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2/9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두 번째 시간.
11장에서 18장에 이르는 본문을 읽고 모둠별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모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지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민중들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벌론을 주장하여 명나라를 치고자 군사를 일으킨 최영과 이를 반대하다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성계
하나는 진취요 하나는 보수며,
하나는 자주독립적이요 하나는 사대 예속적이며,
하나는 이상주의요 하나는 현실주의며,
하나는 의리요 하나는 권리다.
함석헌 선생님은 이 두 반대되는 정신과 사상을 두 인물에 대표시켜 섭리가(하나님이) 민족을 시험한 것이라 말씀하셨다.
천 년 가까운 고난의 역사가 그들의 가슴속에 모험 진취의 정신을 길렀는가, 못 길렀는가?
자존 자립의 주체성을 주었는가, 못 주었는가?
진실무망의 덕성을 닦아주었는가, 못 닦아주었는가?
정말 '한'을 찾고 거기 이르는 철학을 주고 종교를 주었는가? 이것을 시험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시험을 우리는 통과하지 못했다.
모둠에서 박인섭님은 최영 장군이 조금 더 돌파하는 힘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이야기하면서, 민중에게 뜻과 이상을 주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조동휘님도 민중이 아직 계몽되지 않았다고 한 부분을 짚었다. 민중이 계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계가 교활과 모략으로서 반란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다시 훑으니 최영 장군의 아쉬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토론을 나누기 전에는 좋은 모습만 보였었다.)
매양 정부에 나아가면 정색으로 바른말을 하여 조금도 감추지 아니하며,
좌우에 받아주는 이가 없으면 홀로 슬퍼할 따름이었다.
일찍이 사람을 보고 말하기를 (중략)
"여러 재상 중에 나와 말이 같은 이는 하나 없으니 차라리 벼슬을 그만두고 한가로이 사는 것만 못하다."
금보기를 돌같이 했던 최영 장군. 그는 마음이 굳고 곧고 참되고 맑은 사람이었다.
그는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
그런 그가 상처받아 홀로 슬퍼하고, 차라리 벼슬을 그만두고 한가로이 살겠다는 말을 하는 부분을 보며 생각했다.
혹 그가 그의 곧음에 비해 다른 이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바꾸어 내고, 설득해내는 능력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공감해 주는 이 하나 없을 때 누군가를 전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을 안다.
하지만 좌우에 받아주는 이가 없으면 그냥 홀로 슬퍼하기만 했다는 것, 벼슬을 그만두고 한가로이 사는 게 낫다는 말을 뱉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걸린다. 너무 쉽게 좌절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 탄핵 정국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던 표창원 의원(그는 그의 SNS에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의 명단과 탄핵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의 명단을 올렸고, 그들로부터 비난도 받았으나 그들을 설득하는데 한 몫을 했다. 물론 시민들이 호응한 힘이 컸다.)과 정의당의 무기한 농성과 전국 각지의 촛불들이 떠올랐다.
전도의 예는 또 있다. 모두의 비난을 뒤로하고 종편으로 자신의 걸음을 옮겼던 JTBC의 손석희. 지금 그로 인해 밝혀지는 진실들이 얼마나 많은가. 100% 독립 언론 뉴스타파도 있고, '자백'이라는 영화를 만든 최승호 PD도 있다. 힘없고 가진 것이 없어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의 유죄를 무죄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 또한 그 예라 할 수 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전설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이해의 달램에 속기 쉬우므로 역사상에 남은 민중의 행동은 공정치 못하고 잘못된 것이 많으나,
옳고 그르고의 판단만은 늘 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이 전설로 내려온다. 전설은 역사도 아니요, 전기도 아니다.
전설은 사적과 역사, 전기에 대한 일종의 보충이요, 고침이요, 반대다.
전설은 민중의 것이다. 소유도 지위도 없고, 다스림과 억누름만 받는 민중은 신화 전설 없이는 못 산다.
저들은 혹은 사랑방에서 혹은 느티나무 밑에서, 혹은 술집에서 떠들어대는 그 이야기 속에서 풀지 못하였던 분을 풀고,
뜻 두고 못 이루었던 소원을 이루어본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늘 참이 있다.
굴복한 것은 민중임이 틀림없지만, 굴복 아니 하고 전설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사적 씨알이다.
그것이 장차 역사의 주인이 된다.
아, 포기할 줄 모르는 민중이여. 전설을 만들어내는 민중이여.
슬그머니 풀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못 이루었던 소원을 이루어보는 씨알이여.
끝까지 전도하는 이여. 민초여.
그리하여 김수영의 '풀'이란 시가 떠올랐던 것이다.
세미나가 있었던 12월 9일은 박근혜 탄핵 가결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오후 반차를 쓰고, 국회 앞에서(마침 회사가 여의도에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가결 소식만 확인하고 비교적 일찍 그 자리를 떴다.
국회의사당 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서, 나는 아직 거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다시 둘러 보았다.
마냥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의 환호와 눈물을 가셔내고, 어느 새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우리가 강도를 높여가면 어디까지 높여갈 수 있을까."
최봉실 선생님은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 심판에 차분하고 담담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한 소식을 전하며,
우리가 강도를 높여가면 어디까지 높여갈 수 있을지 물으셨다.
또 우리가 어떻게 전투력을 높여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그 힘을 고양시켜 갈수 있을지 물으셨다.
먼저 우리의 전투력을 고양시켜 나가려면, 구성원 한명, 한명이 고양되어 가야함을,
구성원 한명, 한명이 자기 삶 속에서 구체적인 변화들을 일구어야 함을 이야기하셨다.
각자 변화하고자 하는 모습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분명해야 하는데,
이러한 성찰은 맑은 정수에서만 가능한 일임을 다른 모둠을 대표해 발표했던 이밀알님의 표현을 빌어 설명하셨다.
그리고 이 맑은 정수는 모든 것이 흔들려 버리고 무너지는 비극의 경험 없이는 얻을 수 없음을 강조하셨다.
두려움,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고 했다.
불안은 허구라는 것을 깨닫고 바라봐야할 것을 바라봐야 함을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후기로 남기라는 숙제를 주셨구나.'
가 닿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이야기 나누는 것을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
나누고, 나누고, 끝까지 나누기를 힘써야겠다.
눕고 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풀처럼.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첫댓글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또 울었다
그렇게 한참 울다
바람이 불어 다시 또 누웠다
누워서도 계속 울었다
울고 울다
문득 생각했다
나의 울음이 슬퍼
바람이 다가오지 못하면 어쩌나
풀은 눈물을 닦으며
다시 일어났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침 햇살이 눈부셨다
미소를 지어 햇살이 빛난 건지
햇살이 눈부셔 미소를 지은 건지
하지만 인생은 그토록
무엇이 먼저였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분명한 것은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풀의 미소와 햇살의 만남
어느새 비가 그쳐 있었다
풀은 햇살에 더없이 반짝였다
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바람과 비와 풀과 햇살은
그렇게 한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