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음식과 기차 여행 / 김석수
낫짱에서 다낭으로 가는 날 아침 일곱 시에 호텔 2층에 있는 수영장에 갔더니 물이 차고 레인이 작아서 밖으로 나갔다. 아내와 나는 바닷가로 갔다. 파도가 몰려오는 곳에 사람이 많다. 대부분 파도 타기나 맨발로 산책하고 있다. 백사장에서 셔틀콕을 치거나 축구공을 찬다. 명상하거나 모래로 집을 짓기도 한다. 2월 초순인데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물이 차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바다에서 나와서 씻고 아침을 먹으려고 도로 옆에 식당으로 들어갔다. 닭고기와 소고기 쌀국수가 나왔다. 두 그릇에 4,000원이다. 전날 저녁에 먹었던 비싼 랍스터보다 맛있다. 짐을 꾸려서 호텔에 맡겼다. 저녁에 기차로 다낭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딸이 인터넷으로 식당을 알아 보았다. 가까운 곳에 맛집이 있다. 이곳에서 유명한 ‘곡 하노이’ 식당으로 갔다. 메뉴판에 다양한 베트남 음식이 있다. 우리는 짜조와 분짜, 반쎄오, 공심채를 주문했다. 짜조는 튀김만두처럼 생겼다. 라이스 페이퍼에 고기와 숙주를 넣어서 말아 튀긴 것이다. 분짜는 쌀국수에 구운 돼지고기와 싱싱한 채소를 함께 넣어서 먹는다. 반쎄오는 쌀가루 반죽을 기름에 얇게 부치다가 그 위에 숙주, 양파, 돼지고기, 새우를 얹고 익혀서 반으로 접어서 만든다. 우리나라 해산물 볶음밥 같다. 공심채는 속이 비어 있는 잎채소다.
배가 불룩하게 먹고 나오니 비가 쏟아졌다. 식당 건너편 시시시피(CCCP)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비가 그칠 때까지 코코넛 커피와 망고 스무디를 시켜서 마시고 에그타르트와 파운드케이크도 먹었다. 살찌는 음식만 잔뜩 먹었다. 비가 그치자 낫짱 대성당으로 걸어서 갔다. 성당은 기대보다 크고 아름답다.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돋보인다. 낮은 언덕 위에 있다.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면 낫짱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내 구경하면서 망고 세 개를 2,500원 주고 사서 ‘빈펄호텔 스타벅스’에서 먹었다. 저녁에 ‘반쎄오 팔오’라는 맛집에서 오징어가 들어간 반쎄오를 라이스 페이퍼에 말아서 먹었다. 달걀부침도 서비스로 받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그래도 금방 소화가 됐다. 종일 돌아다녀서 발이 아프다. 발 마사지를 하러 호텔 근처 ‘포엔 비엔숍’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5분 뒤에 한약 냄새가 나는 통에 발을 담근다. 15분쯤 지나니 젊은 사람이 와서 발을 주물러 준다. 마사지는 한 시간 걸린다. 비용은 한 사람당 만원이다. 아내와 딸은 호찌민보다 좋았다고 한다.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묵었던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아서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갔다.
저녁 열한 시 20분 기차다. 네 사람이 한 칸을 사용하는 2층 침대차다. 층마다 침대 두 개씩 있다. 역에 도착하니 사람이 많다. 서양 사람도 많이 눈에 띈다. 대기실이 좁다. 의자에 빈자리가 없다. 출발 예정 시간은 삼십 분 남았다. 대기실에 사람이 많아서 역사(驛舍) 밖으로 나와서 기다렸다. 후덥지근하고 더운 날씨다. 낮에 갔던 성당 십자가 불빛이 보였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역사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이 개찰구로 들어왔다. 역원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여행자를 정리하고 있다. 예전의 중국 여행하는 기분이다.
기차는 자정 무렵에 도착했다. 플랫폼은 어두컴컴하다. 내 옆에 서 있는 베트남 여자는 호이얀까지 간다고 한다. 기차가 도착하고 한참 뒤에 문이 열렸다. 점검하느라 그런 것 같다. 객실로 올라가니 왼쪽에 복도가 있다. 휴대전화로 전등을 켜고 방 번호를 찾아서 들어갔다. 2층에 누가 자고 있다. 짐을 1층 통로에 놔두었다. 딸이 2층으로 올라갔다. 나와 아내는 1층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담요 한 장과 베개가 있다. 에어컨이 세게 가동되어 약간 추웠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기차는 덜커덩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딸은 한 시간 이상 눕지 않고 있다. “너무 더럽고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아서 그랬다.”라고 다낭에 도착해서 말했다. 아내가 춥다고 하자 2층에 누워있던 젊은이가 옷을 벗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중간에 내리면서 이불을 개고 나갔다. 아내는 그의 행동을 보고 베트남의 장래가 밝다고 했다. 중간에 2층 침대칸으로 다른 젊은이가 올라왔다. 그는 싱가포르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데 영어가 유창하다. 그와 잠깐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다.
새벽 다섯 시쯤에 다시 눈을 떴다. 창밖을 내다보니 날이 훤하게 밝아 왔다. 우리나라 초여름 풍경이다. 들판에 벼와 풀이 푸르다. 논 가운데 새가 날고 논두렁에 개가 돌아다닌다. 한적한 시골길을 가고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 마을을 지나간다. 가끔 강을 건너가기도 한다. 침대 누워서 하늘은 보니 파랗다.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다. 지금 있는 곳이 궁금해서 ‘맵스미(MAPS.ME)’ 앱을 켰다. 호찌민에서 독일 사람이 가르쳐 준 것이다. 동남아 여행에서 길을 찾는 데 유용한 앱이라며 내게 알려 주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침대칸에서 복도로 나왔다. 일반 객실 쪽으로 가니 화장실이 있다. 그 옆에 승무원 침실도 있다. 캡슐 형태다. 여자 승무원이 모자를 눌러쓰고 자고 있다.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가는 동안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화장실이 더럽고 물도 나오지 않는다. 겨우 일을 보고 나와서 일반 객실로 들어갔다. 통로 양쪽으로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다. 한 개에 세 명이 앉을 수 있다. 객실을 지나 식당칸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이 아침을 먹고 있다. 베트남은 어디 가나 쌀국수가 있다. 이곳에도 분짜와 반쎄오가 있다. 배는 고프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깨끗하지 않고 비싸기 때문이다.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오전 열 시 20분에 다낭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랩(인터넷 앱)으로 택시를 불러서 ‘호홍’ 식당으로 갔다. 다낭에서 알려진 쌀국수 집이다. 골프 관광 온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났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식당 근처에 있는 콩카페로 갔다. 코코넛 커피를 마시면서 기차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와 딸은 베트남에서 다시는 기차를 타지 않겠다고 한다. 옷을 벗어 주겠다던 남자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나라도 그런 젊은이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베트남 기차 여행은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사람 냄새를 맡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