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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사람들이 발로 쓴 '우리들의 면지' | |||||||||||||||||||||
소성면지 출판에 즈음하여...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 담지 못한 점은 아쉬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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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위, 1997년부터 면지 발간 위해 노력 이날 소성면지편찬위원회는 1997년부터 소성면의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전통과 풍속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소성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보고 고이 간직하며 후손들에게 미풍양속을 전하여 자손만대에 귀감을 삼으려는 일념에서 뜻있는 인사들이 『소성면지』편찬을 위하여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소성면지』는 소성 지역의 역사를 비롯해 마을별 유래와 땅이름, 소성을 빛낸 인물, 지역에 산재한 문화유산, 소성주민들의 생활과 민속 지리 등이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실었다. 8명 집필진들의 수차례에 걸친 마을 현지 공동조사와 개별조사 거쳐 『소성면지』발간에는 유종국 전북과학대 교수, 이상섭 배영고등학교 교사, 박래철 정읍중학교 교사, 이태영 전북대학교 교수, 김익두 전북대학교 교수, 이래호 한국학대학원, 곽상주 향토사학자, 사진에는 백운경 그래픽디자이너 등 8명이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수차례의 현지공동조사 및 개별조사를 펼쳤으며 각 마을의 어르신과 대담을 통한 자료조사, 문헌자료 조사 등 집필진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소성이란 작은 공동체의 과거를 책 한권에 담은 것이다. 『소성면지』, 정읍에서는 5번째 면지...자체 인적 자원으로 면지 엮어 『소성면지』는 정읍지역에서는 「칠보면지」, 「태인현 2000년 약사」, 「고부향토지」, 「영원면지」에 이어 5번째로 면지를 발간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는데, 특히 정읍 자체의 인적자원으로 책자를 발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소성면에서는 일제시대인 1936년 중광리 이로재에서 최초의 국한문혼용체의 「정읍군지」를 독우 장봉선 선생이 발간한 이래 71년만에 『소성면지』를 발간하게 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겠다. 중광리 출신 장순하 시인도 면지 출판기념회 자리에 함께 하고 출판기념회 자리에는 중광리 출신의 장순하 시인이 참석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소성면지』발간 과정은 정읍에서 가장 큰 규모의 중광리 고인돌군, 두암리의 옛 성터인 태성지(鮐城址), 고분군 발견 등에 의미가 컸고, 많은 독립투사와 잊혀진 의병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조사된 업적을 남겼다. 한국전쟁 당시 소성의 보도연맹' 사건 등을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제시대의 잊혀져가는 역사를 더 많이 수집하지 못한 것과, 한국전쟁 당시 소성면 인근에서 일어난 좌.우의 갈등에서 빚어진 이른바 ‘보도연맹사건’의 내용을 실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17개 마을의 좌.우익 갈등에서 빚어진 참극의 내용을 조사했으나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루지 못한 것은 집필자로써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지만 차후 따로 공개할 예정이다.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배려였으나 역사적 책임감 느껴 면(面)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자체적으로 향토지를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이 요즘의 세태다. 지난 과거를 기록하고 다듬어 후손에게 길이 물려줄 또 하나의 유산인『소성면지』를 만들어낸 것도 자랑스럽지만, 그 과정에서 적극 협조해준 모든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모두 담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억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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