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24.9.22(일)10;00-15;50
★코스;지하철2,6호선 합정역-절두산순교성지-망원한강공원-월드컵공원-고양대덕생태공원-해병대 행주도강전첩비(유턴)-
월드컵공원-홍제천-불광천-은평평화공원(윌리엄 해밀턴 쇼대위 기념동상);30km
★참가;마라톤킴,쉐도우수, 람보림, 오벨로, 스머프차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 내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가족 묘에서 거수경례로 경의와 감사 표시-
9월 장마가 끝난 후 폭염이 사라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오늘이 추분(22일)이다. 기상학적으로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추분을 맞이하여 바이콜은 서울 수복작전지역 중 행주도하작전과 녹번리 전투에 답사한다. 74년전 이맘때 한미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서울 수복작전을 위하여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서울 수복작전은 9월16일부터 28일까지 한국 해병대. 국군제17연대, 미제1해병사단, 미제7사단이 참가하였다. 미해병 제1사단(한국군해병 포함)은 김포비행장과 영등포 방면으로,
미제7보병사단과 국군 제17연대는 과천시 관악산 방면으로 진출한 후 한강을 도하하여 적을 포위 섬멸하는 것이다. 여정의 시작은 지하철 2,6호선 합정역이다. 바이콜 전사 5명이 모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으로 향한다.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호레이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등 구한말 복음의 씨앗으로 헌신한 벽안의 선교사들이 안장된 개신교 성지다. 이 묘원은 134년 전인 1890년 7월28일 조선 최초의 의료 선교사 존 헤론이 묻히면서 조성하기 시작했다. 현재 양화진 묘원에 선교사 가족 145명이 잠들고 있으며,
이 중 윌리엄 얼 쇼와 부인 그리고 아들 쇼 대위도 포함되어 있다. 오늘이 74년 전 윌리암 해밀턴 쇼 대위가 서울 수복작전 중에 전사한 날이다.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친 쇼 대위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경의와 감사를 표했다. 람보림은 윌리엄 해밀턴 쇼대위의 가족사와 쇼 대위의 일대기에 대하여 구수한 입담으로 일목요원하게 설명해주는데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케하였다. 람보림은 역사문화에 대한 일가견이 있어 박학다식하다. 양화진 옛터로 향한다. 양화진 옛 터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였다. 영조 30년(1754)에는 한강 수로의 경비를 통해 수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이곳에 군진(軍鎭)이 설치되어 상비군이 주둔하였다. 이곳을 양화진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군진 옛 터의 일부를 장대석(長臺石)으로 구획해 놓았다. 다음 목적지는 해병대 행주도강전첩비다. 한강자전거길로 들어선다. 맑고 청명한 하늘이 반긴다. 한강 너머로 시야가 뻥터져 산뜻하다. 가을에나 볼 수 있는 멋진 풍경들이 펼쳐진다. 서늘한 바람에 페달링도 가볍다. 한강 자전거길은 언제나 붐빈다. 항상 안전을 위해서 전방을 주시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노인들은 인지능력과 순발력 저하로 넘어지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해병대 행주도강대첩비는 행주산성 입구 바로 맞은편에 있다.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는 6.25 전쟁 당시 한미해병대가 한강도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 빛나는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미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이 1950년 9월18일 오후 미제1해병사단에게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 북쪽 고지를 점령하라는 작전명령 제1호를 하달하면서 시작된다. 행주도하작전에 참가한 부대는 미제5해병연대와 한국해병 제2대대, 미해병사단수색중대, 미해병제1전차대대 A 중대 등이다. 미해병 포병 제11연대가 도하를 위해 직접지원한다.
연대 작전계획은 한강을 도하하는 즉시 125고지(덕양산)을 점령하고 이후 철로를 따라 서울 남동쪽으로 진격하는 것이다. 9월19일 사단수색대 도하정찰반 14명은 08시 125고지를 향해 최초 도하를 감행하여 적에게 발견되지 않고 도하하는데 성공한다. 호톤대위는 곧바로 사단수색중대에게 도하를 지시한다. 그런데 갑자기 125고지로부터 적의 기관총과 박격포사격을 받았다. 사단수색중대는 더이상 진출이 어려워 일단 김포쪽으로 철수한다. 미제5해병 연대장은 기습도하작전계획이 좌절되자 강습도하할 것을 결심한다.
적은 약 1개중대로 추산되었다. 9월20일 오전 4시 미해병 포병연대는 15분간 공격준비사격을 실시하였다. 제3대대에게 도하공격명령이 하달되었다. 당시 연대 지휘소인 개화산에는 미해병대 사령관 세퍼드 중장을 비롯해 알몬드 제10군단장. 스미스 해병사단장 그리고 많은 기자들이 모여있었다. 125고지를 공격한 제1중대는 적의 사격을 받고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오전 9시40분 200여명의 적을 사살하고 목표고지를 점령하였다. 미해병 제2대대와 한국군 해병대 제2대대도 오전 8시30분 미해병 56수륙양용차(LVT)대대 A중대와 함께 도하하였다.
한국 해병 제2대대의 임무는 미해병 제5연대의 측방과 후방을 엄호하는 것이었다. 미해병 제2대대는 연대 선두부대인 제3대대를 초월공격하여 화전리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21일 수색을 지나 서을의 서쪽을 감싸고 있는 안산, 연희고지(104m) 일대로 진격하면서 서울로 본격 향하게 된다. 윌리엄 해밀턴 쇼대위는 미해병 제5연대 3대대 정보장교로 행주나루 도하작전 후 216고지(녹번리)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했다. 녹번리는 지금의 은평구 녹번, 역촌, 대조, 응암동 일대이다. 해병대 행주도강전첩비에서 추억을 남기고 임진강 매운탕집으로 향한다.
여행에서 맛집은 빼놓지 않는다. 얼큰한 잡고기 매운탕으로 식보하고 은평평화공원(역촌역)으로 향한다. 수색중대장 맥몰린은 녹번리 전투에서 측면 타격을 위해 북괴군 매복조 색출이 필요하다고 판단 쇼대위를 순찰대에 포함시켰다. 순찰대가 녹번이고개를 앞서가고 본대가 뒤따를 때 북괴군 매복조가 불을 뿜었다. 쇼대위가 적의 총탄을 맞고 갑자기 쓰러졌다. 2시간동안 쌍방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미군은 일시 후퇴했고 전열을 가다듬어 6명의 해병이 '라이언 이병 구하기'에 나섰다. 부대가 쇼대위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의식이 없었으나 숨은 붙어있었다.
몸에 몇개의 총탄 흔적이 있었다. 내장 파열이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쇼의 전사 소식이 부산 미8군 군목으로 있던 아버지 윌리엄 얼 쇼(서위렴)에게 전해졌다. 한강이 보이는 김포비행장 근처에 가매장 하였다. 그리고 서울 수복후 양화진 선교사묘원에 이장하였다. 6년 후 윌리엄 얼 쇼(서위렴)는 녹번리를 찾아 쇼대위와 동료 3명의 전사한 곳에 전사비를 세우고 예배를 올렸다. 그 비가 지금 은평평화공원 쇼의 동상 옆으로 옮겨진 것이다. 군복을 입은 쇼대위는 환하게 웃고있었다.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선진국으로 발돋음한 자유대한민국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웃는지도 모른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윌리엄 얼 쇼의 아들로 1922년 6월5일 평양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웨슬리언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2차대전때는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종전 후에는 한국 복무를 자진하여 1947년부터 1948년까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생도들을 가르쳤다. 전역후에는 공부를 더하기 위해 하버드대학 철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8월2일 해군대위로 재입대하고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부모에게 쓴 쇼대위의 편지가 눈물이 핑돌정도로 감동을 선사한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중에 자유를 지키려고 분투하고 있는데 만약 제가 이를 도우려 흔쾌히 가지않고 전쟁 후 평화시에 선교사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제 양심상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일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고 있겠어요. 내 조국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않아요'. 쇼대위는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한국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받쳤다.
진정한 애국자요 호국영령이다. 한국어와 한국의 지리에 능통한 쇼대위는 인천상륙작전시 미극동군사령부 해군 정보장교로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해군에서 해병으로 전과하여 미해병 제1사단 5연대에 배속돼 서울탈환작전에 참가했다.1956년 대한미국 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에 추서됐고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을 받았다.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사령부는 2023년 4월 윌리엄 쇼 부자를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선정했다. 아바지인 서위렴 선교사는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군목으로 지원 입대해 한국 군대에 군목제도를 도입한 공을 인정 받았다.
현재 목원대학교 채플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대위의 기념 예배당, 기념 흉상이 세워져 충청권 호국보훈 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대전 목원대학교에서 윌리엄 해밀턴 쇼대위의 일대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7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 중이다. 단지 휴전 상태일 뿐이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적을 압도하는 강력한 국방력이다. 그리고 실전적 훈련을 통하여 적과 싸워 이기는 전투능력이다. 이는 한미동맹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바이콜 전사들과 여인동락하면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고 행복과 에너지가 넘친다. sd16 바이콜릭스(Bikeholics) 브라보!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와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을 향하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 내 윌리엄 해밀턴 쇼 가족 묘역에서 거수경례로 경의와 감사 표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가족사와 쇼 대위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람보림
윌리엄 해밀턴 쇼대위 가족 묘(부친, 모친, 쇼 대위)
쇼 대위 가족 이야기
양화진 옛 터(한강 수로을 방어하기 위한 상비군 주둔)
양화진 옛 터에서 한강 자전거길로 진입 중
월드컵공원 내 난지한강공원
망원한강공원
해병대 행주도강전첩비를 배경으로
임진강 매운탕
잡고기 매운탕과 밑반찬
불광천 자전거길
윌리엄 해밀턴 쇼대위 동상
역촌역에서 상황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