 선포가 7번이나 있습니다(1:3, 14:13, 16:15, 19:9, 20:6, 22:7, 22:14).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과 위로를 주는 책입니다.
2. 편지의 인사말입니다(4-5a)
요한은 편지를 일곱 교회에 보내며 성부, 성자, 성령 이름으로 인사합니다(4-5a).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2-3장만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전체가 편지입니다(계22:21). 성도 여러분, 보통 편지는 거의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현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편지로 일곱 교회에 보내졌다는 것은 미래도 다루고 있지만, 현재에 중점을 두고 있는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인사말(4-5a)에서도 요한은 이 편지의 주제로 현재를 위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합니다. 4-5a절입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성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4)로 설명됩니다. 당시에 이방의 신, 예를 들면 제우스를 ‘과거에 계셨고, 현재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실 이’로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현재를 먼저 설명하여 현재를 강조합니다.
특히 ‘전에도 계셨고’(4)는 미완료분사로서 ‘전에서부터 현재까지 계속 계심’을 의미하며, ‘장차 오실 이’도 현재분사로서 ‘현재 계속 오고 계시는 분’의 의미로 현재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설명은 조상(아브라함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 즉 언약에 근거하여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 칭호인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3:14-15)을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은 단순히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후일에 될 일’(단2:18)을 이미 성취하셨고, 현재 그것을 성취하고 계시고 그것의 완전한 성취를 위해 현재 오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새 언약대로 됩니다.
그리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4)은 하나님 보좌 앞에 계신 성령님을 의미하는 데, ‘일곱’은 성령님이 일곱 분이 아니라 ‘완전하고 충만하시다’라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입곱 교회(4)도 일곱 교회가 아니라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세 가지 칭호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5).
첫째는 ‘충성된 증인’(5)입니다. ‘증인’은 순교자 의미를 함축하기에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고난과 핍박의 상황과 부합됩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구속 언약에 신실한 증인이십니다. 이것은 고난의 성도들에게도 요구됩니다(1:9).
둘째는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5)입니다. ‘먼저 나시고’는 첫 태생(장자), 첫 열매로서 그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장자’는 그의 동생들을 대표하며, ‘첫 열매’는 나머지 추수를 대표합니다. 고전15:20절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과 그의 부활은 우리를 대표하며,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셋째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5)입니다. ‘머리’는 통치자(왕)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땅의 임금들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요한은 이 복음에 근거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부터 복음의 성격을 나타내는 ‘은혜’와 복음의 열매인 ‘평강(살롬)’이 현재 우리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3. 복음의 찬양입니다(5b-8)
요한은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복음의 열매)에 대한 찬양으로 이 편지(요한계시록)의 주제를 소개합니다. 먼저, 5b-6절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요한은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6)하며 찬양합니다. 그는 그에게 찬양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의 복음의 열매(구원)를 소개합니다.
첫째,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들)에서 우리를 해방(구속)하셨습니다’(5). 여기서 ‘사랑하사’는 현재분사이며, ‘해방하셨다’는 부정과거분사입니다.
둘째,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6).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복음으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나라’(1:9)로 삼으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서 천국에서 이미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여 이미 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제사장’으로 이미 삼으셨습니다(6). 베드로도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벧2:9)라고 증언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은 ‘나라와 제사장’이 될 것이라는 조건적인 약속을 받았습니다. 출19:5-6절입니다. “(왜냐하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스라엘은 율법 언약을 지키지 못하였기에 이것들에 대하여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미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서 ‘삼으신’(6)은 부정과거분사입니다. 이는 그가 ‘그의 피로’(5) 율법 언약을 다 이루어 새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나라(왕)와 제사장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신분)의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휴거’라는 단어가 요한계시록에 들어있지도 않지만, 설사 있다고 해도 누가 휴거를 할까요? 은혜의 복음으로 이미 나라(왕)와 제사장인 우리가 휴거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서 다른 조건에 의하여 휴거 된다고 주장을 하면, 그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이요, 요한계시록이 경고하는 재앙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22:18-19).
그러면, 성도 여러분, 어떻게 나라(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충성된 증인’(5)이 되는 것입니다. 계12:11절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이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기 아니하였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함으로 이미 나라와 제사장인 우리가 악한세력을 통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은 4절에서 시작된 인사와 찬양을 마무리합니다(7-8).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과 이미 성취된 그의 구원 열매들인데, 7절은 그를 통하여 미래에 이루어질 내용이며, 8절은 이것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응답(허가)입니다.
먼저 7절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여기서 ‘오시리라’는 현재형으로 ‘오시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보겠고’ ‘볼 것이요’ ‘애곡 하리라’는 다 미래형이므로 ‘오시리라’는 미래형을 사용하여야 하지만, 현재형을 사용하여 그의 오심의 가까움(임박함)을 강조합니다.
단7:13절과 슥12:10절을 배경으로 한 7절은 각 사람의 눈, 심지어 그를 찌른 자들도 그를 보게 되는 공개적인 오심입니다(마24:27, 30). 이것은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 대한 그의 마지막 심판을 위한 오심입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예언)에 대하여 다시 한번 ‘그러하리라 아멘’으로 화답하여 그의 오심에 대한 확실함을 강조합니다.
이제 주 하나님께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뿐만 아니라 요한이 소개한 요한계시록의 주제에 대하여 확실함을 선언(허가)하십니다. 8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여기서 ‘주’는 ‘언약의 여호와’를 의미합니다.
우리 언약의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서 세 가지로 자기 선언하시면 응답하십니다. 첫째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창조와 구원을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며 하나님이 완성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4절과 같이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십니다. 셋째는 ‘전능한 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창조와 구속을 완성하신 것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이 그림책으로 전하는 우리 복음은 너무 확실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같은 복음 찬송 구절이 요한계시록에 반복되어 우리가 복음의 관점에서 읽어가도록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의 서문(1:1-8)을 살펴보았는데,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인지를 이해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하나님의 복음)입니다(롬16:26). 구약을 배경으로 상징과 비유로 기록된 묵시록(그림책)입니다. 그러나 미래보다는 현재, 즉 회개의 구원을 위한 증거를 강조하는 예언의 말씀(복음)입니다.
그리므로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에서 상징과 비유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문맥(이미와 아직), 그리고 그에 대하여 약속한 구약 배경에서 해석하여야 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만화나 영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상징이나 부분에 매몰되지 말고 전체 이야기를 읽어가야 합니다. 영화와 같이 특정한 부분을 알지 못하여도 그 내용을 아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복음)를 더욱 깊이 이해하여 어둠의 세상에 대하여 충성된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92장을 부르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