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관계 / 이남옥
주말이면 어김없이 온 가족이 모인다.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성인 아이들이 집을 찾아들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에는 제 갈 길 찾아서 뿔뿔이 흩어질 줄 알았다. 아들은 군대로 딸은 다른 지역 대학으로 가버려서 부부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제대해서 돌아오더니 딸은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캥거루족이 된 것이다. 빈 둥지 증후군을 제대로 느낄 새 없이 가족의 역할이 조금씩 바뀌어 갈 뿐 몇십 년을 함께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18세 이상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데 옛날로 치면 혼기도 훌쩍 넘겼다. 나만 해도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을 때이다. 한 세대가 넘어가니 세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금요일 저녁이면 아이들은 하는 일이 정해졌다. 서로 귀지를 파주는 것이다. 어렸을 때 친가에서는 막내 고모가, 외갓집에 가면 막내 이모가 무릎에 뉘어 놓고 부드러운 손길로 귀를 살살 간질여 주었다. 둘 다 간호사였는데 성향이 비슷했던지 그런 식으로 조카를 예뻐하고 귀여워해 주었다. 아이들은 그런 서비스를 무척 좋아했다. 다시 만날 날을 잔뜩 기다리곤 했다. 이모와 고모가 차례로 결혼한 이후로는 그런 사랑을 베풀어 주지 못하게 되어 너무나 아쉬워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행복해서 그때를 최고의 추억으로 꼽는다.
시작은 오빠가 먼저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에 집에 오면 엄마에게 부탁하더니 나중에는 동생에게 용돈을 주는 의미로 귀를 맡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편안한 시간을 보내서 좋고 한 사람은 돈이 생겨서 좋고 마치 흰동가리와 말미잘 같은 공생관계가 생겼다. 그러다가 동생도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서로 서비스해 주었다. 한 사람은 살살 세심하게 다른 한 사람은 시원하게 해준다. 어느 사이에 귀이개가 많이 늘어났다. 손톱깎기 세트에 들어있는 것으로는 싫증이 났는지 눈에 띄는 귀이개가 있으면 사다 날렸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것, 솜털이 붙어있거나 기다란 나무 끝에 딸랑이가 붙어있는 것 등 다양하다. 싼 가격으로 여러 가지 감각을 느껴보는 일도 재미있겠다.
귀지를 파내려면 정말 섬세한 손길로 정성을 다해야 해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다 무릎베개에 누우면 긴장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어렸을 때부터 아들은 만족스러우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딸은 발가락을 까딱거리곤 했다. 남매는 그런 반응을 살피며 주일 행사를 마친다. 사람과의 관계나 직장생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편안함을 즐기는 걸 보면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든다. 이미 결혼을 해버렸다면 풀지 못했을 관계 회복에도 도움이 되어 참 다행이다.
둘은 자랄 때 자주 으르렁거리고 싸웠다. 큰애는 동생이 못마땅한 게 자주 보였고 동생은 거친 오빠가 싫었다고 한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을 보살펴 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다 보니 아마도 많이 윽박질렀을 것이다. 조금만 신경을 거슬러도 잘 참지 못했던 둘째는 성인이 되어서 그때 심정을 가끔씩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큰애는 미안하다며 몇 번이고 용서를 빈다.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질풍노도 사춘기 시절이 지나고 취업전선에 밀려 미래가 보이지 않던 불안한 20대를 보내고 나니 이제 보이는 것이 있나 보다. 성인이 되어 취업을 함께 고민하며 서로 의지하다 보니 사이가 좋아졌다. 둘 다 아토피로 고생할 때는 부모보다 더 가까이 살피고 위로가 되어 주었다.
아주 적은 노력으로 소소한 행복을 얻는 일을 몸소 배우고 실천하고 있으니 어서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배우자에게 그리해주길 바라고 있다.
첫댓글 단란한 가족이네요. 모두 모여사는 것 부러워요. 저도 아이들을 다 밖으로 보냈는데, 영 안돌아올 것 같아요.
너무 사이 좋은 남매네요. 선생님 현실 남매 같지 않아요. 보기 좋아요.
남매가 사이 좋기가 쉽지 않은데 부러운 풍경입니다.
우리 집은 셋이다 보니 딸 둘만 똘똘 뭉쳐서 소통하고, 아들은 따 시킬 때가 많아서 속상하거든요.
귀지 파 주는 남매, 상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무릎베고 귀 만져주면 잠이 스르르 온답니다. 큰아들이 어릴 때 자주 해주라고 했는데 잊고 있었어요.
제 귀지 파기 담당은 우리 딸인데, 용돈 좀 줘야겠네요. 저도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