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천국 / 양선례
내 두 눈 밤이면 별이 되지./ 나의 집은 뒷골목 달과 별이 뜨지요./ 두 번 다신 생선 가게 털지 않아./(중략) 나는 낭만 고양이/ 슬픈 도시를 비춰 춤추는 작은 별빛./ 나는 낭만 고양이/ 홀로 떠나가 버린 깊고 슬픈 나의 바다여./ (후략)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와. 내 동포들 이름이 나와서 유심히 들었어. 내 이름은 밤하늘. 일곱 살 먹은 암컷 고양이야. 사람 나이로 치면 마흔아홉, 중년인 셈이지. 밍키네 가족과 함께 산 지 7년이 되었어. 원래는 이 집 막내가 아는 형 집에서 나를 입양해서 좁은 자취방에서 함께 살았어. 그런데 무려 한 달이나 중국으로 여행 간다며 나를 여기로 보내더라고. 처음에는 진짜 짜증이 났어. 엄마, 아빠라는 사람이 나와 함께 사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거야. 밥하고 물만 주면 다냐고? 나랑 놀아 줘야 할 거 아니야. 모르면 요즘 잘 나오는 너튜브 보고 공부라도 해야 할 텐데, 통 그런 노력도 안 하더라고. 이젠 포기했어. 대신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잘 살펴 줘서 그나마 다행이야.
너희도 알다시피 우린 냄새에 예민하잖아. 환경이 너무 달라져서 처음엔 어리둥절했어. 그래도 방 한 칸에서 살 때는 답답했는데, 여긴 여기저기 다닐 수 있어서 좋아. 손님이 와도 숨어 있을 데도 많고. 확장형 베란다에 있는 긴 나무 탁자에 앉아 하루 종일 햇빛 바라기를 하고 있으면 행복해. 옷걸이에 걸린 옷 사이에 숨어서 낮잠을 자는 것도 꿀맛이지. 퇴근한 집사가, 내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찾으면 선심 쓰듯이 나오곤 하지. 3년 전에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왔어. 여기도 나쁘진 않더라고. 햇살도 잘 들어오고, 낮에는 주인이 다 나가 버리니까 내 세상인 점도 좋아. 심심하면 창밖을 내다봐. 시끄럽긴 하지만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
‘밍키네 가족’을 소개할게. 밍키는 내 집사 이름을 애교스럽게 부른 거야. 배변통을 치우고, 먹이를 챙겨 주는 일은 주로 그의 아내가 담당해. 밍키는 새벽 다섯 시에 수영장에 가. 거기서 바로 직장에 출근하는지 낮에는 보기가 어려워. 집사가 깨어나는 기척이 들리면 아무리 피곤해도 일어나서 배웅해. 왜냐고? 착하게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거든. 내가 그를 집사라고 정한 이유기도 하지.
그의 아내는 오전 일곱 시가 다 되어서 일어나. 그것도 시계가 울어야 겨우 눈꼽을 떼지. 알림이 울리면 나는 얼른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 위에 올라가 꾹꾹이를 해. 골골송(고양이가 기분이 좋거나 편할 때 내는 소리를 노래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도 하면서 말이야. ‘여긴 내 구역이다.’ 자랑하는 거지. 그런데 잠탱이 안주인은 그런 나를 몇 번 쓰다듬어 주는 듯하다가 일어나 버리지. 그리고는 허둥지둥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해. 씻고, 얼굴에 뭘 찍어 바르고, 머리를 말려. 드라이기 소리는 딱 질색이야. 청소기도 마찬가지야. 안주인이 그 물건을 들기만 해도 나는 천리만리 도망가서 숨어.
그녀가 나가네. 간식도 주지 않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소심한 복수를 해. 저녁에 직장에서 돌아와도 아는 척도 안 해. 마음 약한 안주인이 전원을 끄지 않은 채로 둔 돌침대 위에서 몸을 지지면서도 꼼짝도 않는 거지. 안방에 와서 “에구, 하늘이가 여기 있었네?”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도,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쳐다만 봐. 뭐, 속으로 쪼끔 반갑기는 해.
“띠로리로링.” 문 여는 소리가 들려. 집사가 퇴근했어.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나는 알 수 있어.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가. "야옹야옹" 반기면서. 안주인은 그런 나를 종종 흉보면서 집사하고 비교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 맘이야. 배 아프면 간식을 좀 주든가.
그런데 오늘도 술 마시고 왔나 봐. 으이, 술 냄새. 그런 내 맘도 모르고 집사는 내가 반갑다고 그 큰 손으로 내 등을 여러 번 빗질해. 내가 이뻐서 그러는 거겠지만, 손길이 너무 거칠어. 인간들은 내가 털이 많아서 괜찮다고 생각하겠으나 사실 내 피부는 굉장히 연약하거든. 부드럽게 ‘밤하늘 송’도 부르면서 쓰다듬는 안주인의 손길과는 확연히 달라. 그래도 그 순간이 지나면 간식을 주니까 조금 아파도 참아.
그런데 편안한 내 생활을 방해하는 존재가 나타났어. 이름은 밤미떼. 이제 겨우 네 살이 되었지. 집사 부부만 살던 이 집에 1년 반 전에 큰딸이 이사 오면서 데리고 온 애야. 입양해서 키우던 암고양이래. 안주인이 ‘미스코리아 고양이’라고 할 정도로 털 색깔이 고급스럽고 자태도 우아해.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푸른 눈이야. 얼룩덜룩 검은색투성이에다 눈도 노란색인 나보다 이쁜 건 나도 인정해. 그런데 그러면 뭐 하냐고? 아무 데나 오줌을 싸는걸. 그건 정말이지 치명적인 약점이야. 기다리던 큰딸이 늦게 퇴근해서, 놀고 싶은데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간식을 안 줘서 등 이유도 다양해. 장소도 마음 내키는 대로야.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머리가 어질어질해. 그러니 내가 이뻐할 수가 있겠어?
얼마 전엔 이런 일이 있었어. 집사는 다른 식구들보다 일찍 자. 이불을 깔아 두고 텔레비전을 보는 사이, 한쪽에다 미떼가 그만 실례를 한 거야.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집사가 노발대발했어. 빨아도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는 데다, 한두 번 그러다 보면 거길 화장실로 인식하는 게 우리 고양이들 습성이야. 이건 비밀인데, 작은언니가 이번 여름에 대청소하면서 소파를 버렸어. 미떼가 싼 오줌 냄새를 없애려고 아무리 약품을 써도 잘 안 되었나 봐. 그러니 집사가 얼마나 화가 났겠어. 안 봐도 비디오지.
집사는 미떼의 주인인 큰언니(큰딸을 나는 이렇게 불러.)를 불렀어. 원래 거실에서 큰언니 방에 가려면 긴 베란다를 지나야 해. 그 사이에 우리가 오가게 작은 문이 있어. 미떼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집사가 친히 커다란 문 일부를 톱으로 잘라서 만들어 준 거야. 그런데 그런 은공도 모르고 자꾸만 집사 이불에 실수하는 거야. 벌써 몇 번째인지 몰라.
결국 큰언니가 테이프를 발라 버렸어. 그 문을 닫으면 미떼는 우리가 있는 거실과 방에 올 수가 없거든. 그런데 미떼도 보통내기가 아니더라고. 이제는 큰언니가 올 때까지 미리 옷 방에 숨어 있어. 나는 그런 미떼가 너무 얄미워. 걔 발소리가 들리면 문 뒤에 숨어. 내가 그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걸어오던 미떼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바로 공격을 퍼붓는 거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다가 막다른 길에 이르면 벌러덩 드러누워서 항복을 외쳐. 아주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말이야. 뭐 어쩌겠어? 내가 더 어른이니까 봐줘야지. 난데없이 내 영역에 침범하여 겁 없이 날뛰는 미떼가 밉다가도 이럴 때는 웃음이 나. 한참 노려보다가 점잖게 돌아서곤 해. 내가 웃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야.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사실 미떼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좀 무서웠어. 나는 몸무게가 3.8kg인데 미떼는 5.8kg이나 되거든. 그래도 우리 집에서는 내가 왕이라고. 굳이 똥개 이야기까지는 들먹이고 싶지 않구먼. 흠흠! 여긴 어디까지 내 구역이라고. 지난 7년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미떼, 앞으로도 조심해. 밍키네 가족과 나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오늘도 나는 도도하게 창문에 앉아 밖을 내다봐. 자동차 지나는 소리가 간간이 낮잠을 방해하지만 이만하면 천국이야.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 말씀해 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