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은 '학현마을 → 미인봉 → 신선봉 → 단백봉 → 금수산 → 서팽이 고개 → 쇳고개 → 중계탑 → 가은산 → 둥지봉 → 사거리 고개 → 옥순대교 휴게소'의 6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1
금수산[錦繡山]
높이: 1,016m
위치: 충북 단양군 적성면, 제천시 수산면
제천시와 단양군의 경계에 월악산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한 금수산은 북쪽으로는 제천 시내까지, 남쪽으로는 단양군 적성면 말목산(720m)까지 뻗어 내린 제법 긴 산줄기의 주봉이다. 주 능선 위에는 작성산(848m), 동산(896.2), 말목산 등 700∼800m 높이의 산들이 여럿이고, 서쪽으로 뻗은 지릉에도 중봉(885.6m), 신선봉(845.3m), 미인봉(596m), 망덕봉(926m) 등 크고 수려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으로 시원스럽다. 북쪽으로는 금수산의 지봉인 신선봉과 동산이 능강계곡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지나온 망덕봉 뒤로는 청풍호반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월악산과 대미산, 백두대간이 지나는 황정산이 아련하다. 그 아래로 청풍호반에 둘러싸인 청풍문화재단지와 호반을 가르는 유람선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단양의 시멘트 광산과 소백산 연화봉 천문대의 지붕까지 보인다.
멀리서 보면 능선이 마치 길게 누워있는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어 미녀봉이라고도 불리는 금수산(錦繡山)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단풍 든 이 산의 모습을 보고‘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며 감탄, 산 이름을 금수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금수산 남쪽 마을 이름이 백운동인 것도 옛 산 이름의 흔적이다.
용담폭포
남쪽 어댕이골과 정남골이 만나는 계곡에는 금수산의 제1경 용담폭포와 선녀탕이 숨어 있다. 용담폭포와 선녀탕은 ‘옛날 주나라 왕이 세수하다가 대야에 비친 폭포를 보았다. 주왕은 신하들에게 동쪽으로 가서 이 폭포를 찾아오라 했는데 바로 그 폭포가 선녀탕과 용담폭포였다고 한다. 상탕, 중탕, 하탕으로 불리는 선녀탕에는 금수산을 지키는 청룡이 살았다.
주나라 신하가 금수산이 명산임을 알고 산꼭대기에 묘를 쓰자 청룡이 크게 노하여 바위를 박차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능강계곡
능강계곡은 금수산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6㎞에 걸쳐 이어진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맑은 물이 굽이치고 깎아 세운 듯한 절벽과 바닥까지 비치는 맑은 담(潭), 쏟아지는 폭포수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1시간 30분쯤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지대가 높고 하루 중 햇빛이 드는 시간이 짧아 한여름에도 얼음이 나는 곳이라 하여 얼음골(한양지)이라 불린다. 얼음은 초복에 제일 많이 생기며 중복에는 바위틈에만 있고 말복에는 바위를 들어내고 캐내야 한다. 계곡 왼쪽 능선 암벽 아래에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세운 정방사가 있다.
단양군 적성면 상리 상학마을 원점회귀 산행 코스는 산행 시간이 짧고(4시간) 교통이 편리하지만 비교적 단조롭다. 상학마을을 들머리로 하는 경우 능강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이 산행의 재미가 있다.
제천 수산면 상천리 백운동에서 금수산 제1경 용담폭포를 거쳐 망덕봉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암릉 곳곳에는 청풍호반과 월악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바위가 있다. 이 바위 주변으로는 노송들이 자리 잡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망덕봉에서 흘러내린 능선의 가파른 암벽과 그 사이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들이 절경을 이루고 그 너머로 청풍호의 모습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이 바위에는 족두리 바위와 독수리 바위가 있다. 남쪽으로는 월악산 영봉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보인다.
또한 금수산에서 말목산, 가은산 방면으로 뻗어 내리는 금수산 전경이 펼쳐져 가을 단풍이 들면 그 이름처럼 과연 비단에 수놓은 듯한 경치가 펼쳐진다.
인기 명산[54위]
울창한 숲으로 경관이 수려한 금수산은 가을, 봄 순으로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월악산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고 울창한 소나무 숲과 맑고 깨끗한 계류 등 경관이 뛰어난 점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봄철의 철쭉과 가을철의 단풍이 특히 유명하고 능강계곡과 얼음골이 있음. 정상에서 소백산의 웅장한 산줄기와 충주호를 조망할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가은산
높이: 575m
위치: 충북 제천시 수산면, 단양 적성면
가은산은 금수산(錦繡山, 1,016m)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위 중계탑이 서 있는 802m 봉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뻗어 내린 지능선에 솟아 있는 산이다. 산행 기점은 옥순대교와 제천 수산면 상천리 백운동이다. 백운동에서 가파른 지능선을 오르면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있고 단양팔경의 옥순봉, 구담봉이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한 폭의 산수화 같다.
둥지봉(413m)
둥지봉은 둥그스름한 새 둥지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새 바위 능선에서 바라보면 그럴싸한 새 둥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주변의 소나무에 막혀 있지만, 정상을 벗어나면 갖가지 기암괴석과 청풍호의 푸른 물줄기 건너 구담봉과 옥순봉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옥순대교가 개통하기 전에는 상천리 가은산에서 올라 둥지봉으로 진행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하였으나 다리 개통 후부터는 옥순대교에서 출발하여 새 바위를 돌아 둥지봉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주 등산 코스가 되었다. - 한국의 산하
2012년 봄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권유에 딱히 할 만한 운동이 떠오르지 않아 매주 산에 오르고, 비는 시간에는 자전거를 타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이전에도 산에 오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거의 분기 행사 수준이었던 걸 매주 산행으로 바꾸기로 한 거다. 당연히 집에서 가까운 근교를 돌아다녔고 뒷산이나 다름없는 북한산은 코스에 따라서는 수십 번을 통과한 곳도 있을 정도였다. 해서 인터넷으로 북한산 산행기를 찾아 등산객은 잘 모르는 유명한 바위나 폐쇄된 등산로를 찾아다녔다. 당시는 가장 멀리 간 산이 파주의 감악산일 정도로 북한산 주위를 뱅뱅 돌았던 시절이다.
합궁 바위는 세 번, 여우굴은 여섯 번의 시도 끝에 찾았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절터에서 마애불을 발견하는 등 북한산 내 숨은 보물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다. 숨은벽 4계절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매월 첫 주 토요일은 숨은벽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근교 산만,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다가 우연한 기회에 친구와 옛 추억을 더듬어 1박 2일 지리산 피아골 산행 후 당일 원거리 산행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해서 먼저 5월 친구와 둘이 10여 년 만에 지리산 성삼재, 백무동 종주를 했고, 8월에는 방학을 맞은 아들과 함께 같은 코스를 우중 종주했다. 이후 내가 잘 아는 지리산 말고 어떤 산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국의 산하'라는 보고(寶庫)를 알게 되었다. 한국의 산하를 참고해 수도권을 벗어난 산행을 하던 중 문뜩 이럴 게 아니라 어떤 기준을 가지고 다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의 산하에 기준이 될 만한 걸 찾다가, 등산객, 산꾼 등이 많이 찾는 또는 검색하는 산을 순서대로 줄 세운 “인기 명산[링크]”이라는 걸 발견했다.
물론, 이미 올랐던 산도 있는 인기 명산 자료를 엑셀로 만든 후 산별로 교통편, 코스 등을 자세히 기록한 산행 계획을 세웠다. 계획에 따라 가능하면 그 산이 가장 좋은 시절에 맞춰 산을 다니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실망하는 산이 늘어났다. 조망은 좋으나 고도가 낮아 오르는 재미가 없다거나, 산행코스가 짧아 이동 시간이 더 많은 경우 등이었다. 그리고 한 아웃도어 제품 제조사가 마케팅 차원에서 진행하는 100 명산과 대부분 산이 겹치며, 그들 인증꾼 때문에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하나 남기려면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산행 자체를 피곤하게 했다. 때에 따라서는 줄 서서 올라가야 하는 것도! 해서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산에 가자는 생각에 기준으로 삼을 만한 걸 찾다가 발견한 게 해발 고도다! 높이 순으로 줄을 세워 오르는 거다. 일단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 물론 한국의 산하에는 이미 그것도 줄 세운 자료가 있었다.
해발 고도 1,000m가 넘는 산은 단체별로 선정한 100 명산과 달리 대부분이 오지라 접근이 쉽지 않고, 등산로도 없어 산행이 아니라 탐험에 가까웠다. 물론 그중에는 100 명산에 속하는 산도 있어 이미 올랐던 곳도 있다. 당연히 국립공원 또는 100 명산에 끼지 못한 산은 대부분 안내 산악회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산꾼이 있어 한 안내 산악회에서 월 1회 정도는 오지 산행을 진행했으나, 그것도 코로나로 다들 몸을 사리는 바람에 산악회에서는 성원 미달로 대부분 계획을 취소해야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올라야 했기에 각 산악회의 산행 계획을 검토하다가 발견한 게 백두대간을 비롯한 정맥 종주다! 내가 기준으로 삼은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산은 당연히 대간이나 정맥 위에 있으니 그 팀만 잘 따라다니면 되는 거다. 문제는 전체를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눠서 진행하는 거라 내 기준과는 상관없는 구간이 더 많다는 거.
그러다 보니 이번 주 토요일 갈만한 산이 없었다. 해서 이런 때를 대비해 아껴뒀던 소위 얘기하는 100 명산 중 해발 1,000m가 넘는 산에 산악회를 따라가기로 했다. 서너 개의 산이 있으나 이번에는 단양의 금수산이다. 금수산을 처음 접한 건 제비봉을 오르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다 멀리 보이는 이상한 모양의 산에 관해 기사에게 물었을 때다. 그리고 산행 후 인기 명산 중 하나고 해발 1,000m가 넘는다는 걸 확인 후 잘 모셔뒀었다. 100 명산에 속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언제든 인증꾼을 위해 산악회가 버스를 동원하기 때문이다. 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한 금수산 계획을 세울 때는 가은산과 연계하는 거였으나, 산악회에서는 두 산을 분리하고 각각 또는 능력이 되는 등산객은 두 산을 연계하도록 했다. 금수산만 오른다면 크게 힘들지 않은 만큼 시간 있는 친구는 동행하자고 등산방에 산행 계획을 알렸다.
몇 명이나 신청했는지 모르나 내가 아는 한 친구가 신청했으나, 당일 바쁜 일이 생겨 취소하는 바람에 단독 산행이거나 아니면 두 명 정도의 산행일 거 같다. 해발 1,000m가 넘고 주변이 호수라 조망이 좋아 오랜만에 줌 렌즈를 가져간다. 점심은 단독 산행이면 두 산을 연계할 예정이라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준비하고 혹시 동행이 있다면 금수산 하산 후 휴게소에서 뒤풀이 겸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2 – 1
산행 당일 새벽에 기상해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메고, 애초 불광역까지 걸어갈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앞에 보이는 재개발 지역의 차단막을 보며 혹시나 하고 버스 앱으로 마을버스 현황을 보니 6분 후 동명탕 정류장 도착이다. 그럼 굳이 불광역까지 걸어갈 이유가 없어 방향을 버스 정류장 쪽으로 틀어 6시 2분 전에 도착한 마을버스로 타고 불광역으로 갔다. 불광역에서 6시 6분 차를 타고 양재역에 도착하니 12번 출구 주변은 각 산악회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버스 출발 시각은 아직 좀 남았으나,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역 구내에 있을 이유가 없어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을 향해 갔다. 그런데 앞에 가는 한 쌍은 지난주 백두대간 저수령, 묘적령을 같이 달렸던 대간꾼이다. 내가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여성꾼의 배낭에 달린 보통보다 두 배 정도 큰 펜던트가 뭘 의미하는지 퀴즈를 풀듯이 소속을 맞추기 위해 유심히 살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도 펜던트를 보고 그 쌍이란 걸 알았다[산행기]. 어쩔 수 없이 거의 한 산악회를 이용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대간꾼이든, 인증꾼이든, 산꾼이든, 등산객이든 통성명은 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체는 하는 수준의 사람이 많아진 게 코로나가 가져온 영향 중 하나다!
6시 55분 국립외교원이 보이는 서초구청 주차장 언덕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니, 6시 59분에 세 번째로 목적지인 금수산행 버스가 도착했다. 늘 그렇듯이 배낭을 버스 짐칸에 넣고 패드와 카메라를 버스를 타기 위해 앞으로 갔다. 당연히 체온을 잰 후 버스에 타 승객의 면면을 보니 내가 아는 동무는 보이지 않는다. 고로 이번 한국의 산하 100대 인기 명산 금수산행은 단독 산행이다. 그럼 금수산과 가은산을 이어서 달린다! 죽전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태우고 달린 버스는 8시 5분경 여주 휴게소에서 정차했다. 생각보다 빠르다!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준 후 볼 일을 보고 바로 버스에 탔다.
버스에 타 내 자리로 가며 본의 아니게 빈자리를 보니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했던 지도는 보이지 않고 칫솔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산악회 공지를 통해 이번 산행에 까만 소 100을 달성한 인증꾼을 위해 기념품을 준비했다는 걸 알고 있어 뭔지는 모르나, 기념품이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어 궁금하지는 않았다. 모든 등산객이 탄 후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사항에 관해 설명하기 전 이번에 까만 소 100 산 완등하는 등산객에게 마이크를 주고 소감을 들었다. 내가 놀란 건 두 가지로 첫째가 1년 만에 100 산을 모두 올라갔다는 거! 그럼 휴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산에 갔다는 얘기라. 두 번째는 비록 칫솔 두 개지만, 그걸 꾼이 아니라 안내 산악회에서 준비했다는 거!
소감을 들은 후 대장이 본격적으로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사항을 얘기했다. 국립공원답게 딱히 주의사항은 없었으나, 산행 코스에 관해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했다. 등산객의 상황에 따라 금수산이나 가은산을 단독으로 하거나 두 산을 이어서 하는 건 상관없는데 금수산에서 능선을 타고 가은산까지 가는 구간은 비법정이라고,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 구간이 비법정이라는 걸. 왜 산악회 계획에 두 산을 따로 하는 코스는 있으나 두 산을 연계하는 계획은 없었는지 깨닫는 순간이다. 특히 이 안내 산악회가 가는 곳은 요원이 마중 나와 있을 확률이 높으니 각자 알아서 판단해서 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7시간 30분이라는 얘기로 코스 설명을 끝냈다. 연계 산행 거리가 14km가 채 못 되는데 7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을 주는 걸 이해할 수 없었으나, 산술적으로 금수산 4시간 30분, 가은산 3시간을 합산하면 7시간 30분이다!
2 - 2
막힘없이 달린 버스는 9시 33분 산행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상천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번에 동행한 등산객은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달라 같이 움직이는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내 옆자리에 앉은 산꾼이 연계 산행을 할 거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그럼 망덕봉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알았다고 답은 했으나, 당시만 해도 그게 뭔 말인지 몰랐다. 이미 버스 안에서 산행 준비를 끝낸 후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멘 후 주차장 주변을 둘러봤다. 특히 식당! 그리고 가은산과 금수산이 같은 곳에서 반대 방향으로 출발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인증꾼 한 명이 인솔 대장에게 길을 묻는 걸 옆에서 같이 듣고 있었던 덕분에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정표만 잘 보면 알 수 있었다!
금수산으로 향하는 포장도로를 따라, 서 있는 나무에 노란 꽃이 피었다. 딱 보니 생강! 그런데 마을 도로에 생강나무로 가로수를? 뭔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 주변의 같은 나무를 찾아보니 말라비틀어진 빨간 열매가 몇 개 보였다. 생강이 아니라 산수유다! 보문정사라는 작은 절을 지나 2분가량 올라가자 금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4분가량 더 올라가자 용담폭포 갈림길이다. 마을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폭포다. 애초 산악회 계획에 의하면 이 갈림길에서 금수산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버스에서 옆자리의 등산객이 얘기했던 망덕봉이 뇌리에 남아 주저 없이 망덕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실 산악회 계획이 금수산으로 바로 향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옆자리의 등산객이 망덕봉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이번 금수산행 최고의 오지 탐험을 못 할 뻔했다!
계곡의 소나무를 감상하며 조금 올라가자 용담폭포 갈림길이다. 폭포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하고, 등산로는 계곡을 건너 능선으로 향하고 있다. 이정표에는 등산로 위에 폭포 전망대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거대한 안내문과 용담폭포라는 표지석을 세울 정도면 꼭 가까이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에 비록 조금 지체할망정 폭포를 보고 가기 위해 남들이 다 등산로로 갈 때, 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곡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본 폭포! 기대 이상이다. 물론 댐이 생기기 전에는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었겠으나 현재는 마을에서 10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있는 폭포! 다양한 방향에서 폭포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감상 후 계곡을 따라 위를 바라보니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보인다는 건 위가 능선이라는 거로 굳이 다시 폭포 갈림길로 돌아가지 않고 계곡을 따라 능선으로 가면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 산행과 심마니 산행을 많이 하다 보니 알게 된 경험상! 주저 없이 계곡을 따라 위로 오르자 예상대로 인적이 있었다. 한국 산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자 금줄을 쳐 출입을 막은 곳이 나타났다. 분위기로 봐서 과거에는 정규 등산로였던 길이 사정에 따라 폐쇄된 거로 보였다. 그 사정이란 게 확실한 거는 아니나, 위험해서일 거다. 금줄을 넘어 계곡에 접근하자 바위가 계곡을 가로막고 있다. 기어오르는 데 문제가 없어 틈새를 잡기 위해 옆으로 도니 바위에 잡을 곳과 디딜 곳이 박혀 있었다. 과거에 정규등산로였다는 추측이 맞았다.
이미 박혀있는 인공물을 이용해 바위를 쉽게 오르니 곳곳이 인공물이다. 덕분에 오르기는 어렵지는 않았으나, 경사가 심해 조금만 삐끗하면 미끄러질 거 같았다. 그래서 폐쇄한 등산로가 아닐까?! 어쨌든 거의 기다시피 급경사의 계곡을 올라가며 드는 생각은 단독 산행이라 여기를 올라가고 있지 특별한 몇 산꾼이 아닌 누군가 같이 왔다면 감히 엄두도 못 냈을 거라는 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쌓인 낙엽을 뚫고 계속 오르자 능선 직전에 마지막 장애물이 보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죽은 나무로 길을 막았다. 나무를 뚫고 오를 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피해서 갈 수도 있다. 나무를 뚫고 가는 게 안전하나, 나뭇가지 사이를 기어가는 동안 배낭과 옷 여기저기 지에 걸리는 짜증스러운 상황보다는 좀 위험해도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게 나아 보였다. 짜증과 귀차니즘이 위험을 초래한다!
얼음이나 눈이 아니라 그게 녹아 미끄러운 진흙의 급경사를 관목 밑동에 의지해 간신히 올라가니 뜻밖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그리고 2분가량 능선을 타고 올라가니 정규등산로다. 좌우로 보이는 건 기암괴석과 그 사이에서 고고하게 버티고 있는 소나무다. 그리고 아래로는 가은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처 예상치 못한 절경이다. 더욱더 좋았던 건 올라가는 이 길이 암릉이라거다. 그동안 백두대간 흙산 능선을 달리다가 오랜만에 숨을 헐떡이며 암벽으로 기어오르는 재미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망덕봉을 향해 암벽을 기어오르다 보니 데크 계단도 보인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 중 어느 게 망덕봉이고 어느 게 금수산 정상일지 추측하며 몇몇 등산객도 추월하며 올랐다.
까마귀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주변 절경을 감상하며 암릉을 오르니 머리 위로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보이는 갈지자의 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그 계단을 오르며 좌우를 둘러봤는데, 왼쪽으로 쭉쭉 뻗은 암석이 여러 개 서 있는 암릉이 보인다.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절경이다. 그 바위 정상에는 한 쌍으로 보이는 까마귀가 앉아 있다. 10시 36분 데크 계단 정상 전망대에 도착했다. 밑으로 보이는 암릉과 호수의 조화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그 바위 정상에 있는 한 쌍의 까마귀를 보자 유리왕의 황조가가 생각났다. 까마귀니, 흑조가(黑鳥歌)?
2 - 3
암릉이 끝나는 곳에 이정표가 있었다. 그 이정표에 의하면 첫 번째 목표인 망덕봉까지 1km가 남았다. 그런데 이정목에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의외의 부착물이 있어 놀랐다. "휴대폰 비상용 충전기"다. 그것도 무선 충전! 그걸 보고 '나도 무선 충전 핸드폰으로 바꿔야 하나?'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때 시각이 10시 40분, 해발 639m! 금수산, 가은산 연계 산행 후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에서 묵무침에 막걸리 한잔하려면 4시까지는 산행을 마쳐야 하고 그러려면 금수산 정상에 최소 12시 30분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일단 12시까지 도착을 목표로 잡았다. 그럼 금수산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20분이다. 망덕봉에서 금수산 정상까지 1km 좀 더 되니 대략 2.5km 잡으면 가능한 시간이다. 문제는 아직 해발 400m 정도를 올라가야 해서 경사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거! 망덕봉을 향해 조금 오르자 암릉이 끝나고, 흙산이다. 와중에 반가운 리본을 만나서 사진 한 장, '유아독종, 걸어서 천지까지!'
암릉을 올라오며 체력 소모가 심했는데, 망덕봉을 향하는 마지막 깔딱은 역시 예상대로다. 애초 망덕봉의 해발 고도를 800m대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남은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등산 앱의 고도를 보니 이미 900m가 넘었다. 정상석에는 926m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망덕봉의 높이를 잘못 알고 있었다. 11시 18분 능선에 도착해 보니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에 의하면 망덕봉까지 100m가 남았다. 문제는 이정표에서 바로 보인다는 거. 0.01km의 오기가 아닐까? 내가 본 이정표의 0.1km는 실제는 0.01km의 오기가 대부분이었다. 뭐 어쨌든 이정표에서 좌로 10여 미터 망덕봉으로 가 삼각대를 꺼내기 귀찮아 배낭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인증을 남겼다.
해발 926m의 망덕봉에서 1,016m의 금수산 정상까지는 단순 계산으로 90m를 올라가야 한다. 망덕봉이 봉우리니 하산 구간이 있다는 소리, 최소 100여 미터는 올라가야 하고 고로 깔딱이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정표에 의하면 망덕봉에서 금수산 정상까지는 1.9km다. 11시 21분 망덕봉을 떠났으니 12시까지 정상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물론 가능하지 않다. 어쨌든 마지노선 12시 30분 전에만 도착하면 된다. 금수산으로 향하는 길은 고도가 높고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아직 눈길이었다. 물론 곳곳이 녹아 진흙도 같이 있어 미끄러지면 대형 사고다.
정상을 향해 가고 있는데 전망대로 보이는 데크에 텐트가 보인다. 국립공원 데크에 텐트? 내부가 보이지 않는 타프도 못 치게 하는데? 물론 늦은 시간 설치했다가 이른 시간 철수하는 거야 비일비재하지만. 11시 54분 망덕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해발 949m, 열심히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23m 상승했다. 그나마 다행인 거는 정상까지 300m 남았다는 거. 그 삼거리 계단 데크에 전망대가 같이 설치되어 있어 텐트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망대로로 갔다. 그 붉은 설치물은 텐트가 아니라 타프였다. 찬 바람이 강하게 불어 바람막이로 꼭꼭 싸매고 거기에 달린 모자까지 눌러쓸 정도라, 타프를 설치하고 그 내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강원도 영동 지역은 폭설 주의보가, 이 동네는 강하고 찬바람에 구름도 잔뜩 끼어 조망은 좋지 않았으나, 전망대에 섰으니 뭐라도 찍어야 해, 망덕봉에서 삼거리에 이르는 능선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바로 위로 보이는 정상도.
삼거리에서 정상에 이르는 능선 대부분은 암릉으로 데크가 없다면 접근이 쉽지 않았다. 비록 정상에 오르기 어렵더라도 데크가 없는 게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상을 향해갔다. 정상 바로 아래는 햇볕을 가리는 게 없어 완전 진흙탕으로 걷는 거 자체가 쉽지 않았다. 조심조심 그 진흙탕을 지나 12시 6분 금수산 정상에 도착했다. 목표보다 6분 늦었으나, 예상보다는 아주 빠르다. 삼각대고 뭐고 배낭을 벗는 거조차 귀찮아, 데크 난간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인증 몇 장을 찍고 주변 등산객의 부탁으로 그들 사진을 찍어준 후 12시 9분 정상을 떠나 다음 목표인 가은산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금수산에서 가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비법정 등산로라는 얘기를 기억하고 있어 제대로 된 등산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해서 정규등산로를 따라가며 금줄이나 입간판이 있는지 확인했다. 5분가량 내려가자 금줄이 보였고 그 금줄 너머에서 한 쌍의 남녀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금줄을 넘어 빠르게 정상을 향해 올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정상 너머로 갔다. 이번에 같이 온 일행 중 금수산, 가은산 연계 산행을 하는 산꾼은 내가 용담폭포 계곡에서 지체하는 동안 앞서갔을 거라는 생각에 그들의 흔적을 찾으며 갔다. 예상대로 그 고개를 넘자 과거에 등산로로 사용했던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몇 시간 앞선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역시 인적은 없었다. 길을 찾기 위해서 낭떠러지부터 관목지대까지 샅샅이 뒤진 후 여기에는 길이 없고 정규 등산로로 더 가다가 길이 갈라질 거라는 판단에 다시 정규 등산로로 들어갔다. 대략 15분 동안 길을 찾느라 지체했다.
2 - 4
정규 등산로를 따라 급경사의 데크 계단을 내려가니 길은 좀 전 인적을 찾기 위해 헤맸던 암봉을 우회하고 있었다. 해서 그 길을 따라가며 암봉을 바라보니 봉 감독이나 흥수가 있었으면 내려올 수 있는 암벽이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마찬가지지만. 그 우회로 끝은 상학주차장과 상천주차장 갈라지는 금수산 삼거리다. 여기서 상천주차장으로 내려가면 금수산 환종주다. 그리고 상학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은 능선을 따라 호수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 길이다! 이 길 어디에서 주차장과 가은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을 거다. 12시 38분 여기에 묘가 하는 무덤에서 조금 벗어난 데크 전망대에 도착해 아래로 내려다보니, 가야 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앞의 능선이 가은산으로 가는 게 맞는다는 표지인 산행기에서 봤던 철탑도!
암봉에 설치된 계단이 다 그렇듯이 빙빙 도는, 갈지자의 계단을 내려가니 능선을 따라 잘 정비된 등산로가 이어졌다. 능선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10분 가까이 가자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정표는 상학주차장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내려가라는 거다. 물론 삼거리 표지는 아니나, 산을 좀 다녔다는 꾼에게는 삼거리 표지와 다를 바가 없다. 능선을 따라 직진하면 그 끝은 가은산! 궁금했던 건 ‘출입금지’ 입간판이나, 금줄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거! 그래도 되나? 뭐 어쨌든 가지 말라는 협박이 없는 만큼 능선을 따라가니 높지 않은 암벽을 오르기 위한 밧줄이 보인다. 별도의 공지가 없는 거로 봐서 불법은 아닌 거 같은데. 그 밧줄은 과거에는 많이 사용했던 등산로였으나, 현재는 등산객이 찾지 않아 거의 폐쇄된 등산로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밧줄을 잡고 암벽을 넘어 낙엽 쌓인 길로 보이는 걸 따라 200여 미터를 가니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막 점심을 먹은 산꾼이 뒷정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번 산행 처음으로 같은 코스를 달리는 꾼을 만났다. 그들 뒤로 하고 암릉과 흙산을 번갈아 가며 가다 보니 특별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으나, 뭔가 먹어둬야 할 거 같아,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 들어 있던 갱 하나와 미니 에너지바 두 개를 꺼내 먹으며 걸었다. 그러다 지금까지 금수산과 가은산을 연계하는 꾼을 못 본 이유가 그 대부분이 첨탑이 있는 봉우리를 향하는 능선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몇 사람을 만나 인사 후 나를 포함 네 명이 산행 종료 시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갔다. 놀라운 건 그중 한 명은 내 옆자리 산꾼이라는 걸 버스에 타고서야 알았다는 거다. 사람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병이다!
과거에는 잘 관리하던 등산로였음을 보여주는 안전시설을 이용해 암릉을 지났으나, 현재는 관리하지 않아 줄은 삭아 끊어지거나 끊어지기 직전이고 바위에 박은 철봉도 녹이 슬어 위험했다. 부처댕이봉을 지나자 위험한 암봉은 끝나고 낙엽 쌓인 전형적인 흙산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뚜렷한 이정표가 없는 산에서는 차라리 암릉은 길을 찾기가 쉬우나, 흙산은 모든 게 길로 보여 길을 찾기 힘들다는 걸 이 코스도 보여줬다. 나에 앞서가던 산꾼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내가 가고 있는 능선 길 아래에서 보였다. 그리고 날 보자마자 "거기가 길인가요?"라고 묻는다.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둘이 위아래에서 만나기 100여 미터 전에 8부 능선으로 이어진 길과 능선 위로 계속 가는 갈림길이 있었는데, 모습만 보면 아랫길이 좋아 보이나, 다년간 봉 감독과 오지를 탐험하며 심마니도 접근하지 않는 짐승의 길을 찾아다닌 경험에 따라 길은 능선을 따라가는 거라는 판단에 따라 능선 길로 간 결과다.
이후 그 산꾼은 날 앞설 생각을 안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누군가 토끼몰이하듯이 쫓아오는 건데, 이 산꾼에게 길을 양보해도 나를 앞설 의사가 없다. 뒷사람을 무시하기로 하고 유유자적 내 페이스에 맞춰 가다 보니 앙상하나,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이번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인 철탑이 보인다. 그리고 그 철탑을 100여 미터 남겨 둔 곳에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수 개 산악회의 리본이 휘날리는 곳이 나타났다. 주요 지점이라는 얘기다. 여기가 가은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라는 거다! 그 자리에 서서 아래를 주시하는 걸 본 (뒤따라오던) 산꾼이 폰을 꺼내 등산 앱을 확인하는 걸 보고 급경사의 낙엽 쌓인 길로 하산을 시작했다. 앞서 내려가다 마지막 순간에 잠깐 서서 저 아래로 보이는 고개에 어떻게 내려갈까 고민하는 사이에 그 등산객은 나를 추월해 갔다.
내려가며 보니 잘 닦여진 고개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거로 보였으나, 가은산 쪽이나, 금수산 쪽은 금줄과 경고 표지로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앞선 산꾼이 망설이고 있는 사이 저주 없이 금줄을 넘어 가은산에 들어섰다. 해발 800m가 넘는 곳에서 내려와 해발 500m가 조금 넘는 봉우리로 오르니, 최소 300m 이상 내려왔을 거라는 거야 뭐! 가끔 고개를 뒤로 돌려 철탑을 구경하며 헉헉대고 500m 조금 넘는 봉우리를 향해 올랐다. 가은산 첫 번째 고비를 넘기니 전망대라, 거기서 주변을 구경한 후 주저앉아 이번 산행 처음으로 물 한 모금한 후 등산화를 벗어 이물질을 털어냈다. 그리고 발바닥에 붙어 있는 이물질을 털어내려고 바닥을 보고 놀랐다. 양말에 구멍이 숭숭! 분명 새벽에 신을 때만 해도 멀쩡했었다. 발이 문제든, 양말이 문제든, 등산화가 문제든 문제다! 산행 중 발바닥이 아픈 이유를 알았다.
배낭에 들어 있는 여분의 양말을 꺼내 신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가기로 하고 다시 등산화를 신고 능선을 따라 가은산 정상을 향해 갔다. 그런데 이 산꾼에게 앞서가라고 눈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뒤에서 따라온다. 체력은 나보다 좋아 뒤에서 따라오는 걸 못 견뎌 하는 게 여실히 보이는데. 그렇게 앞장서서 가는데 앞에 금줄에 달린 경고 플래카드가 보인다. 우리에게는 뒷면이다. 해서 금줄을 넘어 들어가 그 산꾼에게 ‘우린 저 금줄 너머로 갈 일이 없으니 법을 어길 일은 없다!’는 농담 한마디하고, 조금 오르니 정상이다. 지질대로 지쳐 정상석에 기대서서 그 산꾼에게 부탁해 인증을 찍었다. 이어서 줄줄이 도착한 나머지 두 산꾼을 포함 세 명의 인증을 각각 찍어주며, 그들 셋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그 셋은 이번 산행을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누어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그리고 나머지 둘이 늦은 이유는 철탑 직전 갈림길을 인지하지 못해 헤맸기 때문이라고.
우로는 지나온 금수산 능선을, 좌로는 호수와 그 건너 능선의 파도를 감상하며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따라 능선 끝을 향해 갔다. 그때 조망 탁월하고 산이 높지도 험하지도 않으며 금상첨화로 환종주가 가능하니 등산방 야유회 산행을 추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월악산도 보이고, 적당히 짱박혀 삼겹살을 구울 수도 있고.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으로 경치를 감상하며 가다 보니 날머리가 멀지 않았다. 날머리이자 들머리인 상천주차장을 1.5km 정도 남겨둔 이정표를 지나자 반대쪽에 비박 배낭을 둘러멘 두 명의 야영꾼이 올라온다.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다고, 비록 국립공원이나 비박에 좋은 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일흔이 넘어 보이는 등산객이 나타나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산에서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데,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세가지 정도로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 출발지가 어디냐? 금수산이냐 고개냐? 둘. 어느 도시에서 왔느냐? 서울이냐 부산이냐? 셋. 어느 산악회냐? 엠티냐 다음이냐?
이런 질문의 경우 "서울"에서 왔다고 답하고 만다. 그래도 노인장에게 실례를 범할 수 없어 답을 머뭇거리고 잘 살펴보니 배낭에 나와 같은 펜던트를 달고 있었다. 즉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등산객이라는 얘기다. 해서 그동안 산행 진행과정을 간략히 알려줬다. 그러자 본인은 거꾸로 도는 중으로 “앞의 경치가 어떠냐?”고 물었다. 당연히 앞으로 갈수록 좋다고 얘기해줬다. 그러자 그럼 마감 시간에 늦지 않겠냐고 물어, ‘아!’ 하고 시계를 보니 3시 35분이다. 당연히 끝까지 갔다가는 마감 시각을 맞추지 못하다. 해서 '애매합니다!'라고 얘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헤어져 건너로 보이는 금수산 능선을 파노라마로 남기고 계속 가니 등산 앱이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알려주는데 가은산이 아니라 가늠산 바위봉이다! 아니 높지 않은 죽 이어진 능선 한쪽 끝은 가은산이고 다른 쪽 끝은 가늠산?
바위봉에서 본격적이 하산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암릉의 급경사다. 그 암릉을 내려가며 드는 생각은 ‘호수와 가까운 이 동네 산은 다 이런가?’였다. 제비봉 하산 길도 암릉의 급경사에 많이 지쳤었는데, 가은산도 다르지 않았다[산행기]. 상천주차장을 500m 남겨뒀다는 이정표에 도착해 아래를 바라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두 대의 버스가 보인다. 붉은 것은 내 것인데, 퍼런 것은 누구의 것인가? 금수산을 오르며, 한 팀으로 보이는 보이는 일군의 등산객을 보고 산악회 수준의 인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맞았다. 어딘지 모르는 산악회가 우리가 출발한 이후 도착한 거다. 4시까지 주차장에 도착하겠다는 처음 목표 달성을 위해 급경사의 암릉을 뛰다시피 내려가다 앞에 보이는 절경에 걸음을 멈추었다. 용담폭포다! 너무 멀어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이나 소리는 들을 수 없었으나 폭포를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금수산 아래 폭포를 품은 암벽을 구경하며 내려가고 있는데. 밑에서 젊은 등산객이 올라오고 있었다. 당연히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묻고 싶었으나, 내가 같은 질문을 할 수는 없어 예리하게 배낭을 살펴보니, 나와 같은 산악회 펜던트를 매달고 있었다. 산악회에서 펜던트를 나눠주는 이유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어쨌든 이 젊은 등산객은 금수산을 한 바퀴 돌고 남는 시간에 가은산 줄기에 올라 호수를 조망하려는 거 같았다. 그 등산객과 헤어져 내려오며 앞을 보니 금수산 줄기의 주요 봉우리가 한눈에 보이고 산악회가 계획한 코스와 내가 오른 코스가 분리되어 보였다. 그걸 보자 이번 산행 코스와 전체 산의 모습이 머릿속에 뚜렷이 그려졌다. 역시 산은 그 정상에서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 봐야 그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주차장에 서 있는 두 대의 버스가 보였다. 퍼런 버스의 정체가 궁금했다. 내가 아는 안내 산악회 중 금수산을 계획한 곳은 이 산악회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처음 접하는 산악회라면 선택지가 하나 늘어나는 거다.
월악산 국립공원 상봉을 비롯한 암봉에는 당연히 설치된 갈지자 데크 계단을 따라 내려가 주차장 쪽으로 300여 미터를 가자, 살벌한 전기 철조망이 나타났다. 전국 각지의 산에 다니며 유해조수 퇴치용 전기 철조망은 많이 봤으나, 이 철조망은 조수가 아니라 유해 인간용으로 보였다. 뭘 지키기 위해 저렇게 살벌할까? 궁금해 철조망 너머에 뭐가 있는지 살폈으나, 딱히 눈에 띄는 건 없다. 혹시 산삼이나 그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하며 길을 조금 가니, "고압 주의"와 CCTV 경고문이 달린 전기 철조망에 둘러싸인 과수원이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사과다! 농촌 인심 사납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사과 하나 지키자고 너무 살벌한 거 아니냐 하다가 문득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이 주차장이고 성수기에는 등산객뿐만 아니라 관광객으로 붐비는 동네니 유해 인간이 넘쳐날 수도!
3
과수원을 지나자 바로 주차장이다. 그 과수원 주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어쨌든 주차장에 도착한 거로 이번 금수산, 가은산 연계 환종주 산행을 마쳤다. 그 시각이 4시 12분으로 목표 4시보다는 늦었으나, 마지노선 4시 30분 이전에 도착해 만족했다. 먼저 퍼런 버스로 가 소속이 어딘지 확인했다. 처음 보는 "드림마운틴투어"다. 해서 이 글을 쓰며 구글링해 보니 내가 이용할 일이 없을 거 같은 대구에 있는 산악회다. 그 버스의 소속을 확인한 후 배낭을 그 옆에서 대기 중인 우리가 타고 온 버스 짐칸에 넣고 핸드폰과 카메라만 들고 주차장에 붙어 있는 식당으로 갔다. 물론 산행 출발 전 영업 중인 걸 확인했었다.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하산하지도 않았고, 아침에 들고 온 그대로 배낭을 짊어지고 하산하지도 않았을 거다. 안 그래도 하산하며, 뚜껑도 열어보지 않는 배낭을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있는지 강한 회의(懷疑)가 일었다.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서 에너지바 두 개, 갱 하나, 그리고 갈증이 난 건 아니지만, 물은 마셔줘야 할 거 같아 배낭 옆 주머니에서 꺼낸 물통. 배낭 내에 있던 간편식, 컵라면, 커피, 당연히 뜨거운 물, 오렌지 등등은 햇볕 구경도 못 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동네 주민 한팀과 등산객 세팀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몇 팀에 불과한 손님에도 주문과 조리에 정신없는 일흔 가까워 보이는 주인장을 큰 소리로 불러 묵무침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막걸리는 없다!'였다. 그럼 소주를 마셔야 하는데 소주 안주로 묵무침은 아니라 뭘 시킬까 고민하다가 좀 전에 한 여성 등산객이 김치찌개를 주문한 사실을 깨닫고 같은 걸 주문하면 좀 빠르게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물론 소주도! 혼자서 조리에 주문에 서빙에 정신없는 아저씨가 뭔가 주기를 기다렸으나 이후 들어온 등산객의 새치기에 '세월아 네월아'다. 급한 거도 없고 서둔다고, 빨리 줄 거 같지도 않아, 카메라와 폰을 테이블에 두고 화장실에 가서 씻고 오니, 밑반찬과 소주를 준다. 해서 김치찌개가 나오기 전에 김치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5분 후 김치찌개가 나와 밥과 김치찌개를 안주로 이슬이를 마셨다. 옛날에는 특정 지역에서 생산하는 소주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얘기하지 않아도 이슬이다! 사람이 웃기는 게 과거엔 이슬이만 찾다가, 요즘은 지역산 소주를 찾고 있다! 라면 수프 맛(그 맛 때문에 라면도 잘 먹지 않는 인간인데)이 강한 김치찌개를 안주로 한 병만 마실 건지, 두 병을 마실 건지 고민하고 있는데, 가은산에서 ‘앞의 경치가 어떠냐?’고 물었던 등산객이 식당으로 들어와 막걸리를 찾았다. 마감 시각을 맞추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현명하게 중간에 하산한 거 같았다. 물론 막걸리가 없어 고민하고 있자, 내가 식당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 막걸리를 주문했던 등산객이 같이 마시자고 부른다.
산행 마감 시각 5시가 가까워져 오자 40분경 다른 등산객은 계산 후 다 버스로 갔으나, 예의상 5분 전까지 가면 된다는 생각에 천천히 이슬이를 깨끗이 비우고 51분에 식당을 나갔다. 버스로 가 자리에 앉아 있으니, 옆자리의 등산객이 다가왔다. 그제야 이 사람이 나와 같이 오지를 탐험했던 산꾼이라는 걸 알았다. 자리에 앉아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현재 한 명이 용담폭포에서 오는 중으로 8분 거리니, 미안하지만 그 동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뭐 8분 정도야.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다. 해서 버스에서 내려 주차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간간이 등산로 쪽을 바라봤다. 어느 순간 인솔 대장이 누군가와 나타났고, 버스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시각이 5시 23분경이니 8분이 아니라 23분이 걸렸다.
예정보다 늦게 서울을 향해 버스는 출발했고, 패드로 책을 읽고 있는데 피곤해 잠을 청했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느낌에 깨어 보니 여주 휴게소다. 벌써? 버스에서 내려 편의점으로 가 식혜를 사 마시고 버스에 타서 다시 잠을 청했다. 한 시간 좀 안 되게 잠을 잔 거 같은데, 잠이 오지 않아 패드를 들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실내등이 다시 들어와 상황을 보니 죽전이다. 1차로 죽전에서 등산객을 내려주고 다음 정차지인 양재를 향해 달렸다. 양재가 가까워져 신발을 바꿔 신는 등, 내릴 준비를 했다. 7시 38분경 출발지인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했다. 매번 도착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 "왜, 양재역에 가까운 곳이 아니라 출발지점에 내려주는 가?"다. 출발 시는 대부분 산악회 시간대가 비슷해 버스가 몰리니 산악회별로 구역을 정해 정차하는 게 맞지만, 도착은 제각각이라 굳이 구역을 지킬 필요가 없는데? 기사와 인솔 대장에게 인사 후 버스에서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각이 7시 39분이다.
단독 산행이라 산악회나 애초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의 계획과는 달리 "상천주차장 → 용담폭포삼거리 → 용담폭포 → 계곡 → 전망대 → 살고개재 → 망덕봉 → 망덕봉 삼거리 → 금수산 → 금수산 삼거리 → 상학주차장 삼거리 → 부처댕이봉 → 알봉(우회) → 가은산 갈림길 → 전망대 → 가은산 → 전망대 → 가늠산(바위봉) → 상천주차장"의 13.27km(트랭글 기준), 6시간 42분의 월악산 국립공원 금수산, 가은산 지역의 절경을 즐기고, 금수산에서 가은산에 이르는 오지를 탐험했다. 이동 6시간 35분, 휴식 7분!
매번 느끼는 거지만, 달리 국립공원이 아니다! 단양 군수 퇴계가 마치 금수(錦繡) 같다고 해 백운산에서 금수산으로 이름을 바꿨다는데 기암과 호수의 조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흐린 날씨 중에도 희미하게나마 월악산은 볼 수 있었으나, 소백산을 보지 못한 게 유감이다.
다행히 단독 산행이라 금수산에서 가은산까지 능선으로 달릴 수 있어 생각지도 못한 오지를 탐험했다.
원점회귀라 금수산 또는 가은산 야유회 산행이 가능해 등산방 호수산행 또는 단풍산행을 추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첫댓글 잘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