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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96/180821]러시아, 바이칼, 시베리아횡단열차
러시아를 5박6일 순식간에 다녀왔다. 아니, 언감생심(言敢生心), 러시아일까? 그 광대한 나라의 몇 십분의 1일 도시 3곳을 주마간산격으로 보았을 뿐이다. 러시아는 1991년 이전까지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C.C.C.P)였다. 이른바 소련(蘇聯), 미(美)․소(蘇) 양대 강국으로 세계를 냉전(冷戰)으로 이끈 주역국이었다. 그 이후, 사회주의를 극적으로 포기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어 주변국들이 갈래갈래 찢어졌다. 소련, 아니 러시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나는 영화 ‘닥터 지바고’ ‘전쟁과 평화’의 나라,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와 도스도예프스키가. 안톱 체홉이, 고골리가,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던 국민시인 프쉬킨이 떠오르는데, 아내는 차이코프스키가, 샤갈이 떠오른단다. 시베리아횡단열차나, 나폴레옹의 침략과 초토화작전, 레닌의 볼쉐비키혁명과 스탈린독재, 고르바초프의 한반도지도처럼 생긴 머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이라는 바이칼호의 알혼섬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여름여행은 아니었던 듯하다. 혹한기 겨울에 ‘우아직’이라는 전용버스로 꽁꽁 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질러 알혼섬에 갔어야 했다. 아쉬움을 떨치고, 5박6일의 여정(旅程)을 정리해 본다. 먼저 ‘숫자와 키워드로 본 러시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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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22: 1917년 10월 마르크스사상에 기반한 20세기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도아래 볼쉐비키들에 의해 일어났다. 하지만 혁명의 진짜 주체는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아닌, 민중이었다. 블라디보스톡 혁명광장에 우뚝 선 동상의 주인공은 일반시민이며, 그 옆에 칼과 망치와 낫을 든 노동자들과 여성군인들도 있었다. 그때까지 여성들도 군대를 차고 남녀차별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내전은 5년 동안 계속되어, 마침내 1922년 사상 최초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했다.
1941-1945: 세계 제2차대전이 진행된 연도이다. 소련은 이 기간에 군인 860만명을 포함해 2660만여명이 죽었는데, 2차대전 전체 사망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당시 독일군에 포위된 상트페테르부르크시(구 레닌드라드)는 ‘900일 봉쇄’로 도시인구 3분의 1이 포격과 기아, 혹한으로 희생됐다고 한다. 주요 도시 6600여곳에 ‘영원의 불꽃’(365일 하루도 꺼지는 날이 없다)을 설치, 국가적으로 사망자들을 위로하며 그 넋을 기리고 있다. 나윤성 가이드 얘기로는, 신혼여행 첫 번째 필수코스란다. 가스로 운영하는데, 실수로 몇 시간 불이 꺼트린 기술자는 6개월 동안 징역을 살았다고 한다. 하바로프스크,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톡 3곳에서 그 불꽃을 보았다. 불꽃 앞과 뒤 기념탑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불꽃을 설치, 일제하 독립투사, 한국전쟁과 광주항쟁, 제주 4․3항쟁 희생자 등의 고귀한 넋을 달랠 수 있을까.
4․4․4 법칙: 러시아 여성들은 결혼 후 허리가 40인치 이상이 안되면 허리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다는 말이 있다한다. 또 술이 40도 이상이 안되면 술도 아니고, 기온이 영하 40도가 안되면 추위도 아니라고 한다. 소유진 가이드는 우스갯말로 이혼을 4번 이상 안하면 이혼한 것도 아니라는 말도 있다고 했다. 이혼율이 전체의 50%를 웃돌 정도로 흔한 일이다. 평균수명은 남자가 64세이고 여자는 72세. 십수년 전 남자 평균수명이 50대 중반이었는데, 최근 엄청 늘어난 것이라 한다. 아무래도 혹한(酷寒)에 독주(毒酒)를 엄청 즐긴 탓일 듯.
9288: 시베리아 횡단열차 전체 길이 9288km. 시발역이자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톡 역사에 ‘9288’을 크게 새긴 표지석이 있다.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기념촬영하기에 바쁘다. 모스크바역까지 시속 80km로 달려도 꼬박 6박7일이 걸린다. 정거장은 60여개. ‘닥터 지바고’에서 보았으리라. 폭설을 헤치고 칙칙폭폭, 하염없이 달리는 환상의 열차, 꼭 한번 타고 싶었다. ‘닥터 지바고’를 몇 차례 보았다는 한의원 원장친구는 승차 후 대번에 “실망했다”는 첫 소감을 날렸다. 하바로브스키에서 밤 9시 출발, 블라디보스톡 아침 8시 도착, 11시간 승차. 객실 한 칸마다 1, 2층 침대 4명씩 취침. 모든 것이 불편하니 그저 눈만 붙이고 있어야 할 판. 겨우 ‘열차 맛’은 보았으므로, 다시는 타고 싶지 않다. 같은 객실의 큰곰같이 덩치가 큰 러시아인은 ‘노랑내’가 심해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극동지방의 군사적 의의의 증대(부동항 개척), 식민, 대중국무역 등을 목적으로 계획됐다. 1891년 착공, 1897년 부분개통했다. 황제가 블라디보스톡 기공식에 참석한 것을 기념한 ‘개선문-모스크바로 가는 문’이 여직 있다. 그 앞에서 또 “찰칵”. 하여간 세계의 명물이다.
C-56: 러시아알파벳 C는 영어의 S자이니 S-56이다. 2차대전 당시 백전백승의 러시아 잠수함으로 유명하다. 이제는 은퇴한 잠수함은 극동함대사령부 옆 ‘잠수함박물관’이 되어 관광객 눈길을 끈다. 어뢰와 기관실 등 구석구석 볼 수 있었을텐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수리를 한다며 문을 닫아 유감. 12시 정각에 함포에서 정오를 알리는 포를 한 방 쏘는데, 가까이서 들으니 장난이 아니다. 한 친구는 “포 소리를 들으니 너무 무서워 전쟁은 절대로 나면 안되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잠수함 앞에는 영원의 불꽃에 있는 전사들의 이름과 기념비가 즐비하다.
러시아: 1991년 소련이 해체되어 독립국가연합(CIS)을 구성한 공화국의 하나로 그 주축이 되는 국가. 면적 1710만㎢, 한반도의 77배. 구 소련의 약 4분의 3, 인구 1억4천만명, 수도 모스크바, GNP 1만달러. 러시아슬라브족이 주류이며 대부분 러시아정교회 신봉. 공용어 러시아어. 화폐 루블(1루블=한화 약 20원). 주식은 빵과 수프. 맛도 되게 없다. 허나 그루지야(조지야)공화국 빵만큼은 먹을만했다.
러시아 국기: 국기는 흰쌕, 파랑색, 빨강색이 가로로 2:3 비율로 된 삼색기이다. 하얀색은 천상세계를 상징하며 고귀함, 진실, 고상함, 솔직함, 자유, 독립을 의미하고, 가운데 파랑색은 하늘을 상징하며 정직, 헌신, 순수, 충성을 나타낸다. 마지막 빨강색은 속세이며 용기, 사랑, 자기 희생을 의미한다. 국기의 역사도 제법 사연이 있다. 이 국기는 1705년부터 1917년까지 사용되었다. 구소련의 국기를 기억하시는가. 빨간색 배경 왼쪽에 낫과 망치를 넣은 비율 1:2의 국기깃발,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사용하였다. 해체이후 제정러시아에서 쓰던 국기를 재사용, 오늘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문양 쌍두독수리: 원래는 동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의 문양이었으나,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 소피아와 러시아 이반 3세가 결혼하면서 러시아제국(당시 모스크바 대공국)이 동로마제국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며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만이 동양과 서양을 두루 살펴보며 평화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러시아정교회 십자가: 기독교의 십자가는 보통 가로막대와 세로막대가 서로 교차하는 형태인데, 러시아정교회 십자가는 세로막대 1개에 가로막대 3개가 교차하는 모양이다. 맨 위의 조금 짧은 가로막대는 유대인의 왕 예수의 죄명이 적혔다하고, 가운데 가로막대는 손목을 못박은 처형도구이며, 맨 아래 기울어진 가로막대는 예수의 좌우에 있던 죄수를 나타내는데, 예수를 칭송한 강도는 천국으로, 예수를 비방한 강도는 지옥에 떨어졌음을 상징함. 위를 향한 오른쪽 막대가 예수를 칭송한 강도.
바이칼호: 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한민족의 시원으로 알려진 거대한 호수. 길이 636km, 최장폭 79km, 최대 수심 1.6km. 담수량 세계 최다. 한반도 면적의 7분의 1. 유인섬은 알혼섬이 유일. 원주민은 부르한족. 호수 면적이 남한의 40배. 330여개의 하천이 유입되나, 유출되는 곳은 앙가라강이 유일. 바이칼 고유의 동식물 수백종. 바이칼물범은 포유동물로 유명. 오물, 철갑상어, 바이칼새우 등이 유명하다. 조류 300여종 서식. 겨울에는 호수면 기차 통행. 성황당, 솟대 등 샤먼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음. 생김새도 우리와 비슷하고, 원주민들과 한민족의 유전자가 99% 일치하는 것으로 봐, 우리 민족이 바이칼호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아무르강: 러시아연방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하여 중국 동북의 국경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 타타르해협으로 들어가는 강. 북아시아의 젖줄같은 강. 길이 4,500km. 강의 절반이 러시아 경유, 4분의 1은 중국의흑룡강이다. 4분의 1은 몽골지역으로 흐르며 ‘하라무렌강’이라 부른다.
앙가라강: ‘바이칼의 딸’로 불리는 바이칼호 하류 셔먼바위 부근에서 유출되는 유일한 강. 댐이 3개 있으며 이르쿠추크를 관통하여 예니세이강으로 유입된다. 전설에 의하면, 아들 330여명이 있는 ‘바이칼’ 이름의 할아버지에게 고명딸이 있었는데, 이름이 ‘앙가라’였다. 앙가라는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자 결사반대하다 아버지가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함. 혹은 간신히 도망하여 앙가라강을 따라 내려가 예니세이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셔먼바위는 정상에 죄인들을 묶어놓았는데, 하루가 지나도 살아 있으면 용서해 주었다. 원래는 10m 높이였는데, 하류에 댐을 막자 지금은 보일락말락. 체르스키전망대에서 볼 수 있다. 기념사진 찍기에 기가 막힌다.
키릴문자: 9세기경 동로마제국의 선교사 키릴루스(827∼869)와 메토디우스(826∼885) 형제가 슬라브족 포교에 나서며, 성서를 슬라브어로 번역하기 위해 그리스 문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자를 만듦. 형제 이름을 따 ‘키릴문자’라 하고, 그들은 ‘러시아의 세종대왕’으로 칭송을 받는다. 영어 알파벳도 아니고, 여행 내내 갑갑해 죽는 줄 알았다. 초중고에서 영어를 배우긴 한다는데, 써먹는 사람도, 알아듣는 사람도 전혀 없다.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을 다녀봤는데, 영어면 영어, 한자면 한자가 두루 통하니 큰 불편을 못느꼈으나, 러시아는 영판 아니다. 겨우 알아가지고 온 것이 러시아 알파넷 R이 영어의 P(아라비아숫자 다음의 P는 루블을 표시) , C가 S라는 것 정도이다. 불편하지만, 러시아어까지 배울 염은 없다.
신안촌기념비: 1860년대 극심한 가뭄으로 함경북도 사람들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집단촌을 이루고 개간하며 농사를 지었으나, 러시아에서 강제로 이주시킨 곳이 신안촌이다. 이곳에서 거부 최재형 선생이 안중근 의사 등 항일독립투사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것을 기리는 비. 찾은 날이 마침 비 내리는 광복절이어서 마음이 울적하고 감동이 더했다. 3‧1운동 80주년을 맞아 건립한 역사적인 장소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는 정부의 지원이 한푼 없었다한다. 프로그램에 없던 이곳을 안내하고 해설해준 김정운 가이드가 고마웠다. 1937년 스탈린정권이 한인 13만여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한 달여 열차 속에서 4천여명이 죽어가고, 생존자들은 카자흐스탄 등의 황무지에 아무 대책없이 내팽개쳐 ‘고려인’의 명맥을 잇고 산 아픈 역사가 눈물겹다. 최재형 선생은 노비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를 둔 천민출신으로 구한말 갖은 천대를 받다 연해주에서 엄청난 재산을 이루고, 이후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도우며, 본인도 독립운동에서 나섰으나 1920년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일행은 기념비를 세운 공로자의 부인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워 기념사진을 찍고 십시일반 헌금을 내었다.
간단한 인사말: 안녕하세요?→ 드드라스트 브뤼체
굿모닝→ 더불어 우떠라
고맙습니다→ 스바스바
화장실→ 뚜알렛
러시아인 이름: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이름) (부친이름 뒤 ‘비치’붙임) (성)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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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지난 8월 11일(토) 오전 10시 30분, 인천제1공항 대합실. 지난해 환갑기념 12쌍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든 5쌍 친구들이 반갑게 또 만났다. 올해의 여행컨셉은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을 찾아서-다시 ‘한 갑(甲)’에 들어가며”. 학교 일정 등으로 몇 쌍의 친구가 빠져 서운하지만, 할 수 없는 일. 출발이다. 언제나 출발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일상의 해방(解放)과 일탈(逸脫)은 언제나 즐거운 일. 가자! 바이칼호로, 시베리아횡단열차로! 자그마한 ‘오로라항공’ 러시아 비행기. 하바로브스키까지 3시간 35분 소요. 1차 목적지인 이르쿠츠크에 가려면 밤 11시 35분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차 1시간. 가이드가 시내 구경을 하고 저녁을 먹자 한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것은 바보같은 짓. 하바로프스크는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두 번째 큰 도시. 인구 70만명. 1649년 이곳을 발견한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을 땄다. 그의 동상이 아무르강변에 서있다. 아무르강 전망대에는 시베리아철도를 처음 제안한 아무르스키동상도 있다. 이 나라는 곳곳이 광장이고 동상뿐이다. 사회주의는 원래 그런지? 관광코스도 광장-광장-광장, 동상=동상-동상, 성당-성당-성당, 게다가 불꽃까지 더하니, 단조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관광’에 대한 기반시설 조성이나 의식도 되어 있지 않는 듯하다. 불결한 화장실이라니(게다가 걸핏하면 20루블을 받는다), 천편일률적인 빵과 수프 식사라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밤 비행기로 이르쿠츠크 도착, 새벽 2시라던가. 한 친구는 헤어지며 “황홀 밤”이라고 외쳤지만, 환갑, 진갑에 그게 할 농담(弄談)인가. 에끼놈!
2일차: 호텔식 조식도 우리 입맛에 껄쩍지근하기는 마찬가지. 어제 담아갖고 온 새파란 깻잎김치가 인기다. 해마다 여행을 하다보면 ‘배려의 천사(天使)’들이 있다. 한 형수(우리는 모두 친구의 부인을 형수라 부르는 미덕을 15년째 지니고 있다)는 커피의 달인으로, 오지랖 넓은 한 형수는 밑반찬 달인으로, 닥터인 한 형수는 긴급 응급치료를 갖추고 있고, 한의원 원장님은 침세트를 완비하고 있다. 오전 10시 출발, 바이칼호에 가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딸찌 민속박물관’. 자작나무숲길을 트레킹하는 것은 삼삼하다. 시베리아에 처음 정착하던 시기의 주택, 옷 등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통나무를 반쪽으로 쪼개 시체를 넣고 나무 위에 놓아두는 풍장(風葬)의 풍습이 이채롭다. 댐 건설로 사라지게 된 목조가옥 몇 채를 옮겨 놓았다. 드디어 바이칼호수에 도착, 유람선을 1시간여 탔다. 파도까지 거센 데 이것이 어찌 호수인가? 바이칼호는 타타르어로 ‘풍부한 호수’라는 뜻이란다. 지구 담수(淡水)의 20%를 차지, 세계 최대의 크기와 수심,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세계 제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려 우리가 왔다. 생물의 70%가 고유종이란다. ‘진화의 살아 있는 박물관’도 둘러본다. 인간의 사체를 순식간에 해체한다는 손톱만한 ‘식인새우’를 보는데 오싹해진다. 재래 어시장은 차라리 가지 않았던게 나았다. 생선 오믈을 구워 파는데, 그 지독한 냄새와 연기라니, 쇼핑하고 싶은 염이 없다. 그저 석류와 납작복숭아로 위안을 삼는다. 바이칼호와 도로둑 사이 좁은 곳에 비키니차림의 러시아인들이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긴다. 여성들의 덩치는 큰곰와 겨룰만한다. 바이칼호를 제대로 보려면 가장 가까운 도시인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해야 하고, 알혼섬을 가려면 5시간이 넘게 걸린다한다. 우리는 프로그램대로 하류에서 유람선 1시간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게 이번 여행중 가장 아쉬웠다. 저녁밥은 한식. 현지식 점심을 커버하여 다행이다. 무궁화 4개 노스시(North Sea) 호텔로 돌아온 후 일동은 모두 모여 러시아 입성을 환영하는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보드카 한두 명을 깐 것은 물론이다. 필자는 웬일인지 낮의 피로로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곤피곤피, 일찍 잠에 들어, 재미난 후일담을 알지 못한다. 단지, 친구들끼리 이역만리에서 수다떠는 것만큼 재밌는 것은 없다는 것만큼은 안다.
3일차: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역사 공부를 위해서도 가볼만 하다. 가이드의 해설을 들어보자. 19세기 전반기 농노제와 전제정치로 빈곤한 삶에 허덕이던 러시아제국, 나폴레옹전쟁 후 진보성향의 청년귀족이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1816년 ‘해방동맹’ 결사활동을 한다. 1825년 12월 알렉산드르1세가 사망하고 니콜라이1세에 충성을 거부하며 며 일부 청년장교들이 입헌군주제와 농노제폐기 등을 주장하며 봉기를 일으킨다. ‘12월의 난’으로 불린다. 봉기는 실패하여 5명이 처형되고 31명은 수감, 나머지는 시베리아로 유배당한다. 부인들은 모두 데카브리스트 혁명가인 남편들과 함께 죽음을 맞거나 유배를 자청했다고 한다. 이 수도원은 이들이 묻힌 곳이다. 황금색 돔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 또한 러시아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건설한 알렉산더 3세의 동상도 보아야 한다. 주청사 뒤편에 있는 2차대전때 숨진 참전용사 5만여명을 기리는 ‘영혼의 불꽃’도 필수 관람코스. 자정시간 하바로프스키행 비행기를 타려면 시간이 널널하다. 현지식 저녁시사(점점 한국반찬이 없으면 곤란해진다. 뜨거운 물에 누룽지를 풀어먹는 영리한 친구도 있다. 이젠 고추장이 등장할 때이다) 후 카페거리 ‘나무집 마을 130번가’ 에서 일행을 풀어놓았다. 카페거리는 컨셉이 좋아, 관광명소로 각광받을 만하다. 1879년 큰 화재때 소실된 도심의 목조 건축물들을 도시 건설 350주년을 기념하여 옛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한다. 주 상징동물인 ‘담비를 물고 있는 호랑이’ 동상 앞에서 촬칵촬칵. 수제맥주를 마실 타임이다. 홀짝홀짝 맛이 좀 색다른 듯하다. 행인들 감상하는 것도 별미(別味)이다. 이르쿠츠그 작별, 느긋하게 공항에서 한담들을 나누다, 비행기는 새벽 1시에 출발하다. 첫 번째 외박인지라 형수들은 단장(丹粧)에 신경을 쓰느라 바쁘다.
4일차: 새벽같이 러시아인 가이드 소유진씨가 마중나와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언어대학원 재학중, 한국여성과 5년간 교제중, 귀화할 생각이란다. 2년 배웠다는 우리말, 제법 잘 하지만, 특유의 뉘앙스나 인토네시연은 우리를 웃게 만든다. 하바로프스키지역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은 볼만하다. 자연, 민속, 고고학, 역사 등에 관한 전시물이 14만종이라던가. 매머드의 상아를 만져보고, 사진을 찍고, 고대 원주민들의 생활양식도 훑어보고,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아무르호랑이(사실 백두산호랑이다) 박제도 볼 수 있다. 아무르강 공원에는 북한의 김정일위원장이 다녀갔다는 표지석이 있다. 기념으로 그 앞에서 또 “촬칵”. 하바로프와 아무르스키 동상은 전전날 구경을 했으니, 볼만한 것도 아니고, 언제 우리가 이렇게 장대한 아무르강을 와 보겠냐며, 그제 바이칼호 유람선에 이어 유람선을 탔다. 선상의 캔맥주와 시원한 강바람, 이런 망중한(忙中閑)이 쉬운 일인기? 더구나 이역만리가 아닌가. 그저 아무 생각없이 힐링이나 하자. 콤소몰광장에 있는 성모승천사원은 버스로 스치고, 라젠스키성당을 향하다.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정교회 구세주성당이란다. 맨중앙 황금돔은 주님을 상징하고, 둘러싼 4내의 작은돔은 ‘사복음서(마가, 마태, 누가, 요한)’를 나타낸다고 한다. 아름다운 내부모습은 볼만하다. 사진촬영도 금하고 모자도 벗어야 한다. 천장까지 가득 채운 성화들은 대체 어떻게 그렸을까. 곳곳에 레닌광장이다. 광장앞 기념물 등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어느 커피점에서 한국의 폭염을 얘기하며 시원한 바람에 마음과 몸을 맡긴다. 피서(避暑) 한번 제대로 온 셈이다. 러시아식 돼지고기구이 ‘샤슬릭’은 제법 맛이 있었다. 감자구이도.
5일차: 4인1실, 그 악명 높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다. 밤 9시 출발, 몇 개의 역을 거쳐 내일아침 8시 도착. 11시간이 걸린다한다. 제법 신기하기조차 한 체험의 시간.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이라는 추리영화가 생각났다. 불편은 해도 수납시설 등은 요목조목 잘도 해놓았다. 한없이 칙칙한 건물이지만, 혁명 이전 지어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한다. 아침 9시에 먹는 한국의 설렁탕. 전망대에서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조망하다. 2012년 APEC회의가 열릴 때에야 비로서 금각교 등 다리 3개를 놓아 도시와 도시가 연결되는, 획기적인 발전을 한 도시란다. 운송업이 주요 산업. 공항철도, 국제터미널 등 교통의 요지일 수밖에 없다. 소련의 목표는 부동항(不凍港) 확보. 실제로는 얇은 얼음이 어는데 쇄빙선(碎氷船)이 깨고 다닌다고 한다. 이제는 마음놓고 쇼핑 좀 하자. 보드카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 2만5천∼3만원 내외.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 ‘마트르슈카’ 큰 인형 속에 쌍둥이인형이 크기별로 5개부터 10개까지 들어 있다. 재밌다. 다산(多産)을 상징한다고 한다. 며느리에게 선물을 하고, 그 의미를 알면 어떨까? 며느리가 아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에게 주려고 작정하다. 3600루블. 우리돈으로 7만원이 좀 넘는다. 그 다음이 차가버섯이다. 당권(糖權)을 잡아 애를 먹고 있는 친구의 추천으로 엑기스 6병을 세트로 사다. 킹크랩 살만 모아 냉동으로 파는 식품도 있는데, 맛이 정말 좋다. 잣과 진주크림이네 뭐네는 형수들의 관심사항. 오호츠크해 해변가인지라 바람이 거세다. 마지막 밤, 호텔에서 그냥 보낼 수가 있는가. 또 1년만에 만날지, 6개월만에 만날지 모르는 친구들이 아닌가. 10명이 좁은 한 방에 모여, 컵라면을 끓인다, 보드카를 마신다, 과일을 먹는다, 부산하다. 그렇게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의 마지막 밤은 깊어간다. 내일은 아침부터 서둘러 귀국. 띵호아(VERY GOOD)!
6일차: 마지막으로 우정(友情) 이야기를 하자. 2007년이었다. 고교 동창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을 시작한 것은. 1착이 인천항에서 동방호를 타고 위해(威海)와 단동(丹東)을 거쳐 백두산(白頭山)을 가는 것이었다. 모두 23명이었던가. 한밤을 가르는 배에서 배낭들을 터니 플라스틱소주병이 60개가 나왔던가. 비록 천지(天池)에 올라 날씨탓에 그 장엄한 광경은 보지 못하였으나, 버스 한 대를 대절, 우리끼리 돌아다니는 동북삼성(東北三省) 여행이 얼마나 재밌었던지, 1년에 한번 해외여행이 그후로 쭉 이어졌다. 2008년 부산에서 배를 타고 교토-나라-오사카를, 그 다음에는 베트남 하롱베이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소림사가 있는 숭산을, 장가계를, 면산과 태항산을, 태산을, 타이페이를 훑으고, 지난해에는 환갑기념으로 12쌍이 동유럽 5개국을 9박10일로 다녀왔다. 우리끼리 다니는 통에 우리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수 있는게 장점 중의 장점이었다.
이번 러시아여행은 솔직히 말하면, 바이칼호 중점 상품이 아닌 관계로 허비하는 시간이 많았다. 말하자면 비효율적인 여행. 바이칼호 알혼섬에서 하루 자고 전통 사우나도 할라치면 겨울이 좋겠다. 또한 이르쿠츠크 직항을 타면 일정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아직 관광산업에 눈을 뜨지 않는 것도 문제인 것같다. 벌써부터 올 겨울은 어디로? 내년 여름은 어디로? 모두 인천공항에서 찢어지기 전에 가장 큰 이슈는 그것. 내년 1월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2박3일 오케이? 대세(大勢)다. 아, 이런 친구부부들과 같이 늙어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서로서로 이무러서 좋다. 무슨 짓을 해도 크게 흉이 안돼서 좋다.
공자(孔子)님이 일찍이 말씀하셨다. 친구는 도움이 되는 좋은 친구와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친구가 있다. 어떤 친구가 나에게 이로운 친구인가? 정직(友直)하고, 성실(友諒)하며, 안 것이 많은(友多聞)친구가 좋다(익자삼우益者三友라고 한다). 그러면 어떤 친구가 나에게 손해되는 친구인가? 편벽(友便辟)하고, 남에게 아첨하고 불성실(友善柔)하며, 말이 앞에 오고 실속이 없는(友便佞) 친구가 도움이 안되는 친구이다(손자삼우損者三友라 한다). 곰곰 생각해보면, 나의 주변에는 친구에게 서로 더 못줘 안달하는 익우(益友)들만 있다. 익우는 백 명도 적고, 손우(損友)는 한 명도 많다는 말(益友百人少 損友一人多)도 있다. 그런가하면 논어(論語) 안연(顏淵)편에 있는 말도 새겨 보자. ‘학문을 통하여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하여 인덕(仁德)을 쌓는다’(以文會友 以友輔仁). 얼마나 뜻이 깊고 멋진 말인가? 역시 성현(聖賢)의 말씀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런 것이 소확행(小確幸.소소하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니, 대확행인가? 벌써부터 내년 여행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