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나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마린보이 박태환은 수많은 메달을 획득해서 국위선양을 했고, 개인적으로도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네 번째 올림픽에 도전한 박태환은 좌불안석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했으며, 육체적으로도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박태환은 2014년 9월 실시한 금지약물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타나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선수자격 정지를 당했다.
박태환은 대한체육회와 국가대표 선발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에 심신이 지쳤고,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국민들 앞에 사과했다. 징계 기간에는 마땅한 훈련장을 구하지 못해 제대로 물살을 가르지 못했다. 이는 리우올림픽의 결과로 여실히 드러났다. 박태환의 심경 고백은 듣기에 참혹할 만큼 뼈저린 심경고백이다. “물 밖으로 못나오겠더라. 너무 죄송한 마음뿐이다. 경기 후에 전광판 기록을 보기가 두려운 줄 이제 알았다. 어렵게 기회를 얻었는데 개인적으로 아쉽고 슬픈 면이 있다”
박태환은 이번에 힘겹게 출전했으나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와 200m에 이어 100m에서도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자유형 1,500m 경기는 결국 기권했다. 이전에 알던 박태환이 아니어서 시청자들조차 낯선 장면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호적수 중국의 쑨양의 눈부신 활약과 미국의 은퇴했다 복귀한 펠프스가 진기록을 경신해나가는 것을 보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들의 선전을 바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수영장 물보다 더 많은 좌절과 회환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 분명하다.
세계최고기록을 37번 경신한 기록의 미국의 신화적인 수영선수 펠프스는 미국 볼티모어에서 경찰인 아버지와 중학교 교장인 어머니 사이에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곱 살이었던 1992년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를 치료하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에 얼굴을 담그지 못해 배영부터 배웠다. 수영 황제라고 불리는 그의 얼마나 초라한 시작인가. 그는 수영밖에 모르는 선수인데 훈련 시간이 길어 물속에서도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방수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를 만큼 열정적으로 연습한다고 한다. 이후 펠프스는 승승장구하며 세계 수영을 휘어잡아 얼마나 메달을 많이 땄는지 어디에 메달을 두었는지 헛갈릴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도 한때 심각한 약물중독에도 빠지고,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방황도 거듭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가정과 자녀는 그를 안정시켰고, 큰 위안이 됐다. 이번 경기장에서 직접 두 살배기 어린 아들을 보며 만면에 웃음을 띄우던 펠프스는 이미 3관왕에 올랐다. 400m 계영에서 금메달을 시작으로 접영 200m와 800m 계영에서 모두 정상에 오르며 금메달 3개를 획득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말한다. 각본에 없었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좌절과 나락의 경험은 박태환에게 뼈아픈 기억과 쓰라린 생채기를 남겼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영광을 미리 맛보았던 그이기에 새로운 결단으로 독수리처럼 새롭게 비상할 것을 믿는다. 박태환은 4년 후 2020년 도쿄올림픽에 도전의사를 밝혔다. 그러므로 아직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박태환은 4년 뒤 그의 나이 32세로 선수로서는 노익장을 발휘해야 하는 셈이지만 ‘상처뿐인 영광의 낯선 성적표’를 처음으로 받아든 박태환은 분명히 재기하고 부활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호적수 마이클 펠프스가 은퇴 후 화려하게 재기했듯이.
기사입력: 2016/08/11 [16:18] 최종편집: ⓒ 광역매일 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182759§ion=sc30§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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