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는 존재를 일컬어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원한과 복수를 끊고 천국백성 답게 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원수는 미워해도 된다는 말은 당시 율법주의자들의 자의적 말이었습니다. 율법은 원수를 갚지 말라 했고(레19:18)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그 사람에게로 돌려주라(출23:4) 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악인도 없고 완벽한 의인도 없습니다. 누가 봐도 악한 자라 할지라도 열악한 성장 환경에 따른 간접적 피해자일 수도 있고, 정도의 차이 뿐이지 누구나 악한 심성이 있습니다. 바울은 잔혹한 박해자였지만 주님을 만난 후에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쉽지는 않지만 천국을 소유한 복음의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 받았으니 사랑하거나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것은 세리와 이방인들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자의적인 율법해석과 형식적인 삶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했고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로 이루는 복음의 삶은 율법을 넘어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이루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적 의에 대한 여섯 가지 재해석의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