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도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렀다. 전광석화처럼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 성동고 16회 6반 반창회는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한 비우당과 자주동샘(紫㞫洞泉)을 찾아가는 역사문화 탐방이었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동대문역에서 만나 마을버스를 타고 낙산 자락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여행이라기보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순례와도 같았다. 창신동, 숭인동은 서울에서도 유난히 사연이 많은 동네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와 서울시청 등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돌을 캐내던 채석장이었고,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판잣집을 짓고 희망을 이어간 곳이다.
지금은 오래된 골목과 현대식 건물이 한데 어우러져 서울의 지난 세월을 조용히 품고 있다. 비우당은 생각보다 작은 초가집이었다.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한 집이었지만, 그 안에는 청빈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선조들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 있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수광은 이곳에서 살며 집 이름을 '비우당(庇雨堂)', 곧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집'이라 불렀다. 집이 초라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검소함을 삶의 자랑으로 삼았던 그의 마음을 떠올리니 작은 초가집이 한없이 크게 보였다. 비우당 뒤편 바위에는 '자주동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 곁에는 우물터가 남아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우물물에 옷감을 담그면 곱게 자주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붙잡은 것은 우물보다도 그곳에 서린 정순왕후의 삶이었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남편 단종과 생이별한 정순왕후는 정업원에서 긴 세월을 보내며 생계를 위해 염색을 하고 날마다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무려 64년이라는 세월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 하나로 평생을 살았던 한 여인의 이야기는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산길에서도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화려한 궁궐보다 이 작은 샘터가 더 큰 역사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산 성곽길 정상에 오르니 서울 시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맑은 하늘 아래 도심과 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어 주었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성곽 골목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사진도 찍고 웃음도 나누었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걷는 길이라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이어 찾은 이화장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지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머물던 공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깊었다. 역사의 현장은 늘 화려한 모습보다 그 자리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옛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을 바라보며 젊은 시절의 대학가를 떠올렸다.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거리 한편에는 고산 윤선도의 생가터까지 자리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걷다 배우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대학로의 오래된 설렁탕집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진하게 우러난 설렁탕 국물에 왕만두를 곁들이고 막걸리 한 잔을 나누며 오랜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웃음소리가 식당을 가득 메우는 동안 시간은 또 한 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식사후에는 커피숍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정은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날은 한여름답지 않게 선선하고 하늘도 유난히 맑았다. 덕분에 하루종일 걷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무엇보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애절한 사랑, 그리고 이수광의 청빈한 삶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책을 읽을 때보다 역사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감동은 훨씬 깊었다. 이제 우리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건강하게 만나 함께 걷고 배우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인생은 언젠가 끝나지만 함께한 추억은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살아간다.
앞으로도 역사 속 길을 걸으며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고, 웃음을 나누며 우정을 이어가고 싶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