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본다 / 고혜숙
데카르트가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여, 정신이 육체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읽었던 때가 있다. '환경 미화원 신입 연봉이 5,000만 원. 지원자 중에는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었다'는 기사가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서울의 어느 구청장은 환경 미화원 연봉이 6,500만 원이 넘는데,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했다. 실제로는 그만한 돈을 받지 못했다. 구청장의 말에 분노한 사람들의 댓글이 몇 개 있었다. 새삼 궁금해졌다.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아니, 가르치고 있기나 한가?
민수는 항상 사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수업 시간에는 거의 언제나 잤다. 가끔 깨어 있을 때는 엉뚱한 대답으로 우리를 웃겼다. 중학생 시절에는 가출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단다. 학교 오면 밥도 주고, 잠도 잘 수 있고, 무엇보다 같이 놀 친구들도 있으니까. 이보다 더 좋은 놀이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어디 가서 그가 그리도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성적은 관심 밖이었다. 민수는 그런 아이였다.
어느 날 그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니 내가 그를 의심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영어 듣기 평가 결과 90점을 받은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능 모의고사를 보면 거의 꼴찌에 가까운 등급을 받았던 아이다. 그렇다고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았을 리 없었다. 그의 주변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은 없었으니 말이다. 영어 듣기는 하루아침에 잘할 수 없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듣기는 그렇게 잘하는지. 깔깔거리면서 대답했다. 엄마가 자기 어렸을 때부터 영어 때문에 돈 많이 썼다고. 달달 볶이면서 훈련을 받았던지라 좀 신경 쓰면 쉬운 내용은 잘 들린다고. 의대 진학한 형은 엄마의 자랑이었지만, 공부 안하는 자기는 구박데기였다고. 그래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 녀석이 참 대견했다. 지금은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살까? 소방대원 같은 일이라면 그에게 잘 맞을 텐데.
민수와 영 다른 아이가 있었다. 성진이는 언제나 조용했다. 가벼운 대화도 잘 안 될 정도였다.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방만 들고 다닐 뿐 공부에도 전혀 흥미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수업 시간에 졸지는 않았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영어 알파벳 정도나 깨친 수준이었다. 얼마나 학교 생활이 지루했을까. 그렇지만 지각이나 결석은 하지 않았다. 공부나 운동도 못하면서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는 정말 신경이 쓰인다. 제 앞가림이나 하면서 살게 될까?
15년 후쯤 성진이를 다시 만났다. 나에게 인사를 했는데 솔직히 몰라 봤다. 명찰을 보고서야 한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었는데. 자동차 운전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운전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아줌마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박성진 씨가 가장 친절하고 자상하게 잘 가르쳐 준다고. 세상에! 그렇게 훌륭한 선생이 되어 있을 줄이야.
학교가 배움의 전당이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굳이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넘쳐 나는 세상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학교라면 그 존재 가치에 의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던 민수나 성진이 같은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무엇보다 거기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또는 성진이처럼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람 사는 법을 조금씩 깨치게 되었으리라.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니. 공동체 의식이 급격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학교가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자식이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을 얻게 되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요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이나 심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민주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정도는 가르치고 있는지.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의 고귀함을 생각해 보게 하는지. 밥 한 그릇에 담겨있는 우주를 알아차릴 수 있게 하고 있는지. 사실 이 모든 질문은 한때 교사였던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이번주에도 환경 미화원은 쓰레기를 실어 갔다. 덕택에 마을이 깨끗하다.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