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염(沒炎)
내가 학급 담임을 맡지 않은지 오래고 학생들과 함께 한 바깥 행사에는 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런데 작년 가을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희망 학생들을 대상으로 ‘남도 인문학 기행’ 행사가 실시되었을 때는 동행한 적 있다. 전세 버스 두 대로 강진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둘러 김영랑 생가와 동인문학 박물관을 답사했다. 이어 벌교 조정래 문학관과 ‘태백산맥’ 작품 배경을 둘러봤다.
올봄 동아리부서가 조직되어 매주 한 시간씩 동아리 활동이 이루어지던 삼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교지 발간을 맡는지라 해마다 ‘교집편집부’ 동아리 지도교사 붙박이다. 동아리장이 아직 여름방학에 들려면 한참 남았는데 방학 초기 서울로 대학 탐방을 가려고 계획 중이니 지도교사로 동행해 주십사고 했다. 동아리장은 업무 담당자에게 예산이 따르는 공모 신청서를 내는 참이었다.
지난주 방학에 들고 고3 학생 일부는 주말 진주에서 열린 대학 진학 박람회에 다녀왔을 것이다. 방학 첫날인 월요일은 1·2학년 일부가 수도권 대학 탐방이 실시되었다. 진로상담부 주관 행사로 1학년 희망자와 2학년은 내가 지도를 맡은 교지편집부와 시시토론반이 결합이 된 대학 탐방이었다. 아침 이른 시각 전세버스 두 대로 당일치기로 서울 소재 두 대학을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짧은 여름방학이지만 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산천을 누빌 계획이다. 그런데 방학 첫날은 발이 묶여 학생들과 함께 보낼 일정이다. 길이 멀다보니 대학 탐방을 나서는 학생들이 아침 여섯 시 학교 근처 충혼탑에 모였다. 우리 학교에서 단체 활동 전세버스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다. 어제는 자연계열 동아리에서 산청천문대로 여름밤 별자리 관측을 떠났다.
인원 파악을 끝낸 대학 탐방단은 갈 길이 먼지라 지체 없이 출발했다. 창녕을 지나 현풍을 앞두고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달려 선산휴게소에 잠시 들렸다가 산악지대 터널을 몇 개 지나니 충주 인근이었다. 이천과 여주를 지나 동서울요금소를 빠져나가니 미사리조정경기장 근처로 팔당댐이 멀지 않은 어디쯤으로 헤아려졌다. 올림픽대로를 잠시 달려 구리암사대교를 건너니 강북이었다.
구리암사대교는 최근 한강에 놓인 다리였다. 교량 북단에 이르니 바로 용마터널로 연결되어 중랑천이 나왔고 우리가 가려는 경희대와 외국어대가 멀지 않았다. 러시아워가 지난 시간대라 도로는 그리 혼잡하지 않았다. 경희대 정문을 들어서니 주차요원 안내를 받아 미리 연락이 닿은 재학생 대학 홍보대사들이 맞아주었다. 고대그리스 신전 같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이 인상적이었다.
캠퍼스는 아파트단지나 주택지에 비해 나무들이 많아 한낮이라도 뙤약볕 복사열기가 덜한 듯했다. 제복을 갖춰 입은 남녀 홍보대사들은 우리 일행들을 중앙도서관 세미나실로 인도했다. 미래의 대학생이 될 우리 학생들에겐 선배들의 위치에서 자기 대학 소개는 물론 그들의 입시 체험담과 전략을 실감나게 전해주었다. 지방에서 올라간 학생들에겐 더 없이 좋은 진학 정보를 접했다.
입시설명회를 마치고 웅장한 본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몇 장 남기고 외대로 향했다. 경희대 인접이라 이동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학 구내식당에서 각자 취향 따라 학식 체험도 해봤다. 옆 자리 한 학생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외국인이 왜 이리 많은지 물어왔기에 나는 우리가 찾아온 대학 이름이 뭐던가 생각해 보라 했다. 식후 입시설명회가 있는 대학원 강의동으로 갔다.
입학사정관과 홍보대사가 자발적으로 찾아간 예비 대학생을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나는 외대와 인근 지형지세를 잘 알고 있었다. 천장산 아래는 의릉이고 옛 중앙정보부 터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그 자리다. 카이스트 재학하다 진로를 바꾼 작은 녀석이 그곳을 다닐 때 살던 옥탑방 골목이 생각났다. 나는 잠시 짬을 내어 외대 바깥으로 나가 골목길에서 그 옥탑방을 올려다봤다. 18.07.23